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분명 금단현상이야... 

갸토.. 갸토.. 갸토 가고 싶어!!! 아아아아악!!!!"


벌써 2주째 갸토와 굿바이 중인 야오왕이 당이 떨어졌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동료 검사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지지 않는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놀리려는 건지 양예밍이 도통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고백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피해 다른 디저트 전문점에도 가보았지만 저는 이미 갸토의 노예. 필요 이상의 단맛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그곳의 디저트가 먹고 싶은 거다.






급기야 되도 않는 변장을 하고 갸토 앞을 기웃거렸다. 주말이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럼 뭐하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자, 사장 아저씨가 아니라 저 빌어먹을 호로자식인데.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누군가 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마야!!!"


"뭐해, 왕이?"


"ㅇ, 아저씨.. 깜짝 놀랐잖아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양예밍을 보고 조마조마해진 저가 결국 놀라 소리 지르고 말았다. 


"그 이상한 모자는 뭐야? 날도 꾸물한데 웬 선글라스?"


"신변 보호라구요!!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세요!"


말할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절대. 네버. 여자 취급당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뭔가 굳은 다짐을 한 듯한 야오왕이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 돌아서는데 뒷목덜미를 또 잡혔다. 


"아저씨. 저 진짜 가봐야 해요. 이것 좀 놔주세요."


── !!






ㅇ, 야.. 양예밍!! 


잡힌 목덜미를 놔 달라며 뒤를 돌았더니 제 눈앞에 있는 건 양예밍이었다.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다 목소리에 힘을 실어 놓으라고 말했다. 저를 벽 쪽으로 몰아세우더니 그제야 제 뒷목을 놓아 주었다. 그의 손이 서서히 제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놀라 자라 목 빠지듯 뒤로 얼굴을 쭉 빼자 그가 왼손으로 제 뒷목을 감싸고 오른손을 마저 뻗어 선글라스를 벗겼다.


"이거 뭐에요? 나랑 숨바꼭질하고 싶었어요?"


재밌다는 듯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양예밍이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야!! 이거 못 놔!!! 놔!!! 놓으라니까!!!"


아침부터 바득바득 신경질 내는 저와 그런 저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양예밍. 제 뒷목을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는지 그 상태로 아버지께 먼저 들어가시라 하고는 저를 더 몰아세웠다. 


"여태 나 피해 다녔어요? 2주가 넘도록 어떻게 얼굴 한 번 안 비춰요? 진짜 보고 싶었어요. 

아, 그리고 그날. 나 고자 됐으면 지금 이렇게 뒷덜미 잡고 있는 걸로 안 끝났어요, 야오왕 씨."


'고자'라는 단어에 그날이 또 떠올라 열을 냈다.


"이거 안 놔? 또 차이고 싶어!!? 진짜 고자로 만들어 버린다!"


"나 분명히 말했어요. 좋아한다고. 놀리는 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세게 차고 가면 어떡해요? 그러다 나 고자 돼서 연애 못 하면 정말 평생 같이 데리고 살아주려고 그랬어요?"


말을 마친 양예밍이 저가 생각해도 제 말이 웃겼는지 킥킥대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진짜 그랬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랑 살아줄 거잖아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계속 가게에 오지 않을 생각이냐고 묻는 그의 말에 야오왕이 대꾸도 없이 뚱하니 있었다. 그게 또 귀엽다며 막 웃더니 '진짜 진짜 좋아해요.' 라고 말했다. 귀엽다는 말에 혼자 빠짝 열이 올라 야오왕의 얼굴이 또다시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도망갈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겠는가, 목덜미는 아직 붙잡혀 있는데.


"우리 딜 해요. 신작들 당신 위한 거니까, 당신이 몇 개를 고르든 무조건 공짜-

이 정도면 엄청 좋은 딜 아니에요? 나 이거 손해 보는 거예요."


공짜란다. 신작은 무조건 공짜란다! 갈등하며 흔들리는 제 눈동자를 캐치한 그가 말을 잇는다.


"여기 직접 와서 먹으면 밀크티는 서비스-"


"콜!"


아─…

대답하고 바로 저의 멍청함에 절로 도리질 쳤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그렇지,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순박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요 어머니!!


그렇게 둘의 오묘한 계약이 성립되었다.











하아─ 

갸토에 올 때마다 양예밍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게 이거다. 신작들의 이름. 저가 그때 음흉한 이놈의 딜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이름만 아니면 덜 민망할텐데..' 


처음 시작은 '백설 공주'였다. 워낙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저라, 볼 때마다 백설 공주가 생각난다며 지었단다. 빨간 케익 무스 위에 슈가 파우더를 뿌린 디저트로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다. 빠알간 무스가 치명적으로 붉은색이기에 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다음은 '왕 검사'. 검사의 이미지를 내기 위해 씁쓰름하게 만들었다나 뭐라나. 단맛 없는 코코아 가루에 바나나로 살짝 단맛을 더한 쓰디쓴 브라우니. 브라우니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의 독특한 브라우니였다. 손님들이 검사면 검사지, '왕 검사'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매번 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연출되곤 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수시로 제 손을 만지며 꾹꾹이를 하거나, 귀에 대고 좋아한다고 속삭였다. 손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귀에 입김이 전해질 때면 심장이 아파왔다. 간질간질하면서 소름 돋는다고 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저는 도망가기 바빴고 그는 웃으며 저를 쫓아오기 바빴다. 











느지막한 일요일 아침, 브런치용 케익을 사러 갸토에 들렀다. 들어가기 전 유리창을 통해 본 아저씨와 양예밍의 모습이 왠지 심각해 보였다. 


챠랑─ 


"저 왔어요." 


"왕이 왔니?" 


"둘이.. 왜 그렇게 심각해요?" 


"신작에 이상한 이름을 갖다 붙였지 뭐야." 


여태까지 그의 안타까운 작명 센스를 보고도 뭐라 하지 않던 아저씨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도대체 무슨 이름을 붙인 거냐, 양예밍!! 


"이게 어때서요? 디저트 만들 때 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만들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이게... 

너 요즘 욕구불만이야?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하─ 정말.." 


욕구 불만.. 한동안 잠잠...? 왜 내가 다 두려워지는 건데... 


둘의 대화를 듣다 처음 보는 디저트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아마 신작이겠지. 치즈케익 같아 보였다. 제일 밑층에 새까만 초코 쿠키 층, 그 위로 도톰하게 올려진 짙은 색의 크림치즈. 일반 크림치즈와는 다르게 검붉은 빛이 도는 보랏빛인 걸 보니 블루베리를 갈아 크림치즈와 섞은 듯했다. 그리고 그 위를 완전히 덮은 야하도록 영롱한 붉은 색의 라즈베리 시럽. 잼 같은 밀도의 끈끈한 시럽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의 치즈케익이었다. 색 조합이 오묘해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거에요? 분위기가 좀 색다르네요. 이름이 뭔데 그래요?" 


"오르가즘." 


── … ? 






"네?" 


저가 잘못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오르가즘'이요.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양예밍의 대꾸에 웃어야 하는지, 미쳤다고 아저씨 편을 들어야 하는지 고민됐다. 아저씨 말마따나 이 녀석이 진짜 욕구 불만이라면.. 그 이름을 신작에 붙인 거라면... 


그것은 나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세지. 


이 미친 자식이 정말!!! 


"아저씨. 이건 절대 진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번 신작은 없는 걸로 할까 봐요? 하하하하" 


저가 어색하게 아저씨를 설득하자, '이건 제 뮤즈를 위한 거예요. 그러니까 신경 끄세요.' 라고 말을 마친 그가 '오르가즘'이라고 적힌 작은 카드를 신작 앞 진열대에 꽂는다. 


그래.. 너의 뮤즈 여기 있다... 이 자식아.











챠랑─


"어서 와요. 

…? 피곤해요?" 


하품이 새어 나와 눈물이 맺혔다. 손을 들어 눈을 비비자 피곤한 기색을 눈치챈 양예밍이 물어왔다. 


"응. 어제 야근 너무 오래 해서." 


어젯밤 거의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씻고 뭐 하다 보니 2시. 피곤함에 절어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10시가 넘어있었다. 대충 세수만 하고 패딩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상한 일상이 되었지만 토요일 브런치를 이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아저씨와 양예밍, 그리고 나 이렇게 한 가족처럼 매주 한 끼를 함께한다. 단 걸 좋아하지만 저를 위해 따로 만들어 주는 달지 않은 프렌치토스트가 너무 맛있다. 


" ── ? 오늘 가게 문 안 열어?" 


"우리 올라가요. 오늘은 위에서 먹어요." 


무슨 일인지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다. 문만 열면 나던 단내가 안 나서 섭섭할 지경이다. 말을 마친 그가 입구로 가 문을 걸어 잠근다. 


"올라가서 먹어?" 


갸토 건물의 2층은 양예밍네 사옥이었다. 주방과 연결이 되어있어 주방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사옥 현관문이 있는 그런 구조. 매번 카운터 안쪽에서 먹다가 사옥에 처음 발을 들이려니 어색했다. 저가 쭈뼛거리며 주방에서 서성이자 그가 제 팔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와- 진짜 현관문이 또 있잖아..?' 


"들어와요." 


그가 문을 열고 저를 안으로 끌었다. 집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것은 벽면을 채운 액자들이었다. 작은 액자서부터 큰 액자까지 다양한 크기의 액자들이 걸려있었다. 다 아저씨와 양예밍이 함께한 사진들. 아주 꼬맹이었던 시절부터 최근 사진까지 주욱 붙어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엄마가 빠진 사진들이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훑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선이 간 곳은 거실 탁자 위에 올려진 양예밍 졸업식 때 사진이었다. 파티쉐 학교 졸업 날인지 학사모를 쓰고 한 손엔 졸업장, 한 손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여전히 엄마의 모습은 없었다. 


저가 사진을 보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부엌 입구에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저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 둘러보고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팔을 풀고 주방으로 들어가 가스레인지에 위에 팬을 올리고 불을 붙였다. 미리 달걀과 크림을 섞어 둔 볼을 냉장고에서 꺼내 옆에 두고 프렌치토스트 빵을 도톰하게 잘랐다. 달궈진 팬에 버터를 잘라 올리자 지직─ 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네모나던 버터가 형태를 잃었다. 달걀 크림 볼에 자른 빵을 깊숙이 넣었다 빼 바짝 뜨거워진 팬에 올렸다. 늘 가게 주방에서 만드는 것만 보다가 협소한 가정집 부엌에서 만드는 걸 보고 있자니 새로웠다.


"거기 접시 좀 줄래요?" 


식탁 위에 놓인 동그란 접시들을 그에게 건넸다. 노릇하고 폭신하게 구워진 프렌치토스트를 접시 위에 얹고, 베이컨 네 조각을 팬에 올려 잔열에 굽는다. 토스트 위 가장자리에 베이컨 두 조각을 올리고 달콤한 허니 시럽까지 뿌린 뒤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려 모양을 낸다. 작은 허브 잎을 따 가운데 새초롬하게 장식하고 나면 완성. 집에서 먹는 건데도 파티쉐는 파티쉐인지 데코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와 내 것 두 접시를 식탁 위에 놓았다. 


"아저씨 거는?" 


그가 무심하게 자리에 앉아 한입 베어 먹는다. 저도 그를 따라 앉아 그의 눈치를 보며 나이프로 토스트를 조각냈다. 저가 계속 힐끔거리자, 


"오늘 중요한 모임 가셨어요." 


저가 자꾸 눈치 보는 게 신경 쓰였는지 포크를 내려놓고 저를 보며 말한다. 


"그래서 오늘 가게 안 열 거예요. 

오픈하고 한 번도 쉰 적 없어서 오늘 닫기로 했거든요." 


아─ 하고 수긍하고는 마저 포크 질을 했다. 근데 이번엔 그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아까부터 먹는 걸 멈추고 턱을 괸 채 저를 보고만 있다. 아침부터 불편하게.. 땃싀! 포크를 살포시 내려놓고, 왜? 하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요, 이 상황이?" 


"이 상황?" 


"내 향이 가득한 내 집에서, 

당신 좋아한다는 나와 이렇게 단둘이 있는데 긴장 안 돼요?" 


의미를 알 수 없어 잠시 눈을 굴리다 불현듯 '오르가즘'이 생각났다. 순간 긴장해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손을 뻗어 식탁 위의 제 손을 덥석 잡아 왔다. 그러더니 꾹-꾹- 하고 만져온다. 


'또 이렇게 만지네..' 


손을 빼려고 비틀었더니 더 세게 쥐어온다. 이제 그가 이렇게 손을 만지는 것도 제법 익숙해져서 사실 별 감흥은 없다. 저와 딜이 성사된 이후 계속 이렇게 만져왔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밥 먹게 이것 좀 놔. 하고 쏘아붙였다.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놔 주었다. 


"이제 이건 아무렇지도 않나 봐요?" 


"몰라. 밥이나 먹어."






그가 차려준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배를 빵빵 두드렸다. 차 끓여준다고 소파에 앉아있으라는 걸 설거지하겠다며 일어섰다. 그는 제 옆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티팟에 물을 끓일 텐데 찻주전자와 찻잔을 내어놓고 찻잎을 넣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그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자, 티백만 마시는 줄 알았어요? 하고는 귀엽다면서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이젠 귀엽다는 말에도 인이 박여 발끈하지도 않는다. 


소파에 앉아 찻잎이 우러나는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며 잔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희한하게 단내가 올라왔다. 그가 저를 보면서 헤실거리는 건 알았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곧 그가 쪼르르하고 우려진 차를 찻잔에 따랐다. 킁킁- 하고 냄새를 들이마시자, 단 내음 나죠? 하고 물었다. 


"이거 뭐야? 왜 단 냄새 나?" 


"감로차에요. 수국차라고도 불러요." 


마셔봐요- 하고 그가 제 앞에 찻잔을 건넸다. 


"은은하게 달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또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그의 잔에도 차를 따르고 제 옆에 와 앉았다. 차를 마시느라 신경 쓰지 못했는데 다 마시고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고 보니 그가 꽤나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살짝 엉덩이를 들어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스윽- 하고 제 옆에 다시 붙어온다. 


"저리 가." 


"싫어요. 후우─" 


"히익-!" 


제 귀에 대고 싫다고 속삭이더니 바람을 불어 넣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아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 버렸다. 그동안 봐온 내 반응으로 그도 눈치챘으리라, 내가 귀에 약하다는 걸.. 귀가 뜨끈뜨끈한 게 느껴지는 걸 보니 열이 올라 빨갛게 된 모양이다. 손을 들어 귀를 막고 그를 경계하는 눈으로 째려봤다. 아.. 심장 아파... 그가 팔을 들어 어깨동무하려 할 때 벌떡 일어나버렸다. 


"나 갈래." 


발을 떼려는데 그가 손목을 낚아채 끌었다. 그대로 소파에 눕듯 넘어졌다. 이때다 싶었는지 그가 제 위로 올라왔다. 


"나 오늘 쉬는 날이라구요. 좀 어울려줘요." 


"저리.. 저리 가.." 


두 팔을 들어 끙끙거리며 그를 밀어냈다. 


"이제 내 맘 받아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희망 고문 그만 시켜요. 이제 손 만지작거려도 가만히 있잖아요." 


"그런 거 아니야. 

빨리.. 저리 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아, 심장 아파.. 


그가 제 양팔을 한 손으로 잡아 위로 올려 포박해 버렸다. 그의 얼굴이 고스란히 보였다.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가 드러난 제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앗-" 


손을 들어 밀려 했더니 제 손을 쥔 그의 손에 더 힘을 주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양예밍!! ㅅ, 싫어.." 


귓바퀴를 따라 귓볼까지 혀를 놀렸다. 그의 입술 마찰음이 귀에 너무 선명히 전달되어 얼굴이 폭파 직전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하지마..." 


다 기어가는 소리로 말한 듯 무슨 소용 있으랴. 양예밍이 더 집요하게 덤벼들었다. 목을 타고 쇄골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힘을 주어 빨아들였다. 다른 한 손으로 제 배 부분에서부터 유두까지 쓸었다. 옷 위로 느껴지는 감촉이 묘했다. 


"아침부터 이러는 거 미안하지만, 

당신 때문이니까." 


그가 트레이닝복 안쪽으로 손을 넣어왔다.


"으으─…"


심장 아파.. 


── !!






갑자기 눈에 눈물이 맺히는 저를 보고 그가 놀라 손을 떼버렸다. 자유를 찾은 손으로 심장 쪽을 부여잡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소리 없이 울었다. 


"괜찮아요??!!" 


놀란 양예밍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 아파요? 어디 좀 봐요. 하면서 제 팔을 잡았다. 


"너 저리, 흑, 가-" 


"미안해요.. 놀라서 그래요? 아팠어요? 

나 좀 봐봐요!" 


많이 놀랐는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심장... 아파.." 


"!!? 기다려봐요. 병원에 전ㅎ, " 


"그런 거 아니야!" 


119에 전화하겠다며 핸드폰을 집어 드는 그의 손을 급하게 잡고 소리쳤다. 그의 손목을 꼭 쥐고 말했다. 


"너.. 너 때문이잖아! 

심장 아파!! 너무 뛰어서 숨도 못 쉬겠어!!" 


"네?" 


"너 저리 가." 


나 좀 봐봐요. 라며 계속 저를 건드려오는 통에, 저리 안 가면 나 집에 가버린다. 고 협박했다. 


순순히 부엌으로 가서 한동안 잠잠히 저가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더니, 이제 나 거기 가도 돼요? 라고 묻는다. 오지 말라는 느낌으로 손을 들어, 워이 워이- 했더니 이제야 저도 안심했는지 다시 미소를 보여준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제 옆에 다시 앉았다. 이번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였다. 저가 아파하는 거에 놀랐는지 그 뒤로 이상한 짓은 해오지 않았다. 


그와 차를 마저 마신 후 TV도 보고, 보드게임도 했다. 해외에 있다 온 놈이라 그런지 듣도 보도 못한 보드게임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 생각 안 하고 아이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양예밍은 여전히 자연스레 제 손을 잡아 온다. 그 날 이후로 귀에 속삭이거나 입바람 넣는 짓은 하지 않지만, 저가 덜 거부감 있는 꾹꾹이는 계속해온다. 익숙함이 무섭다고 이제 아무렇지 않게 저도 그의 손을 마주 잡는다. 이 빌어먹을 호로자식 때문에 호모자식이 되어버리는 기분이다.







드봉봉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