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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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미파 수련제자 인가?”



수녀 미리엄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마가 뱉은 첫 마디였다.



'검은 두건과 옷으로 꽁꽁 싸맨 것이 영락없이 아미교 비구니네. ‘



그러나, 바로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이놈! 잔! 수녀님께 무슨 말버릇이냐!”



어머니 이자벨 로메가 처녀의 몸으로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올 정도로 모태신앙이 투철했던 장 다르크는 정신이 나가버린 여동생이 예절마저 잊어버리자, 대노했다.


"이봐! 색목인 소협! 자네 말이 좀 짧군.”


천마는 아예 싹 다 죽여버릴까 머리를 한참 굴리고 있던 차에 자꾸 저를 누이라 불러대는 두 백인청년의 말투가 거슬려 인상을 있는대로 쓰고 있었다.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


장 다르크는 자신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과 똑같이, 여전히 크고 똘망똘망한 동글한 눈과 채 볼살이 빠지지도 않은 귀여운 여동생의 얼굴에서 이질적인 낯선 사내의 기운을 느꼈다.


더구나 티없이 맑고 깨끗하던 누이동생의 눈동자에서 어두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했다.


'분명 몸은 내 막내누이가 맞는데 이 아이의 행동과 목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머리색도 완전히 백금발로 변하고..잔. 정녕 너는 미친것이냐 아니면 정말 신부님 말대로 신의 사자로 선택된 것이냐?’



장 다르크는 부모와 장남이 모두 사망한 가운데, 이제 자신이 다르크가의 가장으로서 강한 책임감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 동생들을 전쟁통에 거둬들여야 할 판에, 집은 박살나 폐옥이 되었고,막내누이는 머리가 허옇게 탈색된 채로 정신병자가 되어 있어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마침 천마 잔 다르크의 옆에서 제 누이의 탐스런 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던 해맑은 얼굴의 피에르가 끼어들었다.


“형! 우리 막내 머리 은발로 변했어!저 잉글랜드 놈들이 덮칠때 너무 놀라 머리도 하옇게 질렸나봐! 불쌍한 우리 막내.”



“닥쳐라! 꼬마. 누구더러 막내라 부르나?”

천마가 있는 대로 눈을 부라리며 피에르를 노려 보았다.


그때 미리엄 수녀가 천마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잔. 날 기억하지 못하겠니? 네가 9살때 주기도문을 읽지못해 내가 알파벳부터 가르쳐 줬쟎아.위페르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받으러 올때마다,꿈속에서 계속 천사들이 나타나고 주님의 말씀이 들린다고….”


젊은 부사제 다니엘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건 신성모독이요! 미리엄 수녀.감히 거룩한 성부성자의 이름을! 자칫하면 마녀로 몰리거나 이단으로 재판정에 서게 될것이요! 전쟁통에 미쳐버린 기껏 어린 계집애 하나의 헛소리에 모두 놀아나고 있단 말이오.”



부사제는  주임신부 위페르의 눈치를 보며 천마의 허옇게 탈색된 백금발을 가리켰다.


“이 아이가 마녀라는 증거입니다.”


순간, 천마의 양 손가락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여차하면 모두 날려버리고 튈 생각이였다.



낮선 곳에 떨어져 어린 소녀의 몸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뜬 것을 발견하였다.

이들이 말하길 여기는 천축국이 아니라 중원의 서쪽 대륙의 한 나라, 불란서 즉 ‘프랑스’ 라는 한 국가였다.


작은 수많은 봉토로 갈라져 있는 영주제 국가로 이웃해 있는 한 섬나라가 이들 나라를 침략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들이 세는 달력의 날짜로 계산하여, 아랍사막의 한 귀신이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서기(西紀)  1429년으로, 이는 무려 자신이 사망한 한제국 초기로부터 무려 1,500여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뭐지? 이건? 내가 환생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1500년이나 지나 양치기꾼의 딸로 환생하다니.

새로 시작하는 제 2의 생도 역시 천한 태생이라니.

난 역시 부귀영화하고는 거리가 먼 것인가.’


천마 본인을 포함하여 아무도 반응이 없자, 기세등등한 다니엘 부사제는 더욱 소리높혀 외쳤다.



“보십시오. 본인이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이 아이는 위험한 아이입니다!마녀가 틀림없습니다!”



- 보십시오! 이 자는 마교의 수장이자, 아수라입니다!

세상을 피로 물들일 악마입니다!




이미 전생에서도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새삼스럽게 세상의 혐오와 경멸어린 시선이 하루이틀도 아니였고, 놀라울 일도 아니였다.

세상은 항상 그를 거부해 왔다.


천마는 눈알을 굴리며, 머리를 열심히 회전하고있었다.

‘생존본능’ 이야말로 오늘의 천마가 있게한 힘이었다.



'그래! 다 쓸어버리고 날라 버리자!난 어차피 어느 세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니까.

다행히 이 계집아이의 몸은 깨끗한데다 타고나게 무공을 익히기에 좋은 천무지체야.유일하게 그나마 내가 새로운 세계에서 버텨 생존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색목인 떨거지들. 마을채 몰살시키고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야지.내가 서야할 곳은 여기도 없어.’



천마는 이제 결심을 굳히고 서서히 내공을 단전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천마의 두 푸른 동공안에 희뿌연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순간, 심장 언저리에서 덜컹 무엇인가가 내려 앉았다.



- 안돼! 오빠들을 해치지 마!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 왔다.


동시에 심장이 찢어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고통과는 다른 아픔이었다.

생살이 저미는 듯한 슬픔과 고통이 천마의 온몸에 번져갔다.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아파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에만 익숙했던 천마조차도 도저히 이 아픔에 저항할 수 없었다.


 '넌 누구냐? 혹시 이 몸의 원주인?’



천마는 이제서야 자신의 안에서 다른 존재를 발견했다.본능적으로 몸속에 한 어린 소녀의 영혼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 소녀의 슬픔이 그의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천마는 가슴속으로 소녀를 불렀다.


‘이봐!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



천마는 다시 소녀를 불러 보았다.


‘소녀여.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


가슴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치며 울리며, 침묵만이 그의 부름에 답하였다.



그 때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천마의 어깨에 닿았으며, 순간 천마는 움찔거렸다.



“우리 잔은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이 아이는 13살때부터 신의 계시를 들어온 ‘선택받은’아이입니다.바로 눈앞에서 부모를 적들에 손에 잃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꿋꿋이 버텨온 장한 아이란 말입니다!”



그 손길은 놀랍게도 오빠 장다르크였다.


피에르도 주먹을 불끈 쥐고 형을 도왔다.



“하나님은 우리 막내를 예뻐하셔!사탄은 부사제님이겠지! 우리 잔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 얼마나 매일같이 기도하고, 매주 예배미사도 빠짐없이 참석했는데!악마는 우리 잔을 범할 수 없어!그건 당신들도 저 더러운 잉글랜드 놈들도 마찬가지야!” 



피에르는 행여나 제 누이에게 그 당시 살벌했던 교회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의 검은 손이 미칠까 겁이 덜컹 났다.


한없이 여리디 여린 심성의 막내누이는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여 그 잔혹한 고문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두 오라비가 누이의 작은 몸을 에워싸듯 막아섰다.


순간, 천마는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듯 굳어버렸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태어나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은’적이 없었다.

심지어 남궁세가의 본가에서 버려진 갓난아기였을 때조차, 아무도 그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

단 한명의 자기편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세상의 모두가 자신의 적이었을 뿐이다.


전생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낮선 감정에 전율이 일어 천마의 온몸을 지배했다.


'아이야. 너는 사랑받고 자랐구나.’


천마는 몸의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가슴 한켠에서 뭔가 뭉클해진 느낌에 천마의 안에서 확실히 누군가가 반응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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