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오토노키자카는 꽤나 씨끄러웠다. 오픈 캠퍼스도 아닌데 교복을 입은 학생보다도 교복을 입지 않은 손님이 더 많아보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더 멋진 풍경을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소리,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찰칵 하는 소리. 빨간 리본으로 묶인 두루마리를 든 학생과 꽃다발까지 들고 있는 학생, 그 옆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적은 사람. 담임의 말을 듣지 않고 저들끼리 떠드는 동급생이나 벌써부터 울먹이는 동급생.

왜 그러고 있지? 왜 그래야 하지? 니시키노 마키는 그렇게 음악실 창가에 앉아 3월의 소란을 피했다.

허리 숙여 무언가를 부탁하는 파란 리본이나, 멋쩍게 웃으며 단추를 뜯어 주는 초록 리본이나. 벚나무길에서 비치는 봄날의 햇빛이 눈이 부셔서 마키는 찌뿌린 눈으로 등을 돌렸다.

주머니에 찔러넣은 손에 잡히는 전화를 꺼내어 켰더니, 시간과 날짜 정도만 깨끗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마키는 괜히 한숨을 쉬고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만남이 다시 찾아 올 리는 없었다. 1학년 때 피아노를 치고 있었더니 갑자기 찾아와서는 떼를 쓰는 2학년이나, 마지막에 가서야 입부할 마음이 생긴 3학년이나, 모두 모여 노래를 만들던 그런 날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그 날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오늘 완전히 끝난다. 그게 졸업이란 거겠지.

당연히 그 정도로 울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정도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남은 날들에 비하면 일부 정도밖에 되질 않으니까.

당연히 서운함도 없다. 중학교 졸업 즈음을 생각해보면 아빠는 또 무슨 소리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 지도 모르니, 혹시 눈치 없는 말을 할 거라면 차라리 집에서 듣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도 마음 한 켠에 남은 건 외로움일까, 쓸쓸함일까, 아니면 후회일까. 그 무거움은 결국 마키를 피아노 앞에 앉혔다.

뭘 쳐볼까. 2년만에 만져보는 건반인데도, 방금 연주했던 것처럼 머릿속에 여러 음들이 흘렀다. 처음으로 작곡해 준 노래, 혼자 불러 본 노래, 우승을 차지한 노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 하지만 그 멜로디는 어딘가 흐릿해서 지금 바로 연주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 중에 하나, 확실하게 떠오르는 노래 하나가 있어 천천히 첫 음을 울렸다.

이 노래를 만들던 때가 생각났다. 누구의 억지 때문에 스타일에 맞지 않는 정신 나간 노래를 작곡하느라 한참 짜증이 나 있을 때, 다른 누가 그랬었다. 미안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노래 한 곡을 넣자고. 새 곡을 쓰라는 얘기잖아! 하고 조금 화가 난 척을 해 보니 멋쩍게 웃었던 3학년. 초벌을 만들어 이제 가사를 붙이려고 작사가에게 넘겼을 때 어떤 이미지로 작사를 하면 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먼 미래에는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말했다.

손가락이 점차 느려진다. 음이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가사까지 완벽하게 떠오른다. 그 때문에, 픽션이었어야 했을 가사가 현실에 덧씌워지고 있었다.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템포가 엉망이 된다. 하지만 전화는 꺼내지 않는다. 이 노래를 끝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끊기도 싫었다. 이 노래는 예언. 예언의 마지막대로 하려면 계속 노래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시간이란 건 막을 수 없었다. 끝을 마주한 마키는 결국, 눈물 한 방울로 마지막 소절을 대신한 채 이야기를 멈췄다.

시큰거리는 코를 닦아낼 게 없었다. 그래서 조금 꼴사납게 고개를 젖히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좀 창피하면 어때. 어차피 볼 사람도 없는데. 좀 울면 어때. 어차피 오늘은 그런 날인데.

“뭐야, 마키답지 않게 끝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러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에 마키는 그 소리가 들린 문가로 눈을 돌렸다.

“정말이지, 너무 풀어진 거 아냐?”

검은색 정장. 이제 어른 티가 나는 금발의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마키의 발치까지 다가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줄 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무...무슨 일이야?”

“후배의 졸업식인데, 찾아오는 게 이상해?”

마음과는 다르게 헛나온 말에도, 그 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하고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했더니 역시 여기였네.”

“아 뭐, 그렇네.”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까 고민하는 마키와는 달리, 에리는 신기한 듯이 음악실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그래도 그 작은 간격에 마키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진짜 안 변했다.”

“겨우 폐교되지 않을 정도만 모집되니까.”

“아니, 학교 말고.”

갑자기 맞춰진 눈에, 마키는 괜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이고, 우리 마키 졸업 때가 되니까 감성적이 되어버렸네?”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열창하고 있었던데?”

“무......뭐?”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모르는 사이에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에리가 온 줄도 모르고.

“들어왔으면 얘기라도 하지!”

“마키가 단독공연 하고 있길래 특등석에서 보고 있었지. 중간에 울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지만.”

에리가 바로 앞에서 농담을 하며 키득대고 있었지만 마키는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사처럼 된 지금이 기뻤다.

“그래서, 노래는 안 끝낼거야?”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결심하듯이 올려 뜬 눈에 당황한 듯한 에리가 들었다.

“아직 끝낼 수는 없지. 아니, 끝나더라도 그 뒷 이야기가 있잖아?”

그렇게 선언하자, 에리도 같이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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