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3


켄타의 경우→

그 뒤에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묻기 무색할 정도로 그 어떠한 일도 없었다. 마치 사쿠라이가 발을 헛딛어 욕조에 빠진 그 다음날 처럼 사쿠라이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굴었다. 열이 다 내린 사쿠라이는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비행기를 예매했고, 둘은 그 어떠한 대화도 없이 공항으로 향해 도쿄에 도착했다. 다시 방송국에 들어가기 직전 사쿠라이가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이렇게 퇴근하고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켄타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 사쿠라이는 바로 방송국으로 들어가버렸고, 켄타는 그렇게 사라지는 사쿠라이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오노에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었다. 어떻게 되었냐고, 사쿠라이 피디님은 괜찮냐는 문자에 켄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비행기를 타기 직전 사쿠라이의 열이 다 내렸고, 지금 비행기를 탄다는 답장 한통을 남겼을 뿐이었다. 지금은 좀, 혼자 있고 싶었다.



집으로 온 켄타는 어색한 다다미에 온 몸을 내던졌다. 미친 것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그대로 자신도 눈을 감자 사쿠라이는 켄타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고 혀를 밀어넣었다. 뜨거운 숨소리,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몸, 덜덜 떨렸던 자신의 손, 살짝씩 보이던 사쿠라이의 뜨거운 시선, 마지막으로 입술을 떼며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던 그 눈꼬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났다.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없는 일이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켄타는 팔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 것 같았다.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고. 이미 이 몸의 주인은 오노 사토시는 사쿠라이 쇼를 사랑하고 있어서, 사실 까칠하다고 한 것도, 무섭다고 한 것도 다 애정이었다고. 그러니 자신이 이렇게 설레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사쿠라이를 진심으로 걱정한 것도, 사쿠라이의 옆을 밤새 지킨 것도, 사쿠라이의 키스에 눈을 감고 입을 벌린 것도 자신이었다.

책임질 수 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그 누구에게도 좋을 일이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을 하고 있는 시간은 한달이었다. 그것보다 짧아질지 아니면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오노에게로 넘어갈 일이었다.


‘이제 그만 기다리고 싶어.’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 당신은, 당신은 오노 사토시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겠지. 그러니 이 일은 잘못되어도 잘못되었다. 두 사람의 일에 끼어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노와 자신은 다른 사람이었다. 생긴것은 비슷할지 몰라도 성격도 직업도 전부다 달랐다. 당신이 오노를 사랑한 이유를 자신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게, 그냥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 나는 정말 미친놈일까.


“시발….”


켄타는 아까 집에 들어오는 길에 산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것 같은 담배에 목구멍이 아팠다. 원래 담배를 하지 않던 몸이라 그런가 머리도 어지러웠다. 봐봐, 나는 당신과 이렇게 달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켄타는 담배를 세게 빨아들였다.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연기에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한달. 아니 이제 3주 정도. 딱 그정도. 켄타는 짧아진 필터를 느끼며 마지막으로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 기간이라는 보장이 어디있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추측일 뿐이지 않냐고. 이게 영원하다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나와 당신은.

켄타는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뺨을 세게 쳤다. 지금 미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었다.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결말을 지금 자신이 감히 바랬다. 그럼 내 가족은, 노래오빠는, 오노는, 사, 쿠라이는. 켄타는 신경질적으로 담배포켓에 담배를 비벼 껐다. 짜증이 났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왜 사쿠라이는 이럴 때 그런 짓을 벌인지 모르겠었다.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쿠라이가 싫었다. 그냥 다 싫었다. 켄타는 붉어진 왼쪽 뺨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줄 마음도, 사쿠라이를 받아줄 마음도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내가 뭔데. 켄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빠르게 문자를 남기고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쿠라이를 밀어낼 마음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둘의 경우

켄타는 헉헉거리며 카페에 달려온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마주하였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 부른 것이었는데 어떻게 타이밍이 잘맞아 바로 볼 수 있었다. 방송국 앞 카페에 있던 켄타를 보자마자 달려온 오노는 자리에 앉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어요? 사쿠라이 피디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고생하셨죠. 오늘은 바로 퇴근을 하신건가요? 사쿠라이 피디님도 퇴근을,”

“야. 숨넘어가겠다. 피디 괜찮고 별로 고생도 안했어. 그 피디도 양심은 있는지 내일 출근하라 그러더라. 그 피디는 일 할거 있다고 들어갔고. 아마 자기가 스케쥴을 마음대로 건드렸으니 지 안에서는 용서가 안될테지. 그 성격 상.”


오노의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해준 켄타가 귀찮다는 듯 아메리니카노를 쪽 빨아들였다. 그 대답들에 오노는 머리를 몇번 끄덕이고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 몸으로 그러지 말라니까, 켄타가 중얼거리자 오노는 그저 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너와 나는 다르다. 아주 잠시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그 감각에 켄타는 입술을 살짝 씹었다. 무얼 말해야할지 모르겠었다. 그래서 만나지 말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을 보아야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리고 진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켄타는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것에 고민하는 것 자체가 자신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너, 사쿠라이 피디 좋아하냐?”


켄타의 질문에 오노가 입에 밀어넣었던 아메리카노를 푸흑 하고 뱉어냈다. 아, 더럽게, 죄, 죄송합니다, 어쩔줄 몰라하며 사과를 하는 오노에게 켄타가 휴지를 내밀었다. 오노는 입을 대강 닦아내고는 켄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그대로. 너 좋아하냐고. 사쿠라이 피디.”

“가, 갑자기…,”

“이 몸이 그래. 사쿠리이 피디만 보면 아주 심장이 미친놈 처럼 뛰던데.”


켄타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오노의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켄타의 말과 동시에 얼마 전 마나베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석 꽤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 그 AD.’


오노의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몸에 있는 오노였기에 켄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에서 나오는 감정을 모를리 없었다. 켄타는 천천히 빨대를 입에 넣었다. 괜히 속이 탔다. 쌍방이네, 라고 말을 해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안된다는걸 알지만, 자신의 치기어린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켄타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피디가 너 좋아한데, 키스도 했어. 원래같았으면 그냥 술술 말했을 것이 분명한 이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신 답지 않게.

켄타는 머리를 한번 더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게 앞을 보고 있던 오노가 그런 켄타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얼굴. 어쩔줄 몰라 당황한 얼굴. 너는 그렇게 솔직하고, 사랑스럽고, 사랑 받는구나. 켄타의 마음 한구석이 찡하고 울렸다.


“뭐 그냥 그런가해서 물어본거야. 심장이 쿵쾅거리는게 귀찮아서.”

“죄, 죄송합,”

“죄송하다는 말 듣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몸 돌아오면 뭐, 한번 잘해보던가. 간다.”


켄타는 뒤에서 고개를 숙이는 오노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계속해서 같이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네가 내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좋겠네 피디양반. 말한대로 돼서.


오노의 경우←

오노는 떠난 켄타에 멍하게 있다가 이내 아차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모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제와서 떠올랐다. 너 누구야, 라고 물은 마모루에 당황한 오노는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오노에 마모루는 씨익 웃었다.


“뭐야 켄타군. 평소랑 너무 다르게 굴길래 장난친건데 이렇게 반응하면 무섭잖아~”

“아, 아. 하하, 미안. 그런 장난을 왜 쳐!”


저렇게 어영부영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해야할 것 같았다. 마모루가 바보라고 켄타가 늘 말했었지만 오노가 느끼기에 마모루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멍청하게 굴지만 알고보면 속이 깊고 생각이 많은 사람. 그렇기에 그렇게 당황하여 아무말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오노는 켄타를 잡을까 하다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들은건가 싶었다. 그렇게까지 티가 났나 싶었다. 늘 사쿠라이만 보면 미친듯이 뛰었던 심장이기에 익숙해져서 자신은 몰랐었던걸까. 오노는 아메리카노를 한입에 들이켰다. 켄타의 얼굴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데, 왜 처음부터 말을 안했지?”


오노는 문뜩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켄타 성격상 그런 심장을 느끼는 순간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왜 이제서야…? 오노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잔뜩 돌아다녔다. 켄타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오노는 여전히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외에 오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켄타의 경우→

그 일이 있고 2주. 딱 2주가 지났었다. 사쿠라이는 그 일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굴었다.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볼 일도 없었다. 물론 매일 같이 있을 했으니 매일 얼굴을 본 것은 맞지만 개인적으로 대화를 한다거나, 얼굴을 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켄타도 그 편이 편했다. 어쩌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짝사랑을 오래하는 주의는 아니었기에 켄타도 사쿠라이의 행동에 감사했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일을 하고, 답답하게 말을 못하는 일은 만들지 않고, 노래오빠 시절 익혀놓은 AD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잘 가지고 와 나름 인정 받고, 가끔 오노와 연락을 해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매일 저녁 노래오빠를 챙겨보며 오노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냥 정말 평번한 하루하루를 흘러보내고 있었다. 사쿠라이가 지나가기만 하여도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외면하면서.

이제 일주일이었다. 이제 딱 일주일만 견디면 이 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건 그거대로 싫었으니까. 그저 외면하고 피하다보면 답은 늘 나왔다. 그게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생각이 많아진 순간부터 켄타는 미친듯이 일을 했다. 잠도 자지않고 잘 먹지도 않았다. 가끔 오노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들렸지만 상관 없었다. 일을 이렇게까지 하는데 저런 소문은 나중에 오노가 해결하겠지 싶었다. 담배가 나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오노가 흑화했다는 소문에 하나하나 대응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하던 도중 알게 된 것은 오노가 실수로 날려먹은 줄 안 로케 촬영분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던가. 내내 방송국에서 사는 켄타가 그런 말을 듣지 않았을리 없었다. 병신새끼 아니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켄타는 입술을 꾹 씹었다. 뭐, 자신이 해결 할 일은 아니었다. 그 말을 또 사쿠라이에게 하기 위해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판단되어졌었다.

그걸 알고 얼마 뒤 켄타는 스튜디오에 멍하게 서있었다. 몸도 마음도 잔뜩 지친 상태였다. 언제 제대로 잠을 잤는지 모를 정도로 침대 속 자신이 까마득했다. 제대로 먹지도 않아 이제는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바가 요즘에 왜 이렇게 좀비처럼 구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지 말던지 일단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처음으로 들어가는 사쿠라이가 총감독인 예능은 벌써부터 화재가 될 정도로 흥미로웠다. 대형 방송국의 간판 PD가 총괄이라는 이유만으로 호화 게스트들이 나오고 싶다 줄을 선 상태였다. 새삼 대단한 놈일세, 라고 생각한 켄타는 정신을 차리고 촬영에 임했다. 무거운 것을 옮기고, 게스트들을 대기시키고, 쓸고 닦고, 리딩을 하고.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 일이 터졌다.

멍하게 벽에 기대어 상황을 지켜보던 켄타는 갑자기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꺄악, 하는 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렸고 다급하게 달려가는 AD와 PD들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스튜디오 위 철조물에 매달아 놓은 모래주머니가 아래로 떨어져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쪽으로 떨어졌지만 사고는 사고였다. 사쿠라이가 끼고 있던 인터컴을 바닥에 던지고 달려갔다. 켄타도 정신을 차리고 사고 현장 쪽으로 향했다. 다들 많이 놀라 정신이 없었고 피곤함에 곤죽이 된 켄타 또한 이 일을 어디서부터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녹화가 중단되고 사쿠라이는 게스트들에게 사과를 하며 대기실로 안내했다. 주변에서 좆됐다는 말이 들려왔다. 켄타는 멍하게 서서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 묶어놓은 새끼 누구야!!!!”


게스트들이 다 사라지자 사쿠라이는 바닥에 들고있던 큐시트 뭉치를 세게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쿠라이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저걸 누가 했더라, 켄타가 기억을 되살려보려 하려는 순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오노씨가….”


켄타는 오노가 누구야, 라고 중얼거리다가 이내 자신에게 꽂힌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아, 내가 오노지. 고개를 든 켄타는 그렇게 말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고있는 얼굴이었다. 분명 오늘 자신이 모래주머니 뒷처리를 할 때 와서 자기가 하겠다며, 이걸로 농땡이 좀 피우겠다고 이죽거리던 타케다였다. 켄타가 뭐?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타케다가 오노씨가 도와줄 필요도 없다고 하셨잖아요…, 하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쳤다.


‘그거 로케 촬영본 내가 날려먹었는데 오노한테 다 뒤집어씌었잖아. 야 걔 진짜 편해. 어쩌피 한마디도 못하거든.’


그새끼였다. 오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었던 그새끼. 저새끼만 아니었다면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마침 그날 속상했던 오노와 자신이 만나 술을 마시지도 않았을거고, 몸이 바뀌지도 않았을거고, 사쿠라이를 만나지도 않았을거고,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따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켄타는 피식 웃으며 타케다한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너는 시발 내가 그렇게 만만해서 어쩌냐.”

“……네?”

“네가 로케 파일 날려먹은거 온몸으로 막아주고나니까 내가 졸라게 만만한가봐. 그러니까 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지랄이지. 안그래 시발?”


켄타의 말에 모두다 놀라 둘을 바라보았다. 흑화했다 뭐다 말을 하긴 했지만 오노가 욕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는 켄타에 당황한 타케다가 무, 무슨 말씀이세요 라고 버벅거렸지만 켄타의 입은 쉬지 않았다. 쌓인 모든 것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니네들도 다 똑같아 시발.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런 말도 안하는데? 내가 니들이 전부다 만만하게 봐도 되는 사람이야!? 시발 말을 좀 해봐! 저것도 내가 한다니까 네가 농땡이 피울 구실 만들겠다고 한다며! 근데 뭐 시발? 오노씨가 했다고? 너는 시발 얘가 얼마나 만만하면!!”

“뭐하는 짓이야.”


켄타의 말을 막아세운 것은 사쿠라이였다. 손이 올라가고만 켄타의 손목을 잡은 사쿠라이는 차가운 시선으로 켄타를 바라보았다. 그게 더 울컥했다. 왜. 너는 왜 끝까지 얘 편이 아닌데. 좋아한다며.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사랑한다며. 켄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나왔다. 사쿠라이는 한숨을 쉬며 그대로 켄타의 손목을 끌어당겨 발걸음을 스튜디어 밖으로 향했다.


“정리 해놔. 30분 뒤에 다시 촬영 진행한다.”

“…네!”

“그리고 타케다. 너는 나중에.”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켄타를 데리고 사라졌다. 차갑게 내리앉은 스튜디오에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노 사토시가 미쳤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시발 이거 놔요!”

“닥쳐.”

“놓으라고!”


스튜디오 건물의 비상계단에서 켄타는 사쿠라이의 손을 거세게 내쳤다. 씩씩거리는 켄타에 사쿠라이는 멈추어 서서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너 진짜 정신 놨어? 스튜디오에서 뭐하는 짓이야!!”

“내가 뭘요! 그럼 그 상황에서도 내가 다 뒤집어쓰고 입닥치고 있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적어도 새끼야 그때는!”

“뭘 그때야! 그럼 또 당신은 날 경멸할게 뻔한데!!!”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켄타에 사쿠라이가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퇴근도 안하고 잘 먹지도 않는다고 전해들었는데 그게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신경쓰이고 있는 중이었다. 사쿠라이는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왜 네가 더 화를 내? 분노로 붉게 물든 켄타의 머릿속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당신은 얘 편이여야지.”

“뭐?”

“당신은 적어도 얘 편이여 줄 수는 있는거잖아.”

“무슨 소리를,”

“왜. 막상 키스하고 나니까 별로였어? 시발 그냥 재밌는거 하나 생겼었는데 영 별로라 쌩까는거야?”


사쿠라이는 놀라 켄타를 바라보았다. 왜, 왜 일이 이렇게. 사쿠라이가 뭐라고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켄타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시발 사랑한다며. 그럼, 그럼 적어도…, 적어도! 얘한테 그만 상처줄 수 있는거잖아!!”


켄타의 말에 사쿠라이가 켄타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얘, 라고 칭하고 있는 켄타의 말은 진심같아 보였다. 화를 내며, 결국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켄타에 사쿠라이는 처음으로 이질감을 느꼈다. 켄타의 눈을 바라보며 사쿠라이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너, 누구야.”


과녁이 없이 날아간 화살은 누군가에게는 비수로 꽂힌다. 켄타는 사쿠라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해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말해야 할 말 대신 자신의 진심이 튀어나왔다.


“이제와서 묻는게 제일 웃겨.”

“…뭐? 너, 너 누구야. 오노 사토시 어디에 있어.”

“너는 얘 사랑한거 아니야. 병신새끼야.”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누구의 눈동자가 더 떨리냐 물어보면,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사쿠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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