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한밤중에 시작된 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다. 해준은 멍하니 블라인드가 걷힌 창문 너머를 보았다. 언제나 사무실을 지켜주던 건물 너머의 광고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거대한 회벽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 날 밤 이후, 은영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 문제가 남아 있어, 몇 번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일부러 받지 않는 것이 훤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가야 하는 것은 자신인데. 집을 사들인 것은 은영이었으므로.

“고 검사님……. 어디 아프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광고판 간 게 신경 쓰이시는 거면…….”

“아닙니다. 신경 안 쓰입니다. 그냥 잠을 조금 못 자서 그럽니다.”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해준의 눈 밑이 거뭇했다. 은영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던 손의 떨림에 해준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걸로 되었다.

분명 잠시만 이대로 앉아 있자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날이 밝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 밤도, 그 다음 날도 해준은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침대에 눕자 비어있는 옆자리가 생소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인데, 이상하게도 해준은 그 옛날 반지하에서 살던 때가 생각났다. 파격적인 데뷔로 첫 작품부터 바빠진 탓에 자주 혼자 남겨지던 나날들.

그때마다 해준은 조용히 은영의 소파베드에 누워 그의 담요를 끌어안곤 했다.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약속처럼 은영이 곁에서 웃고 있었다.

해준은 비어있는 옆자리를 응시했다. 습관처럼 그 자리를 손으로 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이제는 하면 안 되는 짓이었다. 어차피 또 차가울 터였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그 날의 은영이 금빛으로 웃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지. 맞아, 꽃처럼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지금도 거짓말처럼 그 향이 코끝에 맺히는듯해, 해준은 몸을 돌리고 시트를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어김없이 그대로 날을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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