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보세요, 찍고도 아무 이상 없으셨잖아요?"

이제 '베를리오즈 씨' 또는 '선생님' 이라는 호칭이 백배는 익숙해진 엑토르는 아까 사진을 찍은 자세 그대로 의자에 기댄다. 턱을 괴고 있자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네. 사진 1초 찍히는 거 잘 찍히겠다고 십오분 동안 신경쇠약이 올 것 같았던 거 빼면 말야."

"사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든가 하는 소리 다 거짓말이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좀 많이많이 퍼뜨려 주세요, 하하하."

"그러지."

엑토르는 시가를 자르고 아랫부부분을 데운다. 불을 붙이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진은 사람의 영혼을 빼내간다고 한다. 한 번 찍을 때마다 조금씩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하니 어쩌면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은 부분이 실제로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마 사진을 조금은 두려워하는 제 영혼 약간이 빠져나왔던 걸지도 모른다.

4년 전 이 무렵에 쇼팽이 죽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죽기 2년 전에 사진을 찍었었다는데. 어쩌면 그때 영혼이 다 빠져나가버렸는지도 모르지. 그 어두침침하고 뚱한 표정의 사진을 찍고서 말이다.

엑토르는 아직까지 사진보다는 초상화가 좀 더 익숙했다. 아무리 지난 몇 년간 사진이 갑자기 인기를 확 얻었다고 하더라도 엑토르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쇼팽보다도 조금 더 일찍 죽었던 멘델스존은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않았었다. 어쩐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영혼이 빨려나가는 것을 거부하겠다면서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만서도.

엑토르는 입 속에 머금었던 시가 연기를 입 밖으로 후우, 내뱉는다. 뜨거운 열기가 몽롱하게 방 안에 퍼진다.

"사진 현상 거의 다 되어 가요. 좀 있으면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거 참 어색하네. 이십년 전만 해도 케루비니에게 '이 후레자식아' 같은 소리를 듣거나 동료 친구들에게는 '엑토르'나 '야, 엑토르 베를리오즈'였고, 많이 정중해야 '베를리오즈' 정도이지 않았던가. 어느새 이렇게 혼자서 돈을 벌어서 혼자서 살고, 혼자서 사진을 찍고, 독일에 투어까지 오고.

시간 그것 참 빠르다. 조만간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생업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질테고 사진만 남겠지.

가끔 자신이 19세기의 절반을 넘겼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엑토르는 자신이 참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 기차가 들어서고, 전기가 들어오고, 사진이 생겨나고. 너무 많은 것이 과거와 현재 사이로 교차해 지나가고 있었다. 바그너가 새로운 예술이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그너의 작품은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도 한 트럭이었다.

시가가 타들어간다.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벽에 사람들의 사진이 몇 개 걸려 있다. 웃지 않는 뻣뻣하게 굳은 자세의 사람들뿐이다. 아마 엑토르도 저렇게 찍었을 것이다. 다들 저렇게 공허한 표정을 짓고 찍으니 영혼이 빨려나간다고 믿을 수밖에. 엑토르는 시가를 입에서 떼고 혀를 짧게 츳, 찬다. 자신만큼 유명해보이는 사람이 있나 한 번 확인해보지만 역시나 없다. 그럼 그렇지. 아무도 제 이름을 모르고 아무도 제 출판 요청을 들어주지 않던 시절이 까마득했다. 지금도 작곡가로서는 한참 멀어도 평론가로서는 나름 알려져 있으니까.

엑토르는 남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해 본다. 후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죽을 것이라면 계속 남아있을 사진에 제 영혼을 조금이라도 더 가둬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엑토르는 그간 정말 많은 음악가들과, 명사들과, 소설가들과, 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어떤 사람들의 영혼은 비슷비슷했고, 어떤 사람들의 영혼은 거의 하나가 실수로 반이 갈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았다. 어떤 영혼은 두드러졌고, 어떤 영혼은 찾으려고 마음먹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색무취였다. 그 가운데서 엑토르가 부러웠던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꼽으라고 하면 그 영혼은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영혼이었다.

엑토르가 멘델스존을 처음 만났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더라-약 20년쯤 전이었다. 1831년의 이탈리아 로마였다. 엑토르 자신이 영혼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한 형상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멘델스존의 것을 어떤 것에 표현한다면 맑고, 맑고, 맑고 투명한 수정이었다. 이 뿌연 연기와는 정반대로 정결하고 순수한,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한 영혼 말이다.

혹시 사람의 영혼을 넣고 뺄 수 있는 구멍이 있어 그 속에 영혼의 정수를 바꿔끼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꼭 제 가슴팍에는 맑은 수정을 끼워주고 싶었다. 세상도, 사람도, 음악도, 삶도 그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정신을 갖고 싶었다. 그리 불쌍하게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평생 예술을 위해 봉사하다가 죽을 것 같으면 영혼 한조각이라도 사진으로 찍어서 내게 좀 남겨주지. 엑토르는 시가를 잘못 빨아들이고 매운 연기에 켁켁거린다-아니, 웃음이 섞여 있었으니까 킥킥거린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바흐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고, 이탈리아 음악에 투덜거리고, 친절하게 미소짓고 행복하게 노래부르던 모습을 보며 엑토르는 저 영혼을 어떻게든 박제해 제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류 배우도 흉내낼 수 없을 청명한 영혼을 박제해 장식물처럼 가져다 두고 싶었다.

똑같은 깨끗함을 느끼고 싶어서 펠릭스 멘델스존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콘서트라면 미친 듯이 참석해봤다. 음악이 들리는 동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엑토르와는 전혀 맞지 않는 성스럽고 하이얀, 맑고 강인한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필 멘델스존은 사진도 남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화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었기에 혼탁한 파리의 거리 속에서 정화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엑토르가 할 수 있는 것은 멘델스존과 주고받은 몇 통의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것뿐이었다. 가끔은 혼잣말로 편지에다가 대고 네 사진이라도 벽에 걸어둘 수 있었더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처럼 느껴질 텐데, 아쉽네. 하고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되돌린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것도 아니며, 역사는 계속해서 제멋대로 갈 길을 나아가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그 구식의 투명하고 영롱한 영혼이 그리웠다. 엑토르는 재떨이에 재를 툭툭 털어낸다.

"선생님, 사진 현상 끝났습니다. 이리로 와보세요."

시가가 몇 인치 남지 않았다. 엑토르는 미련 없이 시가를 재떨이에 버리고 암실로 들어간다.

"잘 나왔네요!"

엑토르는 의자에 한 팔을 걸치고 아주 외롭고, 멍한 눈길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제 사진을 바라본다. 확실히 별로 닮지 않았던 초상화와 다르게 제 영혼이 약간 담겨 있는 것도 같다. 엑토르는 조심스럽게 유리판을 든다.

"마음에 드세요?"

사진에는 일체의 미화도 없고, 그렇다고 더 추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사람 그대로. 그럴수록 자신과는 다르게 미화 없이도 충분히 아름답던 사람이 그리워진다.

"병신같네."

"네, 네?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찍어드릴까요?"

"아니. 맘에 들어."

엑토르는 미련없이 웃으며 사진관을 나선다. 혼탁한 연기가 없는 거리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병신을 병신처럼 찍어준 사진은 병신을 제대로 병신같이 그려주지도 못하는 초상화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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