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만녕은 품속에 서늘한 금속의 기운을 느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처소로 걸어 나갔다.

끼이익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미 낡고 퇴색된 홍련수사 바닥은 초만녕의 발걸음에 따라 스산히 비명을 질렀댔고 초만녕은 그런 소리에 깜짝 놀라 침상에 고요히 누운 '그 사람'을 쳐다 보았다.

짙고 힘 있는 눈썹, 오뚝한 콧날과 균형 있게 자리 잡은 입술... 그리고 어딘가 스산해 보이는 창백한 피부색, 하지만 초만녕은 알고 있었다.

저 사람이 한번 웃음을 지을 때 그의 얼굴에는 보조개가 올라가고 해맑게 웃는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선군! 선군! 저 좀 봐주세요"

'윽'

초만녕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 잡았다.

'뭐지...?'

기억 속의 그는 초만녕의 눈앞의 사람과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좀 더 어리고 앳된 얼굴..

이런 기억, 초만녕은 모르는 것이었다. 

그와 묵연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바다에서가 처음이 아니었단 말인가..

초만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습해 오는 두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귓속에서는 계속해서 묵연의 앳된 목소리와 작은 요괴의 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을 배회했다.

"저... 좀 봐주세요"

"당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세요."

"저... 좀...."

"...돌아오세요."

"저..."

그러는 사이 초만녕의 손에는 언제 모를 단검이 들려있었고 그는 무언가에 씐 듯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콰과광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어째서일지 모를 천둥·번개와 빗방울들이 속세의 땅을 가를 듯이 퍼 붓기 시작했다.

마치 이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듯이...

비릿한 피 냄새가 방안을 가득 들이 미웠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초만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머리를 연신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그러는 그순간, 초만녕의 손목을 누군가 홱 붙잡고는 그를 당겨 안았다.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 누군가가 저를 당기는 바람에 초만녕은 반항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그 누군가에게 안겨지고 말았다.

비릿한 혈향이 더욱 짙어지고 축축한 액체는 그의 옷깃과 손을 연신 적셨다.

그리고 그의 머릿가 위로 잔잔한 목소리가 들렸왔다.

"괜찮다... 괜찮아."

그 바보개는 자신의 심장이 찢어진 것도 모르는 지 연신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만녕"

그 바보개는 자신의 심장이 찢어진 것도 모르는 지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초만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 부 터 그러고 싶었다는 듯이.

초만녕은 그의 손길이 한번 두번 저에게 닿을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고 그러는 동시에 그는 강한 인력에 이끌리 듯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또한 느꼈다.

그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반항 할 수록 운명의 흐름은 그를 아득히 깊은 저 식해 밑으로 그를 끌어 당겼다.

.

.

.

때는 한창 꽃이 아스란히 필 무렵, 

산등천은 해당화를 비롯한 각종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꽃들이 휘날렸고 맑은 강물은 산의 힘줄이라도 되는 양 힘차게 그리고 저가 살아있음을 연신 뽐내며 자연히 흘러갔다.

초만녕은 강물 옆 해당화 나무 아래에서 눈을 감은 채로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부여 잡으며 외쳤다.

"선군, 선군,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고요. 저 좀 봐주세요."

초만녕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는 순간, 초만녕은 해당화 나무에 머리를 '콩' 하고 부딪쳤고 그 바람에 그 어린 소년과 초만녕 사이로는 해당화 꽃잎들이 한장 두장... 떨어져 내렸다.

소년의 시선은 잠시 떨어지는 해당화를 따라갔다 이내 다시 초만녕을 보며 다시 한번 더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이쿠, 괜찮아요?"

초만녕은 그 소년의 말에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서는 이번에는 조심히 뒤로 한 걸음을 물러가며 소년을 향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 너 내가 보여?"

소년은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초만녕이 한걸음 뒤로 물러감에 따라 저는 한걸음 그에게 다가가 이였고 그의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물어요? 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잡을 수도 있어요."

초만녕은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온기에 두손이 화상을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이 소년의 손을 뿌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신선... 신선님의 손을 누군가 잡았어!]

하나 이윽고 흐르는 강물 옆에서 몇몇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초만녕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방금까지 있던 소년을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벗어났다.

초만녕, 그는 영물이었다.

그것도 이 산 한 등천을 짊어지는 신선으로써 그 본 모습은 화려한 금빛이 어우러진 잉어다.

따라서 본래 평범한 인간은 그의 진신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건만... 그 이상한 소년은 저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잡기까지 했다.

초만녕은 일생을 살며 이런 황당한 경우도... 그리고 남이 저에게 이렇게까지 다가와 준 것 또한 처음이었다.

산을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 또한 그를 보고 느낄 수는 있었으나 감히 누가 산의 신선과도 같은 초만녕의 곁에 설까.

감히 그 누가 초만녕에게 그리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손을 부여잡을 수 있을까.

그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 신비로운 소년을 제외하고는.

초만녕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방금까지 저가 도망쳐 나왔던 그 자리를 향해 돌아갔다.

마치 미련인듯.

하나 소년은 이미 그 자리에서 떠나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만녕은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다."

그는 그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런 일쯤이야 많이 익숙하지 않았던가? 그는 너무 못났고 또 너무 성격도 좋지 않았고... 또...

그러다 그는 곧이어 이 산에 익숙지 않은 반짝거림을 보았다.

초만녕은 그 반짝거리는 것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도 날카로운 단검이었고 그 밑으로 찢어진 천 종이가 달랑 거리며 나무에 단검과 함께 박혀있었다.

이 검의 주인은 아직 글을 다 깨우치지 못했는지 천에는 글 대신 요상한 낙서와 함께 짧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검을 던지는 아니... 잃어버린 건가? 그리고 그 검을 다시 키 작은 사람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그 키 작은 사람의 머리 위에는 지렁이가 흘러가듯이 이렇게 적혀있었다.

-묵연

그리고 조그만하게 이렇게도 적혀있었다.

-추시

아마도 축시(丑時)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

초만녕은 저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짝 눈이 부드러워졌다.

과연, 다음날 축시가 되자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날은 몇해가 지나도록 계속이어졌다.

이 기이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판타지와 동양풍을 좋아하고 중벨을 좋아하는 독자 1호. 읽을만한 책이 없어서 내 취향대로 글을 적는 사람.

파라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