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읏..." 

 

머릿속에서 폭죽이 펑펑 터졌다. 찌릿한 감각이 온 혈관을 타고 퍼져나간다. 숨이 막힐듯한 느낌에 무섭게 달라붙는 얼굴을 저도 모르게 피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머리 위로 작게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아.." 

 

숨이 막혀 죽을 뻔했다. 센티넬과의 스킨십은 다 이런 걸까. 술로 절여진 머릿속은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하고 멍했다. 눈을 끔뻑이자 그제야 흐릿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괜찮아?"


따스한 음성이 귓가를 간질이고 다정한 손길이 붉어진 뺨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꼴깍 침을 삼킨 민석이 무거워진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며 고개를 기울인 채 저를 살피는 백현을 본다. 심장이 줏대도 없이 매서운 속도로 뛰고 있었다. 서로 가까운 탓에 금방이라도 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아니, 등급이 높은 센티넬은 모든 오감이 발달했으니 이미 백현의 귀에 제 심장박동이 들렸을 수도 있었다. 순식간에 창피해져 고개를 떨구자 머리 위로 가벼운 입맞춤이 쪼아졌다. 


"민석아. 왜 얼굴 안보여줘"


.. 그걸 꼭 말해야 아나? 고개를 숙인 민석이 남몰래 입술을 삐죽였다. 

 

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태에서 취기가 도니 행동은 당연히 대범해졌다.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에둘러 피할 수도 있었는데 백현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리드했고 심지어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렇다는 건..


"얼굴 좀 보여주세요. 네?"


... 백현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는 건가..? 창피함에 입술을 짓이기던 민석은 머리 위에서 들리는 장난스러운 말장난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팀장님."

"응. 속은 어때. 괜찮아?"


머리 들기가 무섭게 백현은 제 뺨을 가볍게 부여잡고는 속이 불편하지 않냐고 연신 물었다. 

 

백현의 걱정이 무색하리 만큼 속은 다행히도 들이킨 술에 비하면 평온했다. 양볼이 부여 잡혀 입술이 톡 튀어나온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저를 포근하게 감싸주던 온기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아쉬움에 저도 모르게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백현의 입에선 언제 흥분했냐는 듯 잔잔하기 그지없는 여상한 말투가 튀어나온다. 

 

"다행이네. 피곤할 텐데 집으로 빨리 가자." 

 

... 예? 흥분감이 싹 가신 얼굴의 민석이 백현을 봤다.

 

어느덧 바른 자세로 운전석 시트에 엉덩일 붙인 그가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단단히 채우며 차에 시동을 건다. 시동이 걸린 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민석의 머릿속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했다. 

 

'여기서 끝이라고..?'

'아니, 진짜..?'

 

하재훈이 그랬다. 상성이 잘 맞는 센티넬과 가이딩을 하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고.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백현과 키스를 하고 나니 저는 하재훈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한입 가득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을 머금은 것 마냥 톡톡 짜릿함이 퍼지고 찌릿한 흥분감이 전신을 타고 넘실댔다.

 

설마 아니겠지. 

 

"내일 입술 붓겠다." 

 

그러나 백현의 행동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집으로 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흥얼대며 허밍까지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제 기분도 모른 채 흥얼대는 백현이 얄미워 민석은 고개를 홱 돌려 애꿎은 창밖을 노려봤다.

 

 

 

 

.

.

.

 

 

 

 

해가 서쪽에서 뜰일이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1등이겠군." 

 

어제 매칭률이 꽤 높은 가이드와 뜨거운 밤을 보낸 하재훈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고 윤기가 흘렀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가이딩을 받으니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웠고 온 세상이 천국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일찍 출근을 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 게. 

 

극도로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엘리베이터에 달린 거울로 잘난 제 얼굴을 감상했다... 뭐. 팀장님에 비해선 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얼굴이지. 아무도 없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하재훈은 씩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1팀 사무실에 도착을 하고 문이 열렸다. 복도는 어두웠다. 고로 아직까지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쯧. 짧게 혀를 차며 핸드폰 화면을 켰다. 시간은 8시 55분. 1팀의 출근 시간은 9시까지였다.  

 

하. 이 사람들 좀 보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 하재훈은 왁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를 다시 쓸어 올리며 중얼댔다. 마침 일찍 출근한 성실한 직장인은 저 하나뿐이고 9시 정각이 되기 5분 전인데 아무도 출근을 안 했다. 할 말은 차고 넘쳤다. 

 

귀에서 피날 정도로 잔소릴 퍼부어야지. 하극상을 펼칠 생각에 짜릿해져 온다. 입술을 혀로 훔치곤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내가 일등으로..!" 

 

당찬 발걸음이 뚝 멈췄다. 문고리를 쥔 손이 힘없이 스르륵 내려간다. 눈앞에 드리워진 현실이 변할 리도 없는데 믿기지 않았다. 

 

".. 민석이?" 

 

그랬다. 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사무실. 달랑 컴퓨터 하나뿐인 책상 위에 처량하게 등을 옹송그린 인물. 

 

".. 너 뭐 하니." 

 

그건 틀림없이 C급 가이드인 민석이었다. 

 

 

 

 

그날 숙소 앞에 도착을 하고 민석은 안전벨트를 쥔 채 꼼지락 댔다. 입 밖으로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쳤는데 백현이 보고 저를 변태라고 오해할까 봐하지 못하는 말들이 수백 마디였다. 시동이 꺼진 차는 조용하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가 힐끗 고개를 틀어 차에서 내리지 않는 민석에게 묻는다. 

 

".. 안 내려 민석아?" 

 

의아함이 가득한 질문이었다. 그래. 백현의 입장에선 내리지 않는 제가 이상할 법도 했다. 안 내리고 뭐 하냐는 물음에 민석이 어물어물 안전벨트를 풀었다. 시무룩한 낯은 덤이었다.  

 

나만 기분 좋았나 봐. 이미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는 백현의 모습을 보며 그는 입술을 말아 넣었다. 

 

"오늘 날씨 좋네." 

 

어? 저기 보름달 떴다. 길고 하얀 손이 까만 밤하늘에 뜬 통통한 보름달을 콕 집어 말한다. 보름달이고 나발이고.. 입이 대빨 나온 상태였지만 이미 감성에 충만해진 백현의 기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 그는 억지로 호응을 했다. 와아.. 달이 예쁘네요.. 

 

"자세히 보니까 민석이 볼같네." 

 

... 욕인가? 민석이 세모눈을 뜬 채 백현을 흘겼다. 

 

"하하. 뽀얗고 예쁘다는 뜻이었는데?" 

 

또. 또! 백현은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다정한 말을 내뱉으며 제 감정을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었다. 요즘말로 유죄인간이었다. 저러니 센터 내에서도 백현에게 사심을 품고 그를 짝사랑하는 이능력자들이 생겨났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이다.  

 

".. 팀장님도 닮았어요."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톡톡 바닥을 두들기며 심드렁히 말했다. 오늘따라 백현의 말처럼 달이 예쁘게 뜨긴 떴다. 

 

"응?" 

 

고개를 갸우뚱 대며 백현이 민석을 본다. 무슨 말이냐는 의미일 것이다. 민석은 하고 싶었던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예쁘다고요.." 

"....." 

 

내뱉기 무섭게 얼굴이 아궁이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구마 마냥 화르륵 타기 시작한다. 분위기 싸해지게 괜히 말했나 싶어 슬금슬금 백현의 눈치를 살피자. 

 

".. 나, 이뻐?' 

 

이 미친 인간이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게 아닌가! 놀란 민석이 파드득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나자 아하하! 청량한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지금.

 

와삭! 감자칩 두 봉지가 깔끔하게 하재훈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씁. 취향 특이하네." 

 

살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봤다. 근데 민석은 제 작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특이한 인간이었다. 

 

".. 팀장님 좋아하면 취향 특이한 거예요?" 

"당연하지! 신기하네.." 

 

감자칩 봉지를 들고 입속으로 탈탈 털며 하재훈이 덧붙였다. 그리곤 저를 동물원의 희귀 동물 보듯 보는 게 아닌가. 순간 기분이 나빠진 민석은 이 자리에 없는 백현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팀장님 잘생겼고오.."

"....." 

"센티넬에다가 멋있으시잖아요." 

".. 얼씨구?" 

 

이거 아주 단단히 빠졌네. 혀를 찬 하재훈이 익숙하게 빈 과자 봉지를 접기 시작한다. 순신각에 부피가 작아진 과자 봉지들은 그대로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그날 밤. 정확히 말하면 백현과 키스를 하고 난 후 숙소로 함께 돌아왔고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현은 담백하게 하품을 쩍쩍하며 제게 잘 자라고 굿 나이트 인사를 건넸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갔다. 저는 그 뒤꽁무니를 허무하게 바라보다 쓸쓸하게 방으로 들어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왔다. 결국 밤을 새웠고 백현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말았다.  

 

"민석아."

"....?" 

 

손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물티슈로 꼼꼼히 닦던 하재훈이 불쑥 입을 연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너한테 상처 주고 싶진 않은데 나는 이 만남 반대야." 


뭘 했다고 반대래. 입술을 삐죽인 민석이 단단히 가슴 앞에 팔짱을 꼈다. 해보라는 모양새에 하재훈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들어간다. 막내라고 오냐오냐 하고 다 받아줬더니.. 

 

"너 오기 전에 팀장님 어땠는지 알려줘?" 

 

그러나 막내는 막내인 거고 환상은 환상인 거였다. 그는 민석이 백현을 향해 가지는 환상을 철저히 깨부술 생각이었다.







편안한 밤 되세요.




홈오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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