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은 일찍해도 길에서 버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집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보통 저녁을 해주신다.

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저녁자리에서 이 말을 들었다. 

그러지말고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준비해봐.
언제 그만둔다 하면 그렇게 알고 있을게.

어머 세상 쿨하고 멋진 엄마를 두고 있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가족들에게 말하기 


내가 가족에게 말하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1. 이직 결심하기

2. 이직 자리 겁나 열심히 알아보기, 그리고 실패하기

3. 끊임없이 이직에 도전 중 인생의 방향 고민하기

4. 다양한 방향 중 '퇴사'로 결정하고 가족들에게 티내기

4. 퇴사 권유받기 


그리고 그 상세한 내용은 TMI로 서술해본다.


TMI(티.엠.아이)는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로 

안 물어봤는데 과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퇴사를 하기 전 나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지극히 보편적인 이유로 연봉협상에서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살다가는 평생 서울 내에서 고시텔만 전전할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다고 회사는 서울인데 먼 지방에 집을 구할 수도 없고 말이다. 


대학시절 고시텔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에 창문이 있고 앞구르기 한 번을 해도 벽에 부딪히지 않는 경기도 외곽의 우리 집은 멀어도 너무 사랑스럽다. 극악한 생활습관과 열악한 주거환경이 겹치게 되었던 그 때의 나는 건강을 매우 망쳤다. 


162 센티미터의 키에 39 킬로그램을 찍는 순간, 마른 것이 예쁘고 자시고를 떠나서 아 이거 위험하다 싶었다. (운동을 1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빠져서 그런지 진짜 가죽과 뼈만 있는 기이한 몸이었다.)


그러나 내 월급과 이런 상승폭으로는 일단 이 보다 더 걸린다고 해도 그냥 대한민국에서 집 사기는 굉장히 글렀다. 부모님처럼 번듯한 집까지 아니어도, 쾌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도 그냥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있는 그 집을 구하기가 참 쉽지 않다.


물론 그 일을 하며 내가 성취감을 느끼거나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권태감을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스스로를 커리어와 인생의 방향의 문제로 걱정했지만, 가족들은 나의 금전적인 문제를 이유로 걱정하곤 했다. 여튼 내 첫 사회생활이 걱정되는 행보였나보다. 


여튼 이직을 퇴사하기 전 3개월 정도부터 직접 부딪히며 도전했다. 3개월 내내 주말은 없었다. 모든 주말은 자소서와 그를 위한 기반 자료를 준비하는데 헌신했다. 


그리고 3개월이 마무리 되는 시점, 서류 통과 된 한 군데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연락은 오지 않았다. 

Adelle- hello  

제 이력서 읽으셨나요. 저에요 지원자.. 아 탈락이라 연락 안 주셨다구요...? 넵.. 죤하루 보내세용.. 


이직은 쉽겠거니 생각했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쉬웠으면 이렇게 세상에 HR시장이 성장할 일이 없다는 것을 그 뒤에 깨달았다. 사람을 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인만큼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던 것이다.


신입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겠거니 생각했지만, 내 상대는 다른 이직자들이었으니 오히려 난이도는 더 높았다. 그리고 기왕 갈 거면 아예 다른 업종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에 그 분야는 신입으로 넣었다. 준비할 시간은 더 없는 직장인이면서 아주 과한 꿈을 꿨다. 난 예전부터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잘하는 애가 아니다.


그렇게 여기도 집중하지 못하고 일에도 완벽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1년 차면 부지런히 성장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늦춰졌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못할 바에 후회가 남지 않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회사를 다닐 수록 게으르게 뒤쳐지는 기분에 괴로웠다. 일평생 누굴 별로 앞지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난생 처음 스스로가 발전하고 싶어 아등바등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 엄마는 저 말을 해줬다. 모든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온 저녁시간을 보낸 지 3달 후, 영어 새벽 반을 결제하고 난 며칠 뒤였다.


할 거면 제대로 해보라고. 모아둔 돈 쓰면서 해보라면서 하다가 돈이 모자라면 지원을 해준다 하셨다. 


의외로 경제적 자립심이 쩌는 나는 가족들에게 딱히 돈으로 보탬이 되지는 못했지만 갉아먹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댈 생각은 없다. 그런데 저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엄마의 각오와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난 화목한 가정에서 지지를 받으며 자랐다고 자소서 첫 문장을 시작해도 되는 그런 집에서 자란 것이다.


여튼 그렇게 가족과의 일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나중에 진짜 나는 언제 부로 퇴사한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고 대신 미래 계획을 알려달라했다. 그게 이 집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의무라고 그게 싫으면 집세를 내라고 했다. 그래서 냉큼 공유하며 살고 있다. 




회사에 말하기


퇴사에 관해 처음 생각할 때 가장 어려웠던 두 가지 부분에 대해 정리해봤다. 

어떻게 / 언제 이다.




1. 퇴사 어떻게 말하지?


이 짤 너무 사랑한다.


퇴사를 결심하고 말하기까지 정말 어려웠다. 위 짤 처럼 저렇게 띡 던지고 퇴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말해야하는 지 모르겠었다.

'퇴사 며칠 전에 회사에 말'  '퇴사 말하는 법' '퇴사 어떻게'  

그래서 이런 검색어를 초록창에 검색하기도 했었다.


굴레와 속박까지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돈줄을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솔직하게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약간의 다른 요소들을 첨가해서 진담 반 하얀 거짓말 반의 비율로 미리 스크립트를 구성했다. 


그리고 말해야지 마음먹은 당일, 다른 분이 퇴사한다는 메일을 먼저 돌리셨다. 

앗 말할 분위기가 아니잖아! 싶었지만 그래도 나는 미리 말하고 싶었다. 


마침 일을 하다 혼날 일이 있어서(?) 팀장님이 자리로 오셨길래 잠깐 대화 가능하시냐고 커피타임으로 불러내 말을 꺼냈다. 


+참고
회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원 / 대리 등이라도 고민 상담이 아니라 이미 마음먹은 것을 전달하는 거라면 아래 순서가 정설이라 한다.

 팀장(부장) > 그 위에 또 다른 상사(나의 경우는 대표님과 부대표님) > 인사팀 전달 

출처: 프로 이직러(5회 이상) 전 직장동료 A씨와 B씨


회사 내 직무 혹은 연봉에 대한 불만족인지 등등 다른 이유가 있냐고 여러 사람이 많이 물었지만 나의 답은 같았다. 미리 정해진 스크립트 외에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인생 사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는데 비록 그 과정은 치졸하고 더러웠을 지라도 마무리는 아름다운 게 좋다는 많은 인생선배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스크립트. 다른 도전을 해보고자 떠난다고 말했다. 붙잡기도 애매한 이유다. 


돈을 더 받고 싶다면 '더 좋은 연봉을 제안해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라고 이야기 하며 줄다리기 해봐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진짜 정말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너무 명백한 거짓말이어서 그냥 깔끔하게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여튼 마지막 이유는 내 목적에 따라 약간씩 변형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고마웠어요 회사~' 인게 좋다고 한다. 뒤돌아서 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퇴사한 나에게 연락온 전 직장동료는 회사 욕을 하기도 했다. 원래 다들 마음에 불만이 있는거다...^^ 말하지 않을 뿐.)




2. 퇴사 언제 말하지?


퇴사 통보 시기는 한 달 전으로 알고 있는 것이 대다수이나, 실제로 노동법 상 너무 그만둬야한다면 오늘 말하고 내일 그만두는 것이 가능하다 합니다. (근로기준법 7조 ‘강제근로의 금지’ 조항 의거,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도덕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사용자의 해고 조항(근로기준법 제26조)과 혼동하는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한 달 전 통보하게 됩니다. 

비록 입사 시 쓴 계약서에 미리 통보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명시가 되어있어도 법이 더 우선적이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다 합니다. 물론 회사와 조율하는 것이 가장 좋음. 

출처: 나의 유일한 노무사 인맥 C 언니


이렇듯 보통은 퇴사 1달 전 말하는 것이 예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 시기를 조절해 원하는 날짜에 조금 이르게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인수인계 가능한 후임자도 있고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아직 일감이 내 앞으로 분배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약 1주 내의 인수인계 과정과 업무 마무리를 통해서 무사히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아름답게 이별하는 데도 성공했다. 빈말인 것은 알지만 나중에 다른 데 가서 힘들면 다시 우리 회사에 지원해달라는 말을 들으며 나왔다. 그 말을 들으며 '그래도 일을 더럽게 못하지는 않았구나~' 속으로 생각 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회사에 말하기까지 끝났다.


다음 내용으로는 인수인계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퇴사 후 해봐야하는 일들 을 정리해보려 한다.

TMI 폭주한 이번 내용은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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