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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정말 그 다음 주에 간부급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그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로 콕 집어 성훈을 호명했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성훈이 현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조직원이라면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성훈을 현재가 파트너로 지목한 건 놀라운 일일 법도 했다.



“근데 왜 한성훈입니까?”



현재의 새로운 사무실에서 술자리가 벌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질문이었다. 모두가 현재를 바라보았다. 사실 궁금한 것이 당연했다. 현재는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들을 그대로 한 번씩 보곤 술잔을 들어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한성훈은....”


“.......”


“제일 말을 안 듣거든.”



그 말엔 성훈이 속으로 울컥했다. 그날 이후로 자신이 그렇게나 깍듯하고 살뜰하게 현재를 모셨는데 돌아오는 말이 ‘말을 안 듣는다.’라니. 하지만 그를 티 낼 순 없었다. 현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말 잘 들어야하는 자리에 앉힌 거야.”



사실 다른 팀원들 입장에선 눈꼴 시릴 법도 했다. 간부를 보조하는 파트너는 조직 서열 체계에선 예외로 간부급의 대우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 서열 상승을 노리고 파트너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한참 현재를 무시하던 성훈이 꿰찼으니 성훈 입장에서도 면목이 없었다.


그런 저를 위해 현재가 그럴 법한 이유라도 대주면 좋았으련만 현재는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진 않았다. 이제 성훈이 몸소 증명해보여야 했다. 현재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괜찮으십니까?”



현재는 술 꽤 많이 마셨다. 성훈은 그런 현재를 집에 모시기 위해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현재는 간부급에게 주어지는 검정 세단 뒷자리에 널브러지듯 누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술을 마시냐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성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그런 주제 넘는 말은 금기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까지 지워내야 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뭐가.”


“저, 파트너 시켜주신 것 말입니다.”



그 말에 현재가 몸을 일으켜 앉아 조수석에 몸을 기댔다. 술 냄새가 성훈에게까지 풍겼다. 현재는 작게 미간을 찌푸리는 성훈을 보고 피식 웃었다.



“성훈아.”


“예, 형님.”


“넌 이제 나를 위해 일하냐?”



저번에 나눈 대화의 연장이었다. 현재는 자신이 아닌 조직을 위해 일하라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조직을 뒤집을 것이라는 계획도 이야기했다. 성훈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하라’고 현재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현재가 말했다.



“오늘부터 날 위해 일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게 조직을 위한 일이야.”



현재는 정말로 자신이 조직을 먹어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현재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훈은 겁이 났다. 그러다가 일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현재가 처할 위험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현재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가 원하는 걸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구체적인 계획과 범위는 몰랐지만 어쨌든 위험한 것은 틀림없었다. 우선 현재 위로 있는 간부들을 다 제쳐야했으니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몸으로 안 되면 머리를 쓰면 돼.”



그 말에 성훈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현재는 현장을 발로 뛰기도 했지만 자신의 특기인 회유와 설득으로 거래를 성사시킨 적도 많았다. 그런 부분에서 상부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성훈은 현재를 믿었다.



“알겠습니다.”



현재가 다시 뒷자리에 털썩 누웠다. 현재가 피곤해보였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데려다 놓아야 했다. 성훈은 엑셀을 부드럽게 꾹 밟았다. 창밖의 야경이 빠르게 지나쳐갔다.





* * *





새로운 거래였다. 상부는 최근 새롭게 등장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신흥 조직 ‘PRIME’을 인수 합병할 계획인 듯 했다. 회장과 그쪽 대표가 얼마나 만났는지는 몰라도 대표는 인수합병에 꽤 적극적이었다. 이미 거대기업화가 된 조직을 이겨먹기엔 힘들다는 판단이 섰는지도 몰랐다.


과정이 길어질수록 ‘PRIME’ 대표와 현재가 만날 일도 잦았다. ‘PRIME’ 대표의 이름은 김선우.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보단 어느 대기업에 다니는 사무직원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빙글 빙글 웃는 낯의 그는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지 하나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었다. 회장에 비해 지나치게 ‘어린’ 그가 조직에 위협이 될 만큼 자신의 조직을 키운 것도 이해가 될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영리했다.


현재는 그러한 선우를 대하는 것을 아주 어려워했다. 어찌되었든 회장과 맞먹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으니 최대한 존중하되 얕잡아 보이지는 말아야 했으니 말이다.



“자기야, 오랜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장난기 어린 인사를 들을 때 현재는 거의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성훈은 대충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자리에 앉는 현재의 뒤에 가만히 서있는 수밖엔 없었다.



“예-.”



건성으로 대답하는 현재가 웃겼다.



“그 건은 어떻게 됐어?”


“아니, 근데 저번부터 왜 계속 반말이십니까?”



하지만 현재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분고분 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뒤통수만 보아도 선우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이 됐다. 앙칼진 고양이. 현재는 딱 그랬다. 몸집이 작은데도 앙칼진 고양이마냥 주눅 들지 않고 도도하게 구는 재주가 있었다. 성훈이 볼 수 있는 건 뒷모습뿐인데도 현재의 얼굴을 생각하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럼 자기도 말을 놔. 그럼 공평하지?”


“...그래. 그러지 뭐.”



현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노선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현재는 여태껏 선우의 앞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았던 것과 달리 쇼파에 깊게 기대어 앉았다. 선우가 쿡쿡 웃었다.



“일 얘기 하는데 애들은 좀 내보내지?”



선우가 말했다. 성훈은 등 뒤로 맞잡은 손을 꽉 쥐었다.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항상 약속에 혼자 나오긴 했으니 할 말은 없었다.



“네 보디가드야?”


“우리는 2인 1조야. 쟤가 ‘애’도 아니고.”


“아-. 난 또 너무 곱상하셔서 보디가드라도 달고 다니시나 했지.”


“내 파트너니까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하고 그 일 얘기나 하지?”


“파트너?”



선우의 한 쪽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럼 이런 것도 하고 그러나?”


“뭐?”



선우가 왼손 엄지와 검지로 만든 원 안에 오른손 검지를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저를 얕잡아 보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현재를 욕보이는 건 제 눈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훈은 자기도 모르는 새 선우의 오른쪽 팔목을 틀어잡고 있었다.



“한성훈.”


“아, 아파라. ‘파트너’가 힘이 세서 좋겠다, 자기야.”


“한성훈 손 놓고 와. 그리고 개소리 좀 하지 말고, 그쪽은.”


“정 없게 그쪽이 뭐야. 형이라고 하지.”



현재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으니 성훈은 천천히 자신이 원래 서있던 자리로, 현재의 뒤로 돌아왔다.



“그래 형. 이제 일 얘기 좀 해도 되나?”



뭐가 그리 좋은지 선우는 크게 웃었다. 현재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만 더.”


“뭔데, 또.”


“그런 사이 아니면 혹시 애인이야?”



눈썹을 으쓱하는 면상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시종일관 웃는 저 표정이 꼴 보기 싫어졌다. 지금까지 그 포커페이스를 ‘대단하다’고 어겼던 제 자신이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하. 아냐. 됐지. 일 얘기 하시죠, 대표님.”


“예예. 그러시죠.”



그제야 장난질을 멈춘 선우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친절한 웃음을 달고 있지만 눈매는 차갑다. ‘좋은 사람’을 가려낼 수 없어도 ‘위험한 사람’을 가려내는 본능이 성훈에겐 있었다. 선우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현재와 선우 사이 몇 번 서로의 조건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오늘의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선우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더 좋은 조건을 쥐어주고 싶어 했고 회장을 대표하는 현재에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었다. 모 아니면 도였다. 되거나, 혹은 되지 않거나. 오늘은 후자 쪽이었던 것이다.



“댁으로 모십니까?”


“아니, 사무실로 가.”


“밤이 많이 늦었습니다.”


“성훈아.”


“예, 형님.”


“넌 가끔 선을 넘어.”



자신의 결정에 가타부타 말을 얹지 말라는 경고였다.



“죄송합니다.”



그 뒤론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현재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니 성훈도 어떤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현재는 화가 난 듯 했다. 백미러로 슬쩍 본 얼굴에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너도 올라와.”



사무실 앞. 차에서 내리면서 현재가 말했다. 성훈은 짧게 대답하고 빠르게 주차를 마쳤다. 엘리베이터가 현재의 사무실이 있는 17층에 멈춰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오늘 성훈은 현재에게 선 넘는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부의 파트너로서 먼저 나설 수 있는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시키면 그제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성훈이 한 행동들은 명백히 월권이었다. 현재로부터 어떤 비난이 떨어지더라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17층입니다.’



주니어 간부들이 쓰는 층이었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사무실은 가장 안쪽. 성훈은 잰 걸음으로 그 앞으로 가 공손히 문을 두드렸다.



- “들어와.”



문 안 쪽에서 현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훈은 꾸벅 허리를 굽히곤 문을 닫고 사무실 정중앙에 열중 쉬어 자세로 섰다. 현재는 보고서 작성으로 바쁜 듯 했다. 성훈은 그런 현재가 일을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서야 현재가 성훈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훈아.”


“예, 형님.”


“너 나 쪽팔리게 하고 싶어서 환장했냐?”


“그런 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현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구석에 있던 청테이프 감긴 각목을 집어 들었다.



“진짜 니 보호나 받아야하는 애새끼로 보여?”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현재가 천천히 성훈에게 다가왔다. 목을 한 바퀴 여유롭게 돌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성훈은 바닥에 손을 짚었다. 아니 짚으려고 했다.



“뭐하냐.”


“예?”


“시키지 않은 짓 좀 하지 마.”



어정쩡하게 바닥에 무릎을 댄 상태로 현재를 올려다보니 매우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성훈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서지 않았다.










술래의 말 :-)

2편은 정말 금방 왔죠? 3편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백야 1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posty.pe/050bf2

공모전 결과는 1편에 대한 좋아요, 댓글, 조회수를 비례산정한 점수로 정해진다고 해요.

2편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지난 1편에 댓글 하나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반응이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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