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수열, 봄호에서 쓴 글입니다 .



 

 

 

  어두운 새벽, 커다란 저택 앞에 모인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손에 성화를 하나씩 들고 서있었다. 그 가운데에 서있던 마을 촌장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뒤쪽 어디선가 마차가 나타났다.

 내려!

거친 목소리가 들리고 마차 안에 있던 남자는 땅으로 떠밀려 떨어졌다. 눈이 가려지고 몸이 묶인 체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어떡하냐며 걱정을 하는 여인들도 보였고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살, 살려주세요…….”

 

 

땅바닥에 엎어져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던 남자는 그저 살려달라는 말을 꺼낼 뿐이었다.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은 남자를 일으켜주곤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을 풀어주었다. 그제야 시야가 트인 남자는 앞에 있는 저택을 보자마자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안 돼요, 제발!”

“얼른 가!”

“아저씨, 제발요. 아저씨……!”

 

 

남자는 발버둥을 치며 손길을 뿌리쳤지만 여러 사내들의 힘을 이길 리는 없었다. 결국 밀려 도착한 저택의 문 앞에서 남자는 끝까지 살려달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저택 주변에는 커다란 벚나무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서, 남자는 재물로 받쳐졌다.

 

 


봄, 나의 특별한 연인

 

 


1.

  끼이익-. 커다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를 울려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모두 사라졌다. 성열은 팔이 묶인 체 문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무서워. 무서워. 당장 눈물이라도 떨어질 거 같아 성열은 입술을 꾸욱 깨물며 풀린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뱀파이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뱀파이어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괴물은 일정하지 않게, 한 달 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달, 그것도 아니면 일 년, 몇 년에 거쳐 마을 사람들에게 재물을 바치라는 경고를 주었다. 그 경고는 다름이 아닌 많은 가축들이 삽시간에 죽어버린다던가 몽땅 없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오년 만에 모든 가축들이 죽어갔고, 그것은 사람을 내놓으라는 경고였다.

 

성열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택 안은 생각보다 추워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괴물, 뱀파이어는 어디 있는 거지. 이 저택에 들어오는 순간 목숨이 끊기는 줄 알았는데. 성열은 자신이 곧 죽는 다는 운명에 모든 걸 다 내려놓기로 했고 그래서 나온 용기인건지 성열은 한 걸음 발걸음을 떼었다.

 

저택 안은 겉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큰 저택이었다. 성열은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긴장을 놓지 않고 저택을 살폈다. 일층, 주방, 그리고 방이 네 개. 일층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온도는 얼마나 낮은 건지 입김이 나올 정도였고 발가락이 시리다 못해 아렸다. 조심스레 곳곳의 문을 열어보던 성열이 태어나서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한 침묵만이 돌던 이곳에서 어느 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소리.

 

이 방이었다. 하아. 떨리는 한숨이 내뱉어지고 성열은 한참을 그 문 앞에 서있다 용기를 내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리던 그때였다.

 

 

“열지 마!”

 

 

안에서 들리는 쇠를 긁는 듯 한 목소리에 성열이 움찔거리며 손잡이를 놓았다가 다시 꽈악 붙잡았다. 어떡하지, 어떡해.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아픈 걸까? 뱀파이어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다 어차피 이 저택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은 살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

 

 

아. 문이 열리고 마주한 남자를 본 순간 성열은 저건 사람이 아니라고 단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사람의 얼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외모였다.

 

 

“………”

 

 

아파보였다. 흰 얼굴에 붉은 입술을 가진, 사람을 홀리는 괴물이라고는 들었지만 저 정도로 얼굴이 창백할 수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성열은 뱀파이어의 빨간 눈과 눈이 마주치고 놀라 주춤거리다 천천히 곁으로 다가갔다.

 

 

“아, 아프신 거예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꺼낸 건지 모른다. 성열은 꼭 짐승처럼 그릉거리며 누워있는 뱀파이어의 곁에 다가갔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냄새를 맡자마자 이빨을 드러냈다. 아, 이렇게 죽는 구나.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어도 막상 이렇게 죽는 다고 생각하니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성열은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리고 성열의 어깨를 잡은 차가운 손길과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함께 귓가에서는 ‘괴물’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겁 먹지마.”

“………”

“죽이지 않아.”

 

 

꼭 봄같이 따뜻하게.

 

 

 

2.

  ………. 번쩍 눈을 뜬 성열이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건가? 왜 살아있지. 어제의 일들이 스쳐지나가고 성열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아파…….”

 

 

아마 거울이 없어 육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크게 이빨 자국이 나있는 듯 했다. 피를 빨아 먹은 거겠지. 또 다시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본 성열이 정신을 차리자 싶어 몸을 일으켰고 몰려오는 어지러움에 풀썩 주저앉았다. 도통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아. 벌써 몇 번째 쉬는 한숨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고문 시키는 건가.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시한부처럼.

 

 

“………”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성열이 손을 뻗어 바닥을 짚다 툭 걸리는 물건에 시선을 옮기자 어울리지 않게도 덩그러니 물 한 잔이 놓여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또 이걸 먹으면 죽는 건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복잡한 생각들은 하지 않았다. 갈증이 나 벌컥 들이마시니 아까보단 살 거 같았다. 큰 방에는 성열과 물 컵, 그 뿐이었다.

 

  성열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문을 열고 나와 계단에서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 작은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역시나 저택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피를 빨려서 그런가, 이런 순간에도 몰려오는 허기짐에 성열은 자신을 한탄하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

 

 

주방에는 어젯밤 보지 못했던 식료품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어제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건가? 배가 고픔에 식탁에 놓여있던 당근을 깨물어 먹고, 과일들도 집어 먹었다. 먹었다고 죽이면 어떡하지 싶다가도 어차피 죽을 건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다는 합리화를 하며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기요. 누구 있나요. 뱀파이어님……. 계세요…?

그리고 한참 뒤 배를 채운 성열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 저택 한 가운데에서 조용히 외쳤다. 역시나 아무도 없는 건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젯밤 끙끙 앓던 그 얼굴이 생각나기도 했다. 엄청 아파보였는데. 내 피를 마셨으니 괜찮아져서 다른 데로 갔나.

 

 

“………”

 

 

해는 져가고 있었다. 내가 오래 잤구나. 성열은 다시 저택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이층 끝에 테라스가 살짝 보여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이 생각보다 예쁘다는 생각들을 하며 벽을 만지기도 하고 두드려보기도 하며.

 

 

“……아.”

 

 

그리고 마주한 테라스의 끝에서, 아직 쌀쌀한지도 모르고 봄인 줄 알고 피어있는 노오란 개나리와 분홍빛의 진달래 사이에 눈을 감고 앉아있는 남자는.

 

 

“……일어났네.”

 

 

어젯밤 본 그 남자가 확실했다. 자신의 목덜미를 물고 피를 가져간.

 

 

“뱀파이어…….”

 

 

뱀파이어.

 

 

 

3.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하지? 쳐다봤다고 죽이면 어쩌지? 근데 배가 고파야 날 먹는 거 아닌가. 어제 피를 마셨는데 또 배가 고플까?

눈동자를 굴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 기색이 가득한 성열이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와 서있는 뱀파이어를 보고 놀라 숨을 흡, 들이마셨다. 눈이 마주쳤다.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그 눈과. 뱀파이어의 시선에 성열은 혹시 눈빛만으로도 얼굴을 뚫거나 그런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엉뚱한 걱정도 했다.

 

 

“이름이 뭐야?”

“네, ………네?”

“이름.”

 

 

곧 죽일 건데 이름은 왜 물어보는 거야. 그 와중에도 속으로 투덜거리던 성열이 이어 나오는 뱀파이어의 말에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안 죽인다니까.”

 

 

생각이 들리는 거야? 입을 막는다고 해서 속마음을 안 들키는 것도 아니면서 성열은 입을 꽁꽁 막았다. 이름, 이름을 말해주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죽인 사람의 이름을 꼭 알아야 하는 악취미가 있는,

 

 

“그런 고약한 취미 같은 건 없어.”

 

 

아. 입 조심, 아니 속 조심을 해야 하는 건가. 성열은 뱀파이어의 얼굴을 바라보다 잘생긴 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무기라고 생각했다. 저런 얼굴을 하고 말을 하니 정말 거짓말이 아닌 거 같잖아. 성열이 천천히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며 말라버린 입술에 침을 적셨다.

 

 

“이성열…이요.”

“성열?”

 

 

끄덕. 고개를 끄덕인 성열은 이제 자신을 어떻게 하는 걸까 싶어 걱정이 가득한데 뱀파이어는 성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바라만 보다 인상을 구겼다. 뭐야, 나 뭘 잘못한 건데.

 

 

“뭐해?”

 

 

뭐하냐고? 뱀파이어의 질문에 성열이 혼란스러워졌다. 뭐하냐니. 뭘 한다고 해야 되는 거야. 나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니, 이런 대답을 들을 거였으면 애초에 묻지도 않았을 거야. 나름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성열이 아, 하고 입을 열려고 했다.

 

 

“아니, 하하! 너 진짜 웃긴 아이네!”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뱀파이어에 다시 입을 꾹 다물고 말았지만. 대체 뭐가 웃긴 거야…. 성열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는 뱀파이어에게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의 질문에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대답 같은 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먼저 이름을 물어보면 똑같이 되묻는 거 몰라?”

“네……?”

“사람들은 다 그러잖아. 이런 것도 안 배웠어?”

 

 

  너 공부 지지리도 안 했구나.

세상에. 성열은 살면서 부모님에게나 듣던 소리를 뱀파이어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내가 이름을 물어봤으니 너도 내 이름을 물어봐야지. 자꾸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네.”

 

 

그런 거였구나. 성열은 아까 전, 잡아먹힐 준비 중이라며 대답하려던 게 뱀파이어에게 얼마나 웃겼을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그걸 밖으로 내뱉지 않은 걸 하늘에 감사하다고 여기고는 있지만 속마음을 읽는 뱀파이어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니 몰려오는 창피함에 한껏 얼굴을 붉힌 성열이 입을 열어 물었다. 이름, 아니 성함이 어떻게, 뭐, 아니……. 얼굴을 보면 나보다 조금 많아 보이지만 분명 나이는 많을 텐데. 성열은 말을 처음 떼는 아이처럼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엘.”

“………”

“엘이야. 내 이름.”

 

 

성열. 이제부터 날 엘이라고 불러. 괴물은, 아니 뱀파이어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며 말하고는 뒤를 돌았다. 엘이 걸음을 옮겨 간 테라스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심어져있었다. 물을 줘야겠어. 요즘 영 비가 안 와서 다 말라 죽을 거 같아.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엘이 물바가지에 잔뜩 물을 담아와 나타나서는 테라스 앞에 가득한 꽃들에게 물을 주었다.

 

 

“성열, 이제부터 너도 이 꽃들을 관리하는 사람이야.”

 

 

잘 관리 해줘야 해. 금방 죽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엘은 꼭 사람처럼 그렇게 말을 했다.

  성열, 내 말 들었어?

뱀파이어는 사람을 죽인다고 했는데. 괴물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불렀는데.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저 얼굴, 저 목소리로. 이렇게 다정해서 꽃이 죽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라니. 성열은 자꾸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 엘. 이상한 뱀파이어였다.

 

 

 

4.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엘과 시선이 마주치는 아침도 벌써 이틀째였다. 아직 체 정신도 차리지 못한 성열은 비 몽사몽 꼴을 하고서는 침대 위에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오…. 침대에 머리를 푸욱 박고 천천히 허리를 세운 성열이 자신을 웃는 엘을 보며 저건 진짜 반칙 중에서도 옐로카드 몇 장은 먹었을 반칙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어제 하루 이 집에 있었다고 성열은 그새 이곳이 자기 집인 것 마냥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배고픈데 뭘 해 먹지…. 그래도 웬만한 재료들이 주방을 채우고 있는 건 다행이었다. 성열은 재료들을 대충 훑어보다 옆에 앉아있는 엘에게 말을 건넸다.

 

 

“엘, 볶음밥 어때요?”

“응?”

“볶음밥이요. 싫으면…, 뭘 하지.”

 

 

성열이 중얼거리며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당근, 감자, 양파, 이런 걸로 대충 밥 볶아 먹으면 될 거 같은데. 주방을 뒤적거리다 감자 껍질을 깎으려고 감자를 집은 성열이 자신의 옆에 와있는 엘에 놀라 툭, 감자를 떨어뜨렸다. 아, 엘.

 

 

“불쑥불쑥 나타나면 곤란해요…. 놀란다구요, 전.”

“지금 나한테 밥을 안 먹자고 한 거야?”

“아침에 밥 안 들어가세요?”

 

 

하지만 여기 있는 것 중 빵은 없는 걸요. 시무룩하니 눈썹을 추욱 내린 성열은 아마 무엇이 잘못 된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엘은 성열의 옆에 서서 언제나처럼 무언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성열을 훑어보다 허리를 끌어당겼다.

 

 

“…엘, 따로 먹고 싶은 게 있는 거예요?”

“………”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해드,”

“너.”

“리…….”

“성열, 너.”

 

 

 내가 여기서 먹을 수 있는 건 너 하나야. 나는 음식 같은 거 안 먹어.

성열은 엘의 말을 듣고 그제야 엘이 뱀파이어라는 게 생각이 났다는 듯 아, 하고 크게 놀랐다. 미안, 미안해요.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며 방금 주웠던 감자가 다시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아무래도 이틀 전에 피를 먹었으니 슬슬 갈증이 시작될 법도 했다. 엘은 성열의 상처 난 목덜미를 쓰다듬더니 그 위를 쪼옥 빨아 당길 뿐, 이빨을 내보이진 않았다.

 

 

“……배, 배고픈 거예요?”

“응.”

 

 

물리면 아프던데…. 이틀이었지만 처음 말고는 아무 일 없이 지내다보니 성열은 엘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뱀파이어. 인간의 피를 마시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엘의 식량, 즉 피를 주기 위해서였다. 아마 피를 주지 않겠다고 하면 당장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성열은 입고 있던 티의 목을 살짝 늘리고는 눈을 감았다. 따끔, 조금 아플 거야. 긴장하지 말자.

 

 

“엘……?”

 

 

그리고 목을 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엘은 성열의 팔목을 잡았다.

 

 

“배고파,”

“………”

“먹어도 돼?”

 

 

원래 뱀파이어들은 인간의 피를 마실 때 동의를 구하나? 성열이 의문을 가진 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엘은 성열의 팔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었다. 이상해, 이상해 진짜 이상해. 단순히 피를 빨리는 것뿐인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흥분이 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아, 아. 엘, 잠깐, 아!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혀로 입가에 묻은 피를 핥으며 말 해오는 엘에게 성열은 차마 그쪽이 내 피를 빨아 먹어서 흥분이 된 거 같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엘은 다 안다는 얼굴을 하고선 성열의 피를 마저 빨은 후 내내 팔에 묻고 있던 입을 떼어내었다. 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 엘의 입가에서도 뚝.

 

 

“최고야, 너.”

“………”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피를 향한 말임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성열은 꼭 그 말이 다정한 연인의 고백인 양 받아들여졌다. 뱀파이어의 저택에 오더니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정말로.

 

 

 

5.

  봄은 빠르게도 다가왔다. 성열이 이곳에 온 지, 이제 열 손가락으로 다 세지 못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성열은 오늘도 햇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홀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피곤함에 눈을 비비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곧 테라스에 도착했다. 엘은 항상 이 테라스 앞에 앉아 성열을 맞이해주었다.

 

 

“벚꽃이 필 거 같아.”

 

 

벚꽃.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하품을 크게 한 성열이 자고 일어나 생기는 갈증에 입 안을 다시다 엘이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는 꽃이 잔뜩 피어있는 테라스의 난간으로 다가가 무릎을 쭈그리고 앉았다. 뱀파이어는 햇빛을 보지 못 한다고 했는데 순 거짓말인건지 엘은 아침이면 이곳에 와서 꽃들에게 잘만 물을 주었다.

 

 

“햇빛 봐도 괜찮아요?”

 

 

개나리는 더 핀 거 같네. 성열이 색이 노란 개나리를 만져 보았다.

 

 

“묻는 게 참 빠르네.”

 

 

근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아, 하고 뒤를 도니 어느새 눈앞에 와있는 엘에 놀란 성열이 풀썩 엉덩이를 찧었고 인상을 확 구겼다. 엘, 놀랐잖아요….

 

 

“햇빛을 받는다고 죽는 건 아니야. 힘이 약해질 뿐이지.”

 

 

그리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엘과 있으며 느낀 건, 엘은 망설이는 기색 하나 없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준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을 만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어차피 인간은 뱀파이어를 못 이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가. 그런 점은 참 비참하다고,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던 성열은 갑작스럽게 드는 의문에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배가 고픈 거야?”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거군. 그토록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엘의 목소리가 더 이상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평생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니, 그전에 나는 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 건가.

 

 

  탁탁탁-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주방에 가득 퍼졌다. 성열은 밥을 해 먹는 것도 참 귀찮은 짓이지만 배가 고프니 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감자를 마저 썰었다. 오늘은 감자로 전이나 해 먹자고 생각하며 요리를 하던 성열이 언제나 옆에 앉아 자신을 보기만 하는 엘을 슬쩍 보고는 정적이 깨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러니 별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었다.

 

 

“재료는 다 어디서 구해와요?”

 

 

사실 성열은 이 재료들이 어디서 나는 건지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먹을 게 있네, 다행이다. 딱 그 정도의 생각들만 해오다가 엘에게 물은 자신의 질문에 오히려 성열 자신이 더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로 이것들은 누가 가져다 놓는 거지? 알고 보니 나 말고 여길 드나드는 인간이 있는 거 아니야?

 

 

“시장에서 구해오는 거지. 열, 이런 것들도 배우지 않은 거야?”

 

 

저 뱀파이어가 진짜. 엘은 가끔 성열을 엄청나게 무시하곤 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시장에서 사 온다고 생각하겠지만 뱀파이어가 시장에서 과일이나 야채를 사 온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다. 성열이 입술을 삐죽이며 사실 사람인 건 아닐까, 그런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시장도 가요? 가면 뭐 사 오는데?”

“네가 먹을 거.”

“아, 엘은 안 먹는다고 했죠. 번거롭겠어요.”

 

 

성열…. 대화를 하는 동안 성열은 감자를 썰고 있느라 한 번도 엘에게 주지 않았던 시선을, 엘의 한심하다는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려 엘을 쳐다보았다. 그 반응은 뭐예요.

 

 

“열은 이상해. 나는, …뱀파이어야. 시장에 갔다 오는 건 네가 여기서 테라스로 가는 것과 똑같아.”

“빨라요?”

“나는 빨라. 그리고 강해.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 유일하게, 나 혼자.”

 

 

엘은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성열에게는 아니었다. 빠르고 강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 남아있는 뱀파이어는 엘, 단 하나였다. …이게 과연 행복일까?

 

 

 

6.

  아침을 먹으면 또 점심을 먹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엔 테라스에 있는 꽃에 물을 준다거나 서재에 놓여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 하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래 책을 읽다보며 또 피곤이 밀려오기도 했다.

 

 

“엘, 난 잠만 자는 병에라도 걸렸나 봐요. 또 잠이 와.”

“조금 자. 저녁이 되면 깨워줄 테니까.”

“…응. 그동안 엘도 눈을 조금 붙여요.”

 

 

엘은 그 말에 내내 보고 있던 책을 덮고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성열의 곁으로 다가갔다. 엘, 또 왜요. 난 좀 자야겠다니까. 성열은 피곤한 투로 말을 내뱉었고 엘은 이불 속으로 들어간 성열의 팔을 잡아 꺼내었다.

 

 

“피 냄새…….”

“배고파요? …나 지금 엄청 피곤한데.”

“아니. 좋아서.”

 

 

그런 말 좀 함부로 하지 마요. 성열은 그렇게 말을 했다. 당신이 뱀파이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분명 당신을 잡아다가 감옥에 넣었을 거라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다는 말을 자꾸 하는 건 죄예요. 몇 백 년이나 살았으면서 이런 것도 몰라요? 성열이 투덜거리다 몰려오는 피곤에 무시하고 눈을 붙였지만 옆에서 자꾸 쳐다보는 시선에 신경이 쓰여 잠에 들 수가 ㅇ벗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불편해 미칠 거 같은 느낌.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자라니까.

 

 

“난 잠 안 자.”

 

 

그리고 엘은 그런 성열의 속마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침대에 누워 엘의 말을 들은 성열이 깜짝 놀라 엘에게로 시선을 옮겼지만 그런 시선들이, 그리고 이런 물음들이 익숙하다는 듯 엘은 태연하게 웃을 뿐이었다. ……. 왜인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성열이 덮고 있던 담요를 내려놓고 책을 마저 읽었다. 시간이 지나니 눈이 떠지기도 했고 아까 전 읽고 있던 책이 생각이 나서였다. 이곳에 와서 살면서 곁에 두지도 않았을 책을 매일 곁에 두며 읽고 있었다. 할 게 없어 보던 책이었는데 이게 또 나름 재미가 있어 하루 종일 식사도 하지 않고 책만 쥐고 있을 때도 있었으니.

 

 

“덮고 있어.”

 

 

그리고 담요를 내려놓은 성열을 본 엘이 다시 담요를 덮어주었다. 안 추운데요. 성열의 말에 미간을 살짝 구긴 엘은 성열의 손을 한 번, 볼을 한 번, 귀를 한 번, 마지막으로 목덜미를 만지더니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성열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그렇게 추운 걸 난생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추위에 덜덜 떨었다. 정말 다시는 그런 추위를 경험하지 않고 싶을 만큼.

 

 

“다행이네.”

“………”

“사람이 살려면 아무래도 좀 따뜻해야 될 테니까.”

 

 

이 정도의 온도면 적당한가 보네. 엘은 그래도 담요는 덮고 있으라며 성열의 몸에 꼭 감싸주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이렇게 따뜻한데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던 거지.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이곳에서 추위를 겪어본 적이 없기도 했고. 성열은 입을 꾹 닫고 책을 읽어 내려가다 궁금증을 못 참고 책을 내려놓으며 엘을 바라보았다. 저기, 엘.

 

 

“뱀파이어…. 아니, 엘은 추운 곳에 있어야 해요?”

“그런 건 아니지만 따뜻한 걸 좋아하진 않아. 특히 난 더.”

 

 

……집은 항상 따뜻한데.

 

 

“네가 처음 온 날은 내가 오랜 시간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해서 아팠어.”

“………”

“그래서 네 목덜미를 좀 세게 물었는데 아직도 자국이 남았더라고.”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잠자코 엘의 말을 듣던 성열이 자신의 목덜미를 만져보았고 깊게 파인 자국이 느껴졌다.

 

 

“너무 뭐라 하진 마.”

“아니, 뭐….”

“그래도 밤마다 계속 치료해주고 있으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아무런 높낮이 없이 말을 이어가는 엘의 목소리가 성열의 귀에 하나둘 박혔다. ……침묵. 내려놓았던 책을 다시 붙잡고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들키면 안 된다. 자신의 앞에 있는 게 뭔 지도 모르는데. 성열은 최대한 엘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다시 집중해서 책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끝내 없애지 못했다. 비밀, 엘에게 이런 이상한 마음을 가진 건 비밀이었다.

 

 

 

7.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잘 자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눈이 떠질 때. 성열은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다 당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엘을 찾았다. 언제나 눈을 뜨면 곁에서 책을 읽는 엘이 있었는데. 성열이 뒤척이며 침대에서 빠져나와 다시 주변을 살폈다. 어디 갔지.

 

  이층에서 내려오는 동안에도 엘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소중하게 꽃들을 기르는, 엘의 소중한 곳인 테라스에도. 성열이 어쩐지 추워진 온도에 콜록, 기침을 하곤 계단을 내려와 집안 곳곳을 살피었다. 아무도 이곳에 오지 못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어두운 밤에 혼자 있는 건 아무래도 무서웠다. 참 웃기지도 않지. 생각해보면 자신은 뱀파이어와 살고 있는데.

 

 

“엘, 어딨어요…? 엘-.”

 

 

한참을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아 지친 성열이 다시 이층으로 올라와 테라스로 향했다. 항상 엘이 앉아있던 곳. 성열은 그 위에 쭈그려 앉아 오래되진 않았지만 요 며칠 자신이 물을 준 꽃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하얀 목련, 빨간 튤립, 노란 유채. 콜록, 다시 한 번 기침을 했다.

 

 

“…무슨 일 있어?”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성열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엘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던 것 마냥 태연히 자신에게 담요를 덮어주었고 성열은 담요를 감싸며 그 속으로 포옥 들어갔다. 손에 뭔가 묻은 건지 손을 툭툭 털어내는 엘을 잠자고 있던 성열이 마주치는 눈에 더욱 깊숙이 담요 속을 파고들었다.

 

 

“마을에 내려갔다 왔어.”

“…네에.”

“인간은 아침에 일어나면 뭘 먹어줘야 하니까.”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이 늦은 새벽에 자신을 혼자 두고 마을에 내려갔다 온 것이 섭섭해 성열은 괜한 심통을 부렸다. 대체 마을엔 왜 갔다 온 건지, 내가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어? 갑자기 누가 쳐들어와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잡혀가면 그땐 어쩌려고. 엘은 성열의 속마음을 듣고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왜 웃는데….

 

 

“이곳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

“그리고 네 발로 여길 나간다고 해도 난 널 데려올 자신이 있어.”

 

 

정말 깜찍한 상상을 했네. 엘은 성열을 일으키더니 아직 날씨가 쌀쌀하다며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을 해왔다. 앞서 걸어가는 엘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테라스에서 조금 벗어나니 곧바로 따스해지는 방 안에도 성열은 담요를 꼬옥 덮고는 침대 위에 누웠고 성열의 위로 포근한 이불이 덮어졌다.

 

 

“네가 아침에 뭘 먹어야 하니, 새벽마다 마을에 다녀오고 있어.”

“………”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주방으로 기어가는 누구 덕분에.”

“……훔쳤어요?”

“숲에 사는 작은 가축들을 인간의 우리에 넣어주고 나는 그만큼의 음식들을 가져와.”

“…………”

“더 궁금한 게 있나?”

 

 

도리도리. 성열이 고개를 저었다. 엘은 자신이 입 밖으로 꺼내 물어보지 않아도 이렇게 대답을 잘 해주었다. 자신이 궁금해하는 그 모든 것을. 뱀파이어와 살아가는 이 생활이 적응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금은 이러한 생활들이 어느새 익숙해져 혼자 있는 것보단 곁에 엘, 당신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쌀쌀해졌다는 날씨와는 달리 따뜻한 기운에 성열은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나른해지는 새벽이었다.

 

 

 

8.

  뱃속에 거지가 들은 게 분명하다는 엘의 말이 거짓이 아닌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성열은 매시간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아삭, 사과를 크게 한 입 깨문 성열이 엘에게 한 입 먹을래요? 하고 물었다가 아, 죄송해요. 하며 다시 자신의 집으로 쏙 집어넣었다. 엘은 너무나 사람 같은 뱀파이어라 성열은 가끔 이렇게 사람을 대하듯 행동하기도 했다. 자신과 똑같이 책을 읽고, 꽃에 물을 주고, 해가 지고 자신이 밥을 먹은 후에는 그걸 기다려주었다가 같이 저택 뒤에 있는 마당에 가 산책도 하며. 그래서 성열이 인간의 음식을 건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맛있어?”

“입이 심심하니까요.”

 

 

엘의 질문에도 책에 시선을 고정하던 성열은 자신의 앞에 엘이 다가오는 걸 눈치 채고 있지 못하다가 턱 끝을 붙잡는 엘의 손에 놀라 사과를 툭 떨어뜨렸다. 엘, 이러면 놀란다니까.

 

 

“나도 입이 심심한데.”

“네?”

“피를 안 먹은 지 꽤 됐지.”

 

 

성열은 그런 엘의 말에 하루 이틀 날짜를 세어보다 벌써 사일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괜찮은 줄 알고…. 입으로 뱉는 말과는 달리 주춤거리며 눈치를 보던 성열이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손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정말 언제 봐도, 잘생긴 얼굴.

 

 

“아윽…….”

 

 

하지만 이 느낌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에서 피가 빨려 나가는 이상한 느낌. 엘이 더욱 깊숙이 성열의 목덜미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힘에 부쳐 허공을 맴돌던 손이 엘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가고 시야가 빙글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엘이 성열의 몸을 받쳐주었다.

 

 

“……너에게만 항상 이렇게 자제를 못하고.”

 

 

목덜미에서 속삭이는 엘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오고 더 이상 귓가에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삐이-. 이명까지 들려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붙잡은 손이 엘의 손임을 알았을 그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에 인상을 구겼다가 입안을 휘젓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점점 더 깊이. 더, 더. 의자가 넘어갈 듯 몰아쳐오는 엘에 성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어디서 나온 힘인지 모를 기운으로 엘을 밀었다. 하아, 거친 숨이 오갔다.

 

 

“이, 이게. 이것도, 일종의 식사, 같은 거,”

 

 

더듬거리며 내뱉는 말들 사이에, 이 키스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이것도 혹시 뱀파이어에겐 식사 같은 거냐는 그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놀란 마음에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당신의 입에서 이것도 그런 것과 같은 의미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게 아니냐는,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을 하고서는.

 

 

“아니.”

“………”

“아니야.”

 

 

그리고 다시 성열에게 입을 맞춘 엘이 그대로 성열을 들어 침대 위로 옮겼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가득 퍼졌지만 성열은 엘을 꽉 안고 놓지 않았다. 그 말 오해해도 되는 거냐고, 당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민지 알고 한 거냐며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이것만으로도 좋아서, 그 손길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져도 가만히 키스를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9.

  눈을 뜬 건 새벽이었다. 시간에 관심이 없어진 지도 오래라 지금이 몇 시인지, 아니 며칠인지, 그것도 아니면 몇 달인 지도 몰랐지만 해가 지고 어두운 새벽 공기만이 가득한 이 시간이 그때, 얼마 전 엘이 저택을 비운 그때와 같다는 건 알았다. 성열은 또 엘이 사라졌을 것만 같아 불안함에 벌떡 일어났지만 무색하게도 엘은 침대 앞,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이는 그곳에 앉아 성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갔어.”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괜히 안도가 되는 마음에 성열이 다시 이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정적이 흐르던 그 안에서 성열은 아까 전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발끝을 세울 정도로 창피함이 몰아쳐왔다. 아까 이곳에서 키스를 하고, 침대에 눕혀지고, 옷이 벗겨지고….

 

 

“……피곤하지 않아?”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게 엘에게까지 느껴졌을 정도로 놀란 성열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괜한 부끄러움에 입을 꽉 막았다. 고요하니 작은 소리들도 잘 들리는 방 안에서 성열의 귓가에는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점점 커지는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성열.”

“………”

“성열아.”

 

 

이불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엘의 목소리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꼭 첫사랑을 만난 느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얼굴 보고 싶은데.”

 

 

그리고 걷어질 거 같은 이불에 성열이 먼저 이불을 조금 걷고는 눈만 빼꼼 내밀었다. 왜, 왜요.

 

 

“예쁘네.”

 

 

눈 감았을 때도 예뻤는데 이렇게 보니 더 예뻐. 성열은 정말 엘이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을 꼬여내는 죄로 분명, 분명히 쇠창살 안으로 잡혀갔을 거라고 또 한 번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랬어요?”

“다른 사람이 어디 있어.”

“아니…, 전에 이곳에 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동안 꾹꾹 마음속에 담아두고 신경 쓰였던 말을 꺼내었다. 혹시 내가 오기 전, 여기 왔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한 건 아니냐고,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오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재물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에 왔던 사람과 그 긴 시간을, 지금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해주며 하루하루를 보낸 게 아니냐며. 성열은, 자신이 지금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해줬다면 분명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 들었을 게 분명하다고, 당신 같은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홉 살이라고 했어.”

“………”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일 텐데 그 아이는 아홉 살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아이였어.”

“………”

“여기 있을 땐 나에게 오빠, 라고 불렀는데.”

 

 

자신이 재물로 받쳐졌는데도 사람들을 원망하는 얼굴은 하나도 하지 않은 체 이 저택에 처음 온 날 크게 소리치더군. 나는 당신이 무섭지 않아, 였나.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끝까지 눈물을 참더군, 나도 꼭 인간처럼 그 아이를 내 동생처럼 대해주기도 했어. 내가 갈증이 날 때쯤이면 기가 막히게 알고는 작은 손을 내밀어 주었고, 항상 해맑게 웃으면서.

 

 

“그런데 그런 어린아이에게 너와 같은 감정이 들었을 리가 없잖아.”

“…왜 죽은 거예요?”

 

 

쓸데없는 질투라는 걸 말해주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엘은 성열의 질문에 어울리지 않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곧 싸늘한 낯빛을 내보였다.

 

 

“그 아이의 피를 먹는 게 미안해지기 시작해서 새벽에 가축의 피를 빨아먹고 오는 길에.”

“………”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짐승의 냄새를 가득 풍기고 피를 흘리고 있으니 곧바로 울며 기절을 하더군,”

“………”

“끝이었어, 그게.”

 

 

그렇게 강한 모습만을 보였는데 그건 또 다른 충격이었나 보지. 엘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슬프게 읊조렸다.

 

 

“그리고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얼어 죽었어.”

“…얼어 죽어요?”

“말했듯이 난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저택 안을 항상 차갑게 놔두는데 모두 버티지 못하고 죽더라고.”

 

 

엘은 이불을 붙잡고 있는 성열의 손을 잡고 그대로 밑으로 끌어내렸고 성열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른할 정도로 따뜻한데. 그러면 이 공간에서 엘은 항상 불편하고 갑갑해왔다는 건가.

 

 

“별로.”

“………”

“너와 함께라서 따뜻해도 괜찮은 거 같아.”

 

 

성열은 그 말이 꼭, 자신을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떻게 뱀파이어가 사람을. 어차피 내가 죽으면 또 다시 다른 사람이 오고, 그러면 또 이렇게 같은 말을 내뱉을 게 분명한데. 입술을 꾹 다문 성열이 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는 의심이 너무 많아. 인간 중에서도 특히.”

“…그게 무슨.”

“좋아한다고.”

 

 

  그러니 나와 함께 이곳에서 마지막을 함께 해줄래.

성열은 그게 뱀파이어의 속삭임이 분명하다고, 자신을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자신에게 입을 맞춰오는 엘을 밀치지 못했다. 오히려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떨어지려는 엘을 꽉 안아 더욱 깊이 키스할 뿐. 성열은 이게 악마의 달콤한 거짓이더라도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엘이라면, 그게 엘이라면.


 

 

10.

  요 몇 년, 성열이 재물로 받쳐지고 난 후 괴물이 마을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다 어느 새벽 아침, 산을 올라가다 괴물의 저택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보고 경계하며 무기를 내밀었지만 그게 성열임을 알고 놀라 투두둑, 무기를 떨어뜨렸다. 괴물의 저택에서 살아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밥 좀 주실래요?”

 

 

어딜 봐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성열에게 마을 사람들은 괴물은 어떻게 된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들을 물어왔다. 그에 성열은 마을 사람들이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다며, 다신 우리 마을을 위협할 일이 없을 거라고 대답을 했다.

 

 

  성열이 마을에 내려오게 된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종일 저택 안에 있다 보니 심심하기 그지없어 슬쩍 엘에게 말을 건네었다.

 엘, 마을에 다녀오면 안 될까요?

아마 엘은, 처음 성열의 그 말을 듣고 세상에서 제일 험악해 보이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성열은 그 표정을 보고 잠깐 겁을 먹었다가도 이어지는 엘의 말에 푸시시 웃었다.

 

 

“왜?”

“…뭐 여러 가지 가져올 물건도 있고.”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잘해주지 않냐는 물음도 아닌 잘해주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꼭 사람처럼 온갖 인상을 다 구기고 슬픈 표정도 지어보였다. 당신이 잘해주는 건 알지, 아는데. 성열은 엘이 보고 있던 책을 옆으로 치우고선 그 앞에 앉아 아이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다시 올 거예요.”

“………”

“엘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 성열의 말에 엘은 정말 그럴 거라는 단호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네가 안 온다면 널 잡으러 갈 거야.”

 

 

끄덕. 알겠으니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오랜만에 내려온 마을은 자신이 떠났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성열은 자신의 부모가 있는 곳에 가 풍성하게 자란 잡초도 정리하고, 열심히 집에 모아두었던 돈으로 시장을 봐 밥을 챙겨먹기도 하며 평범한 하루들을 보내었다. 처음 성열이 내려왔을 때는 괴물이 되어버린 게 아니냐며 경계하는 눈빛도 몇 있었다면 이젠 다들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성열은 마을에 내려온 이유, 그토록 찾던 것을 찾고는 마을에 내려왔던 것이 다 환상이었던 것 마냥 사라졌다.

 

 

完.

  새벽 일찍 마을을 나섰다. 저택으로 가는 길은 멀고 가파른 길들이 많아 꽤나 고생을 했다. 이사를 가는 것처럼 두둑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니 힘든 건 배가 되어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도 했다.

 

 

“…하아.”

 

 

이렇게 저택을 보는 건 처음인데. 성열은 이곳에 처음 잡혀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강제로,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마 인생에서 제일 무서웠던 때를 고르자면 아마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니 무섭기도 했고, 정말 그때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심장을 덜컹이기도 했다.

 

  저택은 봄이 다가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주변에는 벚나무들이 따뜻하게 꽃을 피웠다. 조심스레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끈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며칠 오지 않았다고 어색해진 곳에서 성열은 먼저 주방으로 가 가져온 물건들을 내려놓고 이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테라스가 보인다. 성열은 그곳을 향해 괜히 긴장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테라스에는 엘이 소중하게 여기며 가꾸는 꽃들이 한가득 피어올라있었다. 각종 꽃들을 뚫어져라 쳐다본 성열이 그 앞에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해가 올라오는 건지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두 눈을 꼭 감고.

 

 

“엘.”

“………”

“…엘?”

 

 

잘 리가 없는데. 며칠 안 온 사이에 잠에 들 수 있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성열은 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엘의 앞으로 다가갔다. 흰 피부에 붉은 입술. 엘이다.

 

 

“엘, 설마 자는,”

 

 

그리고 성열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엘은 성열의 손을 끌어당겨 꽉 품에 안았다. 정말 꽈악,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안은 탓에 조금 아프기도 해 성열이 옅게 신음을 내뱉고 나서야 엘은 성열을 놓아주었다.

 

 

“밤이 여섯 번 정도 지나갔더군.”

“…네?”

“춥진 않지?”

“이렇게 따뜻한데요.”

“네가 언제 올지 몰라 항상 이렇게 해놓고 있었어.”

 

 

어린아이처럼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그 얼굴로,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 내가 보고 싶었다는 그런 표정으로.

 

 

“엘은 싫어하잖아요.”

“말했잖아.”

“………”

“너와 함께면 따뜻해도 좋은 거 같다고.”

 

 

정말 사람 설레게 하는 건 타고난 거 같다고 성열은 속으로 생각하다 아, 생각이 난 건지 자신이 가져온 짐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엘에게 내밀었다. 엘, 선물이에요.

 

 

“……팬지.”

 

 

그리고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주방으로 내려간 성열은 아까 전 주방에 미리 두고 온 작은 꽃다발을 예쁘게 챙겨 꼭 품에 안고는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테라스의 햇살을 가득 받으며 그 뒤에 여러 색들을 피우고 있는 꽃들 사이에 있지만 그것들 보다 더욱 환하고 아름다운 엘에게로 다가간 성열이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산을 오르는 내내 망가지지 않도록 고생하고 또 고생하며 지켜온 꽃다발을 내밀었다.

 

 

“팬지.”

“………”

“꽃말이 뭔지 알아요?”

“……몰라.”

“나를 생각해주세요.”

 

 

성열이 가방에서 꺼내 건넨 건 팬지의 씨앗이 들은 봉투였고 꽃다발은 여러 색의 팬지가 담겨있는 다발이었다. 엘이 어색히 꽃다발을 받자 성열은 한껏 발개진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내뱉었다.

 

 

“꽃말처럼, 내가 먼저 죽더라도 날 오래도록 생각하고 기억해달라고요.”

“………”

“그리고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꽃을 주거든요.”

 

 

엘에게도 그래주고 싶어서. 성열은 민망함에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눈을 깜빡이며 마른 입술을 괜히 물어뜯었다. 엘은 꽃다발을 옆에 내려놓더니 성열에게로 다가와 꽃들이 가득한 그 사이로 데려갔다. 엘이 그토록 소중하게 가꾸던 꽃들.

 

 

“다 네 꺼야.”

“응?”

“저거 다, 네게 주는 꽃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좋아하는 사람에겐 꽃을 준다며.”

“…………”

“선물이야.”

 

 

그리곤 엘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왔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며 고백했다면 어이가 없을 법한 행동이었지만 이건 엘다웠다. 나보다 한참을 살아와서는 가끔 이렇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퍽 귀여웠다. 성열은 빙글 몸을 돌려 엘의 품으로 안겼다. 엘, 뽀뽀해줄래요?

 

 

“언제라도.”

 

 

입을 맞추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한참 동안 탐했다. 그동안 애타 왔던 것들을 몰아서 하기라도 하는 듯 밤새 서로를 안다가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성열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따스한 볕이 침대 위를 가득 채우고 부스스 피곤함을 겨우 뿌리치며 눈을 뜨니,

 

 

“잘 잤어?”

 

 

눈앞에 보이는 팬지꽃에 성열은 피곤함 따위 다 잊어버린 체 엘에게로 안겼다.

봄 같은 나의 연인, 다르지만 같은 당신에게, 나의 사랑인 당신에게, 그리고 나의 마지막을 함께 해줄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며.

 

 

 

 

 

봄, 나의 특별한 연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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