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책으로 출간한 '달달' 의 짧은 여담입니다.

* 강희와 요환의 이야기이니 원치 않으면 패스해주세용.

* 퇴고를 거치지 않아 오타, 비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담 (閑談)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이야기

 

 

 

 


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눈처럼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부터 내린 눈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기에는 제법 예쁘지만, 그에게는 그저 시야를 방해하고 이동을 불편케 하는 귀찮은 먼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를 태우고 있는 말도 바닥에 두껍게 깔린 눈을 헤치며 산을 오르느라 힘겨워 하고 있었다.

쯧, 혀를 찼을 때였다.

콜록, 콜록……. 뒤쪽에서 아주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추위에 힘겨워 하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임에도 그는 안도했다. 어쨌든, 소리란 살아있다는 증거이므로.

 

“조금만 더 참아주시게.”

 

그, 요환은 고개를 돌려 제 뒤에 기대고 앉은 강희를 향해 말했다.

강희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희의 입이 다물린 지가 벌써 일 년째. 정확히는 숨 쉬는 시체가 되어버린지 일 년째였다. 그는 등 뒤로 느껴지는 아스라한 체온을 의식하며 문득 얼마 전, 의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살고자 발악을 해도 살 수 있을까 말까한 몸이네. 한데 살려고 하지를 않아. 죽고 싶어 환장을 했단 말일세. 진정 위한다면 그냥 편히 저승으로 보내주시게.’

 

저승 문턱까지 다다랐던 강희를 억지로 끌어다 놓은 것은 요환이었다. 야차같은 주인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도망쳤던 그는 곧장 강희에게로 달려갔다.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뭐라도 해보겠다고, 발악을 하는 심정으로 엉망이 된 몸뚱이를 끌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가까스로 강희의 고향, 송천봉에 도착했을 때 요환이 본 것은 죽어가는 강희였다. 익히 예상했던 바이기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어떤 이유가 되었건 채윤사를 상대로 배신과 기만을 선택한 순간엔 그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만 한다. 강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윤사에게 예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래 보아왔기에 요환은 알았다. 채윤사는 인정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정이라는 게 아예 존재치 않았으므로. 더군다나 반은 요괴인 강희다. 어렴풋이, 어쩌면 강희가 채윤사의 동복 형제일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다. 그렇다 한들 핏줄이라는 허울은 채윤사에게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이러한 요환의 짐작은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졌다.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도 요환은 바랐다. 강희가 살아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거두어주어야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강희의 곁으로 달려왔다. 한데 놀랍게도 강희는 살아있었다. 곧 넘어갈 것처럼 미약하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요환의 상태도 못지않게 엉망이긴 마찬가지였다. 주인의 칼에 한쪽 팔이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강희를 들쳐 업고 가까운 마을로 내달렸다.

  경황도 목적도 없이 달리던 말은 한 시진 만에 어느 소담한 마을에 다다랐고 운이 좋게도 거기서 의원을 만났다. 의원은 강희를 보곤 이미 늦었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요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숨만 붙여주시오. 내가 도저히... 이리 보낼 수가 없어 그렇소.’

 

그는 무릎을 꿇고 그리 애원했다.

그렇게 살렸다.

기꺼이 저승으로 가려 했던 강희를 억지로 살려버렸다.

그리고 강희는 그런 그를 원망하듯 정신을 차리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입을 열지도 않았다.

텅 비어버린 눈. 굳게 다물린 입술. 먹지 않아 말라가는 상처투성이의 몸뚱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되어 누운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강희의 모습에 의원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걸 왜 굳이 살렸느냐는 모진 말도 서슴치 않았다.

요환도 알았다. 자신이 한 짓이 강희에게는 구원이 아니라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희는 죽길 바랐다. 저승에 있는 어미와 형제들의 곁으로 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요환은 살렸다. 살리고 싶어서. 죽게 둘 수 없어서. 그렇게 다분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죽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상태의 강희를 보살피며 네 번의 계절을 보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강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고향. 송천봉.

가족이라 여겼던 형제들이 잠든 그곳…….

요환은 직감했다. 여기까지라고. 이제 자신의 이기심만으로는 강희를 더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강희의 염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영원히 잠들고자 하는 것이 이제 하나 남은 강희의 소원이라면……, 그는 들어주어야 했다. 

어느 날은 어떻게 그렇게 모질 수가 있느냐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외면할 수가 있느냐고 강희의 손을 붙잡고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희는 요지부동이었다. 결코 요환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요환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일 년 동안 제 곁에서 버텨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자. 그걸로 만족하자. 요환은 그렇게 힘들게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강희를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으로.

한참이 걸려서야 간신히 평지에 다다랐다. 그 사이 요환의 몸 위에도 강희의 몸 위에도 바닥에 깔린 것만큼이나 두터운 눈이 쌓였다.

사람의 발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수풀을 지나자 드디어 폐허가 된 마을이 나타났다.

강희의 고향, 강희와 형제들의 무덤, 송천봉이다.

마을의 초입에 다다르자 말을 멈춰 세운 요환은 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말의 고삐를 당겨 한쪽 나무의 기둥에 묶어둔 뒤 조심스레 강희를 말에서 내려주었다. 자의로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강희를 등에 업은 요환이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생의 기운이 소멸해버린 마을은 고요했다. 그들을 반겨주는 건 무겁고도 시린 적막감뿐이었다.

막상 왔지만, 초라한 마을이 보고 싶지 않은 듯 강희는 요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이별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요환은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마음으로 느릿하게 걸었다. 마을의 끝자락을 향해.

그곳에 있는 것은 시체 구덩이였다. 그것도 요환이 만든….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요환의 마음도 발걸음도 저절로 무거워졌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변명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어쨌든 강희의 형제들을 죽이고 땅을 파내어 거기에 시체를 던져버린 손은 요환 자신의 손이었다.

하아….

끝자락이 가까워진다. 그는 비통한 숨을 흘렸다.

그러다….

 

“……!”

 

그는 흩날리는 눈 사이로 무언가를 목도하고 놀라 멈춰버렸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 만든 구덩이가 아니었다. 구덩이의 앞을 무언가가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강희야.”

 

그는 강희를 불렀다. 강희의 몸을 받친 한쪽 팔을 부러 흔들면서.

 

“강희야, 고개를 들고…… 저것을 좀 보아라…….”

“…….”

 

그의 재촉에 못 이기듯 강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희도 드디어 보았다.

요환이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보이느냐.”

 

그것은 무덤들이었다.

크기가 제각각인 여러 개의 무덤들.

방치된 시신들로 가득 찼던 구덩이가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준 무덤들이 거기에 있었다.

요환만큼이나 놀란 강희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요환은 빠르게 걸어 가장 가까운 무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강희를 내려주었다. 바닥에 앉은 강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눈이 쌓인 무덤 위를 더듬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 운 좋게 도망쳐서 죽음을 면한 형제들이 돌아와 만들어 준 것일까? 그게 가장 말이 되긴 하였다.

다행이다…….

강희는 설핏 웃었다.

언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형제들의 시신이 날카로운 바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어서 시린 눈을 맞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이 곁에서 잠들 차례였다.

그때였다.

무거운 표정으로 무덤들을 훑어보던 요환은 바닥에 떨어져 눈에 파묻힌 위패 하나를 발견했다. 무덤을 만들어준 누군가가 갖다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눈을 헤치고 위패를 주워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위패의 모양은 상당히 어설펐다. 적어도 장에서 파는 물건은 아니었다. 누군가 서투른 솜씨로 만든 게 틀림 없었다. 게다가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다. 한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위패의 밑단과 몸통 사이. 거기에 마치 먼지처럼 하얗고 긴 털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그 털을 조심스레 빼내었다. 그리고 강희에게 다가가 보여주었다.

 

“누가 이랬는지 알 것 같구나.”

 

요환의 말에 강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요환의 손끝 사이에서 가늘게 흔들리는 하얀 털을 보았다.

 

“그 녀석이……, 은오가 다녀갔나 보다.”

“…….”

“너와 네 가족들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그랬는가 보다.”

“…….”

 

텅 비어 있던 강희의 두 눈이 흔들렸다. 아주 조금의 생기를 담고……. 요환은 강희의 두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보았다. 그 변화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강희의 표정이 흐려진다. 곧 강희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곁에 무릎을 꿇은 요환이 강희에게 위패를 건네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고맙다 해야지.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게 맞지 않은가.”

 

강희는 위패를 쥐고 고개를 숙인 채 소리내어 흐느꼈다.

요환의 말이 맞았다.

고맙고 미안했다. 기실 자신은 은오에게는 가해자에 불과했으므로. 채윤사를 향한 염원 때문에 은오를 미워했고 증오 때문에 은오를 괴롭혔고 복수를 위해 은오를 이용했다. 

그런데 은오가 돌려준 것은 무엇인가. 비난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고 외면도 아니다.

위로였다.

이 무덤은, 위패는, 은오가 건네는 다정한 위로였다. 

강희의 울음이 거세어졌다. 체온과 감정을 담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시린 눈을 녹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강희를 덮쳤다. 그래서 실로 오랜만에 강희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 땅 위에서 숨을 쉬고 있음을 느꼈다.

미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말았다.


“그 녀석에게 직접 말해주어라. ……그런 뒤에 가도 늦지 않을 테니.”

 

고마워.

그리고 잘못했어.

그렇다. 죽어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죽기 전에는 꼭 해야할 말이었다. 이런 위로를 받아놓고, 그런 잘못을 해놓고 떠날 수는 없었다. 편히 눈을 감기 위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와, 징하다.”

 

같은 시각.

움막을 나온 은오 또한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때문에 마을에 내려가지 못한 지가 며칠인가. 참다못한 은오는 직접 사냥을 하겠노라며 활과 화살을 챙겨 호기롭게 나섰다.

은오를 따라 나온 여울이 입을 쩍 벌리며 쏟아지는 눈을 받아먹는다.

 

“야아, 아무리 배고파도 그렇지 눈을 먹고 그러냐. 기다려. 이 형님이 고기 먹여준다.”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의지를 불태우는 은오를 보며 여울이 헹- 하고 콧방귀를 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냥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공치고 돌아온 게 몇 번째인데.

여울의 무시에 민망해진 은오가 코를 훌쩍였다.

 

“오늘은 진짜야. 결심했어. 오늘 너랑 나 고기 먹는다. 먹는 거야. 아자!”

 

아브아브아우우- 마치 은오의 말을 따라하듯 여울이 긴 주둥이를 열었다 닫으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조롱이 가득했다. 어디 그게 되나 보자는 뜻이다.


“아, 진짜. 너 왜 갈수록 싸가지가 없어지냐?”

 

아우아우아부브브-

 

“넌 진짜 두고 보자. 도련님 돌아오시면 너 여기다 버리고 가버릴 거야. 혼자 잘 살아봐라!”

 

아우우우우우-

 

“나 진심이거든?”

 

아우아우아우-

은오와 여울은 그렇게 투닥거리며 함께 걸었다.

채윤사와 만나기 두 시진 전의 일이었다.

 




 

 

 

 


 


 

-


안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원래는 24일부터 맥거핀과 캔디의  크리스마스 조각글을 써서 올린다! 가 목표였는데요.... 갑자기 선물처럼 떨어진 일거리에 휩쓸려서 실패하고.... 아쉬운 마음에 전에 써두었던 조각글을 슬쩍 올려 봅니다. 크리스마스와는 상관이 없지만요...^_ㅠ

이 조각글은 달달을 완결냈을 당시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여담 중 하나입니다.

사실 강희와 요환의 이야기는 비극처럼 끝이 났지만, 원래부터 둘은 살아 있다고 정해두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은오가 강희의 시체를 거두어주기 위해 송천봉으로 갔다가 며칠동안 머무르며 요괴들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어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달은 어디까지나 채윤사와 은오의 이야기라서요. 그래서 이 여담은 결국 빠지게 되었습니다. 외전에도 실릴 것 같진 않아요.

사실 불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제 머릿속에는 존재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홈과 포타에라도 올려둡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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