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르, 잠시 이리 와 봐.”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이 왜 이곳으로 불린 줄도 모르는 샤마르의 손을 박사가 붙잡아 끌어당겼다. 하긴, 박사와 샤마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기간은 좀 되었지만, 갑작스레 이렇게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작전 때 얼굴을 마주 보거나, 광석병 환자 개개인의 컨디션 확인을 위해 챙겨주는 일은 있었지만, 이런 적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박사는 샤마르를 자신의 앞에 세워두고 가져온 줄자로 이곳저곳의 수치를 재기 시작했다. 신장이라거나, 어깨의 너비나, 팔의 길이와도 같은 곳을 말이다. 데이터상의 자료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측정해둔 게 남아 있었지만, 어린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자라고는 하니깐. 


 “이걸로 됐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박사.”

 “우리 아기 옷 사주려고 했지.”

 “옷? 나는 이대로도 괜찮아…….”


 자신의 불타버린 흔적이 남아있는 옷자락을 들춰보면서, 샤마르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말했다. 아이의 옷은 구멍이 뚫려있거나, 심하게 찢어져서 해져있는 부분이 있거나, 아……, 생면부지의 타인이 본다면 식겁할 정도로 옷의 짜임새가 이상하다거나, 했다. 박사는 항상 그게 신경 쓰였다. 샤마르가 살아온 배경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르게 자라 특이한 옷을 입고 있어도 참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박사는 샤마르에게 꼭 따뜻한 옷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어른으로서 어린아이를 대하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였다.


 “그게 안 된다는 거야.”

 “……왜?”

 “곧 날씨가 상당히 추워진다고 했어. 계속 이렇게 바람이 숭숭 지나다니는 옷을 입고 다니면, 감기에 걸리고 말 거야.”

 “응.”


 샤마르가 박사의 의중을 파악했다는 듯 짧게 답했다. 여전히 본인은 자기가 입고 다니는 옷에 별다른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박사의 호의를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말이 적고, 감정표현도 풍부한 편이 아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다니는지 도통 파악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적극적으로 조르지 않아 오히려 걱정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샤마르가 박사에게 요구한 건 불온하기 짝이 없고 주술에나 쓰일 법한 물건들이었다. 붉은색 사과, 양초, 오래된 천, 묵어서 딱딱해진 빵……. 박사는 여타 다른 아이들의 절반만이라도 샤마르가 누려야 할 마땅한 혜택을 받아 가며 살아갔으면 하고 계속 소원하고 있었다. 평범한 장난감과 따뜻한 어른들의 웃음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걸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럼, 박사는 갖고 싶은 거 없어?”

 “응……?”

 “나도 하나 줄게.”

 “무언가를 바라고 선물하는 건 아니야.”

 “주술은 욕망에 반응해. 결과를 되돌려받지 못한 인간은 실망해버려. 박사가 실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

 “그거랑 그건 다르지!”

 “아니야. 똑같아.”

 “곤란하네…….”


 당연하지만, 애초에 샤마르에게서 뭔가를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로 악의 가득한 어른도 아니었고, 정말 박사 본인의 호의로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난 그냥, 따뜻해진 너의 기분을 받고 싶어.”

 “응……. 준비해둘게.”


  되돌아온 건 조삼모사와 비슷한 답이었지만, 샤마르는 박사의 바람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본인조차도 모호하게 내놓은 답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박사는 의문스러워하며 이제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허물없이 호의를 받는 게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닌가, 과잉 해석일까…….

 하지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샤마르가 따뜻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거였다. 본인이 행복할지 아닐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지금 입고 다니는 그 옷보다는 두꺼운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모르테가 변덕을 부려 태워버린다고 해도 몇 번이나 계속 사 줄 용의가 있었다. 그 정도로, 박사는 샤마르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박사가 준비해준 옷을 샤마르가 직접 입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직접 옷을 제작한 것도 아니고 사이즈에 맞는 기성복을 사다주었을 뿐이다. 원한다면 그날 바로 외출하여 구입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여러 물건을 직접 보고 신중하게 선택했다. ……좀 많이 산 것 같았지만 그건 제쳐두기로 했다. 박사는 샤마르에게 스웨터를 입혀주고, 아직 조금 헐렁한 코트의 단추를 채워주었다.


 “여기 옷에 달린 모자에, 지퍼가 있어서……. 이렇게 하면 귀를 뺄 수 있어.”

 “응.”

 “마음에 들어?”

 “아무렇지도 않아. 움직이는 데 불편함도 없고, 모르테도 싫지 않대.”

 “다행이다…….” 박사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사, 조금만 여기서 기다려 줘.”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올 거야?”


 안타깝게도 박사의 물음은 샤마르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내심 기뻤다. 물론, 샤마르는 박사의 선물에도 웃거나, 환호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호의를 거절 없이 받아들인 반응에 가까웠다. 박사에게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이젠 종잡을 수 없는 모르테의 변덕만 조심하면 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박사의 코앞에 모르테가 나타났다. 아니, 이건……. 모르테를 닮은 인형이었다. 진짜는 지금 이걸 건네고 있는 샤마르의 옆에 있었다.  이 인형은 낡지도 않았고, 솜이 삐져나오지도 않았다. 박사가 만졌을 때 다치지 않도록 이상한 칼이나 못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모르테의 분신이야. 잘 간직해 줘.”


 샤마르가 들고 다니는 인형이 보통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있었으니, 걱정을 할 만도 했으나…… 모르테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 기분 탓이다. 박사는 샤마르가 준 선물을 소중하게 받아서 들었다. 이건 저주 인형이 아니었다. 마음이 따뜻해진 샤마르가 박사에게 건네주는 한 줌의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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