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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농구에 관심 있을까 싶어서!”

 


우리가 마침 딱 너같은 매니저를 구하고 있었거든~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외마디 물음에 돌아온 말은 더욱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같은 매니저가 뭐지. 지나가다 농구공에 맞는 사람? 미세하게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포착한 상대는 똑부러지는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방금 전 상황의 어디에서 자신의 똑부러짐을 본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부러질 뻔 하기는 했지만.

 


허나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으니 뭐든 경험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던 여자는 잠시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잠시동안 느껴진 눈빛들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일찍이 중학생 때부터 농구에 관심이 있던 것도 결정에 한 몫을 해주었다.

 


부리나케 입부 신청서를 찾아온 선배 둘은 눈을 빛내며 긋는 획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글씨가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던 탓에 조금 더 손에 힘이 들어갔기는 해도, 어찌저찌 써서 보여준 신청서를 꼼꼼히 읽던 묶은 머리의 선배가 안그래도 큰 눈을 더욱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이름이.. 특이하네!”

“아... 제가 한국에서 유학을 온 거라...”


 

유학? 되묻는 둘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묻어있었다. 점점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던 그냥 고등학생 1학년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고 손사래쳤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을 꼭 잡은 두 선배는 잘 부탁한다며 연신 당부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점심시간”

“아!! 점심 깜빡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 남자 선배는 깜짝 놀란 여자 선배를 뒤로한 채 체육관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그제야 느껴지는 위기감에 고개를 돌려 아직 남아있는 선배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제가... 1학년 10반인데요.”

“응.”

“...매점에 들렸다 간다면.”

“...늦겠지?”

“...그렇겠죠?”

 


주린 배를 부여잡는 수 밖에 없겠구나. 여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놈의 짝꿍 팬클럽을 피하겠다고 매점 가려다 되레 굶기나 하고. 늦기 전에 반으로 돌아가기나 해야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목소리의 선배가 급히 불러 세운다.

 


“방과후에 시간 있어?”

“네? 네. 딱히 바쁠 일은 없는데...”

“그러면 방과 후에 여기로 한번 더 와.”

 


미리 부원들 얼굴도 보고, 연습하는 것도 미리 보면 좋잖아, 그렇지? 상대는 시선을 확 잡아끄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 시대 소시민의 표상이라 해도 이견이 없는 나를 보고 정확히 반대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저런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자신이 생각보다 제법 당돌하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자그마한 전학생은 그런 잡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농구공을 드리블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들을 볼 생각에 설레어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발길을 돌린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리기 직전에 뛰어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복도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런 일은 애초에 발생한 적이 없는 듯이 교과서를 꺼냈다. 힐끗 보던 수학 선생은 이내 수업을 시작했다. 지적하기에는 그리 친밀하지도 않은데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거지. 게다가 수업에 늦은 것도 아니라서 말 하기도 애매하고.

 


본인은 모를 선생님만의 작은 고민으로 주목받는 것을 유야무야 넘어간 여자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별 건 아니고, 뛰어서 숨이 차길래.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점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여자애들 셋이 다가와서 야! 하고 윽박을 질렀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그들의 사이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에 의식주라는 게 있는데 ‘굳이 짝꿍의 팬클럽과 대화해서 필요없는 스트레스 받기’ 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매점에 멀쩡한 빵이 남아있어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뛰어다니며 식사하느라 체할 것 같은 것만 빼고는 좋았다. 맛도 뭐… 이정도면 나쁘지 않지. 여자는 가쁜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짝꿍이 힐끗 쳐다보는 것도 같았지만, 아는 체 하고싶지 않아서 눈치 못 챈 척 꼭꼭 씹어먹었다. 함께 구매한 음료도 마시고.

 


감겨오는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여념이 없던 여자는 오후 수업이 끝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가방을 챙기던 중에 슬쩍 옆을 봤지만, 짝꿍은 벌써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돌아간  후였다. 그래. 집에 가서 잠이나 자려는 거겠지. …그래서 그렇게 키가 큰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던 와중에 잘 닫혀있는 체육관 문 앞에 도착한다. 점심때 기억이 쉽사리 잊힐만큼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걸음을 옮긴다. 딱 나같은 매니저가 필요하댔지. 필요한 매니저…

 


“마침 필요한 매니저 등장

이 아니라 안녕하세요!”

 


속으로 되뇌이던 말을 무심코 내뱉고 만 예비 매니저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필 일본어 연습을 하겠다고 일본어로 생각해서는 헛소리를 친절하게 통역까지 하다니... 지금 기절하고 싶다. 어디 빠른 속력으로 날아오는 농구공은 없나? 볼링공은? 있을 리가 없지. 수만가지의 기절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 이상하리만치 느껴지는 시선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조금 익숙한 미남의 실루엣. 짝꿍이었다. 

현재 애기 글 활활 / 원 그림쟁이 이입형 드림러 / 많관부☺💕 / 커미션 https://kre.pe/983O / 문의 - suin11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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