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


#52

 

“어떻게 우주 공간에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굉장하네요.”

 

한 명의 세라가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알베르트가 불쑥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발전이지요.”

 

알베르트의 말을 듣던 세라가 싱긋 웃었다.

 

“위대한 발전이라는 말도 맞는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예요. 우주에 선로와 정류소를 만들고, 행성을 넘나드는 특급 열차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겼냐는 거죠. 난 한국에서도 런던에서도 이런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요.”

 

세라는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보였다. 어깨도 으쓱하면서.

이번에는 알베르트 대신 랠프가 대답했다.

 

“그만큼 우리 측에서 열심히 준비했다는 거죠. 우주의 멸망을 위해서, 감쪽같이.”

“우주의 멸망을 위해서라니. 마르크가 의심하는 것처럼, 정말 우주의 멸망을 누군가가 조작하고 있다는 건가요? 물론, 행성이 사라지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겹치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만.”


랠프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다섯 사람은 휑하기 그지없는 우주 정류소에서 특급 열차를 기다렸다. 세라와 세라, 마르크와 알베르트, 그리고 랠프. 마르크는 수면제라도 먹었는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세라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알베르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날, 최면을 걸 때 마르크에게 수면 성분이 있는 무언가를 먹인 건 아니죠, 알베르트 씨?”

“전혀요. 저는 그렇게 신사적이지 못한 일은 하지 않는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사적이지 못한 일을 했던 거 같은데, 당신. 나한테 개밥을 주고, 그다음에 물고 빨고……”

 

알베르트를 노려보던 세라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랠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 벌써 열차가 오는군요. 어서 타죠, 우리.”

 

마르크를 짊어진 두 명의 세라와 옷깃을 매만지던 알베르트가 랠프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

 

 

“시온, 정말 좋아해. 네가 정말 좋아. 너랑 사귀고 싶어.”

 

세라의 집무실에 쳐들어온 붉은 머리 남성은 시온의 옆에 앉자마자 그의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두 뺨에 미지근한 입술이 닿을 때마다 시온은 플로라의 눈치를 살폈다.

좋아하는 플로라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건가? 플로라가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플로라마저 나를 싫어하면, 나를 무서워하면, 나를 역겨워하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서. 그만하지 그래? 시온은 너처럼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물론, 애초에 사람이 아니지만.

 

플로라는 붉은 머리 남성, 아서의 몸을 시온에게서 떼어내며 말했다. 아서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플로라는 불편한 듯 미간을 구기면서 다시 물었다.

 

―네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다니, 무슨 일이 있나 본데? 무슨 목적으로 왔어?

“목적이라니. 난 늘 너희 곁에 있는걸. 특히, 시온의 곁에. 난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저 그리웠을 뿐이야. 한때 우주 통합 관리국을 휩쓸었던 「아·시·플」의 일원으로서.”

―‘아·시·플’이 아니라, ‘플·시·아’겠지. 우리 중에서 전투력이 가장 강한 게 누구더라? 나잖아, 나. 시온이 그다음이고, 맨 마지막이 너고.

“아닌데, 아·시·플이 맞는데.”

―그리고 애초에, 그런 이상한 이름의 조직 같은 건 없었다고. 너랑 나,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 그러면서 무슨.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진짠데. 그렇지, 시온? 시온, 시온?”


아서가 시온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 잡고는 방긋방긋 웃었기에 시온은 그대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서가 웃었다. 플로라가 중얼거렸다.

 

―의회 때도 없는 것 같더니.


침울한 목소리로. 조금 우울한 것처럼.

시온은 다시 눈을 뜨고서 플로라의 얼굴을 살폈고, 아서는 흠, 흠, 하고 마른기침을 하고서 그제야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맞아. 목적이 있어서 온 건 맞지. 의회 때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어. 알베르트가 좀 안 됐더라. 대령님에게 목을 결박당했다면서? 그런 일은 잘 없는데. 아, 물론, 대령님이 인자한 분이시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대령님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죽여버리는 타입이시잖아. 그러니까, 살거나 죽거나. 그 둘 중 하나라는 거지. 알베르트처럼 겨우 살아남는 경우는 없다, 이 말이야.”

―그래. 참 안 됐어. 나쁜 아이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딱히 좋은 애도 아니었지만. 난 알베르트를 싫어했으니까. 참. 코코아라도 타 줄까? 아무튼, 오랜만에 왔는데.


플로라는 탕비실로 향하면서 아서에게 물었다. 아서는 시온의 손을 꼭 잡고서 대답했다.

 

“응. 나는 커피. 아주 쓴 걸로.”

 

 

...

 

 

우주를 배회하던 버스가 투명한 정류장 앞에서 정차했다. 궤도를 이탈해 둥실둥실 떠다니던 버스가 어떤 중력 작용에 의해 그보다 훨씬 큰 선로에 내려앉았다.

덜컹덜컹, 선로에 부딪히는 동그란 바퀴 소리가 들렸다.


“슈 씨, 테오 씨. 두 사람도 이걸 챙겨 가세요. 여차할 때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감사합니다, 도토리 씨. 당신은 좋은 분이십디다.”

 

도리는 슈와 테오에게도 체르트를 건넸다. 커다란 상자에 들어 있던 알약들은 개별 포장 되어 있었기에 보관하기 수월했다. 슈는 감사를 전하면서, 도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도리의 손등으로 껑충 뛰어올라, 슈의 손에 내 손을 대었다.

슈가 웃었다.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요잉. 그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십시다, 흰다람쥐 선생, 그리고 도토리 씨.”

“슈 씨도요. 그리고 테오 씨도.”


테오는 아직도 내게 반감이 있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슈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자, 이내 무뚝뚝하던 얼굴이 살살 풀어지더니 슈처럼 밝게 웃었다. 펭귄과 토끼가 서로를 사랑한다니.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식량인 도리를 끔찍하게 아끼고 누구보다 사랑하지.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갈 겁니다요. 모쪼록 몸 조심하십시요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섰다. 슈와 테오의 뒤에 수많은 하얀 토끼들이 서 있었다.

도리와 나(나는 도리의 어깨 위에 올라 있었다)는 슈와 테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슈 씨와 테오 씨도요. 안녕히 가세요.”

“예에. 감사합디다.”

 

우리는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펭귄과 토끼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줄곧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황량한 우주 한복판에서.

 

 [to be continued...]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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