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새끼야." 


단칸방 한쪽 구석에 딱 끼워 맞추듯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다자이는 존나게 불쌍해 보인다.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따고 들어온 나카하라는 방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눈에 띄는 다자이의 불쌍한 모습에 혀를 한 번 찬다. 하여간 존나게 등신 새끼, 아무리 집구석이 존나 좁아 터졌다고 해도 그렇지, 자는 모습이 아주 명화가 따로 없다. 존나 불쌍해 보여. 주둥이를 놀리며 좀 투덜거리자 다자이가 몸을 뒤집는다. 더벅더벅한 머리를 이루고 있는 얇은 머리칼이 그에 따라 스르르 무너진다. 구두굽으로 허벅지 위를 잘근잘근 씹어대듯 짓누르자 얼마 안 가 머리칼 속에 파묻힌 허연 대가리에서 "으으" 하는 신음이 옅게 흐르더란다. 주위의 환경이나 사람 등을 가볍게 체크하는 다자이의 뜨인 눈은 초점이 없다. 잠에 절여져 뵈는 게 없는 거겠지. 나카하라가 발을 거둔다. 두 걸음 정도 물러나 아직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워있는 다자이와 거리를 둔다. 다자이는 한참이고 뭔가를 찾듯 주위를 둘러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전체적으로 선이 얇은 몸뚱아리는 꼭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도자기로 구운 인형의 것 같다고 나카하라는 생각했다. 일으켜지는 몸뚱아리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니 기름칠이 덜 된 기계 같기도 했고, 어쨌든 묘했다.

다자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위를 가만히 둘러본다. 자기 집인데 꼭 낯선 곳에 버려진 토끼 같다고 나카하라는 생각했다. 다자이가 숨을 포르르 내뱉는다. 얇고 마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나카하라가 비뚤게 선 채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다자이를 내려다본다. 


"언제까지 처잘래."

"아, 정말 싫어."

"일어나. 해 뜬 지 오래다. 오늘 가야 할 곳도 있다며." 


나카하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자이가 덧붙여 아직 시간 괜찮은데 하고 중얼거린다. 무어라 더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으나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다문다. 자리에서 일어난 놈이 보기에도 푸석푸석해서 아무렇게나 헤집혀진 머리칼 안으로 손을 처넣고 엉킨 머리칼을 푼다. 개판이 난 바닥을 위를 걸을 때마다 굴러다니는 술병이 발끝에 걸린다. 아파. 아프면 좀 치워 새끼야. 지껄이는 게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렷다. 대충 밀어 굴리며 수건 한 장과 옷가지를 들고 욕실로 향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빛바랜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닫히자 나카하라가 가볍게 내뱉었다. 쨍그랑쨍그랑 하고 욕실 안쪽에서 연달아 들리는 소리는 필시 애꿎은 물건들을 내팽개치는 소리일 것이다. 


*   *   * 


"오늘은 무슨 꽃으로 드릴까요?" 

"꽃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추천받고 싶은데." 

"저런. 여전하시네요. 어디 보자, 오늘은 장미가 참 싱싱하게 폈는데." 


시내까지 나온 이유는 또 뭔가 싶더니만, 어쭙잖은 수작질이 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방을 꽃으로 장식해 놓은 건물 앞에 우뚝 멈춰선 채 한참 그 안을 들여다보던 놈은 이윽고 바깥으로 나온 여성에게 짤막한 인사를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다 꽃 한 송이를 받아 든다. 나카하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가로등에 기댄 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다 다자이가 짤막한 악수를 마지막으로 그 자리를 뜨자 물고 있던 것을 바닥으로 뱉어내고서 그 뒤를 따르듯 걸었다. 지나치며 여성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으나, 그녀가 보았을지는 알 수 없다.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다만 걸었다.

다자이에게는 목표로 하는 곳이 있었고 나카하라는 알고 있었다. 다자이가 그곳에 가기를 내심 꺼려하고 있음 또한 알고 있었다. 한참을 들어가고픈 곳에 가지 못하고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놈의 뒤통수를 보고 걸으면서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높이 솟아오른 건물과 건물 사이를 반쯤 갈라낸 수평선 밑으로 잠겨간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던 꽃들은 하나같이 시들시들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자이는 한참 앞을 보고 걷다가, 점차 땅을 보며 걷고 있었다. 항구, 좁은 비탈길, 시내의 인도와 이제는 잔해만 남아버린 빈터, 바짝 타들어 마른 나무와 굳어 갈라진 땅. 그 수많은 것에게서 눈을 돌리고 싶다고 말하듯이.


"저기, 츄야."

"왜."

"이제 슬슬 가봐야겠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같으니까."


언제부터 제 의견 따위를 소중히 여겼었는지 저는 알 길이 없지만, 나카하라의 시선이 다자이로부터 멀어져갔다. 그 시커먼 뒤통수로부터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는 하늘까지로. 허연 손끝이 철제 케이스로부터 얇은 담배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린다. 차마 불을 붙이지는 못하고 뻑뻑하게 뭉친 뒷목을 손으로 문질러댄다. 좆 같은 새끼. 걷기 시작하는 뒤를 쫓으며 다시금 생각했다. 굽이굽이 길을 넘어 어둠 속에 잠긴 하얀색 벽돌과 마주한다. 그 너머로 난 길을 비틀대며 걷다가 가장 구석에 있는 무덤가에 다자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석의 앞으로 아무렇게나 꽃다발을 내려놓으며 놈은 고개를 숙인다.


"기다렸지."

하고 묻는 눈에는 빛이 없다.


"기다린 적 없어."

하고 지껄이는 목소리에도 억양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자이는 주저앉아 비석 위를 질린 손끝으로 쓴다. 무얼 하는지 한참이고 그렇게 쭈그려 앉아 있던 놈은 제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몇 번이고 같은 이름을 곱씹는 것이다. 츄야, 츄야, 츄야 하고는. 비석 위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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