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아카]神-1



신은 지금 몹시 심기가 불편했다. 그 아카아시가 축제에 오고 있었다. 저가 몇 년이나 그를 아프게 해 축제에 오게 만들었는데도 계속해서 오지 않던 그가, 한 인간남자의 말 한마디에 축제가 열리는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카아시의 옆에 붙은 남자가 매우 신경에 거슬렸다. 잿빛 머리칼을 왁스로 세운,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사내아이. 저런 것의 무엇이 좋다고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인지 신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신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산, 신사, 힘, 권력, 저를 따르는 귀신의 무리들, 그리고 이제는 저를 볼 수 있는 인간까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얻은 그것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저의 권력도, 힘도, 제 위치도.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위대한 존재일 터인 자신이 어째서 이런 취급을 당해야하는지 신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기는 커녕, 자신을 흐릿하게나마 인식한 인간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신은 그를 대하는 방법을 아직까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왜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저를 보면 화를 내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 일' 이후 오지 않게 되었는지도. 신에게는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신은 꽤 오랜 시간을 존재했다. 인간들도, 어지간한 귀신들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긴 시간을 홀로 존재해왔다. 태초 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존재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신은 또 다른 신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인간의 추앙이 아닌 신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신은 다른 신들과는 달리 인간의 추앙과 신앙이 없어도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신은 인간과의 접촉이 적었다. 제 신사도 귀신들이 지은 신사였고, 신사에 공물을 바치러 오는 인간은 수십 년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 인간들은 모두 신 자신을 떠받들고 있었으니 아카아시와 같은 이를 만나는 것은 신에게는 존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 천년을 기다려 만난 존재였다. 신으로서는 절대로 놓칠 수 있을 리가 없는 이였다. 제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고 저를 만나러 와주었던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 어떤 귀신도 그렇게 해주지는 않았다. 따뜻했다. 그런 따뜻함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신은 그가 좋았다. 따뜻한 그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그가 좋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신은 다시금 그가 저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신은 산을 벗어날 수 없고 아이는 그 날 이후 산의 근처로는 오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큰 일이었던가. 평소에는 그저 흘러가던 시간이 그 날 이후 마치 멈추기라도 한 것 마냥 하루하루가 버겁고 무겁게 천천히, 그저 천천히.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 마냥. 어쩌면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오지 않는 날은 늘어갔고 그 시간이 1년이 되고 2년이 될 수록 신은 초조해졌다. 어쩌면 그 아이는 평생 나를 찾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봐도 불안함은 증폭했다. 벌써 아이가 찾아오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던가. 이제는 아이와 만나는 것 조차도 할 수 없는 걸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도 나오는 답은 없었다.


그 때였을까, 아이의 주변에 이상한 남자가 들러붙은 것은. 처음에는 아이의 주변에 자주 나타나던 귀찮은 벌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서 떨어트리기 위해 아무리 저주를 걸어도 그는 아이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주에게서 너를 지켜줄게!'라며 아이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신은 화를 냈다. 그의 곁에 있고 싶은 것은 저인데, 아이가 얼굴을 보며 웃어줘야 할 이는 바로 저인데. 어찌 한낯 인간 따위에게 저렇게나 상냥한 웃음을 지어보인단 말인가. 신은 좌절했다. 그리고 저와 인간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은 우선 형태를 만들었다. 이 때까지의 귀신에 가까운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형태를 새로 빚었다. 새로운 몸은 꽤나 자유로이 움직였다. 여전히 멀리 볼 수 있었고 저가 만든 신체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모습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신은 자신에게 이름을 붙였다. 언젠가의 아주 먼 과거에 제게 공물을 바치던 이의 이름을 빌렸다. 조금 더 밝은 성격, 조금 더 밝은 겉모습과 미소. 보쿠토는 가지고 있는, 그리고 신에게는 없던 것을 신은 시간을 들여 만들기 시작했다. 그 신체를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때  신은 산을 벗어났다.


자신이 먼저 아카아시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한 신은 이제까지와는 또 다르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과거에 썼던 글들을 모아둡니다. 좋아하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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