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오솔길을 내달려 산길에서 벗어나자 바닥에 닿는 감촉은 단단한 시멘트로 바뀌었음. 점점 내 영역에서 멀어지며 미천한 종자들이 모여 사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음. 자주 타고 넘던 담벼락을 지나, 나를 위한 간식을 챙겨주던 건어물 상회를 지나, 점점 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으로. 그 곳으로.


엄마는 항상 나에게 몸을 숨길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복잡하게 무엇이 많은 곳으로 가라고 했었음.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음.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가야 나를 못 찾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오늘 일 때문에 확실히 알았음.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 밖에 안 보인다는 것을.


내가 태어나고 몇 년 동안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살긴 했었음. 지내는 곳도 사람들이 집이라고 일컫는 건물 안에서. 그 곳에 살면서 엄마가 정말 빠르고 많은 양의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셨지.... 으으... 그래서 난 그곳을 별로 안 좋아했음. 맨날 신나게 나가서 놀다 오면 그 집에 끌려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만 했으니까.

몇 년 동안 일부러 그 집 쪽으론 가지도 않았음. 아무리 그래도 거긴 엄마랑 추억이 많으니까.

그리고 또 모르지. 미천한 종족이 잘 모르고 덜컥 들어가 살고 있으면 또 어쩌나 싶기도 했고... 가물가물해진 기억에 따라 이 길이 맞나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였지만 복잡한 생각에 비해 몸은 익숙한 듯 알아서 움직이는 느낌이었음. 주변의 풍경은 제법 바뀌었지만 역시 익숙한 뭔가가 있었음.


이 벽 근처였던 것 같은데...

저 개구멍으로 들어가냐고? 

누굴 진짜 고양이로 아나;


들어가라고 문이 있는데 문 열고 가는 게 상식 아닌가;

익숙한 문고리를 잡고 열자 끼익 하며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렸음.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서 내는 소리. 우리가 여기서 떠나고 난 뒤엔 아무도 살지 않은 모양이었음. 그건 좀 다행이다.

먼지가 자욱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있는 느낌이었음. 요근래에도 누가 왔다 간 모양이었음. 역시 그때 무덤에 왔다 간 놈이랑 같은 놈일게 분명했음. 이 자식은 누군지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꼭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은근히 무엇이든 해놓고 가는 게 여간 수상한 놈이었음. 

처음엔 찝찝하고 의심스러워서 마련해준 것 같은 거처나 음식에 입도 안 댔는데 그럼 자꾸 더 많은 양을 가져와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해왔음. 아마 이번에도 내가 이 집이 필요할 걸 또 어떻게 알곤 정돈을 했는지... 역시 수상하지?

그전까진 내가 너무 어려서 요령이 없었지만 이젠 나도 곧 성년이라고! 조만간 이 수상한 자식의 꼬리를 잡아낼 계획이었음. 그리고 우리 엄마랑 무슨 사이인지 혹시 뭔가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말이야.


하도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너무 지쳤음.

햇볕이 잘 내리쬐는 마루에 날 위해 마련된 듯 버젓이 있는 쿠션으로 몸을 뉘었음. 좀 자야 해. 너무 피곤해...






"이쪽엔 없었어. 그때 본 아저씨."


"내 쪽에도 없었어. 그 백발의 노인."


"두 분 다 정말 그 한 사람을 본 게 맞아여? 그게 진짜 같은 사람도 맞아여? 기억이 다른 게 너무 이상하잖아여."


"하항. 그래서 우리가 꿈을 꾼 거 아니냐? 뭐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건가? 리에프군은?"


"같은 사람을 완전 다르게 봤단 걸 어떻게 믿겠어여..."


"못 믿을게 뭐 있어. 나비도 사람이 되는 참인데. 안 그래?"


"그건 또... 그르네여..."


3일 째, 마치고 나비의 거처를 알려준 묘령의 사람을 찾기 위해 동서 분주했지만 실마리는 전혀 잡히지 않았음. 켄마와 쿠로오가 말하는 위치는 같았지만 그것을 알려준 사람의 묘사만 다르니 거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음. 뭐에 홀린 게 아닌가 싶어졌음. 근데 그때 들었던 말에 거짓이 있었는가? 하면 또 아니었음. 알려준 위치에 정확하게 나비가 지내고 있었음. 근데 왜 같은 사람을 다르게 보았을까?


그리고 지금 나비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이후에 나비가 지내던 곳을 찾아갔지만 그 뒤론 찾아오지 않았는지 흔적이 없었음. 아예 장소를 옮겨버린 듯했음. 그렇다고 평소 자주 보이던 공원이나 학교에선 보이지 않았음. 또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정말 애가 타 죽을 것 같았음.


한참을 그 상점가 주변을 돌았지만 오늘도 허탕이었음. 이만 갈까 하는데,



"너무 예쁘다. 아이 착해. 아이 착해."

"귀찮아 죽겠네. 나도 내가 이쁜 거 알아. 입 아프게 그런 말 그만해~"


너무 잘 아는 고양이가 어떤 한 아이와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음.

근데 우리가 아는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 아닌가? 우리한테는 곁을 그렇게 안 주려고 하고 발톱도 서슴없이 꺼내 들며 할퀴려 들더니... 또 어린 아이에겐 안 그러는 모양이었음. 표정은 누가 봐도 귀찮아 죽겠는데 아이라서 봐주고 있다는 게 역력했음. 심기가 불편한지 꼬리가 탕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히고 있었음.


"나는 보자마자 때리던데 말이지... 차별이 심한데?"


"싫어하는데 자꾸 붙잡고 있으니까 그렇지."


"아하하. 진짜 귀엽지 않아여? 어디서든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좀 안심이네여."

 


"내가 예쁜 고양이 더 예쁘게 만들어 줄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어디서 가져왔는지 여러가지 꽃을 내 머리 위에 올려주는 아이를 보니 만사 귀찮아졌음. 저 옆에 정육점에 볼일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조금만 상대를 더 해주다가 가도 상관은 없으니까.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고...


"뭐,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네. 당사자를 발견했으니까. 어떻게 할래? 바로 가? 아님 좀 기다려볼까?"


"이번에 또 도망가면 정말 귀찮아 질 것 같은데..."


"미행! 미행을 하져!"


미행?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과연 우리가 들키지 않고 나비의 뒤를 쫓을 수 있을까 싶었음. 그리고 만약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어쩌려고...?


"재밌겠네. 미행 좋지."


"우리 얼마 전까지 부 활동 하고 왔다고. 난 피곤해."


"그럼 켄마상은 여기서 짐 지키고 계세여!"


"... ... 그냥 갈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건 더더욱 성미에 맞지 않았음. 궁금한 건 직접 해결해야 하는 편이었기에 고민은 길지 않았음. 그렇게 셋은 나비가 잘 보이는 위치로 각자 몸을 숨겼음.


 

"숨바꼭질하는 것 같고. 두근두근 하네."


"그냥 괴롭힐 애가 생겨서 신난 사람 같아."


"아. 애가 가니까 나비도 슬쩍 움직여여!"


상점건물에서 어머니로 추정되는 어른이 나오자 나비와 같이 있던 아이는 나비에게 인사를 하더니 어른의 손을 잡고 가버렸음. 그제야 나비는 주저앉았던 몸을 쭉 일으켜 세우더니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음.


"으으으으...! 시원하다. 역시 아이랑 놀아주는 건 힘들어."


기지개를 시원하게 켜고 나서는 다소곳하게 앉아 아이에게 만져져 떡이 된 털을 그루밍하기 시작했음. 이쪽저쪽 결대로 부드럽게 핥아서 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어내렸음. 그래도 아이가 준 꽃은 제법 마음에 들었음.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 올렸음.


"정육점 영감이 꽃을 제법 좋아했단 말이야."


여주에겐 나름의 신념이 있었음. '노인과 아이에겐 친절하게 하자'이건 종족을 떠나 꼭 지키는 신념이었음. 엄마의 가르침이기도 했음. 물론 그 외에 것들에겐 내 알바가 아님; 거슬리면 죽는거임;


"나비 진짜 너무 귀엽지 않아여? 저 꽃 물고 있는 거 좀 보세여. 진짜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님 누굴 주려고 그러는 건가?"


"낭만이 있는 고양이네. 만약 누굴 준다면 다른 고양이? 아님 혹시 짝?"


"엑? 짝이라뇨! 아직 아가인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확실히 아기는 아니었어. 리에프."


"리에프. 제법 음흉해."


"윽...!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세여!"


한참 리에프를 놀려먹고 있는 쿠로오와 켄마.

나비는 꽃을 물곤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음. 그런 나비의 모습을 본 상회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음.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닌 모양이었음.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소중하게 물고 있던 꽃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곤 


"영감탱! 나왔다고!"


냥냥 귀엽게 울기 시작했음.

그러자 그 상점의 문이 열리더니 한 할아버지가 나왔음.


"... 저기, 켄마. 저기."


"쿠로가 말한 사람이랑 느낌이 비슷하긴 한데. 지금은 내가 보기에도 할아버지로 보여."


"어? 그럼...?"


나비는 할아버지가 열어 준 문 사이로 따라 쏙 들어가 버렸음. 어찌해야 하나 싶었지만 쿠로오가 먼저 가게의 근처로 다가가 버렸음. 너무 가까이 있으면 들킬 위험이 있었지만 다들 그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음. 그리곤 가게의 내부가 보일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워졌음.


"아니! 그거 말고! 그 옆에 거! 그거 싸구려잖아! 안 먹어!"

"안돼~ 이건 특투쁠이란 말이야. 비싼 거라고~"

"아! 그러니까 그거 달라니까! 영감탱 되게 치사하게 구네. 내가 꽃 가져왔잖아! 꽃 좋아하잖아!"

"허허, 거참. 이 녀석이 우리 집 거덜 다 내겠네."

"고마워!"


할아버지는 나비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님 그냥 뉘앙스가 그런걸 느끼고 대답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비가 매대에 매달려 냥냥 거리는데 정말 서로 대화가 통하는 것 처럼 보였음. 결국 졌다는 제스쳐를 취한 할아버지는 어떤 한 고기를 조심스럽게 포장을 해서 비닐에 담아 나비에게 내밀었음. 나비는 비닐 손잡이를 물곤 뒤도 안 돌아보곤 가게를 나왔음.


"이거 조를 두 개로 나눠야 할 것 같은데? 나비를 따라가는 조랑 저 할아버지한테 갈 조."


"나는 할아버지 쪽에 갈게. 물론 따라가는 게 귀찮아서가 더 큰 것도 있지만 정체가 궁금하기도 해."


"그럼 나는 나비를 쫓을게. 켄마 이따 보자."


"앗! 쿠로상! 같이 가여!"



"으흥흥~ 오늘은 고기 파티~ 기부니가 좋아요~ 으흥흥"


요 며칠 영감탱이 안보였는데 오늘은 마침 가게를 열었더라고~ 내가 그걸 봤지~ 그러니까 고기를 뜯어왔지~

아주 어릴 때 부터 봤던 영감이었음. 그 영감도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더라고. 우리 엄마랑 있을 때 부터 같이 봤으니까 한... 십여년 봤네? 다행이었음. 그래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지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듯했음. 아무래도 이 주변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조력자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참이었으니까. 

미개한 종족들과 어울려 사는 법도 배워야 했었지만 난 정말 배우기 싫다고 생떼를 썼었는데... 엄마가 이런 날을 예견하고 알려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어졌음.

역시 우리 엄마 최고아냐? 진짜? 선견지명 오지지 않아? 우리 엄마 진짜 너무 멋있어.


소중하게 물고 온 고기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리곤 주변을 휙휙 살폈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아오! 우리 집 들어가는 것도 내가 눈치를 봐야 하다니! 내 팔자야."


거뜬하게 문을 열곤 서둘러 고기를 챙겨 집으로 쏙 들어갔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길 들어가는 걸 누구든 본다면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음. 또 내가 지내는 곳을 들켜봐. 이젠 갈 데도 없어.


"나비는 천재가 분명해여. 문도 열 줄 알아여!"


"문을 열 줄 아는 고양이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좀 신기하네. 근데 나비는 고양이로 치부하기엔 좀 무리긴 해."


"근데 이제 어쩌져? 저 집은 누구 집일까여?"


"그러게. 모르는 사람 집인데 무작정 초인종을 누를 순 없고 말이야."


"음... 저 정도 높이의 담이면 슬쩍 안은 둘러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러면 안되겠져?"



"아무래도 좀 그렇지. 어쩐다. 그냥 눌러? 초인종 눌러?"


"저기 나비 혼자 산데."


"어? 금방 오셨네요? 어떻게 아셨어여?!"


"그 노인이 뭔가 말을 해주던가?"


"음... 좀... 뭐 듣긴 했는데, 제대로 들은 건 없어. 그냥 나비 집이랑 혼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리고여?!"


"사람으로 살 수 있게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수인이란 걸 모르고 컸대..."


"수인? 그럼 그 할아버지도?"


"뭐... 그 종족의 수장? 대장? 같은 거라고 하던데... 그래서 우리의 뭘 믿고 그런 말 하냐고 물으니까..."


나비가 변한 걸 알게 된 시점 부터 우리를 감시해왔대. 


"그러고 보니 요즈음 고양이들 엄청 마주치긴 했어여."


"음... 나도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내가 나비를 찾아다녀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할 거야...? 도울 거야, 아님 말 거야?"


"어? 그게 고민이 될 문제였나여?"


"응. 적어도 나는 그래. 쿠로는?"


"뭐, 상관 없긴 한데. 정작 중요한 건 그 나비한텐 그럴 의지가 있냐 이 거지. 저번에 봤을 때도 들은 게 아무것도 없는 눈치던데?"


"에휴. 그럼 그렇다는 걸로 하죠."


"... ..."


켄마가 바라본 담장 쪽으로 올려다보자 언제 와 있었는지 꼭 호랑이 같이 생긴 고양이가 앉아서 셋을 노려보고 있었음. 여차하면 바로 공격해버릴 기세였음.


"와. 깜짝이야. 호랑인 줄 알았네."


"... 아까 정육점에 계시던 할아버지?"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던 호양이는 콧김을 거칠게 뿜더니 담장 아래로 훌쩍 뛰어내려 반대편으로 홀연히 사라졌음. '지켜본다 조심해'라는 의미가 분명했음.


"근데... 켄마. 우리가 만약 안 한다고 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맞아여! 완전 죽여버릴 것 같던 눈빛이던데여!"


"뭐... 죽이고 그런 거 까진 아니고... 머리를 쳐서 기억을 지워버릴 거라곤 하긴 하더라."


"아니 그게 뭐야ㅋㅋㅋ 진짜ㅋㅋㅋ 그냥 죽이겠단 소리 같은데?ㅋㅋㅋ"


"와... 무섭다... 저 이제 고양이들 앞에서도 말조심 해야겠어여. 무서워여."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한담?


"자, 그럼 우리 나비한테 사람으로서 자립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시 좀 귀찮아. 괜히 한다고 한 것 같아."


"나비가 보니까 좋은 고기는 또 먹나 보던데, 고기 같은 걸로 회유해보면 어떨까여?"


한참을 그 골목에 몸을 숨긴 채 셋은 회의를 나눴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나오진 않았음. 싫다고 도망가는 자신이 고양인 줄 아는 수인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 사람은 이 세계에 몇 명 없지 않을까?


"... 그냥 쳐들어가지 뭐."


"또 도망가면?"


"그러면 또 찾아내는 거지 뭐."


"돌격하져! 그럼!"






한편, 양질의 고기를 먹어 기분이 좋은 여주는

몸 단장에 한참이었음. 식사를 하고 나선 발과 얼굴을 깨끗하게 닦고 몸 단장을 하는 것이 필수였음. 분명 매일 그루밍을 하는데도 미세하게 엉켜있는 털들이 있고 앉는 자세나 누웠을 때 방향 때문에 털의 모양이 삐뚤어지기도 일쑤였음. 그렇기에 몸의 청결과 털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루밍은 필수인 행위였음. 이 몸의 아름다움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 이런 피나는 노력이 있기에 항상 아름답고 멋있을 수 있는 것임. 에헴!


그루밍을 다 하고 나면 배도 부르고 볕도 따시니 늘어지게 낮잠을 잘 계획이었음. 완벽해.


"안녕?"


"...뭐고."


침입자만 없었더라면 말이지.


"어떻게 알았지!"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게 귓 전에 들렸음. 너무 놀랐음.

"이, 이거 내려둘 테니까 먼저 입어줄래?"


언제 뒤를 돌았는지 검은 종은 나에게 등을 보이며 서 있었음.

역시 미천한 종이었음. 이런 포식자 앞에서 등을 돌리고 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음. 역시 야생의 위험을 모르고 나태하게 사는 종족다운 행동이었음. 갑자기 귓전에 들린 뭔가 터지는 소리 때문에 놀랐지만 애써 놀라지 않은 척 노려보고 있었음.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예리한 발톱을 세워서!


"...?"


"끼야아아아악! 내 발이! 내 발톱이! 내! 내 발이!!"


다시 다시 병이 도진 게 분명했음. 첫 습격 이후 몸이 변하지 않아서 괜찮아 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역시 나는 미천한 종족으로 변하는 병이 옮은 게 분명했음. 그때는 숲에서 만났기 때문에 병균이 덜 퍼져서 피할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폐쇄된 공간이었음. 나는 그럼 저 병균을 바로 받아버린 게 분명했음. 역시 나는 병에 걸린 게!!


"그... 많이 놀랐지? 그러니까 먼저 이 옷 좀 입어줄래? 내가 설명해줄게."


"뭐? 설명? 너 혹시 내 병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병은 아니지만 이유는 알고 있어. 그러니 내가 돌아볼 수 있게 이것 좀 입어줘."


?!

저 미천한 종자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했음. 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건가? 어? 근데 이유는 알고 있다고? 그럼 빨리 바로 알려줘야지. 왜 뜸을 들이는 건데!

시커먼종의 등 위로 발을 올리자 크게 움찔거렸음.


"난 지금 당장 듣고 싶은데!"


"그럼 내가 널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제발 옷을 입어줄래?"


옷?

옷은 분명 미천한 종자들에겐 털이 없기에 그를 대신 하기 위해 몸에 걸치는 저런 천 쪼가리 따위를 일컫는 말이었음. 그렇다는 것은 나에겐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고 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그런 불필요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음.


"나는 옷 안 입어도 되느리라. 그런 거 필요 없도다."


"평소의 너라면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의 너한텐 필요할껄...? 그... 몸을 좀 살펴볼래?"


몸?


"... ..."


"이게 뭐야아아아악!"


발 뿐만 아니라 몸이 다 이상하게 변했음. 털은 하나도 없이 민둥민둥해지고 다리 모양도 이상했음. 그리고 내 멋지고 위풍당당한 꼬리가 없었음! 이! 얼굴도 짧아지고 내 귀여운 포인트인 수염도 없어! 내 송곳니! 내 이빨도 이상해! 이상하다고!!!


"놀래는 와중에 미안해. 근데 제발 옷을 입어줘. 우리는 옷을 입지 않으면 부끄럽거든."


"끼야아아아아앙!"


시커먼 종이 뭐라고 하지만 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음. 내 몸은 완벽하게 미천한 종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변해있었기 때문이었음. 결국 나는 이 병을 이겨내지 못했음. 난 이제 틀렸어...!



시커먼 종이 있는 쪽에서 거대종이 재빠르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꺼풀을 벗어 나에게 냅다 씌웠음. 처음엔 너무 놀라 발을 허공으로 할퀴여 버둥거렸지만 문뜩 그 비 오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음.


나는 그때도 놀라 버둥거리다가 거대종의 얼굴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내었었음. 단순 위협을 하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정말 상처를 내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정말 놀랐었는데...

그러고 보니 상처는 이제 좀 괜찮나? 많이 아팠을 텐데. 혹시 그때도 이렇게 꺼풀을 입히려고 했던 게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저 옷이란 것을 입혀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나?


"많이 놀랐지? 미안해. 다 입었어!"


그 때와 변함 없는 시야에 있는 거대종. 다행히 그의 얼굴엔 그때의 상처는 다 아문 듯했음.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상처가 없는 것을 보아 다행이었음... 다행...


"개뿔! 또 침입했어! 이 자식들!"


"아니야! 나비야. 우린 널 도와주러 온 거라고!"


"음. 좋은 거 하나 배웠네. 다음부턴 그냥 냅다 입혀야겠다."


"뭔 도움! 그런 거 필요 없어! 빨리 나가라고!"


한참 그 두놈을 노려보고 있는데 마루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고양이로 튀어나오면 어떻게 잡나 싶었는데 다행이네. 사람이라."


노란종! 이 자식들 우리 집을 포위하고 있었나봄. 주도면밀한 게 역시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나비야. 혹시 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이름? 그거 알아서 뭐하게. 실컷 나비로 부르더니."


"나비로 불러도 된다면 계속 그렇게 부를게."


"이 몸의 이름은 여주다. 그런 미천한 곤충의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기분 나쁘다."


"그럼 여주는 자기가 수인 인건 알고 있었어?"


"수인?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위대한..."


"위대한?"


어?

그러게 난 뭐지?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종인지 나도 모르겠음. 예전에 엄마한테 나는 고양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더 귀하고 희소한 종족이라고 말을 해준 적이 있었지만 내가 어떤 종인지 정확하게 명명 해준 적은 없었음. 크면 저절로 알게 될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도와줄게! 계속 이렇게 변하게 될 텐데, 우리가 알려줄게."


"...뭘? 근데 계속 변한다고?"


"계속 사람으로도 변할 테니까.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


"그딴거 알 필요가 없느니라. 나는 나로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계속 변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그 모습으론 사람처럼 행동을 해야 의심을 안 받을 텐데? 수인이라는 종족은 사람과 동물로 변할 수 있는 종이라고 하더라. 여주 너 처럼."


내려다 본 내 발은 여전히 미천한 종족들과 같은 발이었음. 내 발...

변할 수 있는 종족이라니. 그딴거 들어 본 적도 없었음. 내가 미천한 종족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게... 이게 지금...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숨겨왔던 걸까?!


"별로 어렵지 않을 거야. 여주도 많이 봤잖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하찮은 것들이 열심히 사는 걸 비웃기는 했지...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일단 말투나... 단어 선택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아."


"나는 완벽하다. 우리 엄마가 완벽하게 가르쳤다. 너희가 쓰는 말 따위 이미 진즉 떼었다. 너네나 내가 쓰는 말을 배우는 게 좋을 듯하다. 미천해."


"아무래도 상대가 있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


"내 말은 너네 종족만 못 알아들었다. 아. 정육점 영감 말곤."


"아! 그 영감님도 수인이래! 여주랑 같은!"


?!

나랑 같은 종족이었다고?! 그 미천한 종족의 영감님이?! 사실은 나랑 같은?!


어쩐지... 말귀를 너무 잘 알아듣더라... 욕을 하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혼을 내길래 기묘한 인간일세...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럼 영감탱! 나한테 알려줄 수도 있었잖아! 이이! 괘씸한!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만 가볼게. 우리를 피해서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너넨 나의 안식처에 서슴없이 침입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상당히 불쾌하다."


"미안해... 우리는 그저 도움을 주고 싶단 마음이 앞서서 여주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네. 미안해."


"그래. 잘못을 알았다니 다행이군. 반성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 그때는 오늘 처럼 옷 안 입고 있으면 안돼. 부끄럽거든."


"별걸 다 부끄러워 하는구나. 그렇지만 난 옷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 이 거대한 인간은 아무것도 안 입고 있지 않는가."



"윽...! 아니야! 윗옷만! 그, 나 또 다른 옷 있으니까 이건 여주가 입고 있어!"


허둥거리며 커다란 짐 더미를 헤집더니 뭔가를 죽 잡아당겨 꺼냈음. 보니 아까 시커먼 종이 건네던 것과 똑같이 생긴 옷이었음. 허겁지겁 그 옷을 입더니 가운데 무엇을 아래에서 위로 주욱 잡아당겨 올렸음. 오. 그러니까 진짜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은 모양이 되었음. 인간들의 옷은 참 다양하군.



"그래서 츄르를 안 좋아했구나. 진짜 고양이가 아니니까."


그래! 이제 알았느냐! 내가 그 비린내 나는 것을 좋아할 것 같더냐? 나는 육식이라고! 그런 날것의 비린내가 나는 것을 딱 싫어한다.


"자자, 그럼 우리 위대한 여주님 휴식에 방해를 하지 말고 가자. 이제 피해도 도망가도 안돼."


"...고려해보겠다."


그렇게 우리 집을 침입한 미천한 종 셋은 유유히 빠져나갔음.

내가 고양이의 모습 일 땐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더니, 내가 저 종족과 같은 모습이 되자 말이 통하는 게 퍽 신기하긴 했음. 그리고 내가 수인이라니...? 듣지도 못한 종족이었음. 여태 그런 종족이 있단 소릴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저 세놈이 거짓말을 했다기엔... 묘하게 근거가 있었음. 일단 내가 변한 이 모습...

어설프게 발걸음을 옮겼음. 네발로 걷다 두 발로 걸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음. 거실 한쪽 벽에 달린 거울 앞에 서자 사람으로 변한 내 모습이 보였음. 진짜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무리 봐도 사람이었음.


근데....

저번엔 그냥 펑펑! 하면서 변하더니!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했으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지! 뭐야!!

잠시만! 야! 너네 다시 와봐! 이거 원래대로 돌아가는 법은 모르냐?! 야!!!


이거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냐고! 나 이 모습으로 밖에 나가는 건 무섭단 말이야!! 꺄아아아악!


이거 왜 다시 안 변해?! 왜 안 변하냐고?!


먹고싶은 맛이 있는데 아직 메뉴에 없다면 직접 조리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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