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힉힉

노래들으면서 씀요





하루를 너 하나로 채우는 날에는 오로지 나로만 채운 날 보다 더 만족감을 느꼈다.

그 안에 나 자신이라고는 지금 내가 닦고있는 타자기 위에 얹힌 먼지만큼도 되지 않았다.

너의 이야기 속 공통점이라곤 모두 과거 속의 그림과, 나에게 들려주는 그 훌륭한 소설 속에는 옥에 티 하나 없는 멋진 왕자님이 항상 한 명 등장했으나 나에게는 그가 결국 목에 걸린 독사과를 빼내주지 못한 비극의 백설공주 이야기 속의 조연인것만 같았다. 

나에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항상 나의 옆에서 운명을 이야기 해줬던 그 50cm밑 난쟁이였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야 하는 애정까지 전부 너에게 빼앗겨 버렸기에 나로만 채우는 하루는 당연도게도 텅텅 비고 허전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저질러야만 한다. 아무리 유창한 계획을 몇 날 며칠을 세워도 한 순간의 고민에 의해 와장창 무너질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연습의 연습을 반복 하는 동안 너는 내 앞에 인형이 되기도, 의자가 되기도 했다. 태어나기를 소름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 따위는 절대 유창하게 하지 못 할 성정이었지만, 평생 내 진심을 전하지도 못한 채 어물쩡 넘어가 타고나길 왕자에게 빼앗겨 버리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 드라마의 해피엔딩이었다. 

너로 물든 하루의 색이 바래 점차 나의 향기까지도 바꿔버리면 가만히 자려고 누웠을 때에도 가끔 그 향기에 놀라 푹신한 이불에 숨이 멎을 듯 코를 박아버리기도 했다. 너는 네가 없을 때에도 나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너의 모든것이 궁금해질 즈음 나는 오로지 나로만 살고 있기에 힘이 든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밤이 수없이 지나갔다. 

설탕가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커피가 달게만 느껴졌다. 사실 맛은 혀가 아니라 감정으로 느끼는 게 맞는건지, 어쩐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에서도 아무 맛도 안나더라니.  누군가의 할머니가 어렸을 적 잠들기 전 난로 앞에서 해준듯한 동화같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너는 언젠가 나에게 자신은 그저 담백한 우유향이라고만 말 한 적이 있었다. 오히려 달콤하다면 그건 나라고. 예전에는 그런가 수긍했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네가 지금 내 앞에서 마시고 있는 그 라떼위의 설탕 가득한 휘핑크림보다 더 향긋하다고

마음 속으로는 수 십 수백 번 했을 법한 그런 손발이 우그러드는 말을 이번에도 들리지 않는 확성기 안에서  시끄럽게 외치고는 물탄 에스프레소를 뜨거운지도 모르고 벌컥 벌컥 마셔제꼈다.  혀가 데여 입 밖으로 줄줄 흘리면 너는 말캉하게 웃어주었고 그 짧은 웃음으로 목구멍 뒤로 넘어가지도 않은 커피는 내 속에 작은 화상을 입혔다. 눈을 거두기 힘들게 하는 웃음이었다.

네가 나의 고백을 알아차렸던 적이 있었다. 너와 나의 하루를 끝내려 하늘이 저물어버리고 우중충한 구름 너머로 함께 차던 축구공이 사라져 버렸던 때. 시계토끼를 찾는 듯한 앨리스들 마냥 손 위의 작은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해 수풀을 헤치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낡은 금빛 머금은 천변속에 들어가 시선을 빼앗겨 버렸던 그 어느 날의 오후 8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같다며 공놀이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반짝이는 단어만 잔뜩 내뱉어 나를 감쌌을 때. 물컹해진 마음이 투명해져 물빛에 드리워짐을 손바닥 하나로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적에는 이미 두 그림자가 겹쳐진 후였다. 누가 먼저였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조금 당황스러우나 떨어진 나를 잡아 다시 붙인 너의 행동에 각자 한 번씩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고 안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은 두 인영은 하염없이 그날의 물 위를 걸었다.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을 법한 삼류 로맨스스토리라고 지루해한다면 조금 섭하기에 너에게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를 읊고 싶지 않다고 슬쩍 떠봤던 적이 있었다. 그 극단의 주연이 너와 나인데 어떻게 뻔할 수 있느냐며 되돌아온 기름 잔뜩 바른 말에 나는 느끼하지 않은 척 억지로 답을 삼켜냈다. 우유를 계속 흔들면 버터가 된다는게 사실이었다고 그 앞에서 우욱거리며 청승을 떨어보았으나 그마저도 웃기다며 등짝을 팍 팍 때려대는 너였다. 

그치다 말 거라던 비에 기다리다 지쳐 운없게도 가장 바람이 거세게 일던 때에 빗속을 헤매며 요 앞이 내 집이라고 달렸던 골목에 흠뻑 젖은 두 사람분의 발에 채인 물방울이 흩어져 울렁였다.  한겨울이 아니면 틀지도 않았던 보일러를 끝까지 돌리고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고 있으면 먼저 몸을 덥혔던 너는 사이즈가 조금 작은 내 옷에 몸을 구겨넣고 정돈되지 않은 책꽂이를 뒤적거리며 새로운 기억을 쌓아갔다. 일기같은 걸 쓰는 성격은 아니었던 터라 흑역사라 할 만한 웬수는 없었지만 혹여나 웃음거리가 될만한 꼬투리가 잡힐까 방금 씻은 등에 오싹한 식은땀이 송골거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웃음으로 인해 방울져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창 밖은 칠흙같이 어두웠으나 네 웃음 하나로 온 세상이 밝아질 것 같았다. 아니, 밝아지는 건 내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이 감정의 정의를 내려야만 했다. 



"야"



머리가 엉키는 줄도 모른 채 손 끝으로 박박 긁으며 눈을 피했다. 여과없는 감정은 그저 뜨거운 물에 원두를 풀어 텁텁한 가루가 목구멍에 그대로 껴있는 듯 불편했지만, 그래. 앞에 드리운 그림자가 오히려 용기가 되어 





"나 너 좋아해."







생각 뱉고 아무거나 좋아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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