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성배전쟁이 끝나고 모든 서번트들이 수육했다는 날조 설정

*오메가버스 세계관

*창궁槍弓

*미숙한 캐해석 주의



3. 형질로 숨겨진 마음

 생선가게의 만남 이후, 알파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각하지 않는 랜서 때문에 아처는 끈질기게 설명을 해줘야 했다. 아니 대체 이 남자는 켈트식의 사고를 왜 못 버리는가!!! 영령이 되어서도 열불이 터질 줄은 몰랐다. 

 한 번이면 알아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아처의 랜서에게 올바른 지식 주입하기 캠페인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을 무렵 아처는 이제는 단골이 되어 버린 생선가게 점원이 사실은 자신을 농락하고 있는 게 아닐지 의심이 되었다.

 먼저 한계가 온 것은 당연코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던 아처 쪽이었다. 아니 왜 성배가 백업해 놓았을 상식의 응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냐!! 

 "그러니까 내가 너를 무는 게 본딩인데, 이건 아무 때나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

 "아니라고 몇 번 말하는 건가! 애초에 본딩은 서로가 짝이라는 흔적을 만들어 놓는 거다. 하아... 성배에게서 짝이 뭔지 백업받았겠지? 짝은 사후에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시스템이다. 네 놈의 신화를 응용하자면, 네가 사랑한 여인들... 그들과 어떤 성행위를 했지?" 

 "뭐야! 그런 걸 묻다니, 네 놈 역시 변태였던 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런 쪽으로 해석하는 개의 머리가 애석하군. 나는 개의 지능에 맞춰 설명해주려 했을 뿐이다." 

 "아 쫌! 개라고 말하지 말라고!" 

 "흥."

 감상을 말하자면, 수치스럽다. 랜서가 거칠게 내놓는 생선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의 생전, 여인들과 했던 잠자리를 언급해야 하는 처지가 한심스럽다. 그래서 더욱 삐뚤어지게 대했다는 자각은 있다. 그렇지만 랜서가 매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꾸했기 때문에 아처는 쌀쌀맞은 언행을 멈출 수 없었다.

 애초에 아처와 랜서, 두 사람은 서로 살갑게 말을 나눌 정도의 사이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는 '질긴 인연'이라고 하나만 있으면 있어야 했다. 그 단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처가 랜서에 대해 신중해질 필요는 없었다.

 다른 곳에 소환되었을지 모르는 또 다른 개체는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이 세계와 달리 끈질기게 싸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세계라고 해서 딱히 그 관계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아처의 참견은 슬슬 도를 넘고 있었다. 상식의 응용 정도, 페로몬을 갈무리하는 방법만 알려주려고 했던 속성 강좌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슬슬 매일 생선 밥상이 차려지는 것도 질리는 일이었다. 

 "계속 말을 못 알아들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허어? 왜 포기하는데!" 

 "너야말로 왜 포기를 못하는 거냐! 이 정도면 페로몬도 갈무리할 줄 알게 되었잖아!"

 "아직이거든!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드는 오메가랑 대화할 기회를 왜 뺏는 건데!!" 

 "웃기지 마라!!"

 뱉어놓고도 아차, 싶었다. 오메가? 그것도 마음에 드는 오메가라니? 흐름에 맡겨서 소리 지르기는 했다만, 아처는 현 상황이 파악이 되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회로가 고장 난 듯... 그러니까 저 창병은 아처가 오메가이기 때문에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단 말이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랜서는 수육을 하고 난 뒤, 처음 만났던 이후 따로 말해주지 않았어도 페로몬을 잘 억제하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랜서가 능욕을 했다는 것 밖에 떠올지 않는다. 오메가여서, 알파가 오메가인 아처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빌어먹을 형질. 

 순식간에 아처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수육했으로 형질이 다시 드러난 것도 억울한데, 그것을 가장 짜증 나는 남자가 신경 쓰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처가 오메가이기 때문에. 오메가여서 본능적으로 알파가 관심을 가진다.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상이 얼마나 역겨운지, 알파나 베타들은 모른다. 제 몸을 제어할 수 없는 힘이 무엇인지, 몸을 저당 잡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아처는 허겁지겁 지갑에서 돈을 내고 뛰었다. 더이상 랜서의 앞에 있으면, 제가 어째서 그를 신경 썼는지 알게 될 것만 같았다. 계속 적으로만 남을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 페로몬을 숨기라고 일침을 놔두고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처는 랜서를 매몰차게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다가간 것은 아처였다.

 한 마디라도 빈정거리며 맞받아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집에 도착한 후였다. 

 알파가 오메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 세상의 절대적인 이치였다.

 아처가 유지하던 경계선, 강력한 알파의 향기에 끌렸던 제 자신을 향한 질타. 아처는 문 앞에서 주저앉아 고개를 양팔 아래에 묻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던 랜서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메가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다고, 그 남자는 말했다. 

 바뀌지 않는다. 아처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본능으로 숨겨지고,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째서 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남자에게 끌리고 있는가? 

 형질이 싫다. 오메가는 알파에게 끌린다는 당연한 본능이 끔찍했다. 제 마음도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못한 위작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오메가여서 알파에게 끌리는 마음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 세계였다. 

 




 *

 아처가 랜서에게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었던 일이다. 그 세계의 아처의 마스터는 랜서의 마스터와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일을 함께 해결하고, 파트너로 적을 쓰러트렸다. 그동안 아처는 아군이 된 랜서가 얼마나 듬직한지, 그러면서도 매력적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세계 이전에도 수십 번 마주친 악연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세계만큼 그들이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이상한 연정이 나타난 것도 처음이었다. 

 아처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마음. 수호자로 얽매인 아처가 가지기에는 너무 큰 마음이었다. 계기는 사소했다. 그들이 상대하던 적은 대군 보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타파하다가 고양된 마음에 서로의 머리카락을 헝크러트린 가벼운 접촉, 그것 하나로 태어난 마음이었다. 그것은 숨결 하나로 날아가 버릴 깃털 같은 존재였다. 

 끝에 가서 아처의 마스터를 배신한 랜서의 창에 꽤뚫리면서, 아처는 이 마음이 좌에 있는 본체에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깃털 같은 연심이었다. 대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본체는 복사본의 가벼운 깃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기록을 닳도록 읽고, 또 읽어서 제 마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만난 랜서와 마주했을 때, 아처는 뛰지 않는 가슴의 고동을 느꼈다. 무겁게 피어나는 감정이었다. 싸움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희망 없는 감정에 매달리는 것은 생전으로 족했다. 그래서 아처는 무참하게 제 마음을 짓밟았다. 다시는 본체에게 전해지지 않을 기록이 되도록 몇 번이고 제 마음을 죽였다. 영령이었을 때는 형질을 느낄 수 없었기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형질이 드러나면서 죽어가던 마음은 아처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당황으로 점칠되었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머리도 차갑게 식었다.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그 상황에서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마치 랜서의 우습지도 않은 말에 타격을 받은 거 같지 않은가? 

 전부 형질 때문이다. 죽어가던 마음이 다시 들뜨기 시작하는 것도, 전부 본능에 의한 반응일 뿐이었다. 제 절망도 형질 때문이다. 감정을 죽이지 못한 것도 형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느긋하게 쓰고 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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