옆동네 골목 죽은 두더지가 더러 발견되었다

누구 소행인지 몰라 108동 주민들은 기다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너지 너지하며 꼬리를 물어뜯기 바빴던 아래층과 

아무데나 뿅망치 두드리던 맨 위층 사람들은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털 다 뽑힌 두드러기 시체가 대문짝만하게 박제되자

온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만은 건드리면 안됩니다 선을 넘었습니다 꼭 잡아야만 합니다

1101호의 탄원과 억눌린 불만이 터져 무작위 수사가 착수되었다

단단히 걸어잠근 쇠고랑 사이로 의심의 빠루가 날아들고

죄없는 두더지들은 안쓰는 장롱 깊숙이 터를 잡고

아무런 연고도 상관도 없는 109동 주민들은 비탄에 빠진 척 쉬쉬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암묵적 합의를 보고 나서야

마침내 1층 털 없는 입주민 몇이 한파 거리로 내쫒기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가지 기억해야 한다

털 뽑혀 죽은 두더지를 추모하는 대신

우리는 축배의 잔을 들어야 한다

아래로, 끊임없이 아래로 결국은 밑바닥으로

뭐든지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끝내는 제일 아래에 고인다는 사실을.

청담동 두더지들은 땅 맨 깊숙한 곳에 산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광란의 파티를 열어야 한다

개같은 현실을 눈 감고 살아내야 한다 내일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두더지가 아닌 개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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