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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 ISLAND - 작별인사





영원히 사랑한다는 거짓말


01



갑작스럽게 그리고 엄청나게 추워졌다.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면 뭐. 하고 넘겼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집 안은 벌써 보일러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따끈한 방에서 움직이기 싫었던 월이는 어기적어기적 기어나와 빠른 속도로 준비한 뒤에 아쉬운 얼굴로 보일러의 스위치를 바꾸고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들이치는 바람이 너무했다. 그래. 많이 너무했다. 


"이제 나가?"


그리고 한기가 가득한 문을 열자마자 그 옆의 벽에 살짝 기대어 눈을 맞추는 그의 모습도 너무하다고 월이는 생각했다. 


"너 왜 점점 나가는 시간이 빨라지는 거야?"


정말 너는 그 이유를 몰라서 그렇게 태연하게 말을 하는 거니? 네가 이렇게 기다려서. 어제보다 더 빨리 나가야 나를 기다리는 너를 마주하지 않을테니까.  턱끝까지 차오른 말은 많았지만 월이는 애써 참아냈다.


"월아, 네 노력은 정말 가상한데."

"..............."

"네가 이렇게 피한 덕분에 나 새벽부터 내내 너만 기다렸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울어진 몸과 벽에 살짝 머리를 기댄 정국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능글맞아졌다고 해야할까. 더 뻔뻔해졌다고 생각해야할까. 


"이렇게 너만 기다리는 내 노력도 생각해 줘."


그러니까 누가 노력하라고 했냐고. 반갑지도 않은 노력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정국의 얼굴이 미웠다. 


"나를 왜 기다리는데."

"................."

"그런 노력 하지마."


네가 이런다고 나 하나도 좋지 않아. 불편해. 싫어. 기다렸다는 정국의 말에 월이는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불편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빨리 너를 피해야만 했다. 


"앞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 월."

"우리 지금 이러는 것도 엄청 웃겨."


웃기다는 월이의 말에 정국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뭐가 웃겨. 월이는 굳어질대로 굳어진 그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그러자 월이의 곁을 한걸음에 따라잡은 정국은 낮아진 목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이게 웃겨?"


다정했던 목소리는 한 순간에 차갑게 변했다. 여전히 말이 없는 월이를 향해 한 번 더 묻는 정국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에워쌌다. 월이는 짙은 한숨을 내쉬고는 정국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 웃겨. 그럼 안 웃겨?


"잊었어? 너와 나 무슨 사이인 줄?"


지금까지 무시하던 자신의 말에 대답해 준 월이를 보고 무엇이 좋은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정국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허탈해진 월이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만 하자."

"무슨 사이인지 너무나 잘 알지."

"전정국."

"우리 결혼 했잖아. 결혼한 사이잖아."


전정국. 한 번 더 낮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월이였고 둘 밖에 살지 않을 이 아파트 층에 혹시나 누가 있을까 연신 두리번 거리는 월이였다. 왜. 무슨 사이였냐며. 우리 부부였는데. 곤란해하는 월이를 눈치 챈 정국이 한 번 더 쐐기를 박으며 이야기하자 월은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 뒤는 말 안하는데. 


"그리고 이혼한 사이지."

"................"

"너랑 나 결혼하고 이혼했어."


더 이상 서월과 전정국이 얽혀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이. 유부남, 유부녀를 만든 것도 모자라 이혼남, 이혼녀 타이틀까지 붙게 만들어 준 사이. 서로가 서로의 앞길의 걸림돌이 될 그런 사이다. 그들은. 근데 왜 전정국 너는. 


"그게 뭐."


대체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그게 뭐 어떠냐고."


전정국 너는 전부 개의치가 않나보다. 월이는 너무나도 당당하고 태연한 정국을 보며 얼이 빠졌다. 


"이혼이 뭐 어때서. 그게 우리가 못 볼 이유라도 돼?"


나만큼이나 넌 너무나도 우리의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다.


"이혼한 사람끼리는 만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

"................"

"이혼 그까짓 게 뭔데."


죽을듯이 사랑했던 우리가 얼굴 하나도 못봐야 하냐고. 그 말을 하면서 감정의 동요가 없어보이는 정국을 보며 월이는 입술을 짓이겼다. 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고 묻고 싶은 것을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참았다. 


"너랑 나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더이상 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할 수 있잖아. 어떤 말을 해도 지금의 정국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월이는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말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단호해져야 할 시간이었다. 이렇게 말 섞는 시간도 사치였다. 정말 늦게 생겼어. 일부러 일찍 나왔는데 이게 뭐야. 처음부터 정국을 무시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뛰다시피 걸었지만 그마저도 단숨에 쫓아와 손목을 낚아채는 정국 덕분에 멈춰선 월이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기어코 멀어져 가던 월이를 붙잡은 정국은 낮게 중얼거렸다. 상처받은 듯한 눈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정국 때문에 월이는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다.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야 했다. 이거 놔. 


"전..저ㅇ..."

"얼마든지 나 원망해도 좋아. 끝까지 밀어내도 괜찮아."

"야."

"내가 다 감당할게. 근데 그렇게 나를."


그렇게 나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만은 보지마. 자신의 눈빛이 문제였던 것일까. 정국은 월이에게 전에 보인 적 없는 애원을 담아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네가 나 그렇게 보면."

"............"

"나 정말 아파."


답지 않게 약해진 정국을 월이는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못하는 월이의 심정도 정국은 알았을까. 


"출근하자. 우리 진짜 지각하겠다."

"먼저 갈게."

"월아."


데려다 줄게. 더 말하지 않아도 거절할 월이를 향해 잡은 손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이끄는 정국이었다. 불편해. 단호하게 말하는 월이의 모습에 정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생명 살리는 의사야."

"갑자기 그게 무슨."

"지구도 생명이지."

"뭐라는 거...."


집도 같고 직장가는 길도 같은데 뭐하러 차를 두 대나 써? 그러면 못 써. 지구가 아파. 우리는 의사니까. 말도 안되는 말로 월이를 설득하려는 정국을 보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월이의 반응은 아랑곳않고 거창하게 지구까지 들먹이며 말하는 정국의 얼굴은 해맑았다. 


"그러니까 내 차 타고 가. 아니면 네 차 타고 갈까?"

"전정국."

"그래. 나 전정국이야. 근데 우리 진짜 빨리 가야 해."


오늘 오전에 외과 컨퍼런스 있잖아. 교수 두 명이 나란히 지각하면 아래 애들이 어떻게 보겠어. 아 정말 쪽팔린다 그거. 지금까지 실랑이를 벌인 탓에 늦은 게 본인 때문인데 저렇게 말을 하는 정국이 얄미웠다. 너만 아니었어도 안늦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힘 빼지 말고 같이 타고 가. 나 바로 수술도 있단 말야."

"....................."

"가자."


결국 정국이 이끄는 대로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 문을 닫아준 정국은 재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며 월이를 향해 웃었다. 그 웃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월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너를 밀어내야하는 걸까. 정국아. 

아직도 눈에 선명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모두의 앞에서 했던 맹세.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그 맹세를 하고 결혼한 우리는 이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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