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뜯을 듯이 잡아 당긴 황제의 손에 의해 수련의 얼굴이 함께 딸려왔다. 곧 숨이 넘아가 죽을 듯이 기침을 하는 수련을 보자 머리카락을 놔준 황제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홍상궁이 다급하게 황제의 몸 위로 모포를 걸쳐주었다.


"형편 없구나."

"..."


황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온천탕을 빠져나갔다. 황제가 떠나자 그를 모시는 궁인들까지 줄줄이 자리를 비웠기에, 커다란 욕조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수련은 보라색으로 변한 입술을 덜덜 떨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시중을 들기 위해 함께 이곳에 도착한 후, 온천탕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련의 나인은 화가 난 듯 인상을 찌푸린 황제가 밖으로 나오자 놀라서 허리를 굽혔다. 어느 정도 황제가 멀어지가 황급히 온천탕 안으로 뛰어 들어온 나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푹 젖은 채 욕조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수련을 부축하여 물 밖으로 끄집어 냈다. 


"괜찮으십니까, 마마?!"

"....."


물에 젖은 속적삼으로 인해 수련의 속살이 훤히 보이자 나인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겉옷을 그녀의 위로 둘러주었다. 마마, 소인에게 기대세요.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수련을 나인이 힘겹게 부축하며 수월각으로 향했다. 


수월각에 도착한 수련은 추운 날씨에 차갑게 얼어붙어 뻣뻣해진 속적삼을 갈아입지도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처소의 물건들을 내동댕이 치며 부수고 깨트렸다. 아악! 황제에게 처참히 짓밟힌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 계집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난 그저 여인으로서, 연모하는 사내의 마음을 원한 것 뿐이었는데. 


허나 그 사내가 황제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신처럼 떠받들여지는 만인지상( 萬人之上 )인 황제의 노여움을 사면 인생이 고달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달려들 가치는 차고 넘쳤다. 평생동안 황제의 옷자락 한 번 보지 못하는 천한 것들에 비해 출발선이 달랐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유일한 분이시니 그런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이런 수모 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주문을 외우듯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속삭인 수련은 겨우 진정했다. 


유리에 찢겨 피가 나는 손바닥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자 소름끼치도록 붉은 혈흔이 얼굴에 덕지덕지 뭍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귀비마마. 기괴할 만큼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련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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