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아란마코] Someone



f. 커미션 아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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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차가워진다. 해가 지는 무렵, 계절 또한 가을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들어가는 것이 습관이 됐다. 아란은 손에 들린 아이콘을 몇 번이고 눌러보며 돌아오지 않는 익숙한 음성을 기다려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은 아이콘이 덜그럭거렸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아이콘을 달라고 돌아와야 하는 그 남자가 보고 싶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에 아이콘에 묻은 핏자국이 점점 사라져가는 착각이 든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눌러 소리를 내고, 소리에 이끌려 후카미 마코토라는 남자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눈앞에 말끔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마코토의 모습은 시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분명 많이 다쳤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는데.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비통한 표정의 타케루를 봤을 때가 세상의 끝이었다. 후카미 마코토는 죽었다. 소식을 듣고 발인 전 마주친 마코토의 시체의 첫인상은 깔끔했다였다. 정갈히 모여진 손과 그저 잠든 모습의 그가 죽었다는 사실, 아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로 아란은 장례식장을 뛰쳐나왔다. 손에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마코토의 아이콘을 들고.

 아이콘이란 건 헛된 희망일지도 몰랐다. 마코토와 함께 했던 아이콘이기에 이곳에 담겨있을 그의 의지, 담겼을 자그마한 영혼의 조각을 찾아내서 다시금 살려내자. 설사 안에 들어있는 것이 다른 자의 영혼이어도 끝까지 함께한 것은 마코토이니 자신이 아는 그로 살려내면 될 일이다. 카논도 타케루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것이다. 마코토를 이렇게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란은 몇 날 며칠을 아이콘을 들고 안마, 인간 세상 할 것 없이 뛰어다니며 미친 사람마냥 연구에 매진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급해지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살아나.


 “……?”


 다시금 안마 세계로 돌아가려 놀이터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던 도중 지진 같은 큰 진동이 온 거리를 흔들었다. 지진 따위가 아닌 분명 다른 문제였다. 아란은 급히 골목을 뛰어가려던 와중 앞쪽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여유가 없는 그는 그대로 지나치려고 했을 뿐이다. 운명처럼 밝혀지기 시작한 가로등의 빛에 얼굴이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다리를 다친 듯 자리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그는 너무나도 마코토와 닮아있었다. 설마 하는 일이 벌어진 건가? 아란은 아이콘을 떨어트렸다. 이제 이런 건 필요 없다. 자신의 실험이 성공한 거다. 방금의 진동은 몇 번이고 시도했던 실험 때문에 안마 세계와 인간 세계의 틈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내가 성공했구나. 성공한 거야. 마코토!”

 “……저기,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다쳤구나. 나야 아란, 아란이다! 기억이 없는 건가?”

 “제 이름을 어떻게. 아니, 이런 소리를 할 때는 아니겠지만.”


 마코토의 말에는 의문이 있었다. 또한 그가 나타난 모든 것에 말이다. 항상 입고 다니던 스펙터의 옷은 막 살아났기에 없을 거라, 아란은 그저 마코토를 다시 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리의 상처를 살펴보는 아란이 손이 남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상냥했다. 상냥함이 부담스러워 어색할 정도로. 마코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통? 아니면 원치 않던 온溫 때문인지 몰랐다. 아란에게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전자로 생각할 수 있을 상황이다.


 “마코토. 지금 타케루에게 전화를 하는 게 좋겠어.”

 “타케루가 누구지? 아니, 카논을 부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제 움직일 수 있겠으니 가보겠습니다.”


 남자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를 싸매주던 아란의 손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려진다. 무슨 소리야? 하는 웃음이 계속 얼굴에 퍼져있었다. 나잖아, 나. 아란. 그러나 아란을 정말 모른다는 표정의 마코토는 일관되게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 끊어진다. 아란에게 남겨진 절박감이 스멀스멀 이해할 수 없는 욕망으로 바뀌어간다. 카논만을 기억하며, 타케루도 이 나도 잊어버리고 태연한 얼굴로 모르는 척이라니. 악질적인 장난이야 마코토. 나를 정말로 모른다고?


 “정말 처음 봐서. 그만 놔주시면, 읏!”

 “웃기지 마라 마코토. 너는 나와 친구면서. 이런 장난은 그만둬, 응?”


 고의인지 아닌지 모를 행동이었다. 아란은 마코토의 상처를 꽉 짚고 마코토의 얼굴을 급히 훑어 내린다. 아무리 봐도 완벽한 마코토의 생김새가 맞았다. 카논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 충분하다. 마코토가 아니라는 부정조차 없었다. 아란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미쳤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도 그리웠던 마코토가 다시 나타난 기쁨과 동시에 쏟아지는 분노가 이성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엔 온통 장난이라 치부된 마코토에 대한 삐뚤어진 마음만이 가득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더욱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계속해서 모른 척을 한다면 억지로라도 생각하게 해줄게 스펙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기억할 거지? 아란에게 잊어버린다는 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같은 사람이면서 같지 않은 사람일 거란 것도.


 “……윽, 무슨! 크읏!”

 “예전에 한 번 해봤잖아, 스펙터. 함께 가자. 다리도 문제없을 거야.”


 마코토의 팔에 메가우르오더를 강제로 묶어 아이콘을 장착시키자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거부반응이 마코토를 감쌌다. 상상하지 못한, 죽을 정도의 격통이 쉴 새 없이 마코토를 잠식하고 본능을 밀어낸다. 그는 하얗게 점멸하는 시야 속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란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 간신히 생각했다. 앞으로도.


***


 눈을 떴다. 흐릿한   보였다 눈앞이다. 단정하다. 제대로   이성   불가 했다. 앞의 남자 보였다 바쁜   같다 것.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저   누구지? 남자, 기억도   않아. 팔이 저려온다. 점점    다시금 정지한다. 생각   왜   있던가? 멍한 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어 .터펙스 나구났어일”


 알아    듣게 말   부탁합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뻐끔 뻐끔 입 모양이 붕어같이   움직여   앞은   웃는다. 착하게   잘한 것처럼 머리를    준다    만져서, 상냥하다.


 “.게를부 고라 토코마 를너 면이덕끄 를개고. 어됐 가구친 시다 는나와너. 야이행다 서나어일 도래그 만지랐몰 줄할심 게렇이 이응반부거”


 무슨  소리? 몰라 마코토는,   나는 홀렸다. 끄덕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마코토라는 이름. 이름을   불러준다. 이렇게   좋은   기분. 망가져 무슨 생각 중이었지? 자신이   생각   그리고 부서지는   다른    무언가. 조금   더    만져줘. 머리카락에 닿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 의식의 끈을    놓자.


***


 며칠이 지난지 몰랐다. 아란과 마코토가 함께 있기 시작한 날 이후로, 마코토는 자주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일어날 때마다 희미하게 지어주는 웃음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란에게 마코토라는 친구가 돌아왔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부러 안마 세계로는 데려가지 않았다. 아픈 몸이 낫기 위해서는 좀 더 밝은 인간세계에서 함께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타케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마코토가 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둘의 시간을 좀 더, 좀 더 가지고 알리려는 생각이다. 기억도 찾게 말이다.


 “아. 일어났구나. 밥 먹을까?”

 “……말라, 목.”

 “아 참. 물도 안 마셨구나. 기다려봐.”

 “아란…….”


 이름을 몇 번이고 알려준 끝에 마코토는 이제야 제대로 말하게 됐다. 저번의 세뇌와는 다른 부작용일지도 몰랐지만 훨씬 나았다. 굳이 네크롬 스펙터가 되지 않아도 육체 자체로 스며들어 간 친구라는 말이 그저 뿌듯했다. 충격에 기억을 찾아 자신을 제대로 불러주고 있는 마코토가 사랑스러워.


 “물이야. 아, 다 흘리기는. 마코토. 아직도 애같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말을 듣지 못한 게 아니니까, 아란은 흘린 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입가에 대고 있는 물이 계속해서 흘러도 마코토의 비쩍 말라버린 입술은 제대로 물을 마시지 못한다. 아, 흘리는 이유를 알았다. 팔을 묶어둬서 그러네. 아란은 앞으로 쏠려있는 마코토의 몸을 잘 잡아 세운 뒤 천천히 묶여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화상을 입어 너덜너덜한 팔과 미동조차 없는 손이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인다. 다시금 입에 물컵을 대주어 조금씩 넘어가는 물이 마코토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마코토. 우리는 친구지?”

 “그래.”

 “이름 불러줘.”

 “아란.”


 소중한 마코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보물. 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잘했으니 앞으로도 너와 나는 친구, 그 이상의 것.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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