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매뉴얼대로 다 했어.”

“어, 땡큐. 태형아. 그러면 저기 제어보드랑 케이블 세팅 해줄래?”

“응, 응.”


갑자기 일정이 2달이나 당겨진 프로젝트로 인해서 현재 지민과 태형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정대로 흘러갔다면, 윤기와 함께 일을 분배해서 진행하면 지금과 같은 바쁨은 없었을 테지만. 그 당겨진 2달이란 시간은. 윤기가 현재하고 있던 프로젝트 디버깅으로 지금 지민과 태형을 괴롭히는 이 프로젝트에는 매달릴 시간을 주지 못했다.


사내에서 같이 진행을 한다면야, 프로젝트 두 개를 번갈아가면서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업체에 거의 상주하듯이 머물러야 하는 현 상태에서는 불가했다. 경력직으로 입사했더라도 그간 해오던 일과 이곳의 일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윤기와 지민이 페어로 일을 하며 SW/HW로 파트를 구분해 놓고 했던 것처럼 협업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전적으로 지민이 SW와 HW를 도맡고 태형은 서브로 진행을 할 수밖엔 없는 상황이다 보니, 평소보다도 일정이 늘어지기 마련이었다.


마지막 남은 보드의 단품 테스트를 마친 태형은 거미줄처럼 뒤얽혀 늘어져있는 시험용 테이블 위의 5개의 보드와 케이블, 그리고 센서들의 모습에 잠시 두 눈만 끔벅거리며 서있었다.


“좀 괴기해.”


아직 기구물이 입고되지 않아 보드들과 배선들이 테이블위에 널브러뜨려져 있을 수밖엔 없었다.


“아, 태형아. 디자인팀 송선임한테 연락해서 기구 일정 당겨졌냐고. 언제 입고되는 지 좀 확인해줄래?”

“..송..송 뭐?”

“송.명.수 선임님. 비상연락망 보면 디자인팀에 송씨 한 분이셔.”

“응!”


턱을 괴곤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을 하는 지민에 태형은 송명수. 송명수 읊조리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온도가 제한 치에 도달하면 멈추긴 해야 하는데. 이 시스템 상에서는 바로 출력을 OFF해버리면 부하 때문에. 모드를 하나 더 넣어야 하나. 코딩을 하면서 잘 풀리지 않는지 지민은 엄지손톱까지 앞니에 걸어 탁, 탁 튕겨내며 고민했다.


“지민아. 다음 주 월요일이면 기구물 다 들어온대. 금요일 오전에 베이스 케이스는 입고될 예정이라서 보드랑 케이블 넘겨주면 조립해서 화요일 오전까지 준대.”

“아, 진짜? 많이 당겼네?”


절대 못 당긴다고. 다음 주 목요일 말하더니 웬일이래? 라는 지민의 반응에 출장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있던 윤기가 끼어들었다.


“당장 다음 주 금요일에 납품해야하는데. 안 당기고 배기냐?”


이번 주 금요일까지 줬어야하는 거지. 일정이 이렇게 당겨졌으면. 납품이 금요일인데. 다음 주 목요일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너 저렇게 테이블에 널브러뜨려놓고 시험하면 위험해, 인마. 몇 백 단위도 아니고 3kV가 출력으로 나오는데. 다치려고 아주 그냥. 손 한 번 아작이 나봐야 하냐. 손이 뭐야 얼굴도 다 날아갈 수 있어, 너. 뭐, 죽을 수도 있지. 시험할 때 안전 준수 하라고 했다, 너. 알았지? 라고 까지 말하곤 캐리어를 들고 나가는 윤기에 지민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걱정을 좀 예쁘게 해주면 덧나나. 지민이라도 고압을 다루면서 얼렁뚱땅 설렁설렁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안전 불감증도 아니다만, 현 상황에선 저것이 최선인데 어쩌겠는가.


“태형아. 테이블에 있는 거 싹 모아서 송선임님 전달해줄래?”

“응!”


다시 코딩에 집중하던 지민은 태형이 자리로 돌아오자, 제 자리로 불렀다.


“일단 우리 계획은 이래.”

“..어떤데?”


일단은 우리의 본격적인 시험은 화요일 오후부터야. 태형이 너도 이번 주 주말에 푸우우우욱. 아주 푸우우욱 쉬고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우리 화요일부터는 회사 밖으로 못 나갈 가능성이 매우 크거든. 이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하는 지민에 태형의 입은 저절로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생글거리는 얼굴과는 달리 지민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너무도 무시무시했으니까.


예상과는 달리 월요일 오후부터 지민에게로 돌아온 제품 덕분에 지민과 태형의 야근은 월요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나마 한층 나아진 것이라면 이전과는 달리 제품의 형상을 갖춘 덕분에 시험하기가 덜 무서워졌다는 것? 거미줄처럼 널브러져있던 보드들은 제 위치에 알맞게 들어가 있었다.


“지민아.. 이거. 자꾸..”

“나도 알아.”


보드를 널브러트려놓고 할 때는 미처 연속성 시험을 하지 못해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출력을 내보내고 1분 남짓 지나면 갑자기 출력이 꺼져버리는 현상 말이다. 초조한 얼굴로 지민에게 현상을 읊으려는데 한껏 구겨진 얼굴로 지민은 알고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였다. 턱을 괴곤 테이블을 툭툭 치는 지민의 행동에 태형은 두 손을 곱게 모으곤 자리에 앉아 지민의 눈치만을 살폈다.


모니터링 온도 전혀 이상 없고. 출력도 문제없었고. 지금 거의 열 번 반복해도 계속 1분 남짓 시간이었어? 이유가 뭐지? 그 시간쯤에 뭔가가 프로텍션을 거는 건데. 꺼지는 게 fault를 띄우지도 않았어. fault가 있으면 로그가 남아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그럼 어딘가 프로세스상에서 정지 신호가 먹는다는 건데. 대체 뭐가? 입술까지 잘근잘근 깨물며 지민은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으아아악, 씨!”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뭔데! 뭐냐고!”


왜 멈추냐고, 왜에. 하드웨어 폴트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켜면 문제없이 시작되는 걸 보면 하드웨어 적으로 문제는 아니라는 소리 아니야? 그럼 소프트웨어에서 제한 걸어준다는 게 클 텐데. 대체 뭐가 거냐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는지 지민은 두 주먹까지 움켜쥐고는 부들거렸다.


“태형아, 파형 모니터링하면서 1분쯤에 전압 어떻게 빠지는지 트리거 걸어놔. 일단 100V 하강에지로 맞춰봐.”

“어, 어!”


안 그래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민의 눈치만 살피던 태형은 지민의 명령에 퍼뜩 일어나 잽싸게 행동했다.


“순차적으로 빠지는 거 아니고. 이거는 그냥 PWM 출력이 바로 다 빠지네. PWM이.. 빠질 조건...”


캡쳐된 파형을 눈여겨보던 지민이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중얼중얼 무어라 읊조리는 지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던 태형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에 슬쩍 몸을 뒤로 물렸다. 애꿎은 손톱만 문질거리며 지민의 눈치를 살피던 사이에 지민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씨이!”


아씨하고 분명 성질내는 어투임에도 불구하고 지민의 환한 표정에서는 문제가 해결됐음이 보였다.


“태형아!”

“어, 어!”

“와-씨. 테스터 타이머를 아직 살려놨었어. 그 때 1분 타이머 삽입했었잖아.”

“아~. 그래서 1분마다.”

“어!”


뿌듯함이 넘쳐흐르는 지민의 표정에 태형의 얼굴 역시 밝아졌다. 다시금 순항을 하기 시작한 시험이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기 때문에 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금 시험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간략 내구 시험을 진행할거야.”

“어떤 거?”

“일단 24시간 연속 구동이 있고. 온도 레코더랑 파워메타 데이터는 자동 저장이 되니까 세팅만 잘 하면 되는데. 오실로스코프는 PC 연동해서 10분 간격으로 캡쳐 할 거거든? 그리고 파워메타 데이터도 이상하게 저장되진 않는 지 계속 확인이 필요해. 그리고 상위 제어기랑 통신하는 부분 검증도 일단 해야 하는데. 음. 일단 통신 시험 완료하는 걸 오늘의 목표로 하자. 오늘 통신 문제없이 다 되면 내일부터 내일 모래까지 내구 시험하고. 목요일에 시험데이터 다 정리해놓고 금요일에 업체 가면 끝.”


문제없이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간다면 참 행복하겠지만, 문제가 생길 거야. 그렇지? 라며 방긋 웃는 지민의 얼굴을 마주하며 태형은 울상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은 순탄하지 않았다. 현재 시각 새벽 2시.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온 지민은 동네 건달이 뒷걸음질 칠 정도로 매서운 표정과 껄렁한 자세로 시험실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마 앉지도 못하고 벌 받는 학생 마냐 지민의 옆에 서 있는 태형은 두 손을 곱게 제 배에 모은 자세로 입술 꾹꾹이만 하고 있었다.


“왜 스타트 비트도 안 주냐고..”

“..”


모사 통신 프로그램으로는 문제없이 통신이 되는데. 어째서 실물 통신모듈만 연결하면 데이터 통신이 되질 않는 건지. 이것들 불량품 준 거 아니야? 제대로 되는 거 준 거 맞아? 전원 아답터만 꽂으면 통신 될 거라며. 별도 매뉴얼도 필요 없다고 안 줘놓고는. 통신모듈을 손에 들곤 요리조리 돌리던 지민이 후-하고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불어 넘겼다.


“태형아.”

“어, 어!”

“이거 모듈명 인터넷 검색해서 매뉴얼 있는 지 좀 찾아 봐.”

“응!”


태형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사이 지민은 계측 장비들의 설정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지민아. 매뉴얼은 안 나오는데.”

“하아..”

“근데. 이거 찾기는 했는데..”

“뭐?”

“바닥에 스위치 3번째 걸 ON해야지 통신이 된다고.”

“바닥에 스위치?”


4년 전에 올라온 글이긴 한데. 똑같이 생겼지 않아? 라는 태형의 말에 지민은 일단 해보자며 모듈을 뒤집어 스위치를 찾았다.


“하-.”

“..?”

“되네..”

“조..좋은 거 아니야?”

“..전원만 넣으면 돼?”


미간을 팍 구기고 성질을 내던 모습과는 달리 일단 태형아, 너무 수고했어. 잘했어. 라며 싱긋 웃어주는 모습에 태형은 가슴에 화한 불꽃이 피는 것 같았다. 지민이 웃는 거 진짜 이쁘다. 헤벌쭉한 표정으로 지민을 감상하던 태형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망할 새끼들..”


지민은 다시금 매서운 표정으로 돌아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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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새끼들은 발톱도 외치고 싶어요 ㅋㅋㅋㅋ

3화가 그렇게 오래 된 줄 몰랐어요.

발톱은 요즘 정말로.. 코로나 탓도 있지만 [회사-집]만 왕복하고 있는데요..

집에서 씻고 자는 것 밖에 못해요.....

요즘 발톱은 Save ME와 불타오르네만 줄창 들어요 ㅋㅋㅋㅋㅋㅋ

출퇴근 길에는 Save ME 한 곡 재생

같이 협업할 땐 이어폰 낄 수 없으니까 못 듣기는 하는데. 혼자 시험하고 그럴 땐 ... 불타오르네 한 곡 재생 ㅋㅋㅋ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진짜 야근할 때 불타오르네 만한 곡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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