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림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올해 7월에 선정된 134권의 '나다움어린이책'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다움어린이책은 여성가족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주최/주관하는 교육문화사업으로 어린이책 전문가들이 모여 '나다움'을 찾게 해주는 어린이책을 선정하고, 발굴하고, 만드는 프로젝트를 일컫는다. 나다움 어린이책은 크게 세가지 가치 영역으로 분류 되는데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기긍정',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 서로 배려하고 평등하게 연대하는 '공존'이 그것이다. 사회의 여러 가치관과 행동양식, 규범을 학습하기 시작하는 가장 첫 단계에 놓인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유해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바로 잡고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다움 어린이책은 특히 가장 광범하면서 뿌리 깊은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 다룬 책이 많이 선정되었으며 이를 위해 어린이책을 성평등 기준으로 분석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세하여 6개월간 다양한 토의를 거쳐 완성 되었다. 

다음은 나다움 어린이책 기준 질문 26가지를 10가지 범주와 3가지 가치 영역으로 분류한 표다.


나는 지금부터 자관의 책과 상호대차한 책들을 통해 나다움 어린이책들을 힘 닫는 데까지 읽어나갈 예정이고 그 아주 주관적일 기록들을 100일 글쓰기에 짤막히 남기려고 한다. 참고서비스나 컬렉션 구성 등 업무에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크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아동센터로 독서 프로그램 지원을 나갔다가 듣게 된 충격의 앙기모띠 도라에몽 송인데 (65번째 글 참고)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한 권이라도 성인지 감수성에 관련된 책으로 독후활동을 시켜야 겠다는 목표로 수업에 적절한 그림책을 이것 저것 참고하고 고르다 보니,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1.  < 쫌 이상한 사람들 > 미겔 탕코 글, 그림 ; 정혜경 옮김

이 책은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도서는 아니지만 '나다움'의 키워드로 추천받은 책이다. 혼자라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알아채고, 가끔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며, 길거리 나무에게 고마워 할 줄 아는. 발 밑의 개미들의 존재에도 마음을 쓰는 아주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이 따뜻한 시선으로 하나씩 비춰진다. 이들은 세심하고 다정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유별나고 쫌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 보단 스스로가 좋아하고 신경쓰는 일을 중요시하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주고 "별난"사람으로 오해 받아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이 사람들은 쫌 이상하기 때문에 특별하고, 많은 것들을 살피기 위해 눈을 크게 뜨면서 꿈을 꾸는 멋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 딸 인권 선언 /  아들 인권 선언 > 엘리자베스 브라미 글 ; 에스텔 비용-스파뇰 그림 ; 박정연 옮김


국제 엠네스티의 추천도서이기도 한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는 딸, 아들, 엄마, 아빠 총 4권의 인권 선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별에 따른 사회적 역할 속 고정관념 및 편견을 15개조의 당당한 ‘권리 선언’을 통해 통쾌하게 반박하고 그 틀에 들어맞기를 거부하거나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위안을 선물하는 책이다. 어른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침해 받았던 여러 권리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미래 세대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나’답지 못하게 만드는 가부장적 질서와 차별적인 사회문화를 반드시 뜯어 고치리라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딸 인권 선언

  • 제 6조, 파란색, 까만색, 카키색 ... 마음에 드는 모든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권리

어렸을 때 가장 많이 침해 받았던 권리 임에 틀림없다. 여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색은 오로지 핑크와 노랑 뿐이었던 사회 때문에 핑크색을 미워하지 않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사람으로써 색에 고착된 부정적인 성별 고정관념이 완전히 없어지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 제 7조, 트럭 만드는 사람, 판사, 공장장, 경찰, 대통령, 조각가, 외과 의사 등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세상에 여자가 하기에는 좀... 스러운 직업이란 건 없다. 여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몸을 쓰는 활동을 허락하지 않고 정치 경제의 주요직을 남성이 독점한 유구한 역사가 더 이상 여아들의 장래희망 선택지를 제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자 아이들은 명예욕과 권력욕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여성에게 차별적인 직업환경을 유지하며 개선할 의지가 미약한 기업은 사회 경제적 불이익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 남자들의 파이를 잔뜩 빼앗고 잔뜩 욕심부리며 나아가길!!!!!!!

  • 제 8조, 유도와 활쏘기, 권투, 축구, 펜싱 등을 배울 수 있는 권리

이건 내가 가장 억울해 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적극 보장받고 싶은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 자매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루트를 타게 됐고 태권도나 검도 학원은 선택지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층 미술학원 옆에 바로 태권도 도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 때는 여자아이들은 죄다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만 갔으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감히 가고싶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성인이 된 후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을 읽고 어릴 때 태권도를 배우지 못한 게 어찌나 억울하던지. 몸을 써서 느끼는 즐거움을 아예 모른 채 어른이 되는 여자들이 너무 많고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 제 14조, 언제나 공주님 같지 않아도 될 권리

이건 지금의 여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같다. 좀 뜯어 고쳐서 '탑에 갇힌 무력한 공주가 되기를 거부할 권리' , '공주이자 기사이자 왕이 될 권리' 로 말이다. 동화 속 공주들, 미디어 속 디즈니 공주들은 늘씬하게 아름답고 상냥하며 풍성한 치마를 입고 그녀를 구해 줄 왕자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모든 요소 요소가 여아들에게 해로우며 happily ever after을 위해선 탑을 지키는 용과 거래를 하든지 땅굴을 만들어 도망치든지 하여튼 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왕자놈이 내가 공주라는 이유만으로 용과 싸우러 올 것을 무력하게 기다리느니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이미 공주가 나오는 고전 동화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재밌는 그림책들이 많다. 여기에 몇 권 소개하려고 한다.

1. 망나니 공주처럼 / 이금이 글 ; 고정순 그림 / 사계절 / 2019

2. 공주는 없다 / 돌로레스 브라운 글 ; 소냐 위머 그림 ; 이나래 역 / 내인생의책 / 2018

3. 종이 봉지 공주  / 로버트 먼치 글 ; 마이클 마르첸코 그림; 김태희 역 / 비룡소 / 1998

아들 인권 선언

  • 제 2조, 깔끔하고, 향기 나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얌전할 수 있는 권리
  • 제 11조, 바느질이나 뜨개질, 다림질, 정리 정돈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권리

이 두 개의 조항은 권리로 두기 보단 권장 사항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얌전함과 차분함, 깔끔함, 정리 정돈과 요리를 저절로 잘 하게 되는 능력이 성염색체에 타고 나는 것 마냥 구는 사회 속에서 방종한 인간으로 자라버리지 않기 위해선 이런 덕목들이 남아들에게 더 강하게 요구되고 마땅히 학습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교사. 무용수나 간호사, 가사도우미 등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잘 울거나 수줍음을 타도 '계집아이'같다는 비난을, 운동장에서 몸을 쓰기 보단 인형놀이나 소꿉장난을 좋아하고 뜨개질을 좋아해도, 분홍색을 좋아해도 '게이'같다는 멸칭을 들어선 안 된다. 모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해체되고 설령 그런 것들을 남아가 할 시 이상하거나 부적절하다고 공공연하게 평가되는 세상이 오지 않길 바란다. 2019년은 아직 젊은 남자 청소년, 청년, 혹은 더 나이 먹은 남자들이 서로를 더 강한 뉘앙스로 비난하거나 세 보이기 위해 씨발놈 대신 "씨발년('쒸이-발년'으로 발음 됨)"을 적극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해체되어야 우리는 '여성스럽다', '상남자같다'를 칭찬으로 쓰지 않고 '남자답지 못하다',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로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 사회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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