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이 지나고 7월 초에도 우리는 계속 만났지만, 집에 돌아가서 낭독극의 대본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오래 수영할 수는 없었다. 그도 나의 입장을 이해하였는지 내가 수영을 하다가도 집으로 가 봐야겠다고 말하면,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라는 직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작가도 나중에는 인공지능이나 이런 걸로 대체되지 않을까? 예전에 신문에 적힌 칼럼을 읽었는데 인간은 정말로 뛰어난 작품을 원하는 게 아니래. 인간은 그냥 만족할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자극하는 소설 작품이면 그게 뭐가 됐든 좋아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설령 좋은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넌 어때? 만약 그런 작품을 쓰는 능력 자체가 인공지능이 훨씬 더 뛰어나다면 미래에는 작가라는 직업도 무형 문화재처럼…”

"몰라. 난 지금도 작가는 무형문화재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거든. 세상에 소설도 많고 글을 쓴답시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많지만 그중에서 꾸준하게 글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어. 그러니까 지금도 작가는 무형문화재. 만약 작가가 그렇게 유망한 직업이었으면 정부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학교에 집어 넣었을까? 수요가 많은 예체능 분야는 정부에서 굳이 예술고등학교에 집어 넣으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사진가나 작가나 무형 문화재 취급을 받고 있지만 겉으로는 모르는 척을 하고, 본인도 일부러 내색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중학생일 때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 온 교육부의 공무원이 해 준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더없이 친절한 얼굴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어른스러운 글을 쓰는구나. 다른 아이들이 쓴 글은 읽어 봤니?"

"아뇨. 아무도 글을 안 쓰거든요."

나의 말에 부모가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덧붙였다. 무의미한 말이었다.

"학교에서 누가 글을 읽고 나서 뭐라고 했던 모양이에요. 얘가 화가 나서 서로 싸움이 붙었는데..."

"아닙니다. 이미 모든 정보를 살펴보았습니다. 따님의 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한테 맡겨 주신다면 이후에 벌어질 문제도 막을 수 있고 동시에 진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요."

서류 가방에서 파랗게 보이는 팜플랫을 꺼내는 동작은 절도 있고, 그러면서도 우아한 선을 그렸다. 아름다운 손이 다시 가방으로 돌아와서 열려 있는 지퍼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잠갔다. 그리고 속눈썹이 짙은 눈동자를 아래로 끌어 내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따스한 손으로 나의 차가운 손을 쥐면서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세상에는 너 같은 사람들이 많단다. 언니가 그런 곳을 알고 있거든. 우리 같이 견학이라도 해 볼까?"

그날부터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나는 용돈을 받아서 중고로 값싼 DSLR과 표준 렌즈를 구매했다. 학교 안에서 사진을 찍으러 정문부터 운동장을 거쳐서 후문까지 돌아다녔고, 월요일 저녁마다 만나는 그와의 약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낮에는 학교 안에서 만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관계를 들키지 않는 건 오히려 사소한 문제였다.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대본의 결말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에 관해서 내가 아직 속으로 납득이 가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 우리는 사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산 니콘의 보급기 DSLR을 만져 보면서 그는 초보자는 이 정도로 충분할 거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표준 렌즈는 조리개값이 느리기 때문에 더 빠른 렌즈를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해 주었다. 당분간 돈이 없을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카메라를 응시한 채로 이렇게 물었다.

“학교에서 렌즈를 빌려 줄 거야. 네가 직접 빌려도 괜찮고, 그게 안 되면 내가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빌려 달라고 이야기하면 되거든. 훨씬 좋은 렌즈들이 학교에 있는데 그걸 안 쓰는 건 아까워.”

“그런가? 어차피 나는 사진가가 되려고 카메라를 산 게 아니라, 너도 알다시피, 취미로 사진을 찍으려고 산 거니까. 아무튼 고마워. 나중에 담임한테 렌즈를 빌릴 수 있냐고 한번 물어볼게.”

“그나저나, 쓰고 있는 대본은 잘 되고 있어?”

그의 물음에 잠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수영장의 표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저기에 있는, 모든 물방울과 떠돌고 있는 불소 같은 것들과 반사되는 야구장의 밝은 조명과 그리고…

그가 다시 물었다.

“대본을 언제까지 써야 하는 거야?”

“7월 28일까지. 원래 28일까지 마감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뭐, 이래 봬도 노력하는 중이야.”

그가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내가 아까 질문했을 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리잖아.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봐. 나도 한 명의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

“뭐, 읽어 보고서 어디가 재밌다든지 어디가 재미없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코멘트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면 내 감상은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어쨌든, 뭐라도 이야기해 주는 편이 아무 말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

“알았어. 일단 저기에 앉자.”


낭독극에서 읽을 대본의 제목과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나서, 지금 분량이 삼 분의 일 정도 남았는데 비극적인 결말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떻게 끝내는 게 가장 좋을지 고민하다 보니까 며칠째 1/3을 남긴 채로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었다.

“그렇다는 말은, 기승전결에서 결만 정하면 나머지는 해결이 된다는 거야?”

“그렇지.”

“그렇다는 말은, 음, 결말이 보통 비극적인 결말이 있고 행복한 결말, 해피 엔딩이 있잖아. 너는 비극적인 결말이 낭독극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는 거고. 그러면 왜 해피 엔딩을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수영복의 어깨 끈을 잡아 당기면서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정말로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해피 엔딩이니까. 모두가 잘 살았다는 결말이 아니라면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학교 축제에서 읽는 낭독극인데, 너무 심각한 결말로 끝내 버리면 축제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가 반문했다.

“진짜로 어려운 문제네. 하나 잘 모르겠어. 만약 네가 배드 엔딩으로 이야기를 끝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원래 정해진 이야기의 흐름이 있어서 그걸 어기게 되면 나중에 연극부에서 찾아와서 뭐라고 한다거나,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보거든.”

“맞아. 애초에 내가 대본을 쓰는 거라고 정해져 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어.”

카메라를 내려놓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의 공기는 뜨거웠고 바람은 거의 불어오지 않았다.

“아니다. 우리가 직접 연기를 해 보자. 지금 대본이 가방에 있으니까 마침 잘 됐다. 중반부터 후반까지 적어 둔 스크립트가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되겠네. 저기, 내가 가방을 가져올 동안 이것 좀 정리해 줄래?”

“알았어.”

탈의실을 이용하려면 열쇠가 필요했다.

밤에는 당연히 탈의실을 이용할 수 없었고, 탈의실 대신으로 내가 사용하는 곳은 수영장 옆에 붙어 있는 여자화장실이었다. 경비원은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 탈의실의 문을 잠그고, 화장실에 누가 없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수영장의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경비실로 돌아갔다. 정문이 존재하지 않고 개별 공간에만 문이 달려 있는 옛날 식의 화장실은 내가 책가방을 놓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끝낸 뒤에 다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문 안에 넣어둔 가방을 열어서 집에서 복사해 온 스크립트를 찾았다. 그 전에 젖은 손이 종이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지 않게끔 뽀송뽀송한 수건에 손을 잘 훑었다. 30장 정도 되는 분량으로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인쇄한 대본은 등장인물이 세 명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우리가 읽을 두 명의 주연의 대사에만 색연필로 밑줄을 쳤다. 한 손에는 대본을 들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든 채로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다.

“가져왔어! 잠깐만 기다려 봐.”

우리는 학교 수영장을 빙 둘러서 지름길을 지나 정문 밖으로 나가서 낭독을 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대본을 읽을 만한 장소를 찾기는 대단히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적당해 보이는 공원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할 수 없이, 걸어가면서 우리는 대본을 읽기로 했다. 멀리서 보면 이상한 고등학생들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냥 다음에 하는 게 어때?”

“아냐. 오늘 읽는 게 낫겠다는 감이 들어. 다음 주는 방학 바로 전 주라서 월요일 저녁에도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을 하는 애들이 있을 거거든. 공원까지 걸어가면서 조용히 읽으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나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시간에 밖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만약 비극적으로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냥 비극적으로 끝내고 나서 마감을 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나의 성격은 이상하다. 성격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남을 설득시켜려는 의사도 별로 없다.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언제나 내가 싫어하는 메뉴를 몇 가지 말하면서 이건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이를테면 누가 곰탕을 먹자고 하면 나는 곰탕이 싫다고 말하고, 피자가 먹고 싶다고 제안하면 피자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식이었다. 그러면 가족들은 동생에게 뭘 먹으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내 성격을 누군가에게 설득시키려는 생각도 없이, 이번에도 대본을 읽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본을 읽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나에게, 그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방학 때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들어서 지금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그렇다고 하자. 나는 말 없이 대본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쓴 부분은 이미 다 외우고 있었으므로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가 먼저 시작하고, 내가 이어서 낭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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