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애월카페거리

최저온도 10도 / 최고온도 21도 / 맑음

9천 7백보

 

난 원래 화장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외출이 적어지다 보니 한 번도 안 한 것 같다. 당연히 그 전에 쓰던 화장품들은 모두 유통기한이 지났다. 그래서 지난달에 취직 준비 겸 전부 새로 샀다. 이러던 내가 여행에 와서부터는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있다.


혼자 여행이니 보여줄 사람은 없다. 오히려 보여줄 사람이 있었다면 화장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장은, 말하자면 기분내기다. 텐션을 올리려는 나 나름의 방법이다. 상호작용할 사람이 없으니 이런 암시라도 하지 않으면 기분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것이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화장에 더해 예쁜 청치마까지 꺼내 입었다. 목적지는 애월카페거리. 느긋하게 카페에서 해변을 보며 쉴 생각이었다. 애월카페거리는 숙소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버스 타고 30분 만에 애월읍내에 도착한 나는 우연히 지나친 식당에 들어갔다. 일본식 전복솥밥집이었다. 그래. 제주도에 왔으니 전복은 한번 먹어야지! 맛은 나쁘지 않았고, 그보다는 비주얼이 이뻐서 맘에 들었다.



식사 후 카페거리 앞에 있는 장한철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다. 가는 길에 유채꽃이 아주 만발해 있었다. 제주도에선 어딜 가도 유채꽃이 많았다. 첫날에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에게 유채꽃 예쁜 장소를 물었더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았다. 유채꽃이 없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덕분에 제주도를 여행지로 고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바닷길을 따라 곽지해수욕장까지 찍고 되돌아온 나는 적당한 카페 한 군데를 골라 앉았다. 마침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팔았다. 나는 위가 약해서 평범한 커피는 못 마신다. 희희낙락 주문했지만 불행히도 취향과 동떨어진 산미가 강한 커피였다. 그냥 마시기 힘들어서 패션후르츠 마들렌도 추가 추문했다.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마시니 딱 어울렸다.



그렇게 카페에서 노닥이다가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혼자 식사할 만한 곳이 마땅찮아서 덮밥집을 골랐다. 연어장 덮밥은 맛있었다. 다소 비싼 게 흠이었다. 그 근처는 관광지라 어딜 가도 가격대가 좀 있었다. 내일부터는 돈을 아껴서 써야겠다.



밥을 먹는 중에도 창밖으로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해질녘의 바다 윤슬이 눈부셔서 커텐을 내렸다. 7시가 되도록 날이 밝아서 겨울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줄곧 평온하다. 이틀 연속 바다만 보고 있어서 그런 건가 싶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맥주를 깠다. 프레첼 과자도 뜯었다. 바닷가에서 놀다 들어와 맥주로 하루를 마치니 감성이 있달까, 여하튼 느긋해서 좋았다.


 


 

4일차

 

동문시장, 제주목 관아, 탑동공원, 제원사거리

최저온도 13도 / 최고온도 24도 / 맑음

1만 5천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한 날짜가 오늘까지였다. 하루 더 연박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번엔 좀 번화한 거리에서 밤늦게까지 놀고 싶단 마음에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새로 예약한 곳은 동문시장 근처에 있는 모텔이었다. 값싼 것치고는 괜찮다는 평을 믿고 골랐다. 체크아웃을 한 뒤 버스로 1시간 정도 이동했다. 체크인 시간 전이었기에 바리바리 싸온 짐은 카운터에 맡겼다. 가벼운 가방만 챙겨 동문시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보말칼국수 집을 발견했다. 찾아보니 보말이란 고둥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수도권에선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 한번 들어가 봤다. 국물은 미역국과 맛이 비슷했다. 생각보다 취향이었다.



다시 목적지인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많아 왁자지껄했다. 각양각색의 기념품이 즐비했고, 오메기떡이나 한라봉 등의 먹을거리도 많이 팔았다. 수산시장에서 본 은갈치가 얼마나 번뜩거리던지 깜짝 놀랐던 것도 생각난다. 뭐하러 저렇게 눈에 띄는 은색으로 진화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시장에 오니 뭘 이것저것 사고 싶어지긴 했는데 짐이 무거워질까 봐 참았다. 대신 한라봉 착즙 음료수를 사서 편의점 얼음컵에 부어 마셨다. 가장 저렴하게 카페 기분을 내는 방법이었다.



그다음 목적지는 용두암이었다. 제주도에 올 때부터 세운 목표였던 해안도로 자전거 타기가 하고 싶었다. 탑동공원에서 공공자전거를 빌려준다고 했다. 거기서 용두암까지 해안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면 그렇게 좋다고 한다. 버스 타기엔 애매한 거리길래 그까이거 30분 걸어주마 하고 힘차게 걸음을 떼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제주목 관아를 지나쳤다. 역사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입장료가 1500원 밖에 안 되길래 들어가 봤다. 볼만한 게 많지는 않았지만 조용하니 괜찮았다.



다시 탑동공원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이동을 많이 했던지라 슬슬 다리가 아팠지만 참고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겨우 도착했는데, 웬걸. 지금은 공공자전거 운영을 안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눈물 날 만큼 억울했다. 그제도 자전거 못 탔는데 오늘도 헛발질할 줄이야! 피곤해진 나는 나는 그냥 신시가지 쪽의 PC방이나 가기로 했다. 또 걷기 싫어서 그냥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면 돌아 돌아 가야할 길이었는데, 택시를 타니 금방이었다.


탑돌공원 가는 길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조사해본 바 제주시내에는 번화가가 3개 있다. 하나는 동문시장 근처에 있는 중앙로인데 여긴 구도심이고 관광객만 좀 있을 뿐 PC방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도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시청과 제원사거리인데 나는 그 중 제원사거리로 갔다. 신시가지는 서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PC방의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좀 피로가 풀렸다. 간만에 열심히 게임을 하다보니 금세 저녁시간이 되었다.


노트북 잃어버려서 1주일째 못하고 있는 컴신 드디어 했다


저녁식사는 해물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사실 여태껏 제주도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이게 제일 맛있었다. 역시 한국인에게는 얼큰한 찌개가 최고인 법이다. 무척이나 피곤한 날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기력을 되찾은 나는 코인노래방에 가서 열심히 놀다 공차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러 후기대로 모텔은 낡았지만 나름 깨끗이 관리되어 있었다. 화장실 불이 켜지지 않아 샤워를 할 수 없었던 것 빼고는 다 좋았다.


아무거나 끄적이는 잡덕 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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