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의 이름





이사란 것은 언제나 아이들에겐 지루하기 그지없는 낯선 일에 불과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가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이삿짐 정리가 끝나기 전까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먼지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만큼 정신없이 바쁜 일이라는 걸, 인지는 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엔 히무로는 아직 어렸다.

무료한 표정으로 쌓여있는 옷 박스에 걸터앉아 가구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루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음악이라도 듣고 싶은데 CDP는 이삿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지 오래다. 다리를 흔들고 싶은데 그것도 박스의 존재 때문에 여의치 않자, 저도 모르게 점점 인상이 구겨졌다.

엄마도 아빠도 가구의 자리 배치 때문에 시끄럽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높은 비명소리를 들으며 히무로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동동 떠 있는 게 귀엽긴 한데 지금으로선 뭐든 짜증이 나서인지 구름의 자유로운 모습마저 화가 났다.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함께 놀 사람도 없고!


“형아! 혹시 옆집에 이사 오는 사람?”


발을 톡톡 건드리는 작은 느낌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쬐끄만 남자애 하나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머리칼이 붉은 끼가 도는 게 순수 일본인도 아닌 것 같은데 눈까지 크니까 참 귀엽게 느껴졌다. 요 꼬맹이는 몇 살이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히무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으면 이런 꼬맹이의 질문 같은 건 무시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심심하니까 누구라도 좋았다. 자신과 놀 수 있는 사람라면.


“우와아아아아! 글쿠낫! 나능 요기 옆집 사는 타이가! 카가미 타이가!”

“난 히무로 타츠야. 카가미는 몇 살이야?”

“타이가는 다섯 살이야! 쪼오기 옆에 있는 유치원 다녀!”

“그렇구나. 지금은 뭐하고 있었어? 집에 들어가려던 거 아니었어?”

“갠찮아! 형아는 몇 살이야?”

“난 아홉 살. 소, 소학교? 소학교 다닐 거야.”


뭘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그렇구나, 글쿠낫!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양새가 귀여워서 히무로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에 살던 미국에서는 아무리 어린애라고 해도 이렇게 귀여운 애는 없었다. 일본의 어린애들은 좀 다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얘가 독특한 걸까.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즐거우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아, 혹시 꽃 좋아해?”

“어? …싫어하진 않아.”


얘가 갑자기 몸을 베베 꼬더니 꽃 타령은 왜 하지 싶어서 히무로는 자신이 박스 위에 있는 탓에 상당히 아래쪽에 있는 꼬맹이를 향해 몸을 숙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어 박스에서 내려갈까 고민하는데 불쑥, 자신의 앞으로 쪼끄만 손이 제 손보다 훨씬 큰 진한 핑크빛 꽃이 내밀어졌다.


“그럼 이 꽃 형아 줄게!”

“…왜?”


처음 보는 상대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히무로는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되물었다. 이 꽃을, 왜 자신에게 주는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보통 남자가 남자에게 꽃을 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지 않느냐는 의미도 포함해서.


“형아가 꽃보다 예쁘니까!”

“……”


히무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예쁘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꼬맹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가뜩이나 동양인이라고 하면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미국에서 지내다보니 점점 자신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 자체를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싫어하게 됐다.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비슷한 체구였던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에 띠게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성장속도만 다른 게 아니라, 그들은 기본 골격부터가 달랐다. 그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골격 자체가 무서운 속도로 자라서, 그들 사이의 히무로는 언제까지고 꼬맹이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그들이 어린 것은 맞지만.

그렇게 언젠가부터 좋아하지 않게 되었던 표현인데, 저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꼬맹이가 말해주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꽃을 바로 받지 않는 것에 시무룩해지려는 꼬맹이를 보고, 히무로는 냉큼― 아래로 향하려는 꼬맹이의 손에서 꽃을 낚아챘다.


“고맙게 받을게.”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도 금세 환하게 밝아지는 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 이 아이와 자신의 관계에서 반드시 자신이 우위에 있을 수 있을 거란 확신. 어린 마음에도 그 확신이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에 히무로는 조금 우쭐해졌다. 그리고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주인 잘 따르는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서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히무로는 선심쓰듯 조금 놀아줄까? 하는 거만한 생각을 했다.


“타이가-!!”

“힉- 엄마다!”

“엄마랑 1시간만 놀기로 약속… 어머, 잘생긴 소년이네. 오늘 이사 왔니?”

“…네. 아, 저… 히무로 타츠야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미인이었다. 히무로는 늘 제 어머니가 굉장한 미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그래서 엄마를 닮아 제가 예쁜거라고 생각했다- 제 어머니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미인이었다.

아이는 언뜻 보아서는 제 엄마를 닮지 않은 듯 했으나, 그녀가 웃는 순간, 히무로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정말 똑 닮아있었다. 웃는 얼굴 하나로 주위의 분위기까지 달라지게 하는 것까지도.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타이가가 귀찮게 군건 아닌지 모르겠네. 얘가 착하긴 한데 조금 바보라서… 내가 먼저 사과할게요.”

“엄마 바보! 타이가 히무로 형아 귀찮게 안했어!”


제 어머니의 말이 꽤나 서러웠던 듯, 주먹까지 부르쥐고 울컥-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히무로는 여기서 살짝- 아이를 놀려주면 어떨까? 하는 소악마 같은 생각을 했다.


“처음 본 사이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와서 좀 놀랐지만 괜찮아요.”

“어머! 우리 타이가 때문에 놀랐구나.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요, 정말로.”

“그래도… 타이가― 형아한테 미안하다고 해야지.”


히무로의 예상대로 튀어나온 제 어머니의 말에 아이의 입술이 꾹 다물린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뽀얀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동그란 눈이 울망울망해지는 것이, 곧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 같다.


“나눈… 나눈… 그냥… 그냥, 이뿐 형아가… 형아가 좋아서…… 그래서…”


귀엽게 부풀어 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풍선이 터지면 일어나는 충격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에 히무로는 제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조금 골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서럽게 울 줄은 몰랐다. 눈물 점도 없는 게, 눈물이 많은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해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걸 멍하니 보고 있던 히무로는 박스에서 뛰어내려 아이의 뒤에 섰다.


“히무로군?”

“…미안해.”


아이의 엄마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히무로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실제로 끌어안아본 아이의 몸은, 그냥 봤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울린 건가 싶어 침울해졌다. 사과의 말조차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꼭― 끌어안고 있자니 조금 뒤 제 옷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하는 생각은 했지만 섣부르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서 히무로는 조금 더 기다렸다. 좀 더 확실한 반응이 올 때까지.


“혀… 형아…”

“……”

“형아… 우러?”


눈물 콧물 모두 흘린 얼굴이 제 가슴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고 혀 짧은 소리를 낸다. 절로 얼굴에 웃음이 피려고 해서, 히무로는 일부러 얼굴에 힘을 줘야 했다.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면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의 아이를 울린 못된 녀석에게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긴 커녕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히무로는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안 울어. 너야 말로 왜 울어.”

“그… 그치만… 그치만…”

“난 타이가가 나한테 말 걸어줘서 정말 좋았어.”

“…정말?”

“정말.”

“헤헤―”


안심한 듯 고개를 들어 보이는 아이의 코끝이 발갛다. 뭔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라 히무로는 저도 모르게 아이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댔다.




그 뒤로는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 아이에, 짐 정리가 대충 끝났다며 튀어 나와서는 소란을 떠는 엄마까지, 히무로는 이대로라면 제 정신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가미에게 받은 꽃은 착실하게 꽃병에 꽂아서 창가에 두었다. 예쁜 꽃이라며 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엄마에게 절대 싫다고 말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용케 해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꽃은 종종 받았었다. 주는 대상의 성별도 딱히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그래서 이제까지 한 번도 그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히무로는 지금 꽤나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뭐라고.

하지만 주변까지 밝아지게 만드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노라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가미 타이가.

이름이 실로 본인과 잘 어울린다. 처음 ‘타이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영어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진 않아서 저도 모르게 조금 웃었던 것 같다.

새끼 호랑이들이 그렇게 귀엽다던데, 언제 함께 동물원에 가서 보면 즐거울 것 같다.


꽃의 이름을 몰라서 식물도감 책을 뒤지는 것까지도 즐거웠다. 너무나 싫었던 이사가, 조금은 좋아졌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



그날 받은 그 꽃은 결국 어떻게 되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말려서 한동안 방 벽에 걸어놨던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말리기도 전에 아래쪽부터 썩어서 학교에 간 사이, 엄마가 멋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도 같다. 어느 쪽이든 찬란함은 잠깐이고 금세 시들어 퇴색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마치, 자신과 카가미의 관계처럼.

히무로는 한숨을 게워내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언제 이렇게 거리가 생겼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젠 습관에 가까운 두통에 관자놀이를 눌러보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젠 정말,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그러고 보면, 그 꽃의 이름은 무엇이었던가. 기억해 내려 인상을 찡그려 봐도 쉽게 기억나지 않았다. 꽃의 생김이라도 기억에 남아있으면 다시 찾아볼 텐데, 진한 핑크빛이었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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