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L, 시그널;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







"지금부터 박해영 물건 샅샅이 뒤져.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내 앞으로 가져와."



김범주의 한마디에 형사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개떼 같은 형사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형제와도 같은 형사들을 물어뜯었다.


"얼레? 아니, 이 사람들이 왜 남의 팀 책상은 뒤엎고 그런대?"


난데없는 개떼들의 침범에 당황한 계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해영의 책상에만 형사 대여섯 명이 달려들었다. 뒤집힌 책상의 맞은편, 헌기도 계철 따라 일어섰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얼떨떨한 표정이 딱 개한테 제대로 물린 표정이다.



"같은 형사들끼리 이래도 됩니까? 당신들, 유도리도 없어?"


"유도리 같은 소리하네. 같은 형사들끼리 유도리가 어디 있어?"


"야. 너 이 새끼, 경사 배지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 반말이."


"이보세요. 김계철 경사님."


"이유는 말해주고 치우던가. 뭔데? 언제는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으라더니 이제 여기서까지 내쫓나? 이런 씨,"



계철보다 한 십 년은 더 젊어 뵈는 형사가 목청을 높였다. 승진 잘리고 여태 경사 직급에 눌러앉게 된 계철 입장에서는, 같은 직급이랍시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대드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계철 말마따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형사가 해영 책상을 와락 뒤엎으면서 계철과 실랑이를 한참 벌이는데 별안간 뒤에서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뭣들 하는 거야, 지금! 거기서 손 안 떼?


소란스러운 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수현이 서있었다. 화장실에서 막 돌아온 수현의 표정이 굳었다. 손에서는 아직 닦지 못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아무 일 없이 평화롭던 곳이, 5분 만에 우글대는 낯선 형사들 손에서 뒤집어졌다. 수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손 떼란 말 안 들려?"


"잠시 조사에 응해주셔야겠습니다."


"조사? 무슨 조사! 당신들 다 뭐야? 도대체 무슨 조사를 하길래 남의 팀 형사 책상에 함부로 손을 대! 그거 안 내려 놔?"


"현직 형사 살인사건입니다. 지금부터 서울청 장기미제전담팀 박해영 경위를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간주합니다. 그러니 조사에 응해주셔야겠습니다. 전담팀 전부 다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형사는 사냥개 같은 눈을 하고서 날벼락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단숨에 수현은 저보다 아래 계급 형사들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수갑만 안 채웠지, 엄연한 연행이었다. 이거 안 놔? 수현이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순순히 놓는 놈은 없었다. 영락없는 개떼 맞다.



"국장님 지시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수현과 계철, 헌기, 그리고 의경까지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 잡혀 들어갔다. 김범주 국장. 셰퍼드 닮은 눈을 한 사냥개의 얼굴이 수현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이글거리는 눈. 포악하게 비틀린 입술.


그간 내색은 안 했지만 김범주는 제대로 배워먹지 못한 사냥개임이 분명했다. 놈이 사냥하는 건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었다. 자기보다 약한 아랫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목부터 물어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인간. 그 인간이 사냥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저보다 아래쪽이다.




-





수현은 취조실에 들어앉아있는 게 어째서 자신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찰 인생 20년 동안 수없이 들락날락거렸던 이 곳에, 자신은 늘 앉아왔던 형사 자리가 아니라 건너편 피의자 자리에 앉아있다. 그냥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기분 진짜 거지같네. 수현의 비틀린 입술에서 신음처럼 말이 새어나왔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새까만 유리가 보인다. 힘껏 힘주어 노려봤지만 보이는 건 피의자 자리에 앉은 자신뿐이다. 찝찝한 기분으로 수현은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노려봐도 건너에 있는 놈들이 꿈쩍할 리가 없었다. 거기서는 수현이 보여도 수현은 그 쪽이 보이지 않으니 노려보는 건 헛수고였다. 괜히 처량맞은 자신 모습만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찰 뿐이다.


취조실 문이 열리자마자 저보다 한 계급 낮은 꼴통이 하나 들어왔다. 국장 라인 잘 타고 경사 자리까지 단박에 오른 놈이었다. 뒤에 국장이 있으니 저보다 선배인 수현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기세등등하다.



"이래도 돼? 난 용의자도 아닌데 여기 이렇게 앉혀놔도."


"이것도 최대한 배려한 겁니다. 여기 말고 어디 가서 조사를 합니까, 그것도 형사를. 그거 아세요? 전담팀은 당장 여기만 나가도 찔려죽습니다. 다들 전담팀을 얼마나 따갑게 노려보는지는 아십니까?"


"그걸 내가 왜 알아야 돼? 언제는 안 따갑게 굴었어?"


"말 참 까칠하게 하시네. 됐고, 최근에 박해영 이상한 점 없었습니까? 계장님이랑 사이 많이 안 좋았죠?"



참고인 신분인 수현을 이 자리에 앉아놓고 거들먹거리면서 묻는 꼴통의 말이 거슬렸다. 수현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박해영이 사람을 죽였단다. 그것도 안치수 계장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말? 아니, 그냥 개소리다. 수현이 감은 눈을 떴다. 그래, 딱 앞에 놓인 국장의 개떼들이 내는 개소리.



"그냥 박해영을 불러와서 조사를 해. 왜 우리까지 여기에 잡아 처넣고,"



수현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꼴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구형식 무전기다. 수현에게는 낯익은 물건이었다. 그것도 아주.



"이거 어디서 났어? 이게 왜 여기에 있어?"


"박해영 소지품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최근에 박해영한테 무슨 수상한 점 없었습니까?"


"…박해영이 이걸 왜…?"


"거야 저도 모르죠. 그래서 묻는 겁니다. 근데 이거, 작동도 안 되는 고물인데 박해영이 왜 이런 걸 가지고 있죠? 이게 도대체 뭐길래 그럽니까?"



꼴통이 하는 소리는 더 이상 수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보세요, 차 형사님. 듣고 계십니까? 최근에 박해영…


박해영이고 나발이고, 수현의 시선은 온통 그 구형식 무전기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 무전기. 저건 분명히 재한의 무전기였다. 이재한. 이재한 선배. 수현의 입술이 달싹였다.


실종된 지 15년. 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재한의 소식이 요즘 들어서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아주 수상쩍게.


들리는 소리는 재한이 어디에 있다더라, 하는 소재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였다. 마치 보자기 속에 꽁꽁 숨겨져있던 재한과 관련 있는 것들이 한 꺼풀씩 벗겨 나오는 모양새다. 저번엔 박해영이더니 이번엔 김범주 라인 놈들이다. 수현은 머릿속이 꼭 타는 심지처럼 검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있다. 수현의 촉이 수맥 탐지봉처럼 서서히 방향을 잡아갔다. 길 걷다 쓱 뒤돌아 자신을 쳐다보는 재한의 얼굴이 수현의 눈앞에 아릿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건 재한과 관련된 일이다. 수현은 짐작했다.


15년 동안 잠잠했던 수면에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현은 기꺼이 그 파동에 몸을 내맡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에 뛰어들 것이다. 뛰어들어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수면 위로 올려놓을 것이다. 그게 박해영이든, 이재한 선배든. 수현은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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