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위하여!”

“위하여!”

“으… 멘트 완전 세대 차이….”

“본인은 10대인 줄 아나봐.”


 지훈의 찝찝함이 사라지기도 채 전에 지훈은 만남을 가져야만 했다. 누구와의 만남이냐? 그것은 고등학교 때 동아리로 만났던 후배와 선배를 만나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만나기로 했던 모임이었기 때문에 안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 찝찝함을 계속 가지고 갈 수는 없고…. 여러 가지 고민 했지만 결국은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오긴 했는데… 진짜 여전히 신경 쓰이긴 신경 쓰인다.

 함께 모인 정한과 지수, 그리고 석민과 승관이 함께 잔을 부딪치며 서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이 지훈은 최대한 소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원래도 술을 잘 마시지 않고 못 마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강제로 권하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순영과 관련된 일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으니까.


“‘위하여’가 뭐니, ‘위하여’가? 미국에서도 그렇게는 안 써, 정한아.”

“건배사 하라고 하니까 싫다고 내뺄 때는 언제고? 다들 왜 나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그런데 지훈이는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 되어 보이지?”

“어?”


 순영에 대해 신경을 쓰는 탓에 너무나도 집중을 못 했나. 나머지 4명이 서로 이야기를 하든지 말든지 계속 생각에 빠져있다 지수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듯 했다.

 몇 번이고 생각을 해도 찝찝함만 존재할 뿐, 답이 나오지 않는데 뭘 그리 고민하고 있었던 걸까. 게다가 오늘은 간만에 모이는 만남 아닌 만남이었는데…. 아, 정말 실수했다. 지훈은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괜히 비어있는 술잔을 움켜쥐었다.


“지훈이 무슨 걱정거리 있어?”

“뭐든 말해봐. 내가 다 해결해줄게. 자, 얘기 해봐, 지훈아.”

“걱정이 있다고 얘기도 안 했는데 뭘 얘기해…. 정한이 형은 매번 저런다니까?”

“나한테도 그랬어, 나한테도! 막 저번에는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데 자, 얘기해봐. 다 알아. 이러더라니까?”

“알긴 뭘 알아, 정한이 형도 참.”


 걱정이 있냐는 지수의 물음에 나머지 말들이 섞여 지훈이 무어라 대답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애초에 대답을 할 생각은…… 있었나?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 고등학교 때 만난 동아리 사람들이 아닌가. 순영과 본인이 나름 유명했다면 이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지훈은 그 어떠한 필터링도 거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신경 쓰이고 중요한 문제는 순영에 대한 지훈의 감정과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이 끝나자마자 지훈은 갑자기 몸을 탁자 쪽으로 가까이 당기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더 세게 움켜쥐었던가.


“승관아, 석민아. 형들.”

“응?”

“왜, 지훈아?”

“혹시…… 다들 권순영, 알아?”

“…어?”


 지훈이 본격적으로 다들 모이라는 듯 집중시켰고, 그와 동시에 말을 내뱉었다. 같은 고등학교였으니까 이야기를 알음알음 들어보았을 거 아닌가. 게다가 매번 무대에 나가서 인기도 끌었다는데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생각에 지훈은 물었지만, 그의 물음과 동시에 네 사람은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시끌시끌했던 분위기가 물을 끼얹은 것 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

“…….”


 그러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네 사람은 숨을 죽은 채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지훈이 이상하다고 생각 해, 안 해.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왜 다들 저렇게 서로를 눈치 보고 있는 거지? 지훈은 이상하다는 듯 무어라 다시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나, 나는 순영이 형을 잘 모릅니다.”

“나, 나도…! 알아도 모릅니다.”

“그, 그치?”


 곧바로 그 말을 막아버리는 승관과 석민에 지훈은 다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뭐가 그리 문제가 있기에 두 사람, 아니 지수와 정한을 포함한 네 사람이 저리도 서로 눈치를 보며 그 어떠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들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지훈이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대체 무슨……”

“갑자기 상관없는 애 얘기를 왜 꺼내! 우리 동아리도 아니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런데……”

“우리 간만에 모인 건데 꼭 모르는 사람 얘기 해야겠어? 자자, 한 잔 하자, 한 잔. 다들 잔 채워.”

“네, 네…!”


 하지만 곧바로 비워져있는 잔을 채우려는 지수와 정한에 지훈은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이끌려 잔에 술을 채웠고, 술을 마시며 아까보다도 더욱 신나는 분위기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평소에는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을 잘해주고 가장 적극적이던 사람들이 이렇게도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니 참 낯설단 말이지. 그 생각에 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순간 느껴지는 가슴의 지끈지끈함.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유명했잖아. 매 해 축제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인기 많았어. 암암리에 팬클럽도 있었을 걸? 막 축제 포스터 가지겠다고 타 학교에서 축제 기간만 되면 교문이 바글바글했었어. 진짜 대단했지. 형도 순영이 형… 아니다. 아무튼 대단했어. 」


 찬이도 그렇고, 이 네 명도 그렇고. 뭔가가 있는데 숨기는 건가. 지훈은 그리 생각했지만 또 다시 순영의 이름을 그들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분위기 때문이었다.



 정한과 지수, 그리고 승관과 석민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훈은 버스를 타야만 했다. 지훈의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 가게가 하루 쉬는 바람에 생각보다 멀리 갔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집 근처에서 만나야지, 너무 번거롭네…. 지훈은 그 생각에 버스를 올라탔고, 피곤했던 나머지 버스 안에서는 잠이 잠깐 들었던 거 같다.


「 지훈아. 」


 두 눈이 절로 스르륵 감긴 채 잠에 빠지는 그 순간. 누군가가 지훈을 부르는 거 같아 눈을 번쩍 뜬 것 같았다. 뭐야, 누구야? 지훈은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어떠한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싶어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지훈의 눈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어…? 」


 순영의 모습이 보임과 동시에 지훈, 본인의 모습도 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이 아주 단란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이지훈은 난데, 왜 순영의 곁에 지훈이 또 있느냔 말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게 꿈이라는 것을 직감한 건, 스스로의 볼을 세게 꼬집었을 때 쯤. 아무리 세게 통증을 주어도 아프지 않은 이유는 이게 꿈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꿈에도 나올 만큼 순영과 지훈 본인이 운명이라는 거야, 뭐야?

 지훈은 굉장히 언짢았지만 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구도에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 이라니? 지훈은 그 상황이 굉장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본인이 순영을 너무나도 살갑게 대하고 있는 저 모습은 뭐지? 마치, 연인과 같은….


「 …연인? 」


 지훈은 지금 보이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지훈의 모습도 그렇지만, 순영의 표정이 너무나도 멋있고 사랑스러웠으니까. 아, 진짜 권순영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싶은 감정이 들었던 거다.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은 모습,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이렇게 영화를 보는 구도가 아니라, 직접 눈앞에서 보는 건 어떨까…….


 ……딱 그리 생각하는 순간, 지훈은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훈아.”

“……으음.”

“지훈아.”

“……응?”

“이지훈! 너 지금 내려야 돼. 집이야, 집.”

“어, 어?


 누군가가 본인의 어깨를 붙잡은 채 흔들어 깨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영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누군가의 부름에 눈을 떴고, 뜨자마자 보이는 모습은…… 권순영?


“지훈아, 너 지금 빨리 내려! 내리자!”

“어, 어? 어어…!”


 본인의 눈앞에 있는 이가 순영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채 전에 함께 버스의 하차벨을 누르고 그대로 내렸다. 아, 버스 카드 찍는 거 깜빡했다…. 다음에 추가 요금 나오겠네. 지훈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는데…… 아차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때 쯤.


“권순영… 너 뭐야?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아… 근처에 일이 있어서 잠깐 왔는데 네가 자고 있더라고. 집에 가는 길 같아서 깨웠지.”

“……그래?”


 지훈이 순영의 말을 들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지나갔는데 마침 내가 탄 버스를 타고 있는 것도 그렇고, 방금 버스 안에서 꾼 꿈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무어라 장담할 수가 없어 확신을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 드는 느낌은, 그냥 이상하다, 정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고, 이 감정이 명확하지 않으니 순영을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까의 꿈은… 정말 뭐지? 내가 왜 그렇게 권순영한테 살가운 거야? 앞으로의 미래야? 앞으로 정해진 운명이 미리 이렇게 예지몽 마냥 보이는 거야, 뭐야? 지훈은 그리 생각하며 잔뜩 복잡해했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문득, 무언가가 느껴지고 무언가가 떠오르는데 그걸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느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본인의 눈앞에 있는 순영과 시선을 마주친 채로, 그대로 마주보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지훈은 정리 되지 않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순영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확하지 않지만,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이 열리는 입술.


“순영아, 있잖아, 혹시…… 우리 아는 사이야?”


 덜컥.

 그 질문에 심장이 내려앉은 느낌을 받은 건 지훈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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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환상의 짝꿍 및 다른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쓰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매번 보이고 고민을 하고 또 고민하는데 그에 대한 피드백이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모든 분들께 한 번씩 다가가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은데 부담스러우실까봐 머뭇거리는 저를 알아주세요.......(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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