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지방의 최대도시, 뇌문시티.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도 점점 한산해지고 눈부시게 빛나던 야경마저 하나 둘 잠드는 깊은 새벽의 어느 한 가정집에는, 아직 커튼 사이로 옅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신오지방으로의 오랜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그때까지 짐을 싸던 하행이 방에서 나오면서 찌뿌둥한 몸을 쫙 펴 스트레칭을 하자, 거실에 있다가 그와 딱 마주친 상행이 말을 걸었다.



" 하행, 이제 짐은 다 쌌습니까? "


" 응, 상행! 너는 어때? 신오지방 야생 포켓몬 연구팀에 연락한다더니, 이야기는 잘 끝났어? "


" 네! 그쪽에서 말하기를 새로이 나타난 그 포켓몬들이 다른 지방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타 지방의 포켓몬 연구소와도 이야기를 나눠서 합의했다니, 저희가 여행 중에 그 포켓몬들을 잡아서 하나지방으로 데리고 와도 문제 없답니다. "


" 헤에~ 잘 됐다! 나는 그때 윤슬이가 타고 날아온 워글이랑 걔가 태워준 대쓰여너랑 신비록, 그리고 네가 돌보던 포푸니크 말고는 히스이의 모습을 가진 포켓몬들을 못 보고 와서 아쉬웠는데, 네 말대로 그 포켓몬들이 히스이의 포켓몬이라면 너에게는 더 즐거운 여행이 되겠네! "



상행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미소지었다. 하행은 형에게 쪼르르 다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그럼, 이만 잘까? 기내에서도 물론 잘 테지만, 아직 우리 비행기가 뜨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으니까! "


" 그래요, 하행. "



상행과 하행은 거실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다정하게 붙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이른 아침의 궐수공항에서, 신오지방행 비행기가 긴 항공로를 따라 빠르게 질주하다가 둥실 떠올랐다. 상행과 하행은 정말로 오랜만에 탄 비행기의 커다란 진동에,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것마냥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상행은 비행기가 뜨고 나서도 계속 창문 밖을 내다보거나 손목시계를 힐끔힐끔 들여다보며,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먼 신오지방 땅에 얼른 발을 내딛고 싶다는 기색을 아끼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통로를 돌아다니며 승객들을 살펴보던 승무원이 주의를 주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는 몇 시간은 걸릴 비행시간 내내 그랬을 것이다. 이미 진작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행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던 하행도 한 마디 거들었다.



" 상행, 많이 기대하고 있다는건 알지만, 제발 진정 좀 해. 누가 보면 신오지방에 발이 달려서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


" 죄, 죄송합니다, 하행. 너무 들뜬 탓에 그만... "



하행은 빙긋 웃고 괜찮다고 말하며, 상행에게 기내용 목베개를 내밀었다. 상행이 그것을 받아들고 제 목 뒤에 착용하고 의자를 살짝 비스듬이 하여 눕자, 하행도 제 형과 똑같은 자세로 누워서 큰 담요를 꺼내 함께 덮었다.



" 그럼, 도착할때까지 눈 좀 붙이자. 잘 자, 상행. "


" 네, 하행도요. "








{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곧 목적지인 신오지방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잊으신 물건은 없으신지 확인해주시고,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마침내 비행기가 신오지방에 도착했고, 상행과 하행은 함께 손을 잡고 그들의 목적지에 발을 내딛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높디높은, 신오지방 전체를 관통하는 웅장한 크기의 천관산. 하행은 그 산을 마주하자마자 감개무량한 듯 히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 상행 저기 봐, 천관산이야! 오랜만에 다시 봐도 정말 엄청난 크기네! 기슭부터 정상까지 오르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정신이 아찔해ㅈ... 상행...? "


" ... "



신이 나서 재잘거리던 하행은, 아무 대답 없이 멍하니 천관산을 올려다보는 상행의 모습에 곧 입을 다물었다. 포푸니크의 캡틴이 된 이후로 천관산을 제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상행에게 있어서는, 제 2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리라.



" ...포푸니크... "



겨우 정적을 깬 상행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하행은 역시나... 하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상행에게로 다가가 그의 팔짱을 끼고 제 머리를 그의 어깨에 살포시 얹었다.



" 하행...? "


" 상행, 슬슬 움직이자. 도착하자마자 우릴 숙소까지 픽업해 줄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며? "


" 아참, 그렇죠... 멍때려서 죄송합니다. 어서 갑시다, 하행. "



하행 덕분에 겨우 정신을 다잡은 상행은 한 손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엔 하행의 손을 꼭 붙잡고 공항 주차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그들은 잔모래마을의 마박사 연구소를 찾아가 신오지방의 포켓몬 도감을 받았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렇게 다 큰 어른 남자 둘이, 그것도 신오지방 사람도 아닌 자들이 여행 중에 자기 지방의 포켓몬 도감을 채우겠다며 요청을 한다면, 왠만해서는 이상한 사람들 취급을 하며 쫓아낼것이 뻔하다.


그러나 마박사는 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있어서도, 나아가 신오지방 전체에 있어어도 어떤 영향을 끼친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상행과 하행이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맞아주며 흔쾌히 도감을 내주었다.


도감을 받은 두 형제는 우선 축복시티를 목표로 잡고 잔모래마을 위쪽의 풀숲길로 걸어갔다. 형제가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일정과 기대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고 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조그만 포켓몬 두 마리가 파사삭- 소리를 내며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상행은 곧바로 그 포켓몬들을 알아보았다.



" 오, 찌르꼬와 꼬링크로군요! 그런데 잠깐... 이 아이들 색이 뭔가 이상한걸요?! 하행, 얼른 몬스터볼을 꺼내요! "



상행의 외침에 놀란 두 마리가 그대로 뒤를 돌아 후다닥 도망치려고 하자, 형제는 재빨리 볼을 던져 배후노리기를 성공시켰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두 포켓몬을 빨아들인 볼들은 세 번을 흔들리다가 동시에 찰칵-! 하는 소리를 내며 포획 성공을 알렸다.



" 만세~ 잡았다! 상행, 얘네들 분명 색이 다른 포켓몬 맞지? 만날 확률이 극악이라고 들었는데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동시에 두 마리나 잡다니! "


" 그러게 말입니다, 하행. 윤슬 님께서 주신 빛나는 부적의 효과가 벌써부터 빛을 발하는군요! 이거, 앞으로의 여행이 더 기대되는데요? "



하행은 끄덕끄덕하고 볼이 떨어진 자리로 쪼르르 뛰어가 집어들고는 두 포켓몬을 나오게 했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찌르꼬와 꼬링크는 푸르르- 몸을 털고는 서로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려 자신들을 반짝반짝한 눈으로 바라보는 형제를 마주봤다.


그러더니 찌르꼬는 상행에게 푸드덕 날아가 그의 어깨 위에 착 앉았고, 꼬링크는 폴짝 뛰어 하행의 품에 쏙 안겼다. 형제는 각자 자신을 선택해준 신오지방에서의 첫 파트너에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 자, 그러면 얼른 축복마ㅇ- 아, 아니지... 축복시티로 출발진행 할까요? 신오지방의 트레이너가 된 기분으로 이곳의 도감도 받고 신오지방을 대표하는 두 마리의 포켓몬도 잡았는데, 이곳에서 사용하는 포켓치도 얻어야 하지 않겠어요? "


" 좋아, 상행! 누가 먼저 도착하나 대결이다!! "



하행이 그렇게 외치며 꼬링크와 함께 먼저 달려나가자 상행이 부랴부랴 그를 뒤따라가며 소리쳤다.



" 아앗... 치사해요, 하행! 먼저 뛰쳐가면서 그런 말을 하는게 어딨어요?! "



상행의 어깨에 앉아있던 찌르꼬가 폴짝 날아올라 잠시 제자리 비행을 하다가 황급히 하행을 쫓아가는 상행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조그만 날개를 쉴새없이 파닥이며 폴폴 날았다.








축복시티에 도착한 상행과 하행은 포켓치 주식회사에서 여는 퀴즈 이벤트에서 세 문제의 정답을 모두 맞추고 교환권을 얻어 포켓치를 얻었다. 하나지방에서 그들이 쓰던 라이브캐스터와 같이 팔에 찰 수 있는 형태라 둘은 이 기기를 처음 보지만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장되어 있는 앱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버튼을 눌러가며 이것저것 살펴보던 하행은 우연히 켜진 지도 앱을 보고선 들뜬 목소리로 상행에게 말했다.



" 상행! 우리, 다음은 무쇠시티로 가자! 거기에 가서 꼭 인사드려야 할 분이 있어! "



상행은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바로 눈치챘다. 하행이 자신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혼자서 신오지방으로 왔을 때, 그에게 균열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는 무쇠시티의 체육관 관장, 강석. 상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좋아요, 하행. 안 그래도 마박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신오지방의 새내기 트레이너들이 첫 체육관으로 무쇠체육관을 많이 선택한다는군요.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저희도 무쇠체육관에 도전해봅시다! "


" 음~ 그런데 강석 님은 분명 바위 타입 전문 트레이너실텐데, 우리가 방금 잡은 찌르꼬랑 꼬링크로는 어렵지 않을까? "


" 그렇군요... 하나지방에서 데려온 제 샹델라랑 당신의 저리더프는 레벨이 너무 높고... 그러면 이 근처에서 바위타입에 대항할 만한 포켓몬이 있는지 찾아볼까요? "


" 응, 좋아! 그러면 204번 도로에 가보자! 왠지 달달~한 꽃향기가 나는게, 풀 포켓몬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자신이 포켓몬인 것도 아닌데 냄새만 맡고 그런 느낌이 든다는 하행의 말에 상행은 살짝 웃음이 났지만 가끔 하행의 감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잘 맞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상행은 그러자며 그와 함께 축복시티의 위쪽에 있는 204번 도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쇠시티에 도착한 두 형제는 바로 체육관으로 찾아가 강석에게 인사를 했다. 하행은 그에게 그때 도와줬던 것에 대한 감사를 전했고, 강석은 하행이 무사히 그의 형을 만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상행은 이번에 강석과 처음 만났지만 그 역시 동생이 그에게 신세를 진 것에 감사 인사를 했고, 곧장 그에게 체육관 배틀을 할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상행과 하행이 요청한 승부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보통 한 명의 트레이너가 한 마리의 포켓몬을 꺼내 싸우는 일반적인 배틀이 아닌, 체육관 관장인 강석은 혼자서 두 마리를 꺼내고 두 형제는 각자 한 마리씩 꺼내서 상대하는, 온전한 더블배틀도 아니고 태그배틀도 아닌 방식.


이는 상행과 하행이 어릴 적 함께 하나지방을 돌면서 하나의 체육관에 도전할때도 쭉 고수해왔던 방식이다. 강석은 그가 처음 듣는 생소한 승부 방식에 조금 당황했으나 곧 그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게다가 상행 님과 하행 님... 두 분이서 따로따로 승부하는게 더 어색할 정도로 얼굴도, 느껴지는 기운도 꼭 닮아서 정말 일심동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정도면 어떤 체육관 관장이라도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걸?



강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꼬마돌과 롱스톤이 든 볼을 주머니에서 꺼내들며 이미 배틀 코트에 자리잡은 두 형제에게 외쳤다.



" 그럼, 두 분의 서브웨이마스터로서의 멋진 실력, 아낌없이 뽐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라, 꼬마돌, 롱스톤!! "


" 하행, 우리도 갈까요? 제 찌르꼬는 아직 저 두 포켓몬에 대한 유효한 공격 기술이 없으니, 변화기로 당신을 서포트 하겠습니다. 자, 갑시다! 나오세요, 찌르꼬! "


" 너도 나와, 꼬몽울! "



하행은 204번 도로에서 새로이 동료가 된 꼬몽울을 꺼냈고, 그는 꼬몽울의 [흡수] 기술을 사용해 바위와 땅 타입을 동시에 가진 강석의 꼬마돌과 롱스톤을 손쉽게 이겼다.


강석이 마지막으로 그의 에이스 포켓몬인 두개도스를 꺼냈지만 상행의 찌르꼬가 쓰는 [울음소리] 때문에 공격력이 많이 떨어진 두개도스는 역시나 두 형제의 포켓몬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고, 몇 턴만에 꼬몽울의 공격에 당해 쓰러졌다.


승부가 끝나고 상행과 하행, 강석은 웃으며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강석이 두 형제에게 각각 콜배지를 주는 것으로 체육관전을 마무리했다.








무쇠체육관을 돌파한 그 날 이후, 상행과 하행은 마박사가 추천해준 루트랑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들만의 여행을 해나가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 만난 트레이너들과의 거듭된 배틀을 통해 상행의 찌르꼬는 찌르버드로, 하행의 꼬링크는 럭시오로 진화했다. 꼬몽울은 하행과의 친밀도가 살짝 부족한 것인지, 아직은 동그랗고 귀여운 새싹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형제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바다의 풍경이 멋지게 펼쳐진 운하시티. 이곳 역시 그들이 인사를 해야 할 또다른 체육관 관장, 동관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와 체육관 배틀을 하기에는 아직 전력이 부족한듯 하여 형제는 우선 배를 타고 강철섬에 가서 새로운 포켓몬을 잡거나 포켓몬들을 더 단련시키기로 결정했다.


강철섬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수련 중인 트레이너들과 배틀을 하며 섬 안쪽까지 들어간 상행과 하행은, 독특한 모양의 모자를 쓴 어떤 남자를 만났다.


상행은 그 남자를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을 현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상행과 하행에게 포켓몬 배틀을 신청했고, 형제는 흔쾌히 승낙했다.


현이 내보낸 포켓몬은 리오르와 루카리오. 동시에 같은 진화 계열의 포켓몬을 쓰는 것도 특이한데 거기다 리오르 쪽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색이 다른 개체였다. 그가 말하길, 아직 이 리오르는 알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해서 강철섬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배틀을 신청하여 조금씩 단련을 시켜주고 있다고.


승부는 두 형제의 승리로 끝났고, 그와 동시에 하행의 꼬몽울의 몸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이더니, 드디어 두 팔에 예쁜 장미꽃을 단 로젤리아로 진화했다. 하행은 너무 기뻐서 그녀를 끌어안고 부비적대다 그만 로젤리아의 머리에 나 있는 뾰족한 가시에 콕 찔리고 말았다.



" 아, 아야야-! 따가워라! "


" 하행! 괜찮아요?! 혹시 독에 중독되거나 한 건...! "


" 아니야, 그냥 살짝 따끔했을 뿐이야! "



놀라서 하행에게 다가간 상행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자신과의 승부로 인해 상대방의 포켓몬이 진화한것을 본 현은 감격하여 하행에게 선물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로젤리아가 로즈레이드로 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인 빛의 돌. 하행은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었다.



" 그런데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진화시키지는 않을래요. 조금 더 로젤리아의 모습으로 함께 여행을 즐기고 싶거든요! "


" 괜찮습니다. 하행 씨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로젤리아 역시 같은 마음이겠지요. 언제든 원하시는 때에 사용해 주세요. "



그렇게 말한 현은 이번에는 상행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 저... 상행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


" 네! 무슨 일이신가요? "



그는 배틀이 끝나고부터 아까 싸운 그 황금빛의 리오르가 볼 속에서 자꾸 어떤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고 했다. 다름아닌, 상행과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비친 것이다.



" 제가 리오르와 루카리오만을 전문적으로 키워온지 몇 년이 되다보니, 이제는 그들이 내보내는 파동만을 읽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게 되더군요. 제 리오르, 상행 씨가 승부 중에 내뿜으신 기운이 정말로 맘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데려가 함께 신오지방을 쭉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시켜주시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



상행은 잠시 얼떨떨했지만 곧, 첫 만남에 자신에게 호감을 가져주었다는 리오르와 자기가 직접 알을 부화시켜서 얻은 소중한 파트너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망설임없이 제게 그를 맡기고자 하는 현에게 감동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현이 내민 리오르의 몬스터볼을 받아들었다.


현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운하시티로 가는 배를 타러 내려가던 도중, 상행과 하행은 발 밑에서 수상한 진동을 느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불규칙적이고, 마치 그들의 발걸음에 맞춰 미행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 상행, 이거... 설마... "


" 네... 아무래도 땅 속에서 야생 포켓몬이 우릴 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하행. "



상행의 말에 하행은 잔뜩 긴장해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형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고 있던 그 때,



콰아앙-!!!



옆쪽에 있던 바위벽을 뚫고 나온것은 커다란 강철톤! 그것도 온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색이 다른 강철톤이다! 그가 뚫고 나온 바윗덩이가 하행의 위로 떨어지려 하자, 상행이 재빨리 현에게서 받은 리오르를 꺼내 [발경] 기술을 사용하게 하여 그것을 부수었다. 그러나 그 탓에 공중으로 뛰어오른 리오르는 바로 이어지는 강철톤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그 작은 몸이 거대한 강철톤의 꼬리에 맞아 날아가버렸다.



" 리오르!!! "



상행은 부리나케 달려가서 리오르가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몸을 날려 그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강철톤의 크기에 압도되어 어쩔 줄을 몰라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때 하행이 재빨리 형의 앞으로 뛰어와 그를 감싸 보호하며 몬스터볼 두 개를 동시에 던지며 기술 이름을 외쳤다.



" 럭시오, [얼음엄니]! 로젤리아, [에너지볼]! "



럭시오의 냉기로 가득찬 이빨이 강철톤의 몸을 잇는 이음새 부분에 박히고 그대로 얼어붙은 다음 로젤리아의 [에너지볼] 도 적중하자, 아무리 큰 강철톤이라고 해도 굉음을 내며 그 육중한 몸을 바닥에 떨굴 수 밖에 없었다. 하행은 얼른 주머니에서 빈 볼을 꺼내 강철톤에게 던졌다.



" ... 둘, 셋... 찰칵! 좋아, 잡았다!! "



하행은 신이 나서 볼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제 뒤쪽에서 들리는 털썩-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자신이 보호했던 상행이 긴장이 한번에 풀려서인지 다리가 풀려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하행은 얼른 상행에게로 다가가서 몸을 낮추고 괜찮냐고 물었다. 갑자기, 상행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 하행!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까?! 포켓몬을 꺼내는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당신이 저보다 먼저 강철톤의 몸에 깔려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왜 자신의 안위는 조금도 생각 않고 그렇게 무대뽀로-! "


" 있잖아, 상행. "



하행은 두 손을 상행의 볼에 가져다대고 꾹 누르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세상 진지한 표정이 되어 상행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지금 네가 느끼는 심정, 나도 예전에 두 번이나 느꼈던 거, 알지? "


" ...! "



상행은 하행의 말을 듣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하행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들어 결국 그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대신 자신이 크게 다쳐버리고, 비록 하행에게는 몸의 상처는 없을지언정 마음의 상처를 줘버린 지난날의 자신도, 지금의 하행만큼이나 무모했으니까. 상행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 죄송합니다, 하행. "


" 괜찮아, 상행. 어쨌든 지금은 둘 다 안 다쳤으니까, 그걸로 다행인거잖아? 그보다 얼른 육지로 돌아가서 네 리오르를 회복시켜 줘야지! 일어날 수 있겠어? "



하행은 상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행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 했으나 아직 풀린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아 결국 하행이 그를 업고 섬의 부둣가로 돌아와서 배를 타고 운하시티로 돌아왔다.








운하시티에 돌아온 상행과 하행은 곧장 포켓몬센터로 향했다. 포켓몬들을 간호순에게 맡기러 카운터로 가니, 그 앞에는 길고 찰랑이는 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전신을 검은 옷으로 입은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상행과 하행은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동시에 생각했다.



코기토... 님?



" 어라? "



두 형제의 시선을 느낀 그 여성이 뒤를 돌아보자, 그들이 생각했던 사람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에 하마터면 그 이름을 부를 뻔 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녀는 다름아닌 신오지방의 챔피언인 난천이었다. 하행은 깜짝 놀라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발을 동동 굴렸다.



" 우, 우와... 우와와! 난천 님이다! 상행, 저기봐, 신오지방 챔피언이신 난천 님이라구! "



하행이 상행의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상행은 그의 팔을 잡아 내리고 이러는건 바로 앞에 계신 당사자분께 실례라며 주의를 주었다. 머쓱해진 하행이 살짝 토라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난천이 그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분명 하나지방의 서브웨이마스터이신 상행 님과 하행 님 맞으시죠?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상행은 어떻게 그녀가 자신들을 알고 있는가 의문을 가졌지만 그녀가 챔피언 말고도 역사학자까지 겸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곧바로 납득하고는 그도 손을 뻗어 악수를 했다.


뒤이어 하행과도 악수를 한 난천은 근처의 카페로 가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냐고 요청했다. 커피나 디저트 값은 자기가 다 계산하겠다면서. 두 형제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상행의 리오르와 하행의 세 마리 포켓몬을 카운터에 맡기고, 그들은 바로 난천이 말한 카페로 향했다. 이름만 카페지, 실상 간단한 식사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레스토랑 같은 곳이어서 마침 출출했던 그들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메뉴판을 쭉 살펴보던 상행의 눈에, 익숙한 음식의 사진이 보였다. 상행은 그것을 보자마자 흥분하여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 오, 세상에, 신오님 맙소사! 여기서 토란떡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난천 님, 저, 토란떡 한 접시 주문해도 괜찮겠습니까?! "



순식간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난천'이라는 이름에 큰 술렁임이 일었다. 난천은 얼른 메뉴판으로 제 얼굴을 가렸으나 이미 늦었고, 챔피언인 그녀와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한동안 가게 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난천은 조금 곤란해했지만 익숙한 일인듯 곧 평정을 되찾아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상대해주었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큰 실례를 범했다는것을 깨달은 상행은 부끄러워서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려 가게 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앉아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 상행의 옆에, 하행이 다가와서 에휴... 하며 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난천을 보겠다고 카페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잔뜩 몰려들어왔기에, 결국 그들은 가게에 더 이상 피해를 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그곳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상행이 못내 아쉬워하자 난천은 가게 주인에게 살짝 부탁하여 토란떡을 포장해서 받아들고는, 겨우겨우 인파를 헤치고 나와 그들에게 중요한 일정이 있다며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일행이 사람들을 피해 간 곳은, 원래 상행과 하행이 들르려고 했던 장소인 운하체육관이었다. 마침 그곳에 있던 동관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자기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행이 상행을 만난 것에 대해 굉장히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그들은 체육관 안쪽에 위치한 동관의 개인실로 들어가 카페에서 난천이 포장해온 토란떡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서로 이야기 할 주제가 달랐기에 난천과 상행, 동관과 하행, 이렇게 두 명씩 테이블을 나눠서 따로따로.


역시나 난천에게 있어선 신오지방의 역사 속에서 살다 온 상행은 꽤나 흥미로운 존재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상행에게 역사책에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던 히스이의 문화라던가 상행이 그곳에서 살면서 느꼈던 것들을 주로 물어보았다.


여러 이야기 끝에 마지막으로 난천이 그에게 질문한 것은 현대의 신오지방에서 사라져버린 천재 소녀 챔피언이었던, 빛나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상행은 올게 왔구나 생각하며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 그렇군요. 제 예상대로 빛나 또한 과거의 히스이지방에... 그러니 제가 쓸 수 있는 인력을 총동원해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수색했어도 끝내 찾지 못했던게 당연했네요. "


" 난천 님... "


" 사실 그동안 저, 계속 빛나가 사라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답니다. 그 아이가 챔피언이 된 이후로 들리던 소문에 따르면 그녀가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태도로 도전자들을 대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뭔가 거만한 태도가 드러난다고 했다더군요. 하지만 그때 이미 저는 챔피언 자리에서 내려온 몸... 높아질대로 높아진 그녀의 콧대는 언젠가 그녀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도전자가 나타나 꺾어주겠지, 하고 그대로 방치해 버렸답니다. 인생 선배로서 그녀에게 따끔한 조언 한 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는데도... "



난천이 침울해하며 그렇게 말하자, 상행은 그것은 결코 난천의 잘못이 아니며, 빛나가 신오님의 선택을 받아 히스이지방으로 간 이후로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전해주었다.


상행의 말에 난천은 조금 안심한 얼굴을 하며, 떡잎마을에 찾아가 빛나의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전해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행이 손을 내젓고, 자신이 대신 찾아가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난천이 의문을 표하자 상행은 계속 매고 다니던 배낭 한 켠에 고이 간직해두고 있던, 윤슬이 자신에게 맡긴 편지를 꺼내보이며 그녀의 부탁에 대해 언급했다.



" 사실, 이곳에서의 여정을 모두 끝내고 하나지방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그분을 찾아가 이 편지를 전달해드리려 했지만... 난천 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하루라도 더 빨리 그분을 안심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내일 바로 그곳에 찾아가야겠습니다. "


"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상행 님. 그러면 염치 없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상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목을 들어 포켓치의 시간을 확인했다. 이쯤이면 포켓몬센터에 맡긴 포켓몬들의 회복이 다 끝났겠다 싶어 하행을 불러 이만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운하체육관 도전은 이번에 새로 동료가 된 리오르와 강철톤과의 유대를 더 키우고서 하기로 하고. 하행은 동관과의 대화를 마무리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관과 난천은 돌아가는 두 형제를 체육관 입구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들에게 허리숙여 인사하는 형제에게 손을 흔들며 다음에 다시 보자고 했다. 체육관에서 멀어지면서 서로 재잘대며 돌아가는 상행과 하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동관은 난천에게 말했다.



"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만나기를 고대했던 녀석인데, 이렇게 벌써 돌려보내도 괜찮겠나? 내가 예상하기론 자네가 녀석을 며칠 밤을 붙잡아놓고 히스이지방에 대한 모든 것을 캐낼 줄 알았건만, 의외로 싱겁게 보내주는군? "


" 동관 님도 참... 제가 무슨 국제경찰도 아니고 붙잡긴 누굴 붙잡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한 번에 모든 걸 전부 알아내는건, 오히려 재미 없는 일이죠. 앞으로도 상행 님을 만나 대화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요. "


" 크크- 그래그래! 조급해 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긴 하지! 그런 걸 보면 자네도 예전에 비해 많이 성장했구만? "


" 후후... 그런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난천은 한 손을 들어올려 입가에 가져가 살짝 가리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두 형제를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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