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

※하단은 소장용 결제창입니다













태용이 지하 1층에 있다면 텐은 어디에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금방 해결됐다.




[2, 2층 데스크 앞… A7팀 김해성, 이, 이원형… 전투, 불능…!]

[좌표 08-37163-882!! 지원 요청… 아악!!]

[──3층 진료… ──불… ──전투, 불가능…!]


[형,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통신 들어온 다음에 뒤따라 잡는 건 무리야.]

[그래도 최대한 따라 붙어 봐.]

[서 팀장님, A3팀 팀장입니다. 지하 3층에서 둘, 지하 2층에서 셋. 사망 확인했습니다. 저희 팀 순간이동과 저도 부상을 입어서… 현재 지원 불가능합니다.]


[치료 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면 이민형한테 좌표 보내요.]

[예…!]

[민형아. A3팀 순간이동이랑 같이 움직여.]

[어어.]




이어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통신만 들어도 상황이 충분히 유추된다. 도영이 순식간에 불리해진 상황에 입술을 깨물었다. 적군의 입장에서 가장 복병인 타임 컨트롤과 순간이동은 이태용이 묶어놓고, 불사의 멀티는 그 틈을 타 마구잡이로 학살을 하고 다니다니.




“으아아악!!!!”




자신과 지성을 후방에서 지원해주고 있던 A9팀의 공기 센티넬의 두 다리가 숯검댕이처럼 타들어 갔다. 그는 단말마를 내뱉고 곧 사망했다. 시신은 홀로그램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꽤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다.


민형을 데리러 가려다 멈칫한 도영이 지성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성은 자신의 워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가이딩이 부족해 시간을 되돌리긴 무리라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도영이 말했다.




“지하 1층. 여기도 한 명 사망했어.”

[지원 얼마나 필요해?]




영호가 물었다. 도영은 화마에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던 경호 요원 둘을 데리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며 상황을 살폈다. 지성이 계속해서 시간을 멈춰가며 공격을 하고는 있지만, 현재 태용은 불 그 자체다. 불은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니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았다.




“잠깐만.”




시간이 멈춰진 사이에 활활 불타고 있는 태용의 몸을 반으로 뚝 잘라 이동시키려 시도했다. 실체가 없는 것을 따로 뚝 잘라 이동시키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동된 것은 오른쪽 다리 하나. 시간이 풀어지자 사라졌던 태용의 오른쪽 다리가 화르륵 불타며 다시 나타났다. 도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다른 사람보다 제노가 제일 필요한 상황이긴 한데…….”




말끝을 흐리던 도영이 미간을 짚었다.




“……제노 살아있어?”

[제노야. 대답 한 번 해줘.]


[하…….]




묵직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도영은 “형이 미안하다…….” 사과를 건네곤 지성의 옆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민형에게서 [A6팀 두 명 치료했어. 1층으로 내려보낼게. 그리고 적군 A급 세 명 처리 완료.] 라는 통신이 들려왔다. 지성이 “오.”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 말했다.




“형. 민형이 형한테 치료하러 다니면서 적군 보이면 보이는 대로 다 처리하고 다니라고 해.”

“네가 하지, 왜.”

“나 멀티 잘 안되는 거 알잖아. 형이 해. 형이 멀티니까.”

“그 멀티랑 내 멀티랑은 다른 멀티잖아. 장난해?”


“장난 아냐. 나 지금 되게 진지해.”




안 보여? 도영을 힐끗 쳐다보며 씨익 웃은 지성이 시간을 멈추곤 이번엔 활활 불타고 있는 태용의 머리 한가운데에 총을 쐈다.


발포음은 정확히 다섯 번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멈춰져 있을 뿐, 태용이 몸에서 뿜어내는 화마와 열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총알은 태용의 근처에 가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총도 안 듣고, 칼도 안 듣고, 와이어도 안 듣고.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너무 뜨거워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무리다. 뇌와 심장의 시간을 뒤틀어보려 했지만 실체가 없는 불이라 시간을 뒤트는 것도 먹히질 않는다.


모든 공격이 통하질 않으니 타파할 방법이 없다. 단순히 생각하면 불의 약점은 물. 그리고 산소가 차단될 만한 밀폐된 공간. 도영의 말마따나 가장 필요한 지원군은 제노며, 현재 태용의 약점을 노릴 수 있는 요원도 제노뿐이다.


문제는 현재 제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가이딩만 빵빵하면 뭘 하나. 센티넬에게 가이딩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건 맞는 말이지만, 센티넬도 사람인지라 휴식을 취해줘야 했다.


헌데 지금 제노의 상태를 봐라. 그는 숨돌릴 틈도 없었다. 병원을 감싸고 있는 얼음 속에 갇혀있던 불길이 점점 세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불씨를 가두고 있던 제노의 얼음은 녹아내리다 다시 얼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거의 넝마가 되어버린 병원까지 지탱하고 있지 않나.




“저 인간은 우리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안 돼.”

“부팀장. 뭐 방법 없어?”




지성이 입안에서 혀를 굴려대며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이어폰 너머에서 정우가 꽥 소리를 질렀다.




[도움!!! 나 제노랑 떨어졌어!!!]




지성과 도영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어쩌다?]


[이 새끼가 계속 나만 공격하잖아!!! 남의 집 리커버리 존나 재수 없네! 우리 집 리커버리는 언제 와?! 빨리 와서 당장 날 구해!!!]


[어어… 어, 지금 가.]




이어폰에서 이어지는 대화를 듣느라 바빠 죽겠는데 태용의 공격까지 피해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영이 지성에게 짧게 시선을 줬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곰곰이 고민하다 물었다.




“지금 병원 안에 있는 요원은 경호 요원이 전부지?”

“어, 대피 인원은 진작에 다 대피시켰지. 남은 건 정우뿐이고.”

“잠깐만. 영호 형, 지금 어디야?”

[나 2층. 왜.]




순간 시간이 멈췄다.




“형. 병원 버리자.”

“……?”




도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다른 팀원들도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의아한 어투로 되물었으나 팀장들은 아니었다.




[괜찮네.]


[그러게. 선배도 다시 데려왔겠다, 이제 병원을 굳이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고.]

“어. 그리고 어차피 밖으로 나가긴 해야 돼. 공기 다룰 수 있는 센티넬이 전부 전투 불능이라 실내에서 계속 싸우면 불리해. 태용이 형이 산소 다 잡아먹고 있어, 지금.”

[지성아. 너 지금 시간 얼마나 멈추고 있을 수 있어?]

“길어야 10초.”

[김도영. 지금 당장 요원들 밖으로 옮겨. 옮길 수 있는 최대한.]


“어. 주변에 있는 요원들 한데로 모아놔. 시간 단축하게.”

“형, 정우 형한테 나 먼저 데려다줘. 가이딩 실시간으로 받고 있으면 더 붙잡아 놓을 수 있으니까.”


[형, 나 1층 복도 끝이야. 좌표 101-47285-0009.]

“알았어.”




지성이 팔을 내밀었고 도영이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영이 혼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여 지하에 있던 다섯 명의 요원을 한데 모아 다시 사라졌다.


지성이 정우에게 접촉 가이딩을 받아 가며 붙들고 있던 26초의 시간. 시간이 촉박해 아군의 시신은 챙기지 못했지만 현재 살아남은 요원은 전부 밖으로 빼냈다. 남은 인원은 1팀을 제외하면 총 여덟. 최정예로 뽑은 요원인데 절반이 고작 20분 만에 죽어 나갔다.


영호는 밖으로 옮겨진 요원들의 숫자를 세다 착잡한 한숨을 토해냈다. 훈련인데 봐주는 것도 없으시고, 아주 작정을 하셨구만. 쯧, 혀를 짧게 찬 그가 지성을 향해 고개를 주억였다. 지성은 능력을 풀기 전 제노를 향해 말했다.




“얼음 먼저 없애.”


“……진짜 빡세다.”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제노가 중얼거리며 병원 전체를 감싸고 있던 얼음을 없앴다. 제노의 얼음으로 감싸져 있던 병원의 본래 모습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흉하게 금이 가고, 깨지고, 기울고.


숨을 몰아 내쉬는 제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지성이 재민에게 눈짓해 제노를 뒤로 보냈다. 그가 시간을 풀어냈다. 재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중력을 가해 안 그래도 위태로워 보이던 건물을 폭삭 주저앉혔다.


적군에 속한 A급과 B급이라면 모를까, 태용과 텐을 비롯한 S급들은 곧 있으면 저 무너진 건물을 뚫고 나올 것이다. 영호는 갑자기 장소가 바뀌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요원들을 통솔하며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렸다.




“지금부터 가이딩 아끼지 말고 전력으로 공격하세요. 대치할 상대는 적군에 살아남은 놈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뒤 통신으로 따로 알리겠습니다. 지금부터 통신은 계속 켜두시고.”

“저…….”




A3팀 팀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영호가 말해보라는 듯 눈짓을 해 보였다.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이제 김정우 가이드만 트레일러로 옮기면… 훈련 끝 아닙니까?”

“네, 아닙니다.”




곧장 대답한 영호가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요원들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센터장님과 본부장님을 비롯한 지부장님들께서 이번 훈련으로 끝을 보고 싶으신 모양이에요. 정우를 트레일러로 이동을 시켜봤는데, 훈련 안 끝나더라고.”




미약한 기대를 품고 있던 요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나갔다. 그 순간,


콰아아앙─!!!!


무너졌던 건물이 커다랗게 폭발했다. 멀리서 봐도 선명한 푸른 빛의 불기둥. 영호가 불기둥을 향해 고갯짓하며 말했다.




“다시 말해 TAKE 4는 적군을 전멸시켜야 끝납니다.”




허억. 누군가가 숨을 급히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영호는 씨익 웃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봅시다, 우리.”





❊❊❊




쿠르릉─.


트레일러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지진이 일었다. 으악! 어어! 아, 나 손 밟혔어! 트레일러 뒤집히는 거 아냐, 이거?! 가이드들이 아우성을 치며 각자 침대며 의자, 선반 따위를 붙잡고 중심을 잡기 바빴다.


여전히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여주를 붙잡고서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던 A5팀 가이드는 흔들림이 멎은 것을 확인하곤 여주를 한 번 살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상황인지 살피려 블라인드를 걷어 창밖을 확인했다.




“…….”




온통 불바다다. 이놈의 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트레일러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보이는 것도 없고, 들리는 것도 없다. 트레일러 안에선 통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어폰은 무용지물이었다.


몇 분 전, 잠시 트레일러에 들어선 정우에게 바깥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봤었는데,


너네는 모르는 편이 좋을걸.


라고 하더라.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도영이 나타나 정우를 데리고 사라졌었다. 도영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멀티인 도영이 힘들어할 정도라면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증거였다.




“언니, 밖에 뭐 보이는 거 있어?”

“없어. 불 밖에 안 보여.”

“뜨겁진 않아서 다행인데 좀 더워진 것 같기도 해요. 나만 그래요?”

“아냐, 더운 게 맞아. 지금 실내 온도가 28도야. 체감 온도는 30도 넘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훈련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다들 수분 보충,”




A5팀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콰앙!!! 커다란 소리가 났다. 이 정도면 병원 터진 거 아니에요? C급 페어 가이드가 식겁한 얼굴을 해서는 말했다. 그때쯤이다.




“…므야…?”




여주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




“여주야!”

“언니!”




가이드들이 여주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터라 비몽사몽한 여주는 텐과 지성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다 흐아아암- 하품을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우리 공주….”

“지성이는 밖에 있어, 밖에!”

“텐…….”

“본부장님은 진짜 밖에 있고!”

“……뽀뽀는…?”

“뭐야? 그 두 사람이 너 뽀뽀로 깨워줘?!”




눈을 느리게 끔뻑이던 여주는 한참 뒤에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언니… 나 수면제 먹었어……. 여주의 중얼거림에 가이드들중 가장 연장자인 B9팀의 가이드가 “우리도 알아.” 하며 여주에게 뚜껑을 딴 생수를 건네주었다.




“일단 그거 마시고 잠 좀 깨 봐.”

“어엉…….”




수면제에 의해 억지로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오랜만에 맨바닥에서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온몸이 뻐근했다. 생수를 꿀꺽꿀꺽 들이키던 여주는 제 몸을 둘러싸고 있는 은박 담요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아, 그거 은박 담요. 너 화상 입을까 봐 그걸로 싸 놓은 것 같더라.”

“화상? ……아.”




푸스스 웃으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여주가 은박 담요를 풀어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안에 조끼도 하나 입혀져 있었다. 아이스 조끼라는 것을 알아챈 여주는 시원해서 좋다고 중얼거리며 은박 담요를 둘둘 말아 작게 만들었다. 트레일러는 세이프존이라 이제 쓸모가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마이 러블리는?”

“여주야. 마침 말 잘 꺼냈다. 우리 할 말 되게 많아.”

“맞아요, 언니. 일단 창밖을 좀 봐요! 우리 갇혔어요!”




에엥? 이게 뭔 소리냐는 듯 미간을 좁힌 여주는 C급 페어 가이드가 가리킨 창밖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냐, 이건. 우리 지금 트레일러 통째로 화형당하고 있는 거냐? 세이프존인데 이렇게 공격을 해도 되는 거야?


황당해 보이는 여주를 진정시킨 가이드들이 현재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소상히 알렸다. 여주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가이드들에 해준 이야기를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했다.


현재 트레일러 주변을 불기둥이 감싸고 있고, 그로 인해 여기로 오갈 수 있는 인원은 도영뿐이고, 정우가 트레일러에 들어왔었지만 훈련은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반응으로 보아 현재 상황은 아군 쪽이 조금 불리한 것 같다는 거지?




“지금 우리 쪽에 몇 명이 살아있는지는 몰라?”

“네, 몰라요. 근데 꽤… 많이 당한 것 같아요.”

“흐음… 그래…?”

“네.”

“근데 나는 누가 구해낸 거야?”

“……그것도 우리는 잘….”

“아마 지성이… 아닐까? 지성이… 일걸?”




가이드들이 저마다 고개를 저었다. A5팀 가이드는 지성이가 아니겠느냐며 말하긴 했어도 확신은 없어 보였다. 워낙 대피가 빨리 이루어진 탓에 가이드들은 알고 있는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여주는 “읏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게 접어놓았던 담요를 다시 넓게 펼쳐 쓰개치마처럼 머리부터 감싸 몸을 덮었다. 말없이 여주를 바라보고 있던 B급 무소속 가이드가 설마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니… 나가게요…?”

“나가 봐야지. 정우 혼자 가이딩 해주느라 많이 지쳤을 테니까 옆에서 보조해줘야 돼. 내가 1팀 서브 가이드잖아.”

“아니, 아니… 저 불을 뚫고 나가겠다고요…?”

“그래서 이거 둘렀잖아. 이거 방화 담요 아냐?”

“그건 그런데…….”




담요가 은박지처럼 얇잖아요. 라는 뒷말은 차마 잇지 못했다. 여주의 눈에서 익숙한 광기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여주와 몸을 부대끼며 훈련을 해온 가이드들은 안다. 저런 눈을 하고 있을 때의 여주는 본부장도 못 말린다는 것을.




“언니들이랑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그……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응.”




갔다 올게. 아 윌 비 백. 엄지를 척! 들어 올린 여주가 트레일러 문을 활짝 열었다. 느껴지는 열기가 대단했다. 어억. 당황한 듯 주춤거리던 여주는 가이딩으로 최대한 몸을 감쌌다.


가이딩은 만능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그러니 S급이 작정하고 만들어 놓은 이 화마를 뚫고 나가기란 여주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나 이여주. 포기를 모르는 여자지. 흥! 콧김을 거세게 내뿜은 여주가 이내 트레일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터엉-! 트레일러 문이 힘차게 닫혔다. 가이드들이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주 괜찮을까? 저거 진짜 너무 얇던데…….

그래도 지성이랑 팀원분들이 저 은박지로 둘둘 말아놓은 거 보면 방화 효과는 확실하다는 거 아니겠어?

근데 여주 언니가 서브 가이드였구나. 나 몰랐어.

나도. 정우 선배랑 같이 메인인 줄로만 알았지.

여주는 서브일 수밖에 없지 않아?

어? 왜요?

지성이 전담이잖아. 지성이 전담인데 1팀 메인까지 해 봐.

아, 그러네요. 언니가 좀 힘들…

지성이 눈깔 돌아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려.

…아… 맞네요. 그런 이유도 있겠어요.

본부장님 전담도 여주겠지?

아마도? 본부장님께서 방한 자주 하시는 거 보면 그럴 것 같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이드들의 담소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던 순간이었다. 철컥철컥. 소리가 들리더니 닫혔던 트레일러 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뜨거워!!”




여주였다.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나가더니 금세 꼬질이가 되어 돌아왔다. 끙- 소리를 내며 트레일러에 올라탄 여주가 재빨리 문을 닫았다. 언니, 괜찮아요?! 아이고, 여주야! 가이드들이 다시 웅성거리며 여주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좀 탔다. 트레일러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불기둥의 폭이 체감상 10m 정도는 됐다. 가이딩을 두텁게 두르고 후다닥 빠져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겠는데, 미약한 화상 정도는 입을 것 같아 급하게 유턴을 한 참이었다.




“아- 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는데…….”

“진짜? 그런데 왜 다시 돌아왔어?”

“……좀 데일 것 같아. 그것도 얼굴이.”




머리카락이 좀 타는 거? 이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화상? 이건 안 된다. 게다가 얼굴에 화상? 이건 좀… 큰일 난다. 여주는 이제 잔소리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그것이 아무리 똥강아지들의 걱정만 백스푼 첨가된 잔소리라고 할지라도.


은박 담요에 아이스 조끼까지 입고 있으니 전속력으로 달려 빠져나가면 그만일 것 같긴 한데, 일단 앞을 봐야 하니 얼굴은 드러내야 한다. 으음,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여주는 C급 페어 가이드가 내민 생수통을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트레일러에는 간이 화장실도 설치가 돼 있다. 다시 말해 급수 탱크가 있다. 쪼그맣지만. 정말 쪼그맣지만! 물이 모자라면 생수도 구비가 되어 있으니, 이거 한 번 해볼 만하다.




“소백아, 혹시 여기 물 담을만한 거 있어? 바가지 같은 거.”

“……아, 물 끼얹고 나가게요?”

“응.”

“어, 그래. 그거 괜찮지. 잠깐만, 여기 서랍에 대야 있어.”




가이드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주야, 여기 방수 매트 위에 서 봐! 얘들아 물 떠오자, 물! 우두커니 서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뿌려!”




A5팀 가이드의 외침에 사방에서 물줄기가 날아들었다. 여주는 별안간 트레일러 한복판에 서서 물 폭탄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어푸푸풉!





























부우웅-! 커다란 비행 소리가 났다. 웬만한 승용차보다 거대한 벌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적군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시선 분산에, 공격에, 방어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게다가 말벌이라 꼬리 끝에 달린 독침도 아주 위협적인 무기였다.


영호는 적 진영 쪽에서 날아드는 얼음 화살들을 요령 좋게 피해 가며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살폈다. 살아있는 적군은 총 열이고 아군은 열다섯이 살아있다. 수적 우세를 쟁취했으나 전투는 비등비등한 상황이었다. 아군 쪽에 후방으로 빠져있는 요원만 다섯인 탓이다.


벌들의 거대화를 유지 시키고 있는 A5팀에 있는 거대화 센티넬, 마찬가지로 벌들의 소환을 유지 중인 A4팀의 소환 센티넬, A3팀의 마리오네뜨는 전투 불능으로 빠졌기에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이 A8팀의 염력이었다. 그는 현재 열 마리의 거대한 벌을 각각 염력으로 조종하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의 후방 요원이 정우와 제노였다. 제노는 현재 정우의 주변을 빙벽으로 보호한 채로 시기적절한 후방 지원만 해주고 있었다. 이는 지성의 의견이었다.


화염 잡으려면 형 필요해. 20분 줄 테니까 후방에서 최대한 체력 회복해.


지성이 말한 이후로 10분이 흘렀다. 제노는 손안에서 사각거리는 살얼음을 만들어내며 제 상태가 어떤지 최대한 냉정히 분석했다. 능력 운용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아직까진 한 번에 커다랗게 능력을 분출하면 현기증이 일었다. 체온이 많이 내려간 상태라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바닥에 아주 작은 산 모양으로 쌓인 살얼음을 바라보던 제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동안 너무 파장 응용 부분에만 신경을 쓴 듯했다. 고작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능력을 썼다고 이렇게나 기운이 달려서야, 원.


체력을 기르려면 뭐가 좋을까. 나도 정우 형처럼 타이어를 끌고 달려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제노는 정우에게 달려드는 적군 리커버리를 향해 냉기가 풀풀 흐르는 얼음 창을 날려 보냈다.


눈앞을 빠르게 날아가는 창에 고개를 살짝 뒤로 물린 정우가 제 곁으로 다가온 재현에게 가이딩을 넘겨주며 제노를 향해 말했다.




“고마워. 근데 심장 벌렁거리니까 예고 좀 하고 쏴주라.”


“예고할 시간이 없었는데… 앞으로 할 수 있게 노력해볼게.”




재현은 상황과 맞지 않는 두 사람의 무해한 대화 내용에 작게 웃다가 물었다.




“상태 어때.”

“아직 좀 어지러워.”

“지금부터 지원 끊고 후방 보호만 해. 마지막 한 방은 네가 날려야 되니까 빨리 회복하고.”




그러면서 정우의 안색을 살펴보는 재현이다. 가이딩이 채워지는 속도가 현저히 더뎌졌다, 했더니 정우의 안색도 별로 좋지 못했다. 여주가 훈련 초반에 수면제를 먹고 납치를 당한 것 때문에 여태 혼자서 팀원들의 가이딩을 감당하고 있던 정우다. 지칠 법도 하다.


정우를 쉬게 해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가이드가 없으면 안 된다. 다른 팀원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텐을 전담 마크하고 있는 지성을 위해서라도 가이딩은 필요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인 텐은 정말 저승사자 같았다. 잡는다고 잡히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소리소문없이 자꾸만 등 뒤로 달라붙는다. 노리는 건 요원들의 목숨.


다들 텐의 손에 의해 한 번씩은 죽음을 경험했고, 지성이 시간을 되돌려준 덕에 다시 살아났다. 특히 벌들을 조종하고 있는 A8팀 염력 센티넬은 벌써 세 번인가 당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지성이 시간을 되돌리거나 시간을 멈춰 세웠을 때를 알아채는 사람은 영호와 재현, 그리고 적군의 무시 센티넬과 타임 컨트롤이 전부였다. 그가 다른 팀원들의 시간까지 붙잡아 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섬세한 컨트롤엔 가이딩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이딩 소모가 쓸데없이 커지면 정우가 제일 먼저 전투 불능이 될 수도 있었다. 가이딩 고갈로 인해 쓰러지게 될 수도 있고. 사실상 지금 정우는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지성은 섬세한 컨트롤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시간을 풀어주는 사람은 재현이 전부였다. 굳이 따지면 영호와 AI 무시 센티넬은 붙잡아 놓은 시간을 무시하고 움직이고 있는 거였고, 적군의 타임 컨트롤은 지성과 같은 능력이라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억지로 끼어든 것이었다.


지성이 영호와 재현에게 시간을 되돌릴 때의 기억을 남겨놓고,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만 풀어주는 이유도 간단하다. 그들이 팀장이라서. 현장 지휘를 해야 할 사람들이니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놔야 하니까.




“…오.”




또 한 번 시간이 멈춘다. 지성은 민형의 목에 칼날을 붙인 채로 멈춰진 텐을 발로 걷어차 날려 보내곤 그 뒤로 그의 가슴팍에 무자비하게 칼날을 꽂아대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풀림과 동시에 텐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회복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피도 거의 흐르지 않았다.


참고로 또 다른 복병인 태용을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도영과 민형, 그리고 재현이었다. 재현은 태용의 주변을 무중력 상태로 계속 유지 시켜 놓느라 진땀을 빼던 중이었다.


태일이 무중력 상태에서는 대류의 흐름이 없어 불이 퍼지지 못한다며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솔직히 반은 이해 못 했다. 훈련이 끝나면 좀 더 자세히 물어볼 참이다. 진짜로.


그리고 현재 팀원들이 상대하고 있는 나머지 적군들 같은 경우에는 일부러 살려놓고 있는 상태다. 영호가 그러더라. 지척에 아군으로 설정된 AI들이 있어서 태용이 마구잡이로 능력을 남발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들은 인질 같은 것이었다.


이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태용은 아군으로 설정된 AI들의 전멸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범위한 공격을 해댈 수도 있었다. 어차피 진짜 태용의 아군인 텐은 용암 속에 떨어져도 죽지 않을 사람이니 아군과 함께 적군인 센터 요원들까지 전멸시킬 요량으로.


그 전에 제노가 빨리 회복을 해야 하는데. 후우-.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재현이 무너진 병원 건물의 커다란 벽이나 철근 따위를 태용에게 낙하시키며 후방 요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정우한테 공격이 집중되고 있으니까 벌들은 정우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해서 써. 정우 너는 경계 풀고 좀 쉬고 있고.”




그리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제노는 므엉한 얼굴로 재현의 뒷모습을 좇았다. 뻑뻑한 눈을 세게 감았다가 뜬 제노가 두 손을 재빨리 바닥에 붙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후방 요원들 앞에 투명하고 거대한 빙벽이 세워진다. 콰앙!! 쾅! 쾅!!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돌덩이가 날아와 빙벽에 박혔다.


일발필중은 이미 처리했는데,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난 제노가 정우의 앞을 막아서고 주변을 둘러봤다. 제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영호가 상대하고 있는 타임 컨트롤이다.




“형. 방금 타임 컨트롤이 던진 거야?”




이어폰에 대고 물었다. 대답은 한 박자 느리게 돌아왔다.




[어. 새끼가 위력을 높이려고 시간을 빨리 돌렸네.]




던진 돌덩이의 시간만 빠르게 흐르도록 파장을 운용했다. 속도는 곧 힘이니까. 이런 식으로 쓰는 방법도 있었구나. 제노가 고개를 주억였다.




“지성이 너는 저런 거 못 해?”




그때 제노의 뒤에 서 있던 정우가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은 한 박자 느렸다.




[못 하는 게 아니라 굳이 안 하는 거지.]

“왜?”

[가이딩 모자라.]

“모자라면 가이딩 받으러 와.”

[됐으니까 형은 쉬고 있어.]




지성의 대답에 정우는 기특한데 재수 없다며 투덜거리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솔직히 서 있는 것도 좀 힘든 상태이긴 하다.




“제노 넌 어때? 회복 어느 정도 됐어? 0부터 10까지 따지면 어느 정도야?”




질문을 마구 던져대는 정우의 옆에 마찬가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제노는 평소보다 더 므엉한 얼굴로 눈을 느리게 끔뻑거렸다.




“몸 상태는 괜찮은데 자꾸 눈이 감겨, 지금. 숫자로 따지면 한 6에서 7 정도.”




그 말에 느리게 고개를 주억이던 정우가 워치를 톡톡 두드렸다. 제노의 수치는 현재 81. 제일 수치가 낮은 인물은 지성으로 그의 수치는 46이었고, 그다음으로 재민이 49다.


제일 수치가 높은 사람은 멀티인 도영이었는데 그도 수치가 74로 멀티치고는 낮은 수치다. 다른 팀원들은 55에서 60 사이로 비슷비슷했다.


지금 팀원들의 수치를 전부 100으로 올려주면… 난 기절을 할 게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기절을 하면? 우리 팀은 진다……. 태용과 텐은 빵점을 주겠지.


여주를 만나기 전엔 언제나 빵점 가이드 인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우는 여주를 만난 뒤로 빵점은 받아본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고로 정우의 인생에서 빵점이라는 단어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제노야.”

“어?”

“나한테 ‘나 김정우는?’ 하고 물어봐봐.”


“……나 김정우는?”


“개짱가이드.”




오키, 오키. 기운 난다. 기운 나는 것 같아.


눈을 꾹 감은 채로 중얼거리던 정우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시 호흡을 멈췄다. 마인드 컨트롤. 이너피스. 옥상에서 그 코딱지 모모가 들려주었던 시냇물 소리를 떠올리고 있자니 어쩐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짧은 명상을 끝내고 천천히 눈을 뜬 정우가 다시 워치를 들여다봤다. 일단 급한 건 지성이랑 재민인데, 지성이는 바빠도 너무 바빠 보이니까 일단 패스하고 재민이 수치를 먼저…




“응?”




정우가 뭔가를 잘못 봤다는 듯이 워치를 차고 있는 손목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왔다. 그와 동시에 1팀 팀원들이 저마다 미세하게 움찔거리며 감각을 더욱 기민하게 세웠다.


팀원들의 가이딩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정우가 워치를 차고 있지 않은 손을 더듬더듬 뻗어 제노의 옷자락을 그러잡았다. 정우가 눈으로 물었다. 시스템 오류? 제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누나 가이딩 맞아.




[지금 나만 느끼고 있는 거 아니지?]




이어폰 너머에서 재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이번엔 1팀 전원이 멈춰진 세상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다. 팀원들은 지성이 만들어준 시간의 틈을 타 주변을 둘러보며 여주를 찾아내기 바빴다.


분주히 움직이는 팀원들과는 달리 지성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자신의 파장을 이용해 허공을 샅샅이 훑었다. 시간을 멈춘 채 파장을 움직이고 있는데도 수치가 닳는 속도보다 채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굳은 표정으로 수색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슬쩍 좁혔다. 입꼬리가 슬슬 말려 올라가기까지 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거기 있는 거지? 그리고 이걸 가이딩을 받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와. 그의 입에서 감탄 어린 한 음절이 흘러나왔다.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지성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누나.”




팀원들의 시선도 저절로 위로 향했다. 와, 저거 뭐야. 재민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선생님…! 상상치도 못했던 장소에서 발견한 여주에 정우가 뒷목을 잡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대한 말벌. 그 말벌의 등에 동그란 은박지 하나가 붙어 있다. 상공에 있어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터라, 얼핏 보면 말벌의 등에 은색 포장지에 말린 껌이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저게 여주라고?”


“저기 어떻게 올라간 거야?”


“그보다 선생님 언제 나온 거야?”


“어… 나만 여주 있는 거 몰랐던 거 아니지?”


“일어나자마자 나온 건가?”


“어떻게 저기 매달릴 생각을 했지?”




팀원들이 내뱉는 문장 말미에는 죄다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지성은 살아 움직이는 껌딱지 자체가 된 여주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말벌의 바로 밑으로 다가가 섰다.




“누나-.”

“…….”

“다 들켰어요. 얼른 내려와.”




그러다 동그란 은박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빼꼼 내민 여주가 바로 밑에서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서 있는 지성을 쳐다봤다. 지금 가이딩 중이라 접촉하면 안 되는디……. 말벌 등에 달라붙어 있는 와중에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자빠진 여주였다.


어쩔까- 고민하던 여주는 잠시 가이딩을 중단하곤 펄쩍 날아올랐다. 여주의 목에 묶여있는 은박의 담요가 망토처럼 펄럭거렸다. 마치 슈퍼맨의 빨간 망토 같았다. 하하, 소리 내 웃으며 상공에서 떨어지는 여주를 받아낸 그가 작은 몸을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따뜻한 포옹은 아주 잠시였다. 후다닥 그의 품에서 내려온 여주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다시 가이딩을 내뿜었다.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는 것만 같은 맑고 시원한 가이딩. 아, 살겠다. 그가 목을 뒤로 젖히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누나 언제 일어났어요?”




여주에게 손을 뻗으려다 멈칫한 지성이 물었다. 허공을 배회하던 그의 손은 여주의 목에 감겨 있는 은박 담요를 살짝 그러잡았다. 여주는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팀원들을 스윽 둘러보다 말했다.




“갑자기 트레일러가 막 흔들리길래, 그때 일어났어.”

“……그게 언젠데?”

“애들 말 들어보니까 지진 같은 거 났었다던데.”




지성을 비롯한 팀원들이 슬쩍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지진? 무슨 지진? 몰라… 땅 흔들렸던 게 한두 번이야? 여주가 말하는 지진이 몇 번째 지진이지? 눈빛으로 토론을 나누는 팀원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여주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뭐냐… 트레일러 흔들리고 나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도 났어. 엄청 컸어.”

“으음…….”

“시간을 따지면 한… 15분 전?”

“…아, 15분 전쯤이면 병원 무너트렸을 때네요. 뒤에 난 펑 소리는 태용이 형이 낸 거고.”

“맞다.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태용이 상태가 왜 저래?”




왜 내 아기 꼬마 주먹밥이 메라몬으로 변한 거야?


메라몬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두 명이 있었다. 지성과 태일이었다. 팀에서 유일하게 옛날 애니메이션인 디지몬을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알아들은 사람은 있으나, 그에 대한 해답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역시 태용이 저런 식으로 능력을 운용하는 모습은 처음 보기 때문에. 영호가 흐트러진 앞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말했다.




“지금 보면 알겠지만 온몸이 불 자체야.”

“온몸이?”

“어. 통하는 공격이 하나도 없어서 재현이가 무중력에 가둬놓고 화력을 죽이는 게 고작이고.”

“그럼 메라몬 보다는 에이스네…….”




에이스는 또 뭔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고개를 잘게 내저은 영호가 말을 이었다.




“우리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 뭐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네.”

“그보다 선배도 처음 보는 거야?”




여태 태용을 상대하고 있던 재현이 물었다. 여주가 어깨를 으쓱이며 팀원들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불타는 태용이는 처음 보지.”


“그럼 저렇게 운용하는 방식은?”

“규선이가 저런 방식을 쓰긴 해.”

“……규선이면…”

“어, 너희들도 알고 있는 그 규선이 맞아. 나한테 유언 남긴 애.”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팀원들의 수치를 확인한 여주가 가이딩을 갈무리했다. 지성만 빼고. 그는 계속 시간을 붙잡아주고 있어야 했기에 가이딩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새부리 같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여주는 그를 밉지 않게 흘기다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근데 태용이랑은 좀 달라. 걔는 팔이나 다리를 변환시키기는 했었는데, 저렇게 온몸을 변환시키지는 않아. 전에 한 번 물어봤는데 머리랑 상체에는 장기들이 많아서 유지하기 힘들다고 그랬었어.”

“변환 메커니즘은?”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를 파장화해서 변환시키는 거.”

“……파장화?”

“응. 쉽게 얘기하면 너네가 능력을 쓸 땐 파장이 실체화가 되는 거잖아?”




여주가 검지를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파장화는 그걸 반대로 응용하는 거야. 실체를 파장으로 만들기.”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던 여주의 검지가 시계 반대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여주의 손짓을 힐끗 살피던 영호가 물었다.




“……자연계만 할 수 있나?”

“자연계만 할 수 있다기보다는 그나마, 진짜 그-나-마- 자연계가 습득하기 쉬워. 그보다 이건 얘기하면 좀 길어져. 그러니까 좀 있다가 훈련 끝나면 설명해줄게.”




지금 상황 설명이나 좀 해줘. 목에 감고 있던 은박 담요를 주섬주섬 풀어내며 묻는 여주였다. 여주에게 상황 보고를 한 사람은 태일이었다.




“훈련을 끝내려면 적군을 전멸시키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해요. 본부장님은 지성이가 전담 마크 중이고, 태용이는 능력이 상충 되는 제노한테 맡길 예정입니다. 그래서 후방에서 체력 보충 중이었고요.”




여주는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전해주는 태일을 멍하니 바라봤다. 태일이가 걸어 다니는 세줄 요약이네……. 아니지, 태일이를 걸어 다니는 세줄 요약으로 만든 사람은 나니까, 내가 대단한 거지. 속으로 자화자찬을 해대던 여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태용이 약점은 가이딩 빼면 얼음이나 물이긴 할 거야. 근데 흰둥이 네 약점도 불이잖아. 괜찮겠어?”

“네. 해 봐야죠.”

“자신감 있는 모습 아주 보기 좋다.”


“……누나는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아요?”

“난 흰둥이 편이지. 우리 지금 같은 팀이잖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해버리는 여주에 제노가 므엉하니 웃어 보였다. 여주가 그런 제노를 향해 마주 웃어주며 말했다.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유리한 쪽은 너야. 넌 지금 가이드도 있고, 도와줄 팀원들도 전부 살아있으니까.”




그에 비해 태용이? 가이드도 없고, 도와줄 아군은 있지만 그들도 가이딩 수치가 현저히 낮아 도움이 되는 건 텐 한 명뿐일 거다. 그 한 명이 백 명의 몫을 혼자 다 하는 놈이라는 게 문제지만…….




“으음…….”




턱을 매만지던 여주가 눈동자를 왼쪽으로 스윽 굴렸다.




“있잖아.”

“응?”

“내가 저 둘 파장을 밀어내거나 가이딩을 야금야금 빼먹으면 될 것 같은데-.”

“응.”

“너네가 계획하고 있었던 마지막 한 방이 통할지 좀 궁금해.”




여주의 말에 영호가 시간을 살폈다. 처음 지성이 제노에게 주었던 휴식 비스무리한 시간은 20분. 16분이 흘러 이제 4분이 남았다. 4분이라. 볼 안쪽 살을 혀로 쓸던 그가 고개를 주억였다.




“정우랑 같이 후방에서 대기해. 공격이 더 집중될 테니까 경호로 성찬이 붙여줄게.”

“집중?”

“아까부터 계속 정우를 노리고 있거든. 저쪽의 최우선 사살 목표가 가이드라는 소리지.”

“뒤에서 얼마나 기다리면 돼?”

“4분.”

“아하, 글쿤. 알았어.”

“그전에 상태 좀 확인하자. 다친 곳은?”

“없으.”

“컨디션은 좀 어때.”

“좀 뻐근한 거 빼고는 딱히?”

“머리카락은 왜 탔어?”




영호가 픽 웃으며 꼬불꼬불해진 여주의 머리카락 끝을 툭 건드렸다. 여주가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아니, 태용이 불이 너무 세더라고. 가이딩 둘렀는데도 뜨겁더라니까? 지금 봐. 나 다 말랐잖아. 트레일러에서 나오기 전에 물을 한 바가지나 끼얹고 나왔는데.”

“저긴 어떻게 올라간 거야?”

“점프해서.”

“…….”

“아니, 저기… 저 응급차 뒤에 숨어 있었는데 벌이 가까이 날아오더라고. 그래서 지금이다! 하고 점프해서 올라탔지.”




여주가 가리킨 곳에는 옆으로 쓰러진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새하얀 응급차가 한 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적군의 얼음이 날린 칼날을 피하느라 벌 한 마리가 좀 멀리 날아갔었지. 그때구나.




“아, 왜 몰랐지?”

“내가 은신의 신 이여주니까.”




당당하게도 말하는 여주에 큭큭거리며 웃던 영호가 손을 뻗어 여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성찬이는 가이드랑 후방 요원 경호로 빠진다. 얼음은 나재민이 맡고, 리커버리를 문 닥이랑 이민형이 맡아. 이태용은 당분간 둘이서 상대해. 4분이니까 버틸 수 있겠지?”

“으음…….”


“난 버틸 수 있을 거라 믿어. 원앤온리 멀티에 부팀장이잖아.”


“씨…….”


“막 부담을 줘버리네…….”




입으로 쩝 소리를 내며 할 말이 많다는 눈으로 영호를 쳐다보던 재현은 눈을 앙칼지게 뜨고 있는 도영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다른 팀원들도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지성과 여주만이 남았다. 그는 여주를 향해 뒤쪽을 보라는 듯 눈짓을 해 보였다. 지성이 가리킨 곳에는 막 총집에서 총을 빼내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 서 있는 텐이 있었다. 여주가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옛 생각나네.”

“그죠?”

“쟤는 희한하게 검은색이 참 잘 어울려. 진짜 귀엽게 생겼는데.”


“……?”




지성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구겨졌다. 귀여워? 누가? 저 인간이? 말문이 막혀 입만 달싹이는 지성을 보고 푸하항~ 동그랗게 웃은 여주가 수고하라는 의미로 엄지 두 개를 들어 올렸다. 그 응원을 끝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잠깐 가이딩 멈춰봐요.”

“왜?”

“나 한 번 안아주고 가.”




그 말에 그를 가만히 마주보고 있던 여주가 옆으로 슬금슬금 게걸음을 쳤다.




“뭐야, 어디 가요. 안아주고 가라니까.”

“포상은 원래 주어진 일을 훌륭히 마무리했을 때 주는 거란다.”

“누나, 잠깐,”

“기대하고 있을게. 파이팅!”

“누나!”




여주는 얄밉게 웃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방으로 뛰어갔다. 물에 솜사탕 씻은 너구리 같은 표정으로 여주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지성은 이를 악다물고 웃었다.


훈련 끝나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




오-.

와-.

이야-.


정우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여주는 쉴 새 없이 감탄을 쏟아냈다. 일부러 적군의 가이딩과 체력만 소모 시키는 팀원들의 기술에 오-. 혼자서 텐을 상대하고 있는 지성을 보며 와-. 널따란 야외 주차장을 전부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태용을 보며 이야-.


불바다가 된 바닥에 서서 전투를 벌이는 팀원들의 발에 얇은 얼음이 둘려 있었다. 1팀은 제외한 다른 경호 요원들은 제노의 능력으로 상쇄하는 중이구나- 하고 있지만, 1팀 팀원들은 알았다. 여주가 가이딩으로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보호해주고 있다는 걸. 그 증거로 종아리를 반쯤 덮은 얼음 막은 그리 단단하거나 차갑지도 않았다.


여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그것과는 별개로 팀원들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리커버리인 민형이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다들 커다란 상처 두세 개쯤은 달고 있었다. 민형이 다른 팀원들을 치료하러 가지 못하게 태용이 계속해서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지성이 시간을 되돌려주거나 멈춰 세워 치료할 시간을 벌어주긴 했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작게 한숨을 내쉰 여주가 정우의 팔을 잡아 살살 당겼다.




“마이 러블리.”

“네?”

“워치 좀 보여줘. 애들 수치 좀 확인하게.”

“아, 네. 잠깐만요.”




워치를 톡톡 두드리던 정우가 제 손목을 여주에게 건네주었다. 계속 가이딩을 쏴준 덕일까. 다들 수치가 70대에서 고만고만했다. 멀티인 도영은 90대였고, 제노는 100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가이딩 소모가 빠른 재민과 지성은 독보적인 꼴등이다. 똑같이 가이딩을 쏴줬는데도 52에 58이라니. 여주가 짐짓 속상하다는 얼굴을 해서는 입을 열었다.




“얘네는 이 문제가 너무 고질적이네.”


“근데 이건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까다로워… 까다로운 형제야.”


[누나, 다 들려요.]

“들으라고 한 소리거든?”




정우에게 받은 여분의 이어폰을 통해 새침하게 대꾸한 여주가 두 사람에게 뭉친 가이딩을 쏴 보냈다. 두 사람의 수치가 70대 초반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웃었다.




[왜 아프게 줘요?]

“얄미워서.”




그 말에 얼음 센티넬의 등에 나이프를 박아넣던 재민이 물었다.




[그럼 나는 왜?]

“넌 그냥 얄미워.”

[너무하네-.]




가이딩 잡아먹는 하마들 같으니라고. 가늘게 좁힌 눈으로 두 사람을 째려보던 여주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노에 곧 방긋 웃었다.




“시간 됐어?”

“네.”

“야, 야, 정우야. 시작이다, 시작.”

“팝콘 타임, 팝콘 타임.”




두 가이드가 찰싹 붙어 앉아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확 풀린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을 지그시 감은 제노가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그 모습을 힐끗 살핀 영호가 말했다.




“전원 신호 대기.”




마지막을 노리고 있던 기습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땅을 뒤덮고 있던 불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탓이다. 거대해진 불꽃은 팀원들의 턱 끝까지 집어삼켰다.


영호가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펼쳐진 손가락은 검지 하나. 수신호를 확인한 팀원들이 빠르게 후방으로 물러나며 제노가 앞으로 총알처럼 뛰쳐나갔다.


재민이 정우와 여주의 등을 받쳐주고, 재현이 눈에 보이지 않은 무중력 상태의 벽으로 후방을 에워싸고 지성이 그를 도와 무중력 상태인 방어벽의 시간을 멈춤과 동시에 거대한 충돌이 일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폭풍에 휩쓸렸다. 무너져내린 건물 파편들은 물론이고,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상공 높이 날아가고, 조경을 위해 심어 놓았던 가로수들은 뿌리째 뽑혀나갔다.


아마 트레일러가 세이프존이 아니었다면 저 거대한 트레일러도 속수무책으로 날아갔을 터다. 재현과 지성이 만들어낸 방어벽 안에 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방어벽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있던 경호 요원들은 1팀과 같은 편이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의 충돌이 팽팽하다. 저 정도면 텐도 어딘가로 날아갔을 것 같은데, 안 보이니 뭐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방어벽이 투명하면 뭘 하나. 보이는 게 없는데.


그나저나,




“진짜 세상의 종말 같은 광경이다.”




여주가 말했다. 다친 팀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던 민형이 “그러게.” 하며 여주의 말에 동의했다. 지성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나. 괜찮아요?”

“넌 여기 신경 쓰지 말고 방어에나 신경 써. 나 날아갈까 봐 무서우니까.”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재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러버리는 지성이다. 하는 말도 정말 가관이었다.




“제대로 해. 누나가 무섭다잖아.”




여주를 닮아 인성이 터진 놈다운 말본새였다. 재현은 옆구리를 슥슥 문지르다 “형이 미안하다.” 다 포기한 어투로 대꾸하며 방어벽을 좀 더 두텁게 넓혔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봤자 들어 처먹을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들의 만담 아닌 만담을 안광이 다 죽어버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여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살 저었다. 쟤 진짜 나 닮아가는 것 같아. 여주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에 정우는 여주를 답싹 끌어안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이 얼마나 착한데. 그리고 쟨 원래 저런 놈이었어요.




“마이 러블리…!”


“선생님…!”




두 사람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이젠 러블리 합체를 하는 두 가이드에게 신경도 안 쓰는 팀원들이 두 가이드를 중심으로 한곳에 모였다.




“막상막한데.”


“아냐, 화력은 화염이 더 세. 그래도 버티는 건 제노가 유리하긴 하지.”

“가이딩 때문에?”

“응.”


“이렇게 보니까 제노도 진짜 많이 컸다. 나 눈물 날 것 같아.”


“아, 나 이거 알아. 태일이 형 같은 사람한테 허벌눈물이라고 한대.”


“넌 왜 자꾸 밖에 나가서 그딴 걸 배워오는 거야? 너한테 그딴 거 알려주는 새끼들 이름 좀 대 봐. 누군지나 좀 알게.”


“그나저나 오늘은 피드백할 거 많겠다.”


“그치. 고작 두 명 추가됐을 뿐인데 거의 학살 수준으로 당했으니까.”

“으음, TAKE 4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얘기 나눌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아직도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A8팀 염력 센티넬에게 물었다.




“용훈아, 너네 팀도 곧 있으면 현장 나가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

“아… 네. 저희 팀이랑 A3, 6팀도 현장 나가고… B1팀도 현장 나갑니다.”

“저 봐.”

“그럼 반성회는 알아서 하고, 피드백은 서면으로 받는 거로 할까.”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필드는 정말 세상의 종말 끝자락과도 같은 풍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땅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마냥 거대한 원 모양을 그리며 움푹 파이고, 팽창된 공기로 인해 생긴 폭풍 때문에 매섭게 바람이 불고 기후까지 뒤바뀌는 수준이었다.


선명한 주황빛이었던 불과 시릴 정도로 새파랗던 얼음의 색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게 변화했다. 방어벽을 치고 있는 재현과 지성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여주가 두 사람에게 가이딩을 넘겨주고 다른 경호 요원들 몰래 가이딩 보호막을 크게 둘렀다. 그보다 저 정도로 거대한 파장의 출동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시뮬레이션 기기가 멀쩡하다니. 업그레이드 한 번 기가 막히게 됐네.


여주가 홀쭉이 호식이 8지부장을 떠올리며 사람은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두 가이드의 등을 받쳐주고 있던 재민이 나지막이 말했다.




“막내야.”




그 목소리에 뒤를 스윽 바라본 지성은 이어진 3초.” 라는 재민의 말에 인상을 팍 구겼다.




“어디서.”


“네 머리 위.”




눈을 동그랗게 뜬 지성이 턱을 치켜든 순간이었다. 멀쩡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불에 타 으스러진 형체가 방어벽을 억지로 뚫고 안으로 침범했다. 그가 본모습을 되찾는 건 순식간이었다.


요원들이 모여 있는 곳 한가운데에 떨어진 그는 순식간에 A급 둘을 해치우고 적군의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능력을 지닌 도영과 민형의 목덜미와 허벅지에 나이프를 쑤셔 박았다.


지성은 지금 방어벽을 유지하는 것도 벅찬 상태인지라 쉽사리 능력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재현에게만 맡겨놓고 여주에게 갈 수도 없었다. 이 벽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전멸이다. 팀원들이 잘 지켜주기를 바랄 수밖엔 없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적군의 기습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정우에게 안겨 제 앞으로 뚝 떨어진 텐을 쳐다보던 여주는 처형인의 학살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마자 가이딩을 훅 잡아뺐다.


A급 요원 둘의 목을 도려낸 뒤 도영과 민형을 난도질해놓고 재민의 옆구리에 나이프를 박아넣던 검은 형체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여주는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짜잔.”




철컹. 은색의 수갑이 반짝 빛났다.




“이게 바로 B9팀 채하 언니한테 빌려온 제어 수갑이라는 거란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다른 쪽 손목에도 수갑을 채우려던 여주가 멈칫했다. 그러다 텐이 종종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던 것을 떠올리곤 마저 수갑을 채웠다. 손길이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눈치를 보는 듯 쭈뼛거리기까지 했다.


텐은 가면 아래서 소리 없이 숨죽이고 웃었다. 적인데 참 상냥하기도 하지.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괜찮구나. 다행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여주가 주변을 둘러봤다.


A급 두 명은 이미 숨이 끊겼으니 안 되겠네. 여주는 가장 먼저 민형의 가이딩을 듬뿍 채워주었다. 피를 콸콸 내뿜어내던 민형의 목덜미와 허벅지에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창백해진 안색의 민형이 걱정스러웠으나 그래도 리커버리는 리커버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말똥아, 도영이 먼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성찬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도영에게 향했다. 그가 도영을 치료하고, 태일이 재민에게 응급처치를 해주는 모습까지 살핀 여주가 다시 고개를 바로 해 앞에 앉은 이를 바라봤다.




“너는…….”

“…….”

“음, 인질이야. 생포했으니까.”




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게 괜스레 서운해 입술을 삐죽거리던 여주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검은 가면을 톡톡 두드렸다. 하여튼, 재수탱이.


지성은 텐의 가면을 건드려보고, 옷자락도 한 번 만져보며 앉아 있는 여주를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상대했는데 누나는 그냥 한 방에 처리해 버리네.


뒤이어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난 안아주지도 않고 홀라당 가버렸으면서 저 인간이랑은 마주 앉아서 시시덕(지성의 눈에만)거리고 있단 말이지. 진짜 가만 안 둬. 두고두고 가만 안 둘 거야.


이를 박박 갈던 지성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방어벽에 맞부딪히고 있는 태용과 제노의 파장이 갑자기 거센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성과 재현은 뒤를 살필 틈도 없이 거세게 몰려드는 상반된 파장을 막아내느라 바빴다.




“이게 마지막인가?”

“그래 보여.”




와, 오늘 진짜 빡세다. 재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방어벽을 더욱 단단히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여주의 가이딩까지 합세한 방어벽인데도 조금만 긴장의 끈을 놓으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될 것만 같은 힘의 충돌이었다.


팀에 쉴드 영입하고 싶어.

S급 쉴드가 쉽게 나오나.

늦었지만 종교라도 가져볼까.

기도라도 하게?

어.

그럴 거면 누나한테 공양이나 해. 그게 더 효과 좋을 텐데.

어, 그것도 그러네.


땀을 뚝뚝 떨구면서도 이런 영양가라고는 하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함이다.


두 사람은 안 그래도 여주의 가이딩을 계속 받고 있느라 좋은 의미로 정신이 혼미했고, 그 와중에 태용과 제노의 파장을 막아내느라 기가 쪽쪽 빨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하늘에서 쿠르릉- 낮은 울림이 일었다. 천둥소리 같은 그 울림은 얼핏 용의 울음소리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낮고 커다랬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터져 나온다. 그 빛은 온 세상의 그림자를 다 잡아먹을 듯이 거대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잇새 사이로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몸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조금 옅어졌다. 방어벽을 감싸고 있던 여주의 보호막이 더 두껍고 단단해진 덕이다.


난 그냥 평생 장군님한테 보호 받아야 될 운명으로 태어났나 봐.


속으로 생각하며 옅게 웃던 지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뒤에서 영호가 방어 자세를 취하라며 외쳤다.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질끈 감은 눈꺼풀 위를 팔뚝으로 가려 막았으나 빛이 너무 강렬했다. 눈이 시려 생리적인 눈물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 상태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던 빛이 점차 옅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제일 먼저 눈을 뜬 사람은 전방에 있던 두 사람이다. 실핏줄이 돋아난 눈을 치켜뜬 지성과 재현이 앞을 살폈다.


시야가 너무 가물가물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황폐하기 그지없는 것은 아주 잘 보였다. 주변에 있던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도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만약 이게 현실이었다면… 센터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 분명했다. 기사회생도 하지 못할 수준으로 처박히겠지. 사상 최대 민간인 사망자 발생… 뭐 이런 헤드라인을 달고 전 세계적으로 처맞았을 거다.


재현이 질린 얼굴을 해서 입을 열었다.




“야, 불이랑 얼음은…”

“붙으면 파하아아- 국이다!”




두 사람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놀랬다. 인기척도 없이 바로 등 뒤로 다가와 냅다 파국이라고 외친 여주 때문이었다. 여주는 두 사람을 향해 “방금 개구리 같았다.” 하고 말하며 씨익 웃어 보이고는 정우와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은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정우는 제노가 쓰러진 쪽으로, 여주는 태용이 쓰러진 쪽으로 경보하듯 빠르게 다가갔다. 누나…! 자리에서 잽싸게 일어난 지성이 여주의 뒤로 따라붙었다.




“혼자 가면 위험하잖아!”

“다 끝났는데 뭐가 위험해.”

“누나!”

“아이, 알았어어… 같이 가, 같이.”




손잡고 가자. 그리 말하며 지성의 손을 잡아챈 여주가 태용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리에 대자로 쓰러져 누워 있는 그는 활활 불타고 있었다. 뭐가? 얼굴이.




“왜…… 불타고 있는 거야…?”




여주가 황당한 어투로 물었다. 그랬더니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손을 움직여 손가락으로 제 얼굴 쪽을 가리키는 태용이었다. 그 제스쳐에 눈매를 가늘게 좁히고 고민하던 여주가 “아하.” 하며 그의 얼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속삭였다.




“가면 없구나.”




그랬더니 대답을 하는 것마냥 화르륵- 소리를 낸다. 불타는 주먹밥, 귀엽네. 낄낄 웃던 여주가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어놨던 은박 담요를 꺼내 들었다.




“이걸로 가려줄게.”


화르륵-.


“그리고 너도 오늘 파티에 참석할 거지? 그치?”


화르르르륵-.


“아핳…!”




조용히 웃음을 터트린 여주는 손수건 크기로 접은 은박 담요를 태용의 얼굴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반대쪽 주머니에서 A급 페어 가이드인 소백에게 받아온 제어 수갑을 꺼냈다. 철컥, 소리를 내며 태용의 손목에 수갑이 차였다.


───!!!!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 위에서 훈련 종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들려온다.




“예에- 우리 팀 승리!”




여주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지성은 그런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장 말랑한 뺨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는 앙.




“아!”




별안간 볼을 깨물린 여주가 깨물린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곤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다. 뭐야?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여주에 아무 말 않던 그는 이번엔 반대쪽 뺨을 깨물었다. 앙.




“아, 뭐야! 왜 이래!”

“손 치워봐요.”

“왜… 왜? 왜?!”

“치워보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왜?!!”


“……왜?”




얘 눈이 왜 맛이 갔지…?


주춤거리던 여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지성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렸다. 여주는 영문도 모르고 폐허가 되어버린 병원 필드에서 지성과 죽음의 ‘나 잡아봐라’를 해야만 했다.





❊❊❊




훈련이 끝난 시각은 AM 11:57. 아침 9시에 시작되었던 훈련은 3시간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현재 시각 PM 12:20. 훈련실에 마련된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피드백을 위한 자리였다.


훈련 피드백에 참여한 인원은 센터장과 본부장. 그리고 지부장들과 1팀 팀원들이 전부였다. 다른 요원들은 각자 할 일이 있었고, 현장 임무도 있었기에 자리하지 못했다. 대신,


시간이 없는 관계상 반성회는 팀별로, 개인별로 알아서 하시고 피드백 보고서 내일 오전 10시까지 작성해서 문 소장 연구실로 제출하세요. 각자 써온 보고서를 토대로 저와 센터장님 면담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런 숙제를 받았다. 가이드들과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훈련실을 빠져나갔고, 경호 요원들은 들쑤시는 삭신에 끙끙 앓는 상태로 어기적어기적 훈련실을 나섰다.


막판까지 살아남아 있던 A급 센티넬 세 명은 동료들에게 거의 업혀서 나갔다. 서비스 차원에서 민형이 리커버리를 해주긴 했는데, 리커버리 만으로는 훈련에서 쌓인 충격과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태일이 영양제도 좀 쥐여줬다.




“저는 1팀을 제외하면 A3팀 팀장과 A5팀에 거대화가 제일 눈에 들어오네요.”

“네, 저도 A3팀 팀장이요. 지휘를 적절하게 잘했어요.”

“B1팀 리커버리는 눈에 안 띄어서 오히려 좋던데요.”

“그치, 리커버리는 눈에 안 띄게 활약을 해줘야 돼. 그래야 생존 확률이 올라가니까.”

“가이드들도 좋았어요. 대기 시간이 길어서 좀 풀어질 만도 했는데 수분 공급도 적절하게 알아서 잘 했고, 계속 바깥 상황을 알아보려고 노력도 했고요.”

“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아서 좋았죠.”




회의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주를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오… 죽이는데…….”




수면제를 먹고 도롱도롱 자고 있을 무렵, 팀원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훈련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양옆에 지성과 텐을 앉혀놓고서. 진지한 얼굴로 영상을 몰입해 보는 여주를 짧게 살핀 영호가 말했다.




“그보다 센터장님?”

“왜.”


“마지막에 그거 뭐였어? 갑자기 불 인간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잖아.”

“아, 그거.”

“어,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그 물음에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태용의 미간이 슬슬 좁아진다. 어떻게 한 거냐고? 어떻게냐니.




“몸을 불로 만든 거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했냐고.”

“능력이 불이니까 불로 만든 거라고.”


“…….”




영호가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여주가 콕집어 센터장으로 키워낼 정도로 그가 능력있는 천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 표정을 봐라. ‘이게 왜 안 돼?’ 하고 말하고 있지 않나.


태용에게서 양질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한 영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여주에게로 향했다. 여주는 태용의 기술을 보고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를 파장화 시키는 기술이라고 했다.


쉽게 얘기하면 너네가 능력을 쓸 땐 파장이 실체화가 되는 거잖아? 파장화는 그걸 반대로 응용하는 거야. 실체를 파장으로 만들기.


자연계만 습득할 수 있냐는 물음에 ‘그나마’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자연계가 습득하기 쉽다는 얘기도 했고. 그 후로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다며 나중에 설명해준다 했었다.


근데 저렇게 집중하고 있는 애를 방해하긴 좀 그렇지. 영호의 시선이 여주에게서 조금 비켜나간다. 말없이 앉아있던 텐은 그 시선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영호는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으면서 냅다 표정을 먼저 구기는 텐에 “진짜 이러실 거예요?” 하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아무 말도 안 했잖습니까.”


“쳐다봤잖아.”

“쳐다보는 것도 안 돼요? 제 눈인데 왜 그러세요, 사람 서럽게.”

“…….”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주시죠. 본부장님도 아실 것 같은데.”




작게 한숨을 내쉰 텐이 옆에 앉아 있는 여주를 힐끗 쳐다봤다. 영상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탐탁지 않다는 듯 혀를 찬 그가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아.”

“여주가 신체의 파장화라는 말을 해주긴 했죠. 원자를 파장화 시키는 거라고요. 그 외에는 모릅니다.”

“이 기술을 창시한 사람은 궁규선일 거야, 아마.”

“……그분 능력이 혹시…”

“불.”




공교롭게도 기술을 창시해낸 규선과 태용의 능력이 똑같았다. 게다가 등급도 똑같다. S. 텐은 의자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혁명군 내에서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놈들은 셋이 전부였어. 궁규선이랑 신예나. 그리고 조아윤, 이렇게 셋. 셋 다 자연계였고 신예나랑 조아윤은 B급 물 센티넬.”

“…등급이랑은 상관이 없나요?”

“어. 대신 D랑 F는 안 돼. 애초에 몸에 가지고 있는 파장이 적어서 파장화하는 기술을 습득해봤자 고작해야 손만 조금 변하고 말 거야. 그 정도면 애초에 안 배우는 게 나아.”


“혁명군에 셋뿐이었던 거면 진짜 습득할 확률이 극악이긴 하네요.”




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의 파장화는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가이딩 소모가 적은 기술이다. 워낙 유용하다는 것을 알기에 혁명군 내에 있던 자연계 센티넬들이 자신도 파장화를 시켜보겠다며 용을 써댔지만 성공한 사람은 고작해야 셋뿐이었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등급에 상관없이 도전했던 놈들만 따지면 천은 될 거야. 그중에 셋만 성공한 거고. 신예나랑 조아윤도 6년 만에 성공했어.”


“그 궁규선이라는 사람은요?”




지성이 물었다. 텐은 그 물음에 “글쎄.” 하며 애매한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걘 센터에 잡혀 있었을 때 받은 실험이랑 고문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케이스야. 우리들이 구출해서 빼내오기 전부터 쓸 수 있었어.”

“…….”

“그래서 정확한 건 아무도 몰라. 일부러 안 물어봤어. 이여주도 모르니까 묻지 마.”

“……네, 알겠어요.”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머쓱한 얼굴을 해서는 귀밑을 문지르던 영호가 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말했다.




“1000명이 넘게 도전했는데 그중에 딱 3명이 성공한 거면 습득 확률이 고작해야 0.3%네요.”

“대충 그 정도 되지.”

“그럼 센터장님은 이걸 혼자서 고안해 낸 건가?”




능글맞게 웃으며 묻는 영호에 작게 헛웃음을 흘린 태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 보니까 되던데.”


“재수 없다, 진짜…….”




태용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우가 한 말이었다. 태용의 고개가 옆으로 스윽 돌아갔다. 정우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는지 헉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려 막았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잔소리라도 했을 텐데, 정우라 그냥 웃으며 넘기는 태용이었다.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6일에 경호 요원들이 맡은 구역도 변동 사항이 좀 있었다. 거대화와 염력, 소환, 마리오네뜨는 연계하기 쉽도록 같은 층으로 이동되기도 했다. 지부장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론 브리핑 대본도 미리 뽑아놨다며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1팀이 맡은 경호 위치에도 조금 변동 사항이 있었는데, 제노가 옥상으로 홀로 올라가게 됐다. 야외 지휘와 더불어 경계와 병원 전체의 보호까지 도맡게 된 것이다.




“승진한 거지. 워낙 활약을 많이 해줬으니까.”


“……?”


“무슨 일이 터지면 병원의 안전은 너에게 맡긴다.”


“……?”




어리둥절한 얼굴로 영호와 태용을 번갈아 바라보던 제노는 곧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이랑 팀장이 까라면 까야지, 뭐 별수 있나.


그때 영상을 다 본 여주가 상기된 얼굴을 해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늘의 MVP는 누가 봐도 말랑콩떡이네!”




반짝거리는 눈빛이 강렬했다. 제노는 므엉하니 눈을 끔뻑이다 물었다.




“MVP는 상 없어요?”

“상 받고 싶어?”


“네.”

“좋아! 말해 봐!”




옆에서 지성이 환장하겠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아댔다. 아, 또 이제노야. 왜 또 이제노야.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러가면서. 그 모습도 므엉한 얼굴로 바라보던 제노가 여주에게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누나 이제 뭐 할 거예요?”

“나?”

“네.”

“나야, 뭐… 집에 가서 간단히 뭣 좀 챙겨 먹고 장 보러 가야지.”

“장이요?”

“응. 저녁을 거하게 챙겨 먹을 거야. 파티 열 거니까. 그리고 전 부치려면 재료 사러 가야 돼.”

“아니, 왜 또 누나가,”

“넌 조용히 해.”




잔소리 폭격의 시동이 걸린 지성의 입술을 집게 손으로 눌러 잡은 여주가 “콱 씨.” 하며 모닝빵 주먹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그러다 다시 제노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장 보고 와서 막걸리 거르고, 좀 쉬다가 준비하다 보면 저녁 먹을 때쯤일걸?”

“으음…… 그럼 장 보러 같이 가요.”

“응? 상 달라며.”


“네. 상으로 저랑 같이 가요. 저랑만.”




으읍! 지성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여전히 입술을 잡고 있는 여주의 손가락 때문에 말을 못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손잡고 떼어내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으나 지성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여주가 하는 행동을 힘으로 제지할 생각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호구 중의 호구였다. 호구 중의 호구인 지성은 눈앞에서 제노와 여주의 데이트가 성사되는 광경을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말랑콩떡은.. 한방이 있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메라몬은 디지몬이에요!

얘가 메라몬!

태용이는... 타고 있었어요...ㅎ


그리고 우리 태용이! 오늘 좀 천재 같은 면모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거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되던데? 이게 왜 안 돼?<- 완전 천재 모먼트😆


전부터 태용이한테 진짜 찐필살기를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왜냐면 센터장은 센터장다워야하니까!😤



그리고 댓글로 질문 남겨주셨는데

텐이 진짜 연우를 비롯한 1팀 애들을 '귀찮은 놈=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느냐! 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입니다!


텐은 연우와 1팀을 진짜로 귀찮은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BUT!!!!

여주에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텐에게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나한테는 귀찮고, 이여주에겐 좋은 놈들' 이라는 뜻입니다..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여주가 좋아하고, 여주에겐 좋은 놈들이라 챙겨주긴 합니다.


지성이는 다른 의미로 나름 잘 챙겨줘요! 첫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애고, 자신과 좀 닮았고... 암튼 그래서 지성이는 '귀찮은데 놀려 먹기 좋은 되바라진 웃긴 놈'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텐 인생에 '좋은 사람'으로 인식 되는 사람은 여주가 유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귀찮은 놈, 거슬리는 놈, 죽일 놈, 죽인 놈, 인식조차 안 되는 놈... 뭐 이렇게 나뉩니다. 이중 귀찮은 놈이 가장 좋은 뜻이긴 해요ㅎ 귀찮은 놈 범주에 철주와 지화도 들어가니깐욤ㅎ


텐은 필요에 의해 곁에 두는 사람은 있어도 본래 인간을 안 좋아해서요... 여주만 아니었으면 찐으로 사람 한 명 없는 산속이나 동굴속에서 혼자 사는걸 택했을 사람... 아무튼 얜 여주만 좋아해요!




그리고 200편 마지막 장면으로 꼭 쓰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분량이... 좀 많이 길어져버렸습니다...3만자...🙄

읽느라 힘드셨죠..? 죄송.... 하지만 전... 꼭 그 장면으로 200편을 끝내고 싶어요...😭


그래서 200편도... 좀 길어질 겁니다...

쓰는 중인데 길어질 기미가 보여요..🙄


200편 기념 외전도 같이 쓰는 중인데

이것도.. 길어질 기미가 보여요...🙄


200편과 기념 외전은 같이 가져오고 싶어서 다음편은 좀 늦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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