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떠올려 보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집에서 같이 살 때도 가끔 엄마가 사 두지 않는 베이컨을 사다가 냉장고에 있는 양파를 썰어 넣고 우유를 넣어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먹곤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주로 집에 없었고 나는 알아서 밥을 챙겨 먹곤 해야 했는데, 그 대부분은 귀찮아서, 먹기 싫어서, 먹고 싶은 게 없어서 억지로 끼니만 때우거나 안 먹고 넘기곤 했던 기억이 있다.

 진짜로 요리를 하기 시작한 건 아마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였다. 그 즈음에는, 내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기력이 심하다는 것까지.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까이에 친구들이 살았고, 집에 있는 시간 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요리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아마 몇 년 전,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체류를 하던 시기였다. 그 때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떠나기 직전 한국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과 연을 끊다시피 했고, 일본에서는 마음 터 놓고 지낼 친구 한 명 없었으며,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워홀을 처음 간 사람들은 주로 쉐어 하우스에서 생활하곤 한다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 집을 먼저 구했다. 그렇게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구한 집은 작았고, 창문 너머로 비슷한 높이의 맨션 건물이 딱 붙어 있어 햇빛은 하나도 들지 않았으며, 낡았고, 추웠다. 그 전에 한국에서 지내던 곳도 반지하 방이라 좋은 조건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래도 넓은 편이었고, 방과 부엌 공간이 제대로 분리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걸 최소 조건으로 삼아 발품을 팔았지만, 그 때의 나는 일단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과 가면 좋겠지, 하는 무책임한 희망에 부풀어 깊게 고민할 시간도 그럴 능력도 없이 적당히 결정해버렸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당시 살던 집은, 정말 작았고, 그리고 내 짐은 많았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책은 왜 들고 가고 옷은 또 왜 그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갔으며, 컴퓨터 본체는 대체 왜?) (그런데 사실 답은 알고 있지. 그 때는 그게 내 아이덴티티(?)를 보장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월세는 한화로 환산하면 약 53만원. 워홀이니까, 돈은 벌 수 있는 비자였는데 반대로 말하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취업을 위해 도쿄로 간 거기는 했지만, 취업할 곳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하지. 한국에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야. 그때는 정말, 일단 거길 벗어나고 싶었나봐).


 두어달 치 정도의 생활비는 준비하긴 했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해 부랴부랴 알바를 구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일은 시작했는데, 시프트가 좆같았다. 하루에 두어시간, 점심시간 즈음에, 혹은 저녁무렵에. 그런 식이었다. 돈이 될 리가 없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단발성 이벤트 스탭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등록을 하고, 스케쥴이 업데이트 되면 자기 일정에 맞게 신청해서 할 수 있는 거였다. 처음에 등록한 곳은, 아무리 신청서를 내도 붙여주지 않았다. 아마 외국인이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해 다른 곳을 찾게 된 건 이미 보름에서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미 한달 하고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9월 중순에 도쿄에 와서, 그 바로 다음 주에는 실버 위크라는 긴 연휴가 있어 아무 것도 못 하고 방에 누워서만 지냈었더랬다. 돈은 없는데, 일도 못 하고, 시간만 남아 돌았다. 정돈 되지 않은 방 안에 누워 있으면, 이 비싼 월세를 내면서 뭘 하고 있는거지? 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이렇게나 쓸모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해일처럼 몰려 왔다.

그 상태대로라면, 식생활도 엉망이 되리란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하는 것도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억지로나마 떠올렸다. 그 때부터는 취미 생활 삼아 음식을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트위터에도 요리와 레시피를 업로드 하는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주로 밥보단 술을 마시기 위해서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의욕은 생겨났고 점점 즐거워졌다. 한국에선 잘 보지 못한 식재료로, 한국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조리법을 시도해보는 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당시 지내던 동네는 대학교가 많아 상권이 발달했고 가격대도 저렴했다는 점은 나에겐 좋은 조건이었다. 근처에 마트가 몇 군데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곳은 포인트가 쌓이는 대신 약간 비싸고 조금 고급스러운 상품들이 많았으며, 조금 더 걸어가야 나오는 곳은 저렴하고 24시간 영업이고, 본 적도 없는 재료들이 많았다. 거기서 좀 더 가면 재래시장도 있어 가끔 떨이용 과일을 산더미처럼 사 오곤 하는 것이었다.

산더미 같은 사과를 사다 만든 사과잼.

 당시엔, 눈독 들여뒀던 식재료를 저렴하게 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면 그게 무엇보다 기뻤다. '한 시간 정도 들여서 얻을 수 있는 달성감, 그리고 그건 또 다시 한 시간 정도면 사라지겠지만' 당시에 읽었던 어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묘사인데, 딱 이 정도의 감각으로 나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었고, 그렇게 생활을 이어 나갔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그렇지만, 나는 늘 무언가를 발산하며 그걸 형태로 내보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렇게 내보일 수 있는 형태가, 통로가 나에게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방향을 잃은 감정은 내 속을 파먹어 들어갔고, 그 한 가지 답으로 발견해낸 것이 나에겐 음식, 요리였던 것이다. 무언가 형태 있는 걸 만들자니 나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남아 돌지만 돈은 없고. 그렇다면, 어차피 '먹고' 살긴 해야 하니 음식을 먹는 데에 시간을 좀 더 쓰고 돈을 약간 더 써서, '형태가 있는' 걸 만들어내고 그걸 금방 먹어서 '치워'버리는 건 지금 생각해도 아주 적절한 방식이었다. 거기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면 식생활과 건강이 엉망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더욱 더 그랬다. 나는 식재료를 사기 위해 열심히 걸어 다녔고, 오늘은 또 무슨 음식을 먹으면 맛있을까? 내일은 그럼 이거 만들어 먹어야지, 하는 식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낼 의욕을 이어 갔다.

 걱정스러워 할까 덧붙이자면, 11월 중순 이후부터는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도 점점 자리를 잡아 갔고, 새로 구한 이벤트 스탭 아르바이트는 문제 없이 잘 진행되어, 주말에는 이벤트 스탭으로, 주중에는 패밀리 아르바이트로, 그리고 가끔 가다 오전에 좀 시간이 나면 또 동네를 멀리 멀리 돌아 식재료를 탐색하고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2월에 취업에 성공한다. 이게,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나아졌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안정된 생활은 가능하게 되었다.


 요리란 뭘까? 의식주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는 매일 하루에 세 끼, 최소 두 끼는 먹어야지 생활이 가능하다. 이건 곧바로 신체의 건강과도 연결되는 일이다. 나는 가끔,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조리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지금은, 나는 여자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는 하지만) 내가 실제로 우울증과 무기력이 심할 때 그나마 붙잡고 있었던 게 음식을 조리해서 잘 챙겨 먹는 일이었고(꼬박꼬박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다는 뜻과는 무관하다) 돈을 아끼면서 '가성비'를 챙기며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 방법도 좋아하곤 했어서 더욱 그러하다. 소비에 대한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된다는 면에서 정말 괜찮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활비 지출 항목에서 약간 초과하는 정도로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무기력한 상태에, 시도와 성취까지의 텀이 짧은 것도 장점이다.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도 말했듯이, 고작 길어봤자 한 시간 정도면 금방 과정은 끝나고 어쨌든 결과물이 내 눈 앞에 실물로써 존재한다. 이걸 여러 번 반복하며 성공에 대한 경험을 쌓는 것은 무기력과 우울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더욱, 무슨 사이비 신자처럼 주변 사람들을 향해 외치게 되는 것이다. 요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화려하고 예쁘고 맛있어보이는 레시피를 따라 온갖 재료를 하나하나 일단 다 사 모은다. 소고기 된장찌개를 하나 끓여 먹으려고 청양고추를 한 봉지 사지. 그리고 만들어 본 결과물은 생각보다 마음에 안 차고, 아 역시 나는 안 되나? 하게 되고, 냉장고 속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는 청양고추를 내다 버리며 생각하겠지. '에이, 역시 음식은 나가서 사 먹는게 간편하고 싸고 맛있네!' 이런 식으로 실패 경험이 축적되면 요리에 대한 불신과 탈력감, 그리고 공포심만 쌓이게 된다. 그런 것보다는, 가볍고 간단한 단계부터 하나씩 쌓아올려가면 좋겠다고, 나는 늘 말한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말이다. 정 어렵다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선뜻 말을 건넨다. 나에게는 어렵기는 커녕, 꽤나 즐거운 일이이도 하니까 말이다.

 실제로, 최근에 친구로부터 요즘 좀 무기력증이 심해졌는데 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어 잘 챙겨먹기 시작했고, 다음 끼니를 즐겁게 기대하게 되었다고 이 얘기를 해 주면 내가 좋아할거라 생각했다길래 크게 감동 받으며 행복해 했던 일이 있다. 요리가 싫고 무서워서 피하던 사람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게 된다면, 거기 내가 역할을 했다면 그 이상으로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분이고, 어차피 해야 한다면 억지로 보다는 좀 더 즐겁게, 그리고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생활의 형태가 좀 더 바뀌지 않을까? 쉽게 무기력의 그늘에 빠져드는 대신, 오늘은 스트레스를 좀 받았으니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푹 자자!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나는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라고, 특별한 기술과 특별한 식재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정 어려우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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