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X Luminous





   팬텀은 오래된 건지 삐걱대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도회의 모양을 한 오르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오르골 보다는 조금 크기가 큰 오르골이었지만 그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인형들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르골의 음악이 멈추었을 때, 팬텀은 기계적으로 다시 오르골의 태엽을 몇 번이고 감았다. 감고, 손을 제 위치로 옮겼다가 다시 감을 때까지의 시간을 참지 못한다는 듯이 오르골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몇 번을 감은 것인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때까지, 흰 장갑 안의 손이 붉어질 때까지 팬텀은 계속해서 돌렸다.


   태엽은 똑, 하고 맑은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태엽이 부러진 것을 알긴 하는 것인지 무도회 오르골은 제 노래를 열심히 연주하고 있었다. 그 맑은소리에 허망하게 부러진 태엽을 바라보던 팬텀의 입술 사이로 비소가 흘러나왔다. 다신 오르골을 들을 수 없었고, 다신 이 돌아가는 인형들을 볼 수가 없었고, 또. 팬텀은 고개를 들어 제 옆에 있는 루미너스를 바라보았다.


   다신 제 옆에 있는 루미너스를 볼 수도 없었다.


   루미너스는 제 시선을 느낀 것인지 오르골을 가만히 바라보던 얼굴을 돌려 팬텀을 바라보았고,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에 팬텀은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엄지로 그의 손등을 살짝 쓸어내리며 시선은 오르골을 바라보았다. 루미너스. 그때 기억나? 우리 가면무도회 갔을 때. 내가 괜한 걱정으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추억 쌓자면서 가면무도회 데려갔을 때. 기억나? 몇 번을 보고 봤던 무도회의 오르골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팬텀이 루미너스와 단둘이서 추억을 쌓을 만한 것을 찾고 있을 때, 가면무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팬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루미너스를 끌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온 자리였기에 영웅이라고 사람들의 눈에 띌 일이 없었다.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을 정장과 눈을 가릴 정도의 작은 가면을 가지고 왔던 둘이었고, 영웅이라고 사람들의 눈에 띄진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여성들의 눈에 띌 만한 모습들이었기에 금세 여성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루미너스는 그런 자리를 확실히 불편해했기 때문에 역시 복잡한 것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팬텀을 두고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먼저 테라스에 나가 밤공기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팬텀 또한 먼저 나간 루미너스에 당황하며 그를 따라 테라스로 나갔다. 사람이 많은 탓인지 무도회장 안의 공기는 뜨거웠지만, 밖 밤바람은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팬텀은 조금 걱정스러웠던 것인지 제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루미너스에게 덮어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춥진 않아? 걱정스레 묻는 팬텀의 말에 루미너스의 귀 끝이 발개졌다. 밤이라서 다행이지. 루미너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너나 입고 있지그래?”

   유독 추위에 약한 녀석이 누굴 배려하겠다고. 톡 쏘는 듯한 그의 말에 팬텀은 잠시 찔렸지만, 자신은 춥지 않다는 듯이 더욱 큰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팬텀의 모습에 작은 웃음을 터뜨리던 루미너스를 보며 팬텀 또한 웃음 지었다. 오랜만에 웃네, 샌님. 그 말에 루미너스의 표정이 다시 살짝 굳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세 풀어지며 재차 앞을 바라보았다. 그랬던가. 한결 편해진 표정을 보면서 팬텀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검은 마법사의 토벌이 가까워져서 그랬던 것인지 루미너스는 한동안 건강도 챙기지 못한 채 연구에만 힘을 쓰고 있었다. 바쁘다며 저와 만나는 것도 거절한 채 연구를 하던 루미너스를 오랜만에 억지로 끌고 나온 것이었는데, 꽤 성공한 느낌이었다. 팬텀은 속으로 자신을 칭찬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루미너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도회가 제대로 시작되었는지 왈츠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팬텀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루미너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을 내밀었다.

   “Shell we dance?”

   “별로 들어가긴 싫은데.”

   하여튼 분위기 깨는데 뭐 있다니까? 불평을 토로하려 입을 열려 할 때, 팬텀이 내민 손 위에 루미너스의 손이 올라왔다. 그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팬텀의 눈이 커졌다. 내가 싫다고 해봤자 자칭 괴도는 억지로 끌고라도 들어가겠지. 팬텀은 애써 이유를 붙이는 루미너스가 어쩜 그리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팬텀은 눈을 휘어 웃으며 제 손 위에 올려진 루미너스의 손을 잡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루미너스의 얼굴은 이미 붉어진 채 제 눈빛을 피하고 있었다. 팬텀은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켜 루미너스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사랑해. 그럼, 들어갈까? 볼이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이는 루미너스의 모습에 팬텀은 재차 웃음을 터뜨리며 제 손안에 들어온 루미너스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라고 말하는 루미너스의 말도 빼놓지 않고 들으며 팬텀은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다시 올렸다.


   그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오르골이 서서히 멈춰가는 게 느껴졌다. 노래의 끊김이 잦아지고, 서서히 느려져 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루미너스의 손을 잡고 있던 팬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불안이 온몸을 뒤덮는 기분이었다. 행복했는데, 행복했는데 노래는 끝나가고 있다. 행복했던 무도회는 끝을 맺어가고 있었다. 무도회장은 서서히 금이 갔다. 팬텀의 숨은 거칠어지고, 심장박동은 빨라져 갔다. 다급한 팬텀의 목소리는 하염없이 떨렸다.

   "안 가면 안 돼?"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나?"

   "……루미너스."

   한 발. 팬텀의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 절박했다.

   "팬텀."

   또 한 발. 그런 팬텀을 바라보는 루미너스의 눈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오르골 위에 춤추는 인형들처럼 알 수가 없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마저도 매일 똑같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오르골과 같이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사랑해."

   절망했다. 더는 붙잡을 수가 없구나.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팬텀은 절망했다. 체념한 채로 말하는 팬텀의 목소리는 끝없이 가라앉았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있던 한 마디를 뱉어낸 팬텀의 고개는 아래로 숙였다.


   "나도 사랑해."


   마지막 한 발. 마지막이었다. 팬텀은 다급히 고개를 들어 루미너스를 바라보았지만 루미너스는 제 곁에 없었다. 오르골의 소리는 멈췄다. 방 안에는 언제 음악 소리 같은 것이 흘렀냐는 듯 적막이 흘렀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적막을 찢은 것은 팬텀의 목소리였다.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무도회 이야기에 빠져 그의 얼굴을 많이 보지도 못했는데. 바보같이 제 절망에 빠진 채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제게 사랑을 말하는 연인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안 돼, 안 돼. 팬텀은 입 밖으로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해서 내뱉었다. 한 번 더 오르골을 돌려서 너를 만나러. 태엽을 돌리려는 순간 팬텀은 오르골에 태엽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테이블의 위에 태엽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까, 부러졌지. 조금 더 소중히 다뤘으면 이것이 부러지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내가 살살 돌렸다면 이것이 부러지지 않았을까. 이럴 거면 무도회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의 얼굴을 더 많이 보는 것이었는데, 그에게 더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어야 했던 것인데. 팬텀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냈다.


   루미너스는 죽음을 맞이했다. 검은 마법사의 토벌과 동시에 그 또한 흔적을 알 수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모두 그는 죽었으리라 추측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던 팬텀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더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은 그랬다.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느 정도 루미너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제게 찾아온 감정은 분노와 증오였다. 루미너스는 제 죽음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 것을 모두에게 숨기고, 심지어 제게까지 숨기고 혼자 죽음을 맞이해서 더 흔적을 찾을 수도 없게 사라진 것에 대한 분노, 또 그의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 마지막까지 같이 있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 그 분노에 이기지 못해 팬텀은 종종 물건을 부수는 참사를 벌였다. 물건을 부술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던 팬텀인지라 메이드들이 그 물건을 맞아 상처를 입는 일도 있었다. 팬텀이 어떤 상황에, 감정인지 모르는 사람이 크리스탈 가든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 그런 팬텀을 이해해줬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팬텀에게는 끝없는 자괴감이 찾아왔다. 몇 번이고 자살시도와 자해를 하던 팬텀은 어느 날 제게 찾아온 에반이 건네준 오르골에 분노를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가면무도회 이후, 제가 루미너스에게 사다 준 오르골이었다. 루미너스가 남긴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고, 에반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제게 말했다. 에반이 찾아간 이후로 팬텀의 이상 증세는 현저히 줄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르골과 함께 찾아온 것은 체념, 그리고 끝없는 슬픔이었다. 그나마 그것들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오르골이었다. 이상하게도 오르골의 태엽을 돌리면 루미너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제 환상일 게 분명했지만, 팬텀은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르골의 태엽을 돌려서 만날 수 있는 루미너스는 꿈과 다르게 온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하게, 루미너스였다. 루미너스였던 것이다. 루미너스가 제 곁에 살아 돌아왔다. 팬텀은 오르골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루미너스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몸과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오르골 덕분, 아니 오르골로 만날 수 있는 루미너스 덕분이었다. 그렇게 행복했는데, 행복했는데. 신은 매정하시지. 추스르자마자, 행복을 되찾자마자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라고 오르골의 태엽까지 부러져 버렸다.


   잡았던 루미너스의 손, 그의 온기를 더는 느낄 수 없었고 이젠 소리를 낼 수 없는 오르골만이 팬텀의 앞에 남았다.











17.06.18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

Maplestory1 | 팬텀루미, 루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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