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가 조금 식을 쯤이었다. 쿠엔틴은 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던 고개를 들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에게 비밀 있어요?”


샘은 그런 쿠엔틴을 끌어 안으며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사소하고 은밀한 이야기, 들을 준비 되었어?”


입가에 미소를 가득 품은 그 표정이 마치 호기심 가득한 소년 같았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자 샘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몇 년 전, 자신의 작은 새끼손가락이라 여겼던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저 열 손가락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인생이나 다름 없었던.


아마 샘은 쿠엔틴이 이 이야기로 인해 자신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관계를 맺었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저와 쿠엔틴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으니까. 그의 생각대로 쿠엔틴은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놓인 셔츠를 들어올렸다.


“갈래요.”


그 짧은 말을 남기고 그가 밖으로 나갔다. 저를 떠났으면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막상 떠나고 나니, 비릿한 냄새가 나는 그 텅 빈 방 가득, 후회가 차 올랐다. 상처만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은 채 떠나는 것이 그를 위하는 편은 아니었을까. 뒤늦은 후회에도 일은 터졌다.




샘은 더 이상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예상은 1주일 만에 빗나갔으며, 쿠엔틴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집으로 와줘요.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전화가 끊겼다. 그리운 그 목소리를 느낄 틈도 없이 샘은 바로 뛰어나갔다. 방금 까지도 탔던 자전거는 왜 펑크가 나있는 건지. 샘은 작게 욕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해서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문은 열려있었으며, 강도라도 든 것처럼 그의 집은 엉망이었다. 시큼한 냄새 뒤에 쿠엔틴이 앉아 있었다.


“들어가도 돼?”


네. 그 짧은 대답에도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아픈 건지, 불편한 건지. 흠흠 거리며 목을 가다듬으려고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뭄 나 있었다.


바닥엔 종이들이 뒹굴고 있었으며, 벽에는 각종 신문과 종이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 벽이 하얀색이라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그 중 종이 하나를 뜯었다.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이 박혀 있던 신문 일 면. 샘에겐 아픈 손가락이자, 삶이었으며 인생이었던.


샘은 그 종이를 구기며 바닥에 떨어트렸다.


“샘.”


갈라지는 그 목소리에 샘이 뒤돌아 그를 쳐다봤다.


“밤새 찾아봤어요. 신문, 기사, 댓글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논문까지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감이 안 잡혔거든요.”


거북했다. 샘은 사랑스러웠던 그 방이 역겹고, 구역질이 나왔다. 지금껏 외면해 왔던 아들 사진에 숨이 막혀왔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대로 그를 보러 뛰어나갔다. 그 ‘사건’뒤로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자신의 아들을 보기 위해. 화려하게 낙서되어 있는 그의 묘비에 기댄 채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아들 앞에선 울지 않기로 했었으니까.


“오랜만이네.”


에밀리는 양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샘에게 건넸다.


“뭐야, 같이 닦으려고 온 거 아니야?”


이혼하고 몇 년 만에 마주보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장례식이 있던 날에도 샘과 에밀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에밀리는 자책했으며, 샘은 믿기지 않는 그 현실에 도망치고 싶었다.


“냄새가 지독하니 마스크 쓰고 해.”


“매일 이렇게 닦으러 와?”


“아니. 생각이 많아질 때만 와.”


그녀가 건넨 시너통을 받아 든 샘은 자리를 잡고, 고무장갑에 면장갑을 이중으로 끼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지독한 시너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냄새를 잊고 싶은 건지, 그 냄새보다 어색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건지 샘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냥 뭐. 평범하지.”


에밀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조금은 눈치 보며 물어볼 만도 한데, 그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어린애 데리고 노는 것 같던데?”



“노는 거 아니야. 그냥 같이 밴드 하는 거야. 아니, 했던 거지.”


“했던 거라고?”


“오늘 부로 끝냈어. 더 이상 밴드 안 할거야.”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에밀리는 그가 공연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자를 눌러쓴 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무대 위의 샘은 젊었을 때의 자신이 반했던 멋지고, 반짝거리던 샘이었다. 어느 순간 그 빛이 바랬고, 모던한 무채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반짝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깨끗해진 묘비를 보며 둘은 술병을 부딪히며 술을 마셨다.


“언제 한 번 식사나 같이 하자.”


샘은 그 예의상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에밀리도 샘도 어느 누구 하나 진심은 없었다.




보트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가벼웠다. 시너 냄새가 사고를 마비시키기라도 한 건지, 고통스러운 냄새였지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샘은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고맙다고 꼭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그 가벼운 발걸음은 금새 무거워졌다.


“왔어요?”


여전히 갈라지는 목소리로 샘을 쳐다보는 쿠엔틴의 모습에 그는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이거 무단가택침입 아니야?”


“이게 집이라면 그렇겠죠.”


“네, 어련하겠어요.”


노래하는 가수라는 녀석이 목 관리 하나 못해서야. 샘은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두었다.


“어디 다녀와요?”


“누구 좀 보러.”


“누굴 봤는데요?”


“전 아내.”


정작 보고 싶은 사람은 못 봤는데. 쿠엔틴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더니 작게 물었다.


“다시 시작하기라도 한 거에요?”


“걘 재혼했어.”


그는 샘의 표정에서 그리움을 느꼈다. 갈라져 피까지 났던 입술을 살짝 핥았다. 갑자기 느껴지는 쓰라림에 인상을 쓰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왜 온 건데.”


주전자 앞에 서서 파란 불꽃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쉽게 입을 때지 못했다. 자꾸만 침을 바르는 입술이 갈라져 쓰라림을 더해갈 쯤 그가 입을 열었다.


“샘.”


동시에 주전자가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샘은 주전자를 들어올리며 차를 타려고 했다. 그가 쿠엔틴의 모습을 봤다면, 눈 안의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며 타박했을 것이다.


“샘.”


샘은 쿠엔틴의 말투를 좋아했다. 약간 질질 끌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특히나 좋아했다. 여운을 즐기기 위해 눈을 가볍게 감았다.


“밴드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뒤늦게 들려오는 말에 눈을 뜨며 대답했다.


“응.”


“솔직히 전 이해 못해요.”


“응. 알아.”


그 사이에도 차가 너무 뜨겁지는 않을까, 차를 약간 식혀 주며 그에게 건넸다.


샘은 쿠엔틴의 앞에 앉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쿠엔틴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쿠엔틴은 자신의 두 손 가득 있는 머그의 온기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라 비틀어져 약간의 침에도 붙어버린 두 입술을 땠다.


“샘 근데요.”


계속 만나줬으면 좋겠어요.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내려다보며 쿠엔틴은 이어 말했다.


“지금처럼 계속 밴드 하고, 저랑 같이……섹스도 해줘요."


샘이 놀라 쿠엔틴을 쳐다봤다. 내가 잘못 들었나? 쿠엔틴이 싱긋 웃으며 차를 마셨다.


“아뇨. 제대로 들으셨어요.”


갈라진 목소리에 담긴 진심에 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해요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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