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날다.


10.

조용한 예인의 처소 안, 진의 울음소리가 방을 가득 울린다. 훌쩍훌쩍하고 우는 크지도 않은 그 소리가 오히려 구슬프다. 태형이 뒤돌아 떠난 후부터 계속해서 훌쩍이더니, 하늘이 붉게 물든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엉엉 통곡이라도 하면 보는 사람 속이 좀 후련할 텐데, 눈물만 뚝뚝 떨구니 오히려 환장할 지경. 

그 맑은 방울이 안타까워 닦아주던 윤기도 이젠 의미 없이 다 마른 새 면포만 건넸다. 그리고는 제 옆에 축축이 젖은 면포 더미를 꽃님에게 뭉쳐주며 중얼거렸다.


"면포들이 불쌍하구나."

"……."

"그만 좀 울어라. 보는 내가 다 지친다."

"……"


그만 울라는 윤기의 말에 석진이 그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석진이, 실로 한참 만에야 붉은 입술을 떼었다. 


"제가 우는 것이 보기에 거슬리시다면, 그만 돌아가시지요."

"그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지 않으냐."

"대신 울어주실 것도 아니니 그저 면포나 주시지요."

"…그래. 알겠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쉰 윤기가 한 번 더 새 면포를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든 진은 또다시 훌쩍훌쩍. 오늘따라 유난히 하얀 옷을 입고선 저리 힘없이 울기만 하니 윤기의 기운이 쭉쭉 빨린다. 게다가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않은 석진이 걱정되는 것은 덤이었다. 윤기가 면포를 곱게 접어 석진의 볼에 흐르는 방울을 톡톡 닦아주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어찌할 것이냐."

"…어찌하긴 무얼 어찌한단 말입니까. 그저 끝난 이야기입니다. 도련님께서도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자가 돌아올지도 모르니 울지 말거라."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돌아오시겠습니까."

"나처럼 정신 나간 놈도 있지 않으냐."

"그거야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윤기가 스스로 정신 나갔다 하는 말에 석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종일 울어 붉게 변한 눈시울이었지만, 휘어지는 모양새가 고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윤기는 석진의 기분이 조금 풀어진 틈을 타, 모란이 그려진 물잔에 물을 반쯤 따르고는 석진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물이라도 마시는 것이 좋겠다. 정말이지 쓰러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이니."

"……."


석진은 제 손에 들린 물잔을 빤히 바라보다, 곧 손을 올려 물을 마셨다. 마시기 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지만, 자신은 목이 꽤 말랐던 것 같다. 석진은 물잔에 있는 물을 단번에 다 마시더니, 윤기를 향해 다시 물잔을 내밀었다. 물잔이 빈 것을 확인한 윤기는 말없이 물을 가득 따라주었다. 석진은 그것을 또 꼴깍꼴깍. 

울어서 뜨끈해진 몸에 찬물을 흘려 넣자, 정신까지 맑게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석진은 눈꼬리에 매달린 방울을 마지막으로 어깨만 훌쩍일 뿐,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석진이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진작에 물을 마실 걸 그랬습니다."

"네가 어디 물 마실 정신이나 있었느냐."

"…울었더니 속이 후련합니다."

"그것참 다행이구나."


석진을 향해 다행이라 말한 윤기는 금세 얼굴에 질책하는 표정을 띄우더니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길래 왜 그런 내기를 해서는."

"……."

"목검이라도 들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이 세상에 다른 건 다 숨겨도 네 검은 못 속인다. 너 스스로가 속이지 못한단 말이다."

"그럼 어찌합니까. 전 검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제 본질이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쥐지 말란 말이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선비님께서 아버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


석진이 미간을 좁히며 하는 소리에 윤기는 한숨밖에 내쉬지 못했다. 그래. 그 말이 맞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태형이 죽은 김형우 도총관을 알고 있을 줄 말이다. 그래서 윤기는 하릴없이 꽃님이 가져온 다과만 석진에게 건네주었다. 한낮부터 해 질 녘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이 쓰릴 게 분명했다. 

내심 배가 고팠던 석진은 얌전히 다과를 받아가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석진의 눈썹은 아직도 축 처저 있었지만, 울지 않으니 그 낯이 훨씬 나아 보였다. 석진은 다과의 감미를 입안 가득 음미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리 많이 운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지 않습니까."

"네가 또 언제 이처럼 운 적이 있었더냐."

"당신께서 떠나셨을 때 그랬지 않습니까."

"…나는 처음 듣는 일이다."

"그야 모르시겠지요. 도련님께선 제 뒷모습을 보지 않고 가셨으니 말입니다."


석진은 그리 말하며 다과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쏘옥 집어 넣었다. 입에서 충분히 녹인 다과를 목으로 삼키고 칠흑을 굴려 윤기를 곧게 응시했다. 석진의 붉고 통통한 입술은 제가 언제 울었냐는 듯, 오물오물 잘도 얘기한다.


"도련님 가셨을 적에는, 이보다 더했지요."

"……."

"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온몸이 갈기갈기 짓이겨지는 느낌이었지요."

"……."


석진이 내뱉는 시린 말에, 마치 서리라도 내린 듯 윤기는 얼어붙었다. 한껏 몸을 굳힌 윤기를 향해 석진이 작게 콧방귀를 뀌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도련님께선, 지금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내가 어찌 그러겠느냐."

"제가 선비님께 산산조각이 나길 바란 것 아닙니까."


석진의 말에 윤기는 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 봄의 시작. 노란 꽃이 만발했던 기방의 화원에서, 석진에게 말했었지.


"어디 있는 힘껏 부딪혀보란 말이다. 그리고 산산조각처럼 깨져보라지. 그렇게 가루처럼 깨진 뒤, 내게 돌아오거라. 허면 내 손수 조각조각 맞춰줄 터이니." 


분명 자신이 내뱉은 말이 분명했건만, 입안이 까끌까끌한 연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굳이 부정할 이유 또한 없었기에 윤기는 지지 않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네게 그랬었지. 손수 맞춰주겠다는 말엔, 지금도 거짓이 없다."

"…도련님께서는 여즉 착각을 하시나 봅니다. 당신께서 맞춰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석진은 윤기와 자신 사이에 있던 다과 접시와 물잔을 저만치 옆으로 치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풀썩, 윤기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입으로는 가시돋힌 말을 뱉으면서 행동은 마치 정인의 그것. 윤기는 석진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결국 다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석진은 매우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심기가 불편한 윤기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도련님께서 착각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무엇을 착각한다는 말이냐."

"도련님께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분이십니다. 저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미련한 분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니구나."


윤기가 긍정하자, 석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붉은 입술을 열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착각이란 말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냐."

"도련님께선 외양간을 고쳐 놓으면 잃어버린 소가 돌아올 줄 아시는데……."

"……."

"그 소는 사실 잃어버리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내 외양간에 있던 소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윤기가 묻는 말에, 석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당신 외양간에 있던 소. 당신이 잃어버린 소. 그 소가 어디 있냐고? 석진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 소는 사실, 외양간에서 죽었습니다."

"……."

"도련님께서 손수 죽이셨지요. 요 매끈한 입술로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석진이 손을 들어 올려 윤기의 입술을 꾸욱 눌렀다 뗐다. 눈을 곱게 휘며 웃고 있는 석진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윤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동댕이쳐진다. 그런 윤기의 표정이 즐거운지, 석진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 붉은 것을 한동안 응시하던 윤기가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너는 무엇이냐. 집 나간 소도 아니고, 이미 죽은 소면서. 왜 내 외양간에 있냐는 말이다."

"새로 태어난 소인가 보지요."

"……."

"'벗'이란 이름의, 새로운 소가 아니겠습니까."


석진은 그리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손을 뻗어 다과를 집었다. 석진의 손가락에 들린 작은 다과가 윤기의 입에 쏘옥 들어간다. 감미가 가득한 다과인데, 마치 쓴 약재라도 씹는 기분. 그런 윤기를 향해 석진은 그의 볼을 쓰담으며 웃었다.


"도련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

"이 세상에 저를 온전히 이해할 이는, 단연 당신뿐이십니다. 그야, 제가 태어날 적부터 함께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나를 물리려는 것이냐."

"그럴 수 없단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전 말이지요……."


석진은 윤기의 볼을 쓰담던 손을 떼고는 애매하게 웃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 시선과 시선이 얽힌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이지만, 지금의 침묵은 기분 좋은 침묵이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석진이 그 불편함을 깨고 말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그래서 증오합니다."

"……."

"하물며 당신을 향한 사랑은 이미 정인의 것이 아니지요. 도련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석진의 물음에 윤기는 침묵했다. 그것은 곧, 긍정이란 이야기. 안쓰럽고, 안쓰럽다. 석진은 그런 윤기의 모습이 슬퍼 위로하듯 그를 안아주었다. 석진이 윤기의 목을 그러안은 채 말했다.


"하지만 도련님께선 여전히 저의 가장 친한 벗이시고, 가족이십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네 말에 긍정하고 싶지 않다."

"그 말 자체가 긍정이란 것을 아시지요. 그러니 절 마음에 두는 일은 이제 그만 하세요. 우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러기 싫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겨울되어 떨어지는 잎사귀를 비단실로 매달아 둔다 한들, 그것이 과연 살아있는 것이 겠습니까. 죽은 것을 붙들어서 무슨 소용이냐는 말입니다."

"……."

"우린 말이지요. 그저 서로 위로나 해주면 그만인 관계입니다."

"……."


석진의 마지막 말에 윤기는 결국 눈을 지그시 내리감으며 그를 마주 안았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는 말이다. 자신을 이미 죽은 소라 칭하는 석진의 말에 머리가 차갑게 식어 버리고 말았다. 석진의 말대로 인정하기 싫지만, 다 마른 잎을 떨굴 때가 된 것인 듯했다. 

불쌍해라. 나는 네가 안타깝고, 너는 내가 안타깝다. 넌 이미 나의 외양간에서 죽은 소이고, 나는 산산이 조각난 널 맞춰줄 수 없는 사람이다. 조각난 널 맞춰줄 사람은 아마…….

석진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던 윤기의 눈이 조금 뜨였다. 그 미련한 것, 멍청이 같은 것. 지금쯤 또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잡아서 데려오던가, 아니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던가 해야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잠시만, 정말 조금만 더,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좋으니, 이대로. 윤기는 여전히 석진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그래, 벗이든 가족이든 그 무엇이든 하자. 네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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