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쳤어?”

 

 아빠가 미쳤다.

 

 드디어 단단히 미친 것 같다. 엄마가 쓰러졌던 현관에 선 아빠와 세 여자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새로운 여자를 데려와? 그것도 셋이나? 세상에나…. 둘은 엄청나게 어려 보이는데? 

 

 이게 다 뭐야? 일부다처야? 미친 거지?

 

 “인사해. 엄마야.”

 

 노망은 이십 년 뒤에나 날 줄 알았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지.


 점잖게 발뒤꿈치를 문질러가며 구두를 벗던 아빠 배를 힘껏 밀었다. 얼떨떨한지 멍하니 나를 보는 아빠의 어깨 너머, 밀려나는 아빠의 등을 받쳐주던 여자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내게 웃어 보였는데…. 

 

 예쁘네…. 짜증 나게 예쁘네.

 

 “네가 다래니?”

 

 여자는 친절한 말투로 내게 물었고, 낯선 여자의 익숙한 행동이 못내 두려워진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익숙한 공간을 낯선 이에게 내어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을 바라보는 엄마 사진을 가릴까 봐 한발 옆으로 비켜서며 물었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여자 뒤에 서 있던 앳된 여자 둘이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여기서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한발 앞서 나갔다. 아빠는 어느 틈에 구두를 벗었는지, 성큼성큼 거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곳으로 이끌 거라 암시하듯 안방 문 앞에 어색하게 기대어 서서 말했다.

 

 “인사해, 다래야. 네 새엄마다.”

 

 ‘흠흠’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은 정말이지 꼴 보기 싫다. 어지러이 벗어 둔 저 구두도, 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목울대에 솟아난 수염 한 가닥마저 눈뜨고 봐줄 수 없다. 정리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 엄마가 매번 이야기하던 것이었다. 아빠는 저것들을 절대 고칠 생각이 없는 거다.


 저 고집도 지겨워.

 

 “엄마는 뒤에 계셔.”

 “응. 이제 보내줘야지. 새엄마한테 당장 엄마라 하기 힘들 거 아는데….”

 

 ‘지랄도 병이지.’ 속으로 삼키며, 몸을 내밀었다. 앳된 여자 둘은 나와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돌린 모양인데…. 

 

 쟤네는 뭐야? 떨거지? 

 

 “아! 다래야, 인사해. 언니들이야.”

 “난 또 일부다처인 줄 알았지.”

 

 툭 던진 말에 하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다른 한 명은 피식 웃고 말았다. 

 

 웃어? 이 상황이 우스워?

 

 “아, 진짜! 신다래!”

 “목소리 높이지 마!”

 

 똑같이 목청껏 질렀다. 앞집 아줌마 볼 낯이 없다. 이모처럼 나를 챙겨주던 분인데, 싸움 난 줄 알고 전처럼 문 뒤에서 이곳 상황을 가늠하실 거야.

 

 “애도 아니고! 무슨 태도야?”

 “태도를 운운해?”

 

 아빠 딸이 맞나 봐. 감정 숨기는 것 따위는 못 하니까…. 엄마를 더 닮았으면 참고, 감수하는 것을 잘했을 텐데 소름 끼칠 만큼 아빠를 닮아버렸다. 나를 경멸하는 저 눈이 거울을 본 듯 닮았어. 우리는 서로를 쏘아보기 바빴고, 내 입장의 불청객들은 현관에 갇힌 듯 발만 동동 굴렀다.

 

 “아저씨, 저희 그냥….”

 

 나를 비웃던 여자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아빠는 이쪽으로 다가와 단호하게 말했다.

 

 “들어와!”

 

 완력으로 성인 남성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빠는 제 딸이 누군지 잊은 사람처럼 나를 구석으로 밀쳤다. 밀려나 멈춰 선 곳은 피식하고 웃은 뒤, 표정을 지운 여자의 품이었다.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것처럼 살짝 찌푸린 눈을 한 여자. 나는 내 팔뚝을 손가락으로 받친 여자를 노려보았다.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네. 더럽게 예쁘고, 구질구질해. 

 

 여자의 고운 입술이 열리기 전, 다시 몸을 가눴다.

 

 “들어가지 마! 아무도 들어가지 마!”

 

 아빠의 연인은 어쩔 줄 몰라 했고, 당당하게 집안에 입성한 것은 아빠뿐이었다. 아빠가 성큼성큼 다가옴과 동시에 내 팔뚝을 손가락으로 받친 여자가 몸을 비틀어 앞으로 나섰다.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그대로 몸을 돌린 내가 여자의 어깨를 밀치자, 여자는 그대로 현관문에 부딪힌 뒤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아빠의 연인과 인상을 찌푸렸던 여자가 놀라서 함께 앉았다. 그리고 아빠는 순식간에 손을 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여자를 바라보던 나는 아빠의 손이 날아오던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코앞에 다가온 손끝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뭘까? 왼쪽 눈을 슬며시 뜨자, 아빠의 품에 안긴 아줌마가 보였다. 

 

 “아이고! 미안해요!”

 “다래 잘못 아니에요.”

 

 하! 그런 거네? 못된 딸년과 지고지순한 새엄마? 새엄마의 정성에 감화된 딸년이 사람 되는 그런 이야기야? 아무래도 내 앞에 펼쳐진 이야기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이야기와 결이 비슷할 지도 몰라. 나는 절대 새엄마를 믿거나, 좋아하지 않을 거야.


 당신에게 이 집을 내어주느니, 내가 이 집을 나가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지랄.”

 

 붉게 부어오른 아줌마 뺨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도 가져가지 못하는 아빠, 그런 두 연인을 멍하니 바라보는 인상 쓴 여자, 이제 일어나서는 현관문에 기대어 선 여자. 세 여자에게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꺼져.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으니까.”

 

 내 선전포고에 아빠는 욕을 뱉었다. 신 씨 아저씨, 당신 가면 벗겨졌네? 축하해.

 

 앞에 선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씩씩거리며 운동화 속에 발을 구겨 넣던 내게 길마저 열었다. 협조하는 건가? 의문이 듦과 동시에 등 뒤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앞집 현관이 빼꼼 열렸다.

 

 “괜찮아? 혹시 맞았어? 응?”

 “이모.”

 “응.”

 “아빠 새장가 가게 생겼어요.”

 

 내 말에 아줌마는 ‘어쩜 좋니….’ 라며 탄식하셨다. 이 아파트가 지어짐과 동시에 입주한 두 집. 보기 좋은 신혼부부와 중년의 부부는 서로에게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었다. 아줌마는 동생처럼 엄마를 살폈고, 아빠는 이 집 아저씨랑 ‘형님, 동생’하며 종종 시간을 보냈다. 아줌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게 친척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줌마를 ‘미옥 이모’라고 불렀다.

 

 “다래야, 고모들은 연락해 봤어?”

 

 외가 친척은 없다시피 했지만, 친가는 고모 두 분이 계셨다. 아빠와 할머니의 유산 상속을 문제로 크게 싸웠고, 소송도 불사했던 고모들과 멀어진 것은 당연한 과정 같았다.

 

 “받으실까요?”

 

 아줌마는 한 발을 현관 밖으로 빼며, 내 등 뒤의 문을 빤히 바라보다 눈을 끔뻑이셨다.

 

 “피는 물보다 진해.”

 

 통속적인 표현이다. 수업 시간에 하듯, 의미 없는 끄덕임을 보였다. 아줌마는 한숨을 쉬셨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보다 계단을 택했다.

 

 “다래야, 저녁은?”

 

 밥이 넘어갈 리가 없죠. 고개를 가로젓자, 아줌마는 진한 한숨을 쉬며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와서 먹어.”

 

 아니요.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내가 재차 고개를 가로젓자,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갈 곳은 딱히 없다. 성격이 지랄 같아 친구도 없고, 가까운 친척은 더 없다. 하다못해 아지트 삼을 만한 단골 가게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곳마저 없다. 엄마와 추억으로 뒤덮인 이 동네는 혼자가 된 내가 갈 곳이 전혀 없다.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아…. 용돈이 들어오는 체크카드도, 하다못해 현금도 없다.


 게다가 오늘 좀 추운데? 환절기는 환절기야. 낮보다 차가워진 공기에 재채기가 나왔다. 고작 얇은 티셔츠 한 장, 심지어 바지는 반바지…. 발이라도 시리지 않아서 다행이지. 소매를 늘여가며 시린 손을 감추고,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놀이터는 보나 마나 가민이가 있을 거고, 이 꼴로 학원을 갈 수 없어…. 원장 선생님이 계시겠지만, 분명 걱정할 터였다. 

 

 더럽게 춥네. 너무너무 춥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동네 한 바퀴를 돌았고, 엄마와 함께 가던 빵집 앞을 지났다. 엄마가 그리운 마음을 품에 안고 걸어가던 내 어깨에 묵직한 무언가 걸쳐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던 내 손목을 꼭 잡은…. 어?

 

 “어디가?”

 “야.”

 “언니.”

 

 새언니 되실 분.

 

 “이름 신다래, 오늘 열일곱 살 생일이라며? 케이크 찾으러 나왔어.”

 

 집 앞, 엄마가 매년 내 생일 케이크를 사주던 제과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상자를 여자가 들어 보였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어?”

 “여기? 아저씨가 돈 주셨어.”

 

 아, 진짜 상황 한번 더럽다. 그쪽도 돈에 눈이 팔린 거죠? 하긴, 아빠가 돈이 좀 많아야지? 혹시 후처 자리라도 노리세요? 웅얼거리는 동안, 여자는 내 손목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애 같다.”

 “뭐?”

 “마음에 안 든다고 티 내고, 화내고, 성질부리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고.”

 

 뭐야?

 

 “들어가. 추우니까.”

 “안 가.”

 “가. 우리 곧 갈 거야. 그러니까 케이크 먹어. 생일이라며?”

 

 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 케이크면 단 줄 아나?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면 이렇게 무시하는 거야?

 

 “야.”

 “언니.”

 

 누가 질 줄 알아?

 

 “…니는 이게 재미있어?”

 “앞 글자 안 들려.”

 “하, 씨바알…. 언니, 그쪽은 이게 재미있나 봐? 어? 나만 나쁜 년이지? 어?”

 

 길 한가운데서 바락바락 대드는 나를 가만히 보던 언니는 피식 웃었다.

 

 웃어?

 

 감히?

 

 “웃겨?”

 “귀여워서.”

 

 의외의 대답에 머뭇거리던 나를 보고, 언니는 태연하게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상자를 품에 안은 나를 보고…. 언니는 빙긋 웃었다. 

 

 “들어가. 나오시라고 할게.”

 “야, 너 오늘은 그냥 보내는데….”

 “응. 얼른 들어가. 감기 걸리겠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데….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이게 꼭 무슨 특별한 음성이나 계시를 받는 기분이 들게 해. 나는 여자가 건널목 앞에 서서 목을 가볍게 푸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호가 바뀌고, 저 너머의 사람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건너오는 동안에도…. 나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어깨에 얹힌 셔츠가 무거웠다고 하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돌아간 집은 불이 꺼진 채 비어있었고, 나는 어두운 식탁에 앉아 초에 불을 붙였다. 

 

 ‘아빠가 정신 차리게 해주세요.’

 

 단 하나의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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