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모습이 가장 깨끗한 당신이었어. 용기낸 욕심으로 손뻗으면 손끝에 닿자마자 사라질 사랑. 어디라도 좋아. 무사히 착지해서 짧은 반짝임을 조금만 더 하얗게 유지해주길. 손바닥으로 아쉬운 소망 하나를 쥐고 있을 뿐. 아무도 몰래 주먹에 가둔 온기가 유독 뜨거울 뿐. 

아무도 몰래 수다쟁이를 가둔 압축의 마법이 꽁꽁 굳어서. 울음도 새어나오지 않게 막아버리고.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은 심장에 오래도록 메아리치고. 아직도 낙하중인 당신을 그저 바라보며 우는 것조차 두려웠어. 이 몸에 달라붙은 사람의 온기를 당장 내다버리고 싶었어. 여린 결정을 한껏 끌어안고 싶어서. 다만 지켜주고 싶어서.


폭설처럼 쏟아지는 당신을 전부 받아내면 겨울은 물러갈까? 완연한 봄이 오면 꽃샘추위에 버티던 당신이 흔들릴지도 몰라. 그럴 바에는 우리 한겨울에 파묻혀 함께 사라지자. 수많은 당신에 휩싸여 나의 체온을 차차 내려두면, 싸늘해진 손끝에 닿아도 당신은 화려한 결정인 채로 남을 수 있어. 나의 시간을 바쳐서 눈꽃의 시간이 연장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눈물을 떨어뜨린 자리마다 당신이 몇 송이씩 피어나고. 토한 자리마다 가슴에 묻었던 말들이 쏟아져 펄떡이고. 머리를 기댄 자리마다 머리칼에 묻혀둔 그대 손길이 흐려져가고. 그렇게 나한테 쌓여온 흔적조차 떠나보내며. 새하얀 눈밭에 드러누워 최후의 잔여물을 털어내며. 점차 눈이 녹아가.


...


치워도 치워도 다시금 내려쌓이는 눈처럼 선생님은, 순진무구한 겨울에 실려 피어날 동백처럼 선명하게, 하얀 얼굴에서 흘린 물로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그렇게 핏빛은 눈꽃마저 삼켜버렸죠. 

그저 밤처럼 소란한 고요함으로, 봄처럼 모호한 따스함으로 사랑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도착한 행성에서 첫눈을 기다리는 소녀의 마음을 뒤늦게 전해요. 최초의 목격자로 거듭나는 순간, 눈송이는 이마에 앉아 물기 어린 흔적을 선사하죠. 이내 다가올 봄을 조용히 알려주는 선생님의 마법은 마지막까지 상냥하네요. 녹아내린 당신께 눈물의 박수를 뜨겁게 보낼게요. 일생일대 최고의 마술쇼를 향해, 꼭꼭 가뒀던 온기도 아낌없이 바칠게요.

-2020.12.13.

어둠을 헤매는 자에게 글로써 작은 빛줄기라도 비추어 그들이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돕고 싶다. 세간의 병든 운석이 나를 상처 입히려 해도 나만은 이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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