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여주는 이른 시간부터 거실 한쪽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분명 여기 있을 텐데, 앗..찾았다. 여주가 찾은 것은 지난 5년간 순영이 보낸 엽서와 편지들을 담은 상자였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누렇게 빛이 바랜 편지를 꺼낸 여주가 피식, 웃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있는 힘껏 I'm fine!을 알리는 그 편지는 지금 보면 꽤나 귀여웠다.

 

누나, 잘 지내? 난 지금 독일 베를린에 있어!

나는 괜찮아, 누나! 아직 집은 못 구했는데, 친절한 분을 만나서 그 분 집에서 며칠 머물 수 있게 됐어.(나 히치하이킹 해봤다? 진짜 색다른 경험이야.)내가 기타 맨걸 보고 가수가 되려는 거냐며, 크루에 들어가는 건 좋은데, 나쁜 사람 만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하시더라. 엄청 감사했어.(근데 외국에 온 것치고 짐이 너무 없다며 웃으셨어..)

그리고 오늘 고기파이를 먹었는데, 말이야. 와..진짜 너무 맛있는 거야..누나도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 맞아. 한국에 와이프를 두고 왔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얼른 성공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어. 누나가 외로울 거라고. 음..외로..우려나..? 그렇다면 내가 미안해. 얼른 성공해서 보란 듯이 돌아갈게!

 

눈으로 읽기만 했는데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여주는 조용히 웃었다.

 

순영은 독일로 간지 2년이 지나기 전까진 좀 귀엽게 굴었다. 결혼하자마자 혼자 외국으로 간 게 미안한 건지, 아니면 서점에서 읽은 책에 ‘든든한 남편으로 보이는 방법.’챕터라도 있었던 건지, 최대한 든든한 남편처럼 굴려고 애썼던 것이다. 아쉽게도 여주에겐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노력은 여주를 다른 의미로 안심 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걱정을 덜었으니까.

 

“많이도 보냈네..이메일까지 하면 이백통 넘겠다.”

 

여주는 상자 가득 쌓인 편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주는 두 달에 한 번씩 편지나 엽서를 보내던 어린 남편의 한결 같은 면이 좋았다.(이메일은 거의 매일 보냈다.)솔직히 5년 동안 그런 행동을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 쳐줄만하다고 생각했다.


순영의 편지는 늘 통통 튀었으며 그곳에서의 생활과, 그가 느낀 감정 같은 것들을 고스란히 전했다.


여주는 지난 5년 동안,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家族になってください

가조쿠니 낫테쿠다사이

 

03화. 그래서 현재가 더욱 소중하다.

 

“으으...누나..”

“깼어?”

“어..아, 머리 아파..”

 

거실 한복판에 편지 상자를 들고 오도카니 앉아있던 여주는 등 뒤로 고양이 마냥 머리를 비벼오는(헤드 번팅이라고 친근감의 표시이다.)순영을 발견하고는 몸을 돌려 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젯밤에, 순영이 5년 만에 한국에 왔으니 기념해야 한다며 면세점에서 산 와인을 꺼냈다. 여주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순영이 얼마나 신나면 저럴까 싶어서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권하지 않아도 신나서 여주가 한잔 마시는 동안 와인 세잔을 연거푸 들이키던 순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오늘, 거한 숙취를 얻었다.

 

와인을 우습게보면 안 되지, 암. 와인 숙취가 얼마나 힘든데. 여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순영을 바라봤다. 머리가 조금 뜬 게 복슬복슬한 새끼동물 같았다. 음..개냐 고양이냐 하면 당근 고양이다. 머리가 아프다며 낑낑대면서도 쓰담쓰담 받고 있는 모습이, 고양이와 닮았으니까.

 

순영이 고양이라면(물론 순영은 호랑이를 좋아한다. 전에 장난으로 너 햄스터 닮았던데~? 라고 하니까 삐쳐서 며칠을 연락을 안 한 적이 있을 정도.)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개냥이였을 것이다.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괴롭히고 싶을 정도랄까.

 

“그러게 누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래. 요거, 요거..외국에서 술 마시는 거 늘어서 올 줄 알았더니. 완전 그대로네?”

“악! 누나, 아포..이씨, 주량은 타고나는 거랬어!”

“늘기도 해.”

“그래도..! 5년 동안 엄청 많이 마셔봤는데, 안 느는 걸 어떡해!”

 

코를 살짝 꼬집은 여주에 순영이 비명을 지르며 팔짝 뛰었다. 여주는 실실 웃으면서 순영을 놀리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고, 순영은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이번에는 뺨을 꼬집으려는 여주를 피해 도망쳤다.

그때, 우뚝 멈춰 선 순영이 굳은 얼굴로 여주를 바라봤다. 어, 뭔가 실수한 것 같은데.

 

“많이..?”

“..아.”

“순영아. 너, 술 엄청 많이 마셨어..?”

“앗..그게..!”

“그렇구나. 많이 마셨구나? 내가 분명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리 독일이 맥주가 유명하다지만, 그쪽 사람들은 맥주를 술 취급 안 한다지만, 맥주도 술이야. 응? 순영아.”

 

화난 것 같지는 않은데, 기분이 좋은 것 같지도 않은 얼굴의 여주가 읏차,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그리고 굳어버린 순영의 어깨를 치며 한마디 했다.

 

“멍하니 뭐해. 밥 먹자. 그리고 순영이 너, 오늘부터 금주해.”

“..어?”

“금주. 술 금지라고.”

“아..아..??”

 

여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금붕어 마냥 뻐끔대는-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뭘 금지 당한 게 충격인 것 같았다-순영을 내버려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해장국을 끓여줄 생각이었다.


외국서 오래 산 순영이 후추와 청양고추를 잔뜩 넣은 해장국을 좋아할진 사실 잘 모르겠지만-이건 여주의 착각이다. 순영은 김치가 없으면 못 사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여주는 칼칼한 해장국을 끓여 바치기로 했다.

 

남편 해장국을 다 끓여보고, 이제 진짜로 부부 같네. 여주는 결혼한지 5년만에 부부란, 결혼생활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 한참을 웃었다. 내가 금주라니 말도 안 돼! 라며 울상을 짓던 순영이 그를 발견한 건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다.

 

“지금 나가?”

“응. 소속사 문제로 이야기할 것도 있고, 친구 놈들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 소속사 가는 김에 잠깐 들러서 얼굴 한 번 보고 오려고.”

 

칼칼한 해장국으로 속을 푼-물론 국이 너무 매워서 순영은 먹는 내내 기침을 했다-순영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코트에 얇은 니트 차림의 순영은 누가 봐도 나, 연예인이요. 하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여주는 멋 부리는 순영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가 들고 있던 옷들을-패션쇼를 하던 흔적이다-받아주며 인사를 했다. 길 조심, 차 조심하고 잘 다녀와.

 

“.....”

“..왜 그래?”

 

현관 앞에 선 순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여주를 바라봤다. 여주는 순간 자신이 말실수를 했나 싶어 조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으니, 다녀올게! 라는 인사가 돌아와야 하는데..

순영은 꿈이라도 꾸는 것 마냥 멍한 얼굴이었다.

 

순영아..? 여주가 툭, 건드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순영이 멋쩍은 얼굴을 하다가 곧 배시시,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워냈다.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눈이 반달처럼 휜다.

 

“아니, 그냥..이러니까 진짜 부부 같아서.”

“..? 얘가 뭐라는 거야. 5년 전부터 부부였거든?”

“하하..응. 그러네. 그래도 5년 전엔 다녀와, 하면서 헤어졌는데 지금은 다녀와, 하고 다시 돌아올 거란 걸 알아서 그런가..뭔가 느낌이 달라.”

“.....”

“이제 진짜 가족 같네.”

 

여주는 아이처럼 웃으며 가족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순영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5년간, 여주는 순영의 꾸준한 연락 덕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순영이 전해오는 소식에는 그가 느낀 것과, 그의 일상과, 그가 있는 나라와 도시와 마을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으니까. 함께 있지 않아도 모든 게 다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순영은..그는 지난 5년간, 타지에서 홀로 지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어도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건 알 수 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이고, 친구도 많이 생겼을 테지만..그래도, 그들과 가족은 다르니까.

 

여주는 순영이 5년 만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과의 결속력을 느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이상해졌다. 미안함인지 뭔지 모를 묘한 감정이었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뭐 하러 5년씩이나 나가 있었어.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안 들어오고. 응? 날 5년씩이나 독수공방하게 만들고 말이야.”

“아, 그건 진짜 미안. 들어올 여건이 안 돼서.”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그렇지? 헤헤..”

 

하지만..네가 한 것만큼 똑같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거나 외로웠어? 라고 묻는 건 어쩐지 조금 민망해서, 여주는 그 모든 것을 장난스러운 타박으로 대신했다. 순영이 헤헤헤, 웃었다.

 

그때, 손목의 시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시간을 확인한 순영이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아, 누나!”

“응?”

“다녀올게!”

“응. 다녀-”

 

쪽,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던 여주의 뺨에 뽀뽀를 하고서 말이다. 띠리리릭- ,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집에 울렸다. 돌처럼 굳은 여주가 가까스로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려는 영혼을 붙잡았다. 

 

주르륵, 밑으로 꺼지듯 주저앉은 여주가 화끈거리는 뺨을 쥐고 얼굴을 붉혔다.

 

“아, 권순영..진짜..”

 

투정부리듯 말꼬리가 늘어지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21살의 순영과 26살의 순영은 나이가 다를 뿐,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다르지만 여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여주는 중얼거렸다.

 

확실히..5년이라는 시간은 소년을 남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수, 호시. 순영은 호시라는 예명으로 독일에서 4년간 밴드 크루 ‘Chicos soñadores’로 활동했다.

 

독일에 간지 1년. 순영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크루를 만들고,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순영의 열정과 그들의 재능이 환상의 시너지를 발생시켜, 기어코 그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4년 전. 순영이 ‘나 데뷔해!’라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여주도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다.

 

Chicos soñadores. 뜻은 꿈꾸는 소년들이다. 다소 오글거리는 면이 있지만, 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의 꿈을 가지고 살아온 그들에게 맞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이름을 지은 것이 순영이다.

 

크루의 멤버는 총 여섯 명으로 그 중 한국인은 순영뿐이었다.

 

메인보컬이자 기타담당인 마이클(30)은 독일 사람이었고, 서브 보컬이자 각각 일렉 기타와 베이스를 담당하는 마틴(29)과 찰스(27)는 스페인인이었다. 건반을 담당하는 알렉(31)은 영국, 드럼을 담당하는 유스(25)는 미국 출신으로 Chicos soñadores의 멤버들은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4년 전의 그들은 전부 20대였고, 잘생겼고, 노래를 잘했으므로 데뷔하자마자 기적같이 인기를 휩쓸었다. 발매하는 노래마다 대박이 났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순영이 유명 밴드 크루의 유일한 한국인 멤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도 그 덕이다.

 

분에 넘치는 인기는 성실함의 원동력이 되고, 그런 성실함은 결국 리드 보컬이자 크루의 리더인 순영이 한국에서 솔로 데뷔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애초에 순영은 오디션에 붙고 데뷔를 앞둔 어느 날, 멤버들에게 선언했다. 소속사가 제안한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 가서 솔로로 활동하고 싶다고. 탈퇴는 하지 않을 거지만 4년 후에는 주로 한국에서 활동하게 만들 거고, 그러고 싶다고.

 

시작도 전에 끝을 말하는 순영에 당황하던 멤버들은 순영의 곧은 얼굴과, 우리는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담은 눈을 보고 수락했다.(물론 며칠 뒤에 순영에게 한국인 아내가 있고, 5년 안에 성공해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는 걸 알게 된 후, 왜 말 안 했냐며 순영을 몇 대 때렸다고.)


당시 22살이던 순영은 그런 멤버들에게 너무 고마워 거의 울먹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한창 잘 나가던 중에 대뜸 귀국한 이유가 있는데 그걸 말해줄 수는 없단 말이지?

“응. 말 안 해.”

“하아..”

 

그리고, 현재의 순영은 누군가를 앞에 두고서 웃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약간 언짢은 얼굴로 탁탁 소리를 내며 책상을 쳐댔다. 순영은 여전히 미소 지으면서 콧노래나 부르고 있었고. 물론 조금 뒤, 자신을 노려보는 그 뜨거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입을 연 순영이 뭔가를 실토하긴 했다.

그가 궁금해 하는 그걸 말해줄 수는 없지만 다른 건 말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건 애초에 멤버들하고 4년 전부터 이야기해왔던 거야. 멤버들은 내가 있는 한국에서 잠깐 공연하는 건 좋아도 나처럼 아예 독일을 떠나고 싶진 않다고 했거든.”

“그렇단 말이지..”

“그래. 그러니까 얼굴 좀 펴, 지훈아. 아무리 지훈이 네가 대표님하고 친구라지만 너무 대표처럼 구는 거 아니니.”

 

순영은 대표 마냥 책상에 걸터앉아, 대놓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지훈을 향해 해맑게 웃어보였다. 야. 너 계속 그러면 뒤지는 수가 있다, 권순영. 5년 동안 연락 한 번 안 한 주제에. 엉? 지훈이 시근덕거렸다. 순영이 하하, 웃었다.

 

지훈은 순영이 독일에 가기 전 함께 활동했던 밴드의 멤버였다. 여주와 순영, 두 사람이 9년만의 재회를 하고, 순영이 리더에게 귀를 붙잡혀 끌려갈 때 그도 거기 함께 있었다.

 

순영이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에 지훈은 밴드의 리더였던-동시에 금수저인-형이 차린 소속사의 유일한 가수가 되었고, 회사가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훈에겐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작곡과 작사라는 엄청난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 결과, 순영이 돌아올 때 즈음엔 지훈의 소속사는 어엿한 중소규모의 회사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귀국하기 한 달 전쯤 알게 된 순영은 곧바로 한국의 소속사는 여기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계약조건은 아까 말한 대로만 하면 되냐? 겁나 심플하던데.”

“응, 맞아. 수익은 마음대로 해도 돼. 내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야. 스케줄 외의 사생활은 절대 터치하지 말 것. 그리고 주말에는 웬만하면 스케줄 잡지 말 것. 이것밖에 없어.”

 

도장 찍힌 계약서를 든 지훈이 어딘가 찝찝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이미 소파에 드러누운 순영은 정말로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진짜 이거면 된다는 거지? 


지훈이 몇 번이나 진짜 이거면 되냐고 묻고, 순영은 건성으로 대답하는 상황이 몇 번 반복이 되고 나서야 영 찜찜한 기색의 지훈이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그를 본 순영이 훌쩍, 기지개를 켰다. 이제 다 된 거 맞지, 지훈아?


“어. 야, 너 솔로 데뷔 날짜는..”

“형이 아직 안 정했다고 하던데.”

“어, 그래. 아직인데..근데 곡이 있어야 데뷔를 하든 말든 하지.”

“곡은 비행기 타고 오면서 대충 써뒀어. 조금 있다가 파일로 보낼 테니까 조만간 만나서 회의 좀 하자.”

“그래.”

“그럼, 난 간다. 형..아니, 대표님한테 안부 전해줘.”

 

뭐? 지금 간다고? 야, 권순영! 야! 너 애들 만난다며! 얼굴을 마주한지 30분도 안 되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순영을 붙잡으려던 지훈의 목소리는 탁, 하고 닫히는 문 덕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순영은 숙취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단-말도 안 되는-핑계를 대고는 사라졌고, 홀로 남은 지훈은 순영이 열고 나간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체 쿨한 면이 있던 친구, 권순영은 5년 동안이나 외국에서 살다 오더니 더 이상하고 쿨해졌다. 어른이 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그 친구는 자신과 같은 소속사와 계약을 했고, 이젠 매일 같이 얼굴을 볼 한솥밥 먹는 식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뭐, 궁금한 것들이야 차차 물어보면 되겠지. 지훈은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끝.

꿈꾸는 일은 즐겁다. 얼렁뚱땅 굴러가는 글방 주인장 & 초보 작가.

꿈꾸는 소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