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분량을 추가해서 히어로온에 회지로 나옵니다

곧 인포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손책조조 메인으로 왕윤 짝사랑하는 조조가 소량 나옵니다.

50화 이후에 다시 만난 둘에 대한 망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레히삼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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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 알았어?”

“조심한다니까.”

“난 정말 오빠가 걱정 돼서 죽겠어. 이게 뭐야!”

“미안. 미안.”

“정말.”



동생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물론 그만큼 손책을 아끼니 하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병실에 감금된 채 몇 번이나 검사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나서도 좀처럼 감시의 눈길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밥 잘 먹고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간신히 무술 연습을 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한 번만 더 쓰러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시퍼런 말을 애써 모른 척한다.



“근데 요새 기분 좋아?”

“응? 뭐가?”

“아니 얼굴에 좀 기분 좋다고 쓰여 있는 것 같아서.”

“어? 아, 뭐. 내가 그렇지.”

“그래. 오빠가 행복하면 된 거지. 그게 건강에도 좋대.”

“야, 상향아.”

“난 바빠서 이만.”



이럴 땐 손책도 이길 수 없다. 한참 정신없이 몸을 움직인다. 이럴 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잡음이 끼면 다치기에 십상이라 의도적으로 무술에만 집중한다. 팡. 엄청난 소리와 함께 샌드백이 날아갔다. 곧게 뻗은 다리가 샌드백을 강타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컨디션은 쓰러지기 전보다 좋았다. 상처는 이미 아물어서 아주 약한 흔적만 남겼다.



“…….”



조조 생각이 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이 간다. 손끝에 툭툭 걸리는 상처를 만지면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거기 왜 갔을까. 보통 때라면 특별히 걸어 다닐 장소가 아니었다. 게다가 꽤 일찍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당장 비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부상을 감수하면서 도왔을까. 조조 목소리가 크고 높았는데. 조조에 대한 온갖 자잘한 생각이 들 때마다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내가 미쳤나.”



운동이 모자라서 이러는 걸까. 손책은 복잡한 마음을 운동과 무술로 씻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허리에서 손을 뗐다. 손끝에 뭔가 걸리지 않아야 이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을 거다. 적어도 손책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딱 죽기 전까지 몸을 몰아 부친다. 땀에 푹 절여지고 나서야 힘에 부치는지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



이대로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으면 한다. 손책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느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을 보아하니 오늘 좀 무리한 것이 맞았다. 이렇게 늘어져 있으면 또 동생들이 지나가다 한마디씩 잔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다.



“씻어야지.”



또 만날 수 있겠지. 적어도 이젠 조조가 먼저 도망치지 않는다. 미묘하게 가까워진 거리를 실감하던 손책은 혼자서 괜히 웃는다. 잠들기 직전 이번엔 조조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 녀석이 먼저 연락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설핏 잠이 들었다. 손책이 바라는 소원이 꿈에 하나둘 박히기 시작했다.



“예?”

“…….”

“아뇨.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

“네?”



소원을 들어주긴 했다.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할 무렵 조조한테서 연락이 왔다. 핸드폰 액정에 찍힌 조조라는 이름을 한참 바라보던 손책은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설마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큼. 큼.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자연스럽게 대답을 할 새도 없었다. 물론 그다음에 들린 것은 낯선 목소리와 뒤에 깔리는 시끄러운 소리였다.



“다쳤다고요?”

“네. 근데 이 녀석이 도대체 주변 연락처를 알려주질 않아서 말입니다. 저장되어있는 번호가 몇 개 없어서.”

“…….”

“아이 쪽에 전화할 순 없는 노릇이라…….”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끊기기 전 조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손책의 마음이 급해졌다.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그래도 자신에게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긴 조조 성격에 초선이에게 전화를 할 리도 없었다. 부모 형제는 연을 끊고 사는 눈치였으니 더는 입을 대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쥐여준 번호가 쓸모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허겁지겁 병원으로 들어간다. 예전 기억이 났다. 그땐 자신이 다치고 조조가 부축했었는데, 이번엔 반대였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다쳤기에 이렇게 연락이 오는지. 온갖 안 좋은 생각이 흘러들어올 때마다 애써 부정했다. 조조는 그렇게 약한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왜 왔어.”

“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많이 다친 것도 아니다.”

“…….”

“정말 누굴 일곱 살 먹은 어린애 취급이나 하고.”

“너…….”

“충분히 걸어서 돌아갈 수 있어. 다리는 다치지도 않았고, 머리를 부딪친 것도 아니다.”

“…….”

“내가 정말.”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침대 헤드를 짚고 주르르 주저앉았다. 갑갑하게 뭉쳐있던 걱정이 입술을 타고 왈칵 넘어왔다. 조조는 그런 손책을 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손책은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그게 뭐냐.”

“…….”

“멍에 다 까져서.”

“경찰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치게 되는 일이 많다.”

“그걸 누가 몰라서! 됐다. 그만하자.”

“그래도 와줘서 고맙다. 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왜?”

“뭐?”



조조의 얼굴이 찌그러진다. 손책은 어느새 일어나서 조조를 살핀다. 꼭 자신한테 해줬던 걸 똑같이 할 모양인지 이리저리 옷을 헤집는다. 그런 손길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조조였다. 손책이 다쳤을 땐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여기저기 더듬거렸는데, 막상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자 눈에 보이게 동요한다. 오른팔은 얼마나 다친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깁스를 둘둘 말아서 보조 팔걸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뭐하다가.”

“…알 거 없어.”

“이거 피잖아. 이 꼴로 지금 멀쩡하다고 할 셈인가?”

“그냥 묻은 거라니까.”

“너 정말.”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려 할 때 경찰 동료인 듯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이가 있어 보이니 선배겠지. 손책은 일어나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조조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지만, 말릴 수 없었다. 방금까지 다 잊었던 고통이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친구가 다쳤다는데…….”

“혼자 보내기 걱정스러워서 말이야. 아…저번에.”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입에 침하나 바르지 않고 말을 섞는 손책의 발목을 퍽 걷어찼다. 아야야. 손책이 얼굴을 찡그리며 조조를 돌아본다. 빨리하고 꺼지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이럴 때 괜히 시간을 잡아먹으면 안 먹을 욕도 덤으로 먹을 수 있다. 손책은 이런 상황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잘 알았다.



“제가 데려다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거 고맙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럼…….”

“…뭐.”

“빨리 일어나라니까. 일단 나가자고.”

“…….”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팔을 붙잡고 부축한다. 조조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일어난다. 병원까지 나오는 동안 점점 험악해지는 표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봐서 당장 한 대 치고 싶을 수도 있었다. 손책은 다친 사람을 부축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

“…….”



겨우겨우 직장 동료와 아는 사람이 없는 곳까지 걸어왔다. 휙 돌아보는 조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야. 야. 잠깐만. 손책이 두 손을 들면서 한걸음 물러났다. 한시도 방심을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조조의 표정이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먼저 다가갔다.



“그래도…걱정되잖아.”

“내가 내 직장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전화까지 왔는데…매정하게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냐.”

“…….”

“어떻게 그래.”

“그게 뭐 대수라고…….”

“대수로운 일 아니고. 나한텐 중요한 일이야.”

“…….”

“네 신변에 일이 생겼다는데 어떻게 그냥 넘기겠어.”

“헛소리…하지 마.”

“데려다줄게.”

“됐다니까.”

“그 꼴로?”

“가자.”



조조는 손책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모든 관계가 삐걱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서웠다. 꼭 한 번에 사라질 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밀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손책은 늘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태양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시선이 가는 방향으로 곧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눈에 들어온 사람이 조조였고, 한눈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진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필연이었고, 인연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성질의 둘이 만나서 기묘한 광경을 만들었다. 서로 섞이고 싶어 하면서도 멀어진다.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애초에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 따뜻함을 찾는 겨울은 활활 타는 태양에게 기꺼이 자신의 차가움을 내려놓았다. 둘이 섞으면 봄이 올까. 아니면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식어버릴까.


이 끝은 둘조차도 모르는 미래의 일이었다.




**




“씻는 거 도와줄게.”

“됐다.”

“한 손으로 하려고? 옷에 묻은 걸 봐서 난리일 텐데.”

“그런 거 상관…….”

“머리만 도와줄게. 지금 완전 엉망이라니까. 이 상태로 도원관에 가면 애들 여럿 울리겠어.”

“…….”

“옷부터 벗어봐.”



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조조는 한참 입을 다문 채 손책을 노려보았다. 하긴 스스로 생각해도 꼴이 엉망이었다. 범인을 잡으려고 뛰어나가다 하필 범인이 밀친 자전거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구르면서 팔을 심하게 다쳤다. 게다가 몇 번이라 땅바닥을 굴러서 온몸에 생채기가 났고, 먼지를 뒤집어썼다. 얼굴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날카로운 돌조각에 긁힌 곳엔 커다란 거즈를 댔다. 광대뼈가 욱신거렸다. 당장 눕고 싶은데, 그러기엔 꼴이 너무 더러웠다.



“…….”

“왜 우리 친한 사이하자며.”

“…….”

“뭘 그렇게.”

“너…정말.”

“빨리 도와주고 간다니까. 아니면 아예 여기 자리 잡고 앉아서 깁스 풀 때까지 도와줄까?”

“사양하겠어.”



이런 말엔 대답이 빠르다. 조조는 이 귀찮은 짐승을 내보내기 위해선 하자는 대로 잠깐 어울려주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옷을 벗으려 했는데, 깁스를 하니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팔걸이를 빼고 끙끙 소리를 내며 옷을 벗었다. 찢어지고 피가 묻은 셔츠는 이미 병원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얇은 니트 하나 걸쳤을 뿐이라 벗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거봐. 혼자 하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라니까.”

“농담 그만해.”

“이게 농담으로 들려?”

“…….”

“가자. 그래도 씻고 누워야 좀 낫지.”



욕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자꾸 재촉한다. 조조는 한숨을 쉬면서 앞장섰다. 겨우 이 집에 한 번 들어왔을 뿐인 녀석이 뭐 저렇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알 수 없어서 그냥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욕실 문을 열어주자 손책이 냉큼 들어간다.



“물이 닿으면 안 되니까.”

“…….”

“이걸로 깁스 감고 허리만 숙이고 있으면 된다.”

“역시…내가.”

“자, 자. 빨리 끝내자고.”



무슨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조조는 눈을 찌푸리면서 수건을 받았다. 뭐에 씐 것처럼 시키는 대로 깁스 위에 수건을 덮었다. 욕조 가까이 오자 손책은 물 온도를 가늠하던 손을 저 멀리 쭉 뻗었다. 따뜻한 김이 욕실에 몽글몽글 차오르기 시작한다.



“숙이라니까?”

“…….”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지 마. 내가 이렇게 보여도 동생들 키우면서 자랐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가지 않아.”

“…….”

“내가 정말 어딘가 망가진 것이 분명해.”



조조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몸은 남에게 맡겨본 적이 없었다. 죽을 만큼 아파도 혼자 이겨냈고. 이렇게 다치면 어떻게든 아득바득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위엔 자신이 다쳐도 걱정해줄 사람은 없었고, 괜히 걱정이 늘어날 사람만 가득했다. 그런데 왜 이 녀석 앞에서는 하자는 대로 다 하게 되는지. 조조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뜨거우면 말하고.”

“…….”

“눈감아. 거품 들어간다.”

“…….”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빌었다. 따뜻한 물이 정수리부터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깊고 얇게 긁힌 상처에 물이 들어가자 따끔따끔한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정도로 티를 낼 생각은 없었다. 물줄기는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턱에 맺혔다가 주르륵 떨어진다. 따뜻한 물로 머리를 적시고 샴푸를 덜어내서 조심스럽게 거품을 낸다. 머릿속에도 상처가 있는 모양이었다. 툭툭 걸리는 아픔이 느껴졌다.



“괜찮아?”

“…….”

“괜찮지? 빨리 끝낼게.”

“…….”



고개를 약하게 끄덕인다. 샤워기를 다시 들고 거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퐁퐁 올라오는 익숙한 향기가 코를 스친다. 잔뜩 긴장한 몸에 따뜻한 물과 공기가 닿자 순식간에 졸음이 밀려왔다. 커다랗고 굳은살이 배긴 손이 나름 섬세하게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거품을 털어냈다. 거품이 물줄기에 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헹군다. 거품이 타고 내려오는 부분마다 상처가 있어서 알싸하게 아팠다.



“잠깐만.”

“…….”

“수건 좀 가져와서.”



큰 수건을 머리에 푹 덮어쓴 꼴이 된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털어내곤 이제 허리를 펴라고 웃었다. 아무리 봐도 멍청한 놀음이었다.



“머리도 마저 말려줄게.”

“난 당장 내일 병원에 가야겠어.”

“…왜? 아픈가?”

“내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야.”

“농담은…….”

“…….”



조조는 그제야 팔에 감고 있던 수건을 풀었다. 뿌연 김이 서린 거울 가운데 흐릿한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거울 속의 조조는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날 보면 뭐라고 할까. 잡념은 물줄기와 함께 흘러가길 바랐지만, 그리 쉽게 사라질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랬다면 지금 머릿속은 아주 깨끗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조조의 아쉬움이 욕실에 뚝뚝 떨어졌다.



“그건 내가 해.”

“가만있으라니까. 강동의 호랑이를 믿어.”

“정말…못 믿을 말만 골라 하는 군.”

“뜨거우니까 눈 감고 있어도 좋고.”

“…….”



어디서 찾아왔는지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싱글벙글 웃는다. 내가 저걸 쓰고 아무 데나 던져뒀었나. 아니면 저 녀석이 코가 발달한 건가. 조조는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기로 했다. 침대에 걸터앉자 머리카락 끝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작고 짙은 얼룩을 만들면서 뚝뚝 떨어졌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조조는 어이없다는 듯 픽 웃고 말았다.



“…….”

“…….”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침실에 울려 퍼진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단번에 말라간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정수리를 헤집던 손이 어느새 뒷머리를 말린다. 조조는 그 손길이 꼭 누구와 비슷하단 생각을 한다.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전혀 닮지 않았다. 활활 타는 손바닥이 지나가는 곳 마나 빨갛게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았다. 앞머리를 말리는지 뜨거운 바람이 눈꺼풀에 느껴졌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뭐야.”

“…….”

“너.”



또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드라이어가 꺼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손책이 조조의 입술을 쓸었다. 그러더니 입술에 입술을 겹친다. 놀라서 굳어버린 조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쪽 팔은 대차게 다쳤고, 다른 손은 손책이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불덩이 같은 입술에 차가운 피부가 닿았다. 사람이 이렇게 차가운 줄 알았으면, 좀 더 따뜻하게 해줬을 텐데. 손책은 조조의 입술을 맛보여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조조의 눈이 커진다.



“…….”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책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보송해진 머리카락 밑으로 길고 창백한 목이 보인다. 손책을 자신도 모르게 조조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그리고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졸지에 남자 품에 안긴 조조는 팔이 틀어질까 봐 멋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팔…….”

“잠시만.”

“…….”

“좋아해. 조조.”

“…….”

“내 심장이 역시 널 좋아하는 것 같아.”

“…….”



호랑이의 눈빛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을 여기에 쓰면 되는 걸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담은 눈동자가 조조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았다. 손책이 코가 목덜미에 닿았다. 꼭 뭔가 새기는 것 같았다. 조조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세상을 재미없이 살아온 조조는 이런 쪽에선 약간 느린 편이었다.



“넌 어때?”

“난…모르겠어.”

“싫진 않지?”

“…….”

“그럼 됐다.”



조조는 그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이 정도로 됐다니. 정말 괜찮은 걸까. 하지만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답해야 하는데, 그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내가…이런 걸 잘 모른다.”

“알아. 그걸 포함해서 좋아한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도 아니야.”

“그렇지 않다.”

“…….”

“난 알아.”

“…….”

“알 수 있다. 충분히 느낄 수도 있고.”

“정말…바보 같아.”



그럴지도 모르지. 손책이 품에서 조조를 떼어낸다. 조조의 화법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조조는 한쪽 팔이 망가진 초라한 모습을 하고 눈앞의 호랑이를 바라본다. 우린 어디가 닮았을까. 조조는 정말 알고 싶었다.



“그래서 널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



이번엔 손책의 두 손이 볼에 닿았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돌려 입을 맞춘다. 천천히 꼭 잡아먹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이대로 심해로 떨어진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영원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물흐물 녹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가빠지면 입술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다 다시 붙어왔다. 입술이 퉁퉁 부을 거 같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쯤은 조조도 상관이 없어진다. 조조의 입술이 조금 열린다. 그리고 한참 감고 있던 눈이 조금 휘어지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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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에 몇가지 보고싶은 것과 에필로그만 남겨두었습니다

히어로온에 신간으로 수위는 전연령과 금수본 중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마 제가 개인적으로 금수본으 ㄹ가지고 싶어서 두가지 버전으로 준비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그렇게 재미있게 야한 부분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보고싶은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쬬 좋아하시거나 혹은 읽어주신 분들이 모두 마음에 드셨길 빕니다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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