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시작된 방단대학의 축제 때문에 캠퍼스는 학과별 주점과 동아리별 행사로 분주했다. 

축제 기간 만큼은 캠퍼스 내에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고 외부인들도 와서 즐기는 날이었기에 휴강해주는 좋은 교수도 있지만, 내 사전에 휴강은 없다며 풀타임으로 채우는 교수도 있었다.

경영학과 전공 강의실.

축제든 뭐든 얄짤없이 수업하는 악명 높은 방 교수는, 5시 50분이 되자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강의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이제야 해방됐다고 날뛰며 축제를 즐기러 향했다.

석진은 옆에서 가방을 챙기는 한 학번 후배인 호석에게 고개를 내밀고 냄새를 맡는다고 킁킁거렸다.

“왜, 왜요? 선배.”

호석이 움찔거렸다.

“호석아, 너 요새 향수 뿌려?”

“네? 아니요. 왜요?”

“요즘 들어 네 몸에서 냄새가 나서. 향수 같은데? 남자 향수.”

킁킁.

“……마, 만원 버스 안에서 향이 옮겨왔나 보네요. 왜 알잖아요. 사람들 사이에 막 끼이다 보면 향수 냄새 같은 것도 묻고…….”

호석은 가까이 다가온 석진의 얼굴이 부담스러운지 손으로 널찍이 어깨를 밀어내며 가방을 멘다.

“그래?”

석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고, 호석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석진은 아무렴 어떠냐 싶어 호석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나란히 강의실을 나간다.

“이제 수업 끝이지? 주점 돌자.”

“아, 죄송해요. 집에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집에? 요즘 왜 그리 시간 맞춰 집에 잘 들어가? ……뭐야, 혹시 나 몰래 연애하는 거? 아니지!? 우리는 무적의 쏠로 부대! 연애는 곧 배신이야! 넌 절대로 날 배신하면 안 된다! 애인 생겼다고 우릴 버린 못된 제케처럼 되면 안 돼~!”

석진이 눈을 부라리며 저를 노려본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과제가 아직 남아서 먼저 돌아갈게요. 내일 봬요, 선배.”

“오냐. 내일 봐.”

호석이 서둘러 달려갔고, 석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얼라? 잠깐. 호석이 쟤…… 학교 뒤 원룸 단지에 살잖아.”

근데 무슨 버스를 탄다는 거야?

“수상한데…….”

제 턱을 매만지는 석진의 눈빛이 의심의 눈초리로 번뜩였다.

 

 

 

 



두 번째: 향기

written by 휴위

 

 

 

 

 

 

“놀러 오세요!”

“오늘 7시 신관 앞 야외무대에서 밴드부 ‘BTS’의 공연 있습니다! 공짭니다! 오세요!”

건물 밖에는 전단지를 돌리거나 피켓을 들고 호객 행위에 열심인 학생들로 즐비하다. 집에 간다고 하고선 호석이 서둘러 달려간 곳은 경대와 정 반대편에 있는 음대 건물이었다.

호석은 교수실만 있는 2층으로 올라왔다. 교수실뿐이기에 조용했다. 호석은 복도 가장 끝에 위치한 교수실 218호 앞에 멈췄다. ‘교수 민윤기’라 적힌 명패를 보고 숨을 가다듬었다.

문 앞의 알림판은 ‘회의 중’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수성펜으로 옆에 작게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호석은 빙긋 웃었다.

회의 중★이라는 알림판은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는 둘만의 사인이었다.

똑똑,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고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나 왔어요.”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서 전자 피아노를 연주하던 정장 차림의 윤기가 연주를 멈췄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보곤 싱긋 웃는다.

“어서 와.”

호석은 주저 없이 달려가 윤기에게 안겼다. 수업 시간 내내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좋아하고, 너무도 사랑하는 제 연인 민윤기. 서른여섯 살의 실력 있는 음대 부교수였다.

“수업 잘 들었어?”

“아니요. 수업 듣는 내내 당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머릿속에 안 들어와서.”

윤기가 다정한 웃음을 짓자 호석은 빈 옆자리에 앉아 어깨에 기댔다.

아아, 정말 난 그의 미소에 약해.

그를 만난 건 올해 교양 수업이었다. 윤기는 냉하고 이지적인 얼굴과 달리 학생들을 향해 짓는 미소가 무척이나 다정해서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시시때때로 교수실로 찾아와 플러팅을 걸었고, 그런 저를 귀엽게 봤는지 중간고사가 끝나고 곧바로 사귀게 되었다.

그와 사귄 지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숨을 들이마시니 그가 애용하는 향수 냄새가 났다. 상큼한 포레스트 우드 향이었다. 피톤치드처럼 곁에 있기만 해도 심신이 안정되고 나른해졌다.

―요즘 들어 네 몸에서 냄새가 나서. 향수 같은데? 남자 향수.

그의 향기. 상큼한 그의 향기.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것 같은 그의 향기. 탐하고 싶은 그의 향기.

포옹과 키스를 거쳐 함께하는 밤이 길어질수록 점점 온몸이 그의 향으로 물들어갔다. 이제는 다른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킁킁.

윤기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향수였다. 참을 수가 없어서, 호석은 몸을 꼼지락거리더니 달뜬 표정을 지으며 윤기에게 키스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냐? 라는 눈빛의 윤기는 이내 응했다. 그 역시 호석과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윤기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호석의 허리와 뒤통수를 강하게 잡았다.

서로의 입술이 닿더니 이내 벌어져 말캉한 서로의 혀가 오갔다. 벌꿀처럼 달콤한 타액과 뜨겁고도 말캉한 입술에 점점 서로의 아랫도리가 묵직해져 갔다.

교수실에는 질척한 타액이 오가는 소리뿐이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사람은 내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리웠던 사람이었다.

“하아…….”

영원히 안 떼어질 것 같은 입술이 떼어졌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호석을 보며 윤기가 쿡, 웃었다.

“좋았어?”

“응…….”

그의 미소가 좋다. 하지만 안달이 난 저와 달리 여유만만인 그의 표정이 어쩐지 얄미웠다.

윤기는 그런 호석의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금 입술에 살짝,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아기에게 해주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키스였다.

그가 저를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불만이었다. 호석은 제 볼을 부풀리며 윤기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윤기는 그런 그가 귀여운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생일 축하해요.”

윤기의 귀에 소곤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다 알아요. 애인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방긋 웃는 호석의 모습에 윤기가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

“선물도 있어요.”

호석이 가방을 뒤적이며 포장된 작은 상자를 꺼내어 윤기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풀어 봐요.”

윤기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남성용 향수였다.

“내가 쓰는 향수잖아.”

“응. 당신 생일 선물을 뭘 줄까 생각하다가, 어제 보니까 향수가 조금밖에 안 남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다 싶어 오늘 오전 공강에 부랴부랴 매장 가서 샀죠.”

“고마워.”

윤기는 향수를 들고 호석의 목덜미에 한 번 뿌린다.

“응?”

윤기는 깜짝 놀라는 호석을 끌어안아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 향을 맡고는 얼굴을 보며 웃는다.

“음~ 더 좋은데?”

“…….”

“최고의 선물이야. 고마워.”

또다시 서로의 입술이 달콤하게 포개졌다. 실내엔 오로지 윤기의 향으로 가득했고, 영혼까지 그의 향으로 물들어 가는 듯했다.

 

 

 

 

 

 

 

 

 

<外傳 외전?>

 

고교 동창인 태형이 가정교육학과에 있어 그 주점에서 한잔하던 석진은, 그만 같은 과 동기이자 과대표인 남준에게 걸려버렸다.

“석진아, 내가 지금 잘못 본 게 아니겠지?”

“헙! 나, 남준아.”

“다른 과 매상을 올려주고 있는 장면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만일 이게 현실이라면 난 네게 정말 실망할 거 같아.”

그리고 그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다. 절대 화내지 않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 있었는데, 말빨이 엄청나서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즈려 밟는 화술로 토론 수업을 평정하며 학생들과 교수에게 칭송받으며 군림하는 경영학과의 임금님으로 통했다.

“아니, 치, 칭구가……..”

“친구? 그렇구나. 우리 과 사람들은 힘들게 주점에서 일하면서 경영학과 꽃인 김석진의 응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아니 많이 서운하네. 아무리 친구가 좋다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너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지 않겠니?”

“어어…… 내가 잘못했어.”

결국, 술도 못 마시고 남준의 손에 이끌려 경영학과 주점으로 온 석진은 테이블 정리와 설거지를 맡아 했다. 신세 한탄하며 짬을 내 주점 뒤편으로 와 팔아야 하는 콜라를 몰래 마셨다.

저 멀리서 쏠로 부대 배신자인 정국이 ‘줴민쒸’라 부르는 애인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주 좋아 죽는 표정이다.

‘나쁜 제케, 감히 쏠로 삼총사를 탈퇴해?’

정국을 원망하는―아니, 부러워하는―석진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쏠로 삼총사, 그것은 경영학과의 김석진(3학년), 정호석(2학년), 전정국(1학년)을 부르는 말이다. 

과톱이자 인기인임에도 귀찮다며 연애를 하지 않는 귀차니즘 정국과 공부한다고 연애에 무관심한 호석과 달리, 석진은 여학생에게 관심이 많았으나 어째서인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는 바람에 연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달랐으나 자연스럽게 이 셋은 쏠로 삼총사가 되었다.

그러나 몇 주 전에 정국이 한 호프집의 알바―통칭 ‘줴민쒸’―가 마음에 든다며 부지런히 출퇴근하더니, 결국 3일 전에 GET했다며 쏠로 삼총사를 탈퇴한 것이다.

이후로 정국은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얼굴 보기가 참 힘들어졌는데, 역시 축제라 그런지 애인과 함께 즐기고 있는 듯했다.

석진은 씁쓸해져서 콜라를 다 마시고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요리 담당과 교대했는지 앞치마를 걸친 1학년 수빈이 고등어를 굽고 있었다.

“어라? 석진 선배. 오늘 주점 당번이셨어요?”

수빈은 석진을 발견하곤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남준이한테 붙잡혔어.”

“역시. 남준 선배는 은근히 석진 선배를 옆에 두고 싶어 하시는 거 같다니까요?”

“걘 그냥 날 괴롭히고 싶은 거야.”

“그런가? 근데 호석 선배 오늘 음대 야간 수업 있어요?”

“음대? 아니? 걔 오늘 과제 있다고 집에 갔는데?”

“그래요? 이상한데…….”

“왜?”

“아까 음대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는 거 봤거든요.”

“음대? 음대는 왜?”

“거야 모르죠. 야간 수업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찌나 서둘러 뛰던지 불러도 대답도 안 하더라고요, 못 들었는지. 뭐, 저도 교대하려고 학장실 알바 끝나자마자 바로 뛰어왔지만.”

석진은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진아, 음대 301호 강의실에 꽁치 세 마리, 계란 치즈 말이, 수박화채 배달.”

남준은 어디서 갖고―강탈해―왔는지 모를 중국집 철가방을 꺼내어 음식을 넣었다. 뚜껑을 닫고 석진에게 내밀며 어서 출발하라고 닦달했다.

“뭐!? 잠시만 남준아! 우리 주점이 언제부터 배달까지 했다고 그래?”

“지금부터. 시간이 남아 도는 거 같은데 열심히 일해서 매상 올려야지. 안 그래? 설마, 불만인 건 아니지? 타과 주점에 매상 올려준 김석진 씨?”

“다녀오겠습니다!”

임금님이 하명하시면 그저 따르는 게 농노의 일이었다. 게다가 남의 주점에서 매상 올려준 죄도 있기에 군말 않고 음대 건물로 출발하는 석진이다. 다행인 건 주점 거리에서 음대가 가깝다는 것이다.

석진은 배달을 끝내고 주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음대를 나오면서 무심결에 위층을 바라보았다.

“?”

분명 음대 2층은 교수실이었지?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본 교수실 창가에는 피아노 앞에서 부둥켜안고 진하게 키스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말았다.

어, 어……라…….

‘미, 민윤기 교수!?’

헐!

가뜩이나 큰 눈동자가 더욱 크게 휘둥그레졌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2층을 뚫어지라 보았다.

이번 학기에 교양 학점이 1개가 모자라 호석과 ‘현대 음악의 이해’ 과목을 듣고 있는데, 담당 교수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민윤기 교수였다.

대담하다. 아니 어떻게 교수실에서 저렇게 진하게 할 수 있지? 누가 보면 어쩌려고? 등등 여러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대체 상대가 누구야? 쇼트커트의 여자인가? 어라? 뒷모습이 익숙한데? 서, 설마…….

‘호…… 호, 호, 호, 호, 호오석이!?’

끼아아아아아아악!

석진은 뭉크의 절규 같은 얼굴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옆에 있는 등나무 벤치로 몸을 숨겼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곤 제가 본 것을 정리한다.

창가에 등을 보인 사람의 뒷모습이 어쩐지 호석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본인일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 했다.

‘그, 그러니까 민윤기 교수랑 호석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께이!?’

너도 제케처럼 게이였어!?

석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빠끔 고개를 내밀어 2층을 올려다보았다.

석양 때문에 모든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덕분에 창가에 선 호석과 윤기의 얼굴도 살짝 붉게 물들었다.

윤기는 호석의 이마에, 볼에, 입술에 짧게 짧게 입 맞추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고, 호석도 그런 윤기의 행동에 수줍게 미소 지었다. 윤기가 호석의 볼을 매만지며 다시금 입술을 포갰다. 

“…….”

남자끼리의 키스를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웃으며 얼굴을 어루만지는 둘의 모습이 참 잘 어울렸다. 

아마,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거겠지.

한 쌍의 잘 어울리는 연인의 모습에 석진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어쩐지 맥이 빠져버렸다.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발신자는 남준이었다.

“어어, 남준아.”

“석진아, 배달 다 했지? 어서 와줘. 네가 가야 할 곳이 다섯 군데나 있단다?”

“어, 어. 당장 갈게!”

명령도 참 다정하고 위엄있네. 석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민윤기 교수와 호석이 부둥켜안고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다정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석진은 둘을 축복하며 잔잔하게 쓴 웃음을 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제게도 언젠간 애인이 생기리라 믿으며.

 

 

  

 

 


그 애인 네 옆에 있어.(소근

본인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은은하게 뿌리는 남자는 참 멋있는 거 같아요. 거기다 슈트까지 입어주면 어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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