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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 덤블도어는 즐겁게 호그와트의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귀따가운 논쟁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호그와트의 현자는 수월하게 소음의 근원지를 파악해냈다. 가까운 교실이었다. 통로 한가운데 멈춰 서서 조금 더 집중한 결과 두 목소리의 정체 또한 추정해낼 수 있었다. 하나는 덤블도어가 애정해 마지않는 학생 중 한 명인 해리 포터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슬리데린 라이벌 드레이코 말포이의 것이었다.


나아질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는 두 아이의 유구한 관계에 한숨을 쉬며, 덤블도어는 누구 하나 말라죽기 전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저 전쟁을 끝장낼 각오를 다졌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회상했다. 어쩌면 지난 해의 사건들이 둘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안이한 생각이었다. 아아, 청춘이여— 두 녀석의 서로를 향한 투쟁심과 증오는 언제나처럼 치열했다.


작년,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 경이 몰락했다. 그가 패배한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들 중,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 있다. 그가 가장 신뢰한 데스 이터들 중 하나가 그를 배반하고 불사조 기사단 측에 넘겨준 귀중한 기밀정보들이 그것이다. 덤블도어를 찾아온 그 데스 이터는 드레이코의 아버지 되는 루시우스 말포이였고, 그를 받아들인 덤블도어는 말포이 가문의 진영의 변화가 드레이코와 그리핀도르들—특히 해리— 사이의 냉전을 종식시켜주길 진심으로 바란 인물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아름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두 소년은 7학년이 되어서도 여지껏 그랬듯이 얼굴만 보면 으르렁 크르렁대기 일쑤였다.


덤블도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본 건 해리와 드레이코가 각기 제 지팡이를 서로에게 겨눈 채 노려보는 광경이었다.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모욕 배틀을 벌이는 동안 적어도 —아직은—저주 따위를 날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덤블도어는 둘의 싸움 양상에 관한 7년 분량의 배경지식을 통해 현재 해리가 이성을 잃고 저 금발 슬리데린에게 저주를 날려버리기 일보 직전임을 알 수 있었다. 

7년어치 소꿉-호적수인 드레이코에 비해 언어적인 모욕에 능하지 못했던 탓인지, 눈을 굴리며 씩씩대다 결국 먼저 지팡이를 꺼내드는 건 언제나 해리쪽이었다. 해리가 갖은 모욕에 단단히 약이 올라 벌게질 동안 드레이코의 입은 쉴 새 없이 나불대며 새롭고 창의적인 모욕적 표현을 생산해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드레이코가 쉽고 빠르게 모욕 배틀을 이어갈수록 해리는 아까 써먹은 욕설을 또 내뱉었음을 실시간으로 깨달으며 어느 새 같이 열받은 지팡이를 휘두르게 되는 게 그들의 일상이었다.


“이번엔 무슨 일이니.” 덤블도어가 인기척을 드러내며 물었다.


“별 일 아닙니다, 교수님.” 해리에게 마지막 비웃음을 상쾌하게 날려준 드레이코가 지팡이를 거두며 답했다. “이제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구나, 말포이 군.” 덤블도어가 드레이코—교장선생님을 자연스레 지나쳐 교실을 나가려던—를 막아서며 말했다. “참으로 오래 싸우지 않았니. 이제 결착을 지을 때가 된 듯하구나. 너희 둘 다 저녁식사 후에 교장실로 찾아와라. 진중한 대화가 필요하겠구나. 곧 종소리가 울릴 테니 일단은 오후 수업부터 준비하도록 하렴.”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마냥 때마침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덤블도어는 두 소년을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 한편 그는 문간에 서서, 정면 대신 서로를 노려보며 걸어가는 한 쌍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교장실은 반대 방향에 있었다. 덤블도어는 시선을 거두고 교장실을 향해 발길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했다.


해리와 드레이코가 친해질 방법에 대한 그의 고뇌는 저녁식사 중에도 이어졌다. 서로 약간의 여지라도 준다면 둘의 사이에도 호의가 싹트는 게 영 안 될 일은 아니리란 생각만은 굳건했지만, 두 앙숙은 그조차도 불가능할 만큼 각자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오래였으므로 천하의 덤블도어로서도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연할 따름이었다. 식사 후 교장실로 복귀해서까지 꼬리를 무는 고민에 덤블도어는 고풍스런 책상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다.

어찌한다…… 호그와트의 현자는 숱한 난제 속에서도 굴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어렵다고 여긴 일도 어떻게든 헤쳐왔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세계가 몰락할 뻔한 거대한 전쟁의 터널 너머까지 기어이 살아남은, 이 지극히 사소하고도 질기기 그지없는 또다른 전쟁 또한 결국 해결하고야 말 것이다. 해리와 드레이코는 반드시 서로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바야흐로 현자의 손이 개입할 때.

학생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든 덤블도어의 눈에 결연한 눈빛이 번뜩였다.






드레이코는 잔뜩 가라앉은 기분으로 저녁을 깨작였다. 빌어먹을 포터 자식 때문에 덤블도어한테 징계를 받게 생겼다. 이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다. 첫번째로 이건 여자친구와의 귀하디 귀한 데이트 약속을 꼼짝없이 취소해야 했다는 뜻이었으며,  둘째로는 그 덤블도어가 어떤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잔혹한—가령 그의 남학생회장 직책을 박탈한다든지 하는— 벌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내내 속이 더부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드레이코는 기계적으로 음식을 씹으며 오늘 밤 여자친구를 보지 못한다는 가혹하고 짜증스런 현실을 되새겼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학생회장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젠장,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들 거야. 드레이코는 정말이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가 꿈꾸는 장면은 ‘여자친구를 소개하며 당당하고 의젓하게 마주앉은 나와 흐뭇한 기색의 아버지’였지, 살벌한 코브라 지팡이 아래가 아니었다.


“오늘 초상났니?” 팬시 파킨슨이 테이블 저편에서 물었다. “완전 똥 씹은 표정인데.”


“빌어먹을 포터.” 드레이코가 투덜댔다. “점심시간에 싸우는데 덤블도어한테 들켰어. 그 노인네가 우리 둘 다 저녁 먹고 교장실에서 보쟤.”


“이런. 학생회장 딱지 떼일 것 같으면 나부터 좀 띄워줘, 친구.” 블레이즈 자비니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곧바로 돌아오는 드레이코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몸을 뒤로 빼며 손사래쳤다. “제길, 알잖아 그냥 농담한 거야.”


“그래 알아.” 드레이코가 한숨을 푹 쉬었다. 드레이코에게 있어 아버지의 총애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아는 건 블레이즈가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친구가 그 자리를 박탈당하면 닥칠 재앙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으리라.


식사를 마친 드레이코는 슬리데린 친구들과 무리지어 나란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갈림길에서 친구들은 지하감옥쪽으로, 드레이코는 옆의 층계로 향했다. 그 계단의 끝에서 자신을 기다릴 교장실 문짝을 떠올리며 한 발을 올리고 다른 발을 그 윗칸에 올리느라 고개를 든 순간, 드레이코는 자신이 포터 삼총사의 등 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 포터, 론 위즐리. 그리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그가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포터와 위즐리가 뒤돌아 그를 노려보고는 자기들끼리 웽알웽알 툴툴대며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한편 드레이코는 가소로운 입담을 뽐내는 둘을 가볍게 비웃어주고 나머지 한 명에게 시선을 옮겼다. 헤르미온느는 두 친구가 뒤를 돌아보는 동안 같이 뒤돌아보지도 그들이 몰두하는 말포이 까기에 동참하지도 않은 채 그저 걷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그녀가 자기 친구들을 따라 여기까지 같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상대에 대해 진솔히 알아가기보다 일단 노려보기가 먼저였던 기나긴 세월, 저 바보 듀오와 그녀는 그 나날을 함께 어울리며 보냈다. 드레이코로서 몰이해의 7년에 불과했던 지난날이란 시간은 저 세 명에게 있어 각자의 딴판인 면모까지도 뒤로하고 오늘날에 와선 서로에게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주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던 것이다.

드레이코는 말없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삼총사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기묘한 동행은 포터가 교장실 입구 직전 모퉁이에서 나머지 둘과 헤어진 때까지 계속되었다. 드레이코는 주저하며 포터쪽으로 꺾었고, 이윽고 상당히 서먹한 두 십대 청소년은 덤블도어의 문지기인 가고일 동상 앞에 도달했다.


“이제 뭘 해야 돼?” 드레이코가 물었다. 그가 교장실을 방문한 건 교직원들에게 이끌려 왔을 때 한 번뿐이었기에 암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달달한 거 아무 거나 대봐.” 해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해리가 교장실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마다 외쳐야 했던 암호들은 하나같이 간식류 관련이었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그로서도 귀띔받은 바가 없었기에 같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 노인네가 우리한테 그런 암호 같은 걸 줬을 거 같냐.” 각종 마법 사탕과 과자와 초콜릿 이름을 되는 대로 줄줄이 읊기 시작한 해리를 보며 질린 눈으로 불평했다.


“너 정말 그러고만 있을 거야?” 해리가 꼴보기 싫은 금발에 대고 버럭 따졌다. 그도 그럴게 저 잘난 슬리데린은 해리가 1분 가까이 알고 있는 모든 사탕 이름을 대는 동안 단 한 마디도 던져보지 않았던 것이다.


“난 군것질 안 해. 그러니 과자 이름 같은 것도 모르고.” 드레이코가 으쓱였다.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진실이었지만 간식거리 이름을 단 하나도 모른다는 부분은 거짓말이었는데, 순전히 크레이브와 고일이라는 탐욕스런 과자흡입기들과 친구로 지낸 세월 때문에 반강제로 주입당한 감탄사들 덕이었다.


해리는 금발을 한 번 더 쏘아봐주고는 또다시 과자 이름 대기에 돌입했다. 몇 번의 단어가 더 오가고야 가고일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 즈음엔 해리가 머글 래퍼보다 빠르게 주절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진짜 암호가 뭐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고일상 뒤로 돌층계가 나타나자 해리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섰고, 잠시 후 드레이코도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나란히가 아닌 일렬로 교장실로 향한 두 소년이 계단 끝에 올라섰을 때, 둘은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교장실 문간에 기대어 미소 짓는 덤블도어와 마주할 수 있었다.


“들어와라, 들어와.” 덤블도어는 두 학생을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자리에 앉으렴.”


해리와 드레이코는 안으로 걸어들어가 덤블도어의 책상 앞에 놓인 두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두 소년이 가능한 거리를 벌려 앉아 반대편을 보고 있는 광경을 눈치챈 교장은 조용히 혀를 찼다. 고개를 저으며 그는 가까운 협탁에 손을 뻗어 차를 따랐다.


“따뜻한 차 좀 들렴.” 덤블도어가 찻잔 셋을 옮겨와 자기 컵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전 괜찮아요. 안 그래도 저녁 때 한 컵 마셨거든요.” 해리가 사양했지만 두 찻잔은 부드럽게 둘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내가 권하는 거란다.” 덤블도어가 자리에 앉아 안경테 너머로 두 십대 소년을 보며 말했다. “아주 보기 드문 특제 홍차란다. 너희 둘 다 이 기회에 맛보는 걸 추천한단다.”


덤블도어의 눈빛에 마지못해 잔을 집어든 해리가 한 모금 홀짝하더니 열렬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꼴깍꼴깍 마시기 시작했다.


“말포이 군.” 덤블도어가 금발의 슬리데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드레이코는 반박하려다가 학생회장 자리 보전에 관한 걱정을 떠올리고는 관뒀다. 그에게 덤블도어는 전혀 신뢰할 만한 부류가 아니었다. 다만 저 의뭉스러운 늙다리가 자신의 특제 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의 직책을 홀랑 벗겨버릴 불길한 가능성을 차마 배제하지 못한 까닭에 드레이코도 어물쩍대며 손을 뻗었다. 흘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찻잔을 들어올려 작게 맛을 본 결과, 독특한 향취에 곧장 반해버린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더 기울여 적극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 둘의 교우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자꾸나.” 몇 분 안 되어 두 십대 소년이 거의 동시에 찻잔을 내려놓은 걸 확인한 덤블도어가 선언했다.


“저희 사전에 ‘교우관계’란 없는데요.” 드레이코가 빈정댔다.


“그래, 그리고 그게 바로 문제점이지.” 덤블도어가 한숨지었다. “너희 둘 모두 각자 기숙사의 최고 선배들이란 건 알고 있겠지. 당연히 너희가 드러내는 적대감이 모두에게 안 좋은 본보기가 된단다. 이제는 너희 둘이 사이 좋게 지내는 법을 배울 때야.”


“죄송하지만 교수님,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 해리가 말했다. “저희는 서로를 싫어하고 그 사실은 변치 않을 거예요.”


“서로의 삶이 어떤지 이해하게 된다면 변할 지도 모르지.”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너희 둘이 이번 주말에 자리를 바꾸는 건 그걸 위한 거란다.”


“정확히 무슨 뜻이죠, 자리를 바꾼다니요?” 드레이코가 다급히 의문을 제기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주말을 그리핀도르 탑에서 보낼 생각 같은 건 없는데요.”


“선택의 여지가 없단다, 말포이 군. 이미 벌어진 일이야. 내일부터 당장 너희 둘은 자리를 바꾸게 될 거란다.” 덤블도어가 설명하고…… 덧붙였다. “그리고 몸도 말이지.”


“몸이라고요!” 드레이코가 의자에서 튕겨나와 폭발할 것 같은 기세로 교장을 노려봤다. “주말 내내 제 몸을 포터한테 내준다니요!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장담컨대 이건 제가 태어나서 들어본 소리 중에 가장 멍청한 짓거리라고요.”


“멍청하든 아니든 이미 그렇게 될 거란다.” 덤블도어가 금발 소년의 패악질에 눈 깜짝하지 않고 대꾸했다. “밤 사이 의식을 뒤바꿔주는 마법약을 방금 마셨잖니.”


“그러니까 지금 저희가 침대에 누웠다 깨면 서로의 몸뚱이에서 눈을 뜰 거라고요?” 해리가 뒤늦게 물으며 교장에게 고함쳤다. 덤블도어가 종종 괴랄한 뭔가를 벌인다는 것쯤은 그도 알았지만, 이번 건 진심으로 미쳐버린 게 틀림 없었다.


“바로 그거란다.” 덤블도어가 태연히 끄덕여보였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너희 둘은 서로의 몸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 잘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심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너희 둘 모두 이 멍청한 짓거리라는 걸 매주 주말마다 반복하게 될 거란다.” 그러니 빨리 친해지도록 하렴— 덤블도어는 믿을 수 없는 말을 술술 읊었다.


“이러실 순 없어요.” 드레이코가 항변했다. “사람들의 육체를 뺏어서 그리핀도르들한테 던져주는 건 명백히 불법일 거예요.”


“정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덤블도어가 담담히 말했다. “대안으로는 너를 남학생회장 자리에서 해임하고 졸업하기 전까지 남은 한 해의 주말들을 스네이프 교수와의 방과후 구류로 퉁치는 방법도 있단다. 그 편이 더 마음에 드니, 말포이 군?”


“아닙니다.” 드레이코가 자리에 도로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게 끔찍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단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왜, 뭐 숨길 거라도 있어?” 해리가 금발에게 이죽대며 도발하자—


“알고 싶어?” 드레이코가 장난기 가득한 입꼬리로 씨익 웃으며 답했다.


“좋아, 이제 둘 다 진정된 것 같구나.” 덤블도어가 흐뭇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 마법약에는 이 일에 관해 아무한테도 발설할 수 없도록 하는 특제 기밀 주문을 걸어뒀으니 유의하렴.”


“말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해리가 질문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게다.”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다른 궁금한 거 있니?”


“퀴디치는요?” 일요일에 경기가 있다는 걸 떠올린 해리가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외쳤다. “그리핀도르 대 슬리데린 경기가 일요일이에요. 일정을 연기해주셔야 돼요!”


“아니, 그러지 않을 거란다.” 덤블도어가 퀴디치 경기의 중요성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으쓱이며 답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상대방의 팀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구나.”


“전 그리핀도르를 위해 날지 않을 거예요.” 드레이코가 씩씩댔다.


“재차 말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단다, 말포이 군.” 덤블도어가 금발 소년의 계속되는 적대적인 언행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로의 입장에서 경기해보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드레이코가 잔뜩 지친 얼굴로 뭐라고 입을 달싹였지만 더 이상 왈가왈부하진 못했다. 해리는 굳이 한 마디 얹을 생각일랑 진작에 접고 현실을 직시하는 중이었는데, 그 덤블도어가 마법약을 둘에게 먹였다고 말한 시점에서 —그가 애저녁에 마음을 정했으며 그 말인 즉슨 이 일이 무조건 벌어질 예정이며 이미 벌어졌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 된 것 같구나. 이제 각자 기숙사로 돌아가도록 하렴.” 덤블도어가 벌게진 두 십대의 얼굴에 작별인사처럼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해리와 드레이코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교장실을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성의 중심부를 지나 익숙한 복도에 다다랐을 때 해리는 그리핀도르 탑 방향으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느닷없이 팔을 붙잡아 끌어당긴 드레이코 탓에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다시 뒤돌아야 했다. 


“규칙이 필요해, 포터. 내 몸을 차지하고 이틀을 보낼 거라면, 네가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이 몇 가지 있어.” 드레이코가 이어 말했다. “첫째로, 아무 것도 만지지 마. 네 거 아닌 건 손도 대면 안 돼.”


“꼭 내가 니 몸에 손 대고 싶은 것처럼 말하는데, ” 해리가 따졌다. “네 가죽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름끼칠 거거든.”


“동감이야, 포터. 오늘 난 그 앞날을 걱정하느라 악몽으로 날밤을 지새울 예정이니까.” 드레이코가 빈정댔다. “어쨌든 내 조건으로 돌아가서― 둘째로, 내 몸으로 섹스하지 마. 일단 난 오직 한 명의 마녀랑만 자는 데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나와의 잠자리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은데 넌 결코 거기에 부응하지 못할 테니까.”


“걱정 마, 말포이. 난 파킨슨이랑 뒹굴러 갈 생각 없으니까.” 해리가 그 짜증나는 슬리데린 마녀랑 한 이불을 덮는다는 생각에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걘 내 여자친구 아니야. 게다가 테오가 할 말 있다고 불러낼 여지가 농후하거든— 걔가 걔 여자친구인 걸 고려하면 뭐.” 드레이코가 답했다.


해리는 눈앞의 금발 슬리데린이 모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여기는 그 여자애와 자는 사이가 아니란 사실에 무척 당황했지만 순발력을 발휘해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진심으로 그리핀도르 탑에 달려가고 싶어졌다. 앞으로 이틀이나 지하 감옥에서 버텨야 한다면 1초라도 빨리 기숙사 휴게실에서 그리핀도르 친구들에게 파묻혀 최후의 만찬을 누릴 생각이 절실했다.


“그렇게 할게. 대신 너도 내 몸에서 같은 대우를 해주길 바라.” 해리가 말했다.


“좋아.” 드레이코가 열성적으로 동의했다. 애초에 포터의 앙상한 몸으로 침대에서 뒹군다는 상상만으로도 몇 주 치의 성욕이 바싹 말라버리는 기분이었다.


합의를 마친 드레이코와 해리는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드레이코는 자기 친구들과 몇 시간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지하로, 해리도 같은 걸 위해 탑으로. 

둘 중 아무도 이번 주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짖궂은 거짓말을 친 거였다든지 아까의 약이 덤블도어가 어쩌다 실수로 망친 거라 앙숙의 몸으로 48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길 바라는 두 소년이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헛된 희망을 꿈꿀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슬픈 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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