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로그




어린 시절부터 가족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위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들이었다. 우수하게 훌륭되어 있는 그들은 '백경대'라는 이름이 있었고, 아버지의 충신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든지 그들을 부릴 수 있었으며 그들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아버지를 향해 달려왔다. 나 역시 그들을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세상은 큰 선과 큰 악이 있고, 작은 선과 작은 악이 존재했다. 중립이라는 존재는 그 모두를 갖고 있는 존재였으며, 그들은 언제 어느 색으로 자신을 바꿀지 모르는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중립이 되라고 배웠다. 아랫사람들에게는 위엄 있는 윗사람이 되고, 약자를 감싸안을 수 있는 강자가 되고, 강자를 짓밟을 수 있는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것이 철칙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왜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있는 사람들' 마저도 믿지 말라는 것일까. 몇 날 밤을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단순히 어려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공백이었다. 부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메이헨은 빈 자리를 대신 채워 주었고, 어머니가 없다고 놀리는 아이들은 다음날이면 나에게 사과를 했다. 어머니가 없는 것에 대해 몇 번의 의문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불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리'에 익숙해져 있을 무렵에,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단점인지 알게 되었다.

"아빠, 나는 왜 엄마가 없어?"

지금 그 얼굴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똑같이 따라할 수도 있었다. 아빠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메이헨은 날 데려갔다. 의문만을 던지면서 잠자리에 들지 않던 나에게 메이헨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는 아이를 혼자 집에 남겨둔 채 섬에 굴을 따러 갔다 아이가 걱정되어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자장가라기엔 깨름칙한 기분을 떨궈낼 수 없었다. 메이헨이 신경쓰는 것 같아 잠이 든 척 했지만, 그녀가 나간 뒤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도 운다면 엄마가 돌아올까. 엄마는 왜 내 곁에 없는걸까. 언제까지도 학부모의 역으로 대리인이 오는 걸 원치 않았다. 남들이 '도련님'으로 치켜세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날 불렀다. 날이 우중충했다. 대기 밖은 융단 같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별이 흐려서일까.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얼떨떨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당황스럽다. 나에게 엄마도 아빠도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어린 나의 무지에 대해 다시 한 번 탄복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훌륭한 사람으로 크길 바라셨다. 그건 단순히 하나의 가업을 이을 사람이 아니라, 8우주의 실질적 패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고, 어린 나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을 여력이라곤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의 개들이 모두 아오리카로 향한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빈약한 빵봉투에 나를 의탁했다.

갈매기 울음 소리에도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사자 새끼가 야생에서 자라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업지 않아야 했다. 나는 갈매기 따위가 울어도 동요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가 운다면 그것을 잡아먹을 듯 더 크게 울었다. 밀림의 제왕의 죽음은 자살로 맺어졌다. 이 매듭은 내가 묶은 것도, 아버지가 묶은 것도 아니었다. 이는 8우주 사자의 권위에 묶여 있던 하잘 것 없는 야생동물 제각각의 울음 소리였다.

도움이라곤 되지 않는 이들의 눈을 피해 아오리카의 자료를 모았다. 연대 책임의 사슬은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사슬은 '고산'에게 묶여 있었다. 어린 고산은 제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고,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소집 되었던 이들은 8우주 어딘가로 뿔뿔히 흩어졌다. 정작 그들은 아버지의 자살 하나 막지 못 했다. 그 많은 월급은 무엇을 위해 지불된 것이지? 단순히 개인의 화력으로 행성 단위의 싸움을 걸기 위해? 아버지는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긴 했지만, 쓸모없이 자신을 불태우진 않았다.

나에게 모든 굴레를 씌우고 떠난 이들을 증오했다. 그들이 나의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해낸 것이 무엇이지? 특출난 경호? 아니, 그랬다면 우리 아버지는 내 곁에 있어야 했다.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학교를 다녀온 후에는 나를 안아주고 나를 격려해주어야 했다. 그들은 지켜내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를, 목적을 잊었다. 충성을 맹세한 그들에게 지워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나에게만.

명찰처럼 주렁주렁 달린 죄는 사람을 독종으로 만들었다. 3년 만에 회복된 위약금. 그 속에서 허덕이던 나는 굴레를 '고산'에게만 지워주었다. 새로운 나에게 지워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장기간에 걸쳐 엘 가문에 집중된 구 백경대의 화력은 아버지의 아바타를 토대로 하여 한 번에 없앨 수 있었다. 아버지가 갖게 된 독점권을 토대로 하여 나는 이 퀑 집단이 기어오르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 아버지의 명예와, 나의 굴레가 지고 있는 명예를 더럽히지 않게 집중했다.

"아버지의 경호대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보내 아버지를 지키라고 해!"

너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데. 나의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 한 죄는 너에게도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배신자들에게 지워진 그 굴레를 벗을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논리를 관철하는 너에겐 하고 싶은 말 같은 건 없었다. 다시 '고산'의 모습을 하게 된 나는, 너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다. 너는 그 책임을 나눠야 했다. 나의 아버지를 죽게 놔 둔 책임을. 백경대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아버지를 지키지 못 한 그 책임을.

"당장 치워버려!"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고 싶다. 너를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덴마 / 사이퍼즈 / DmC / 라이트드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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