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처음이다. 입학식날을 기억한다. 아직 어린아이 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런 미성숙한 아이들. 사춘기를 이제 막 돌입한 모습들. 그런 비슷한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그 아이는 눈에 띠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자꾸 눈길이 갔다.

자주 마주쳤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애가 보일 때면 항상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이 이상했지만 마치 본능처럼 그 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같은 반이었던 것도, 같은 동아리 소속인 것도 아니었다. 옆 반이었다. 아주 가끔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정도. 접점은 그 것 뿐이었다. 조금 쓸쓸했다. 한번 쯤 눈이 마주치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 해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직전 도서관에서였다. 그리고 그 날을 계기로 그 애와 친해졌었고. 그 날 나는 우연히 그 애가 생각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끔 그랬다. 문득 머리에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르는 일, 마음에 그 아이가 무겁게 들어서는 일.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기도 했다. 방학 동안 그 애를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으니까. 잘은 모르는 감정. 잘 몰랐기에 나는 그저 본능에 따랐다. 무슨 감정인지, 어떤 기분인지도 생각할 틈은 없었다. 내 머릿속은 그저 그 애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기 때문이다.

그 더운 여름날 복도를 가로질러 4층이나 되는 계단을 오른 것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애가 있길 바라면서도 그 애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마음 한 쪽에서부터 피어난 믿음. 그렇지만 멈추지 않는 다리. 불쾌한 기분이었다.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에 그런 불쾌감을 안고 있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에어컨이 나오는 교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평소의 나였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도서관 앞에 섰었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그 애가 없기를 바랐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놀란 채 정면을 바라봤다. 그 애는 검지에 도서관 열쇠를 끼운 채 손을 돌리고 있었다. 기뻤다.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없기를 바랐지만 그 애가 있었기에 너무 기뻤다. 나보다 조금 작은 키에 적당히 마른 몸, 커다란 눈,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어쩐지 신비한 분위기. 나는 그 애를 보고 반사적으로 “아.”라고 내뱉어 버렸다. 당황했다. 그 애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애는 마치 나를 배려하듯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의도적으로 그 애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6교시까지는 열어 두라고 하셨어.”라고.

나는 도서관의 문을 닫았다. 책장으로 걸어가는 중에 에어컨 바람을 따라 좋은 향이 내 코를 감았다. 바다와 레몬 향이 섞인 냄새. 분명히 그 애에게서 나는 향이라고 믿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바라봤을 때, 그 애는 고개를 숙인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조금 실망했다. 이번에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눈이 마주쳤다면 조금 민망한 상황이 연출 됐을 것이었다.

어떤 책을 빌려야 할지 고민했다. 아니, 사실은 책을 빌리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책장 앞에서 서성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애에 대한 생각과 여러 가지 잡념을 뒤섞으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 제목을 읽어 내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책 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놀란 나는 창피하게도 몸을 떨었다.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너무 창피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고 그런 빨개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살짝 고개를 숙이고 그 애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애의 신발이 보였다. 그 애의 발은 미동이 없었다. 계속 나를 보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평정을 유지 하려면 머리를 비우는 것이 최고지만, 그 상황에서의 나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얼굴에 잔뜩 올라버린 열을 식히려고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없는 검정으로 나를 뒤덮어 진정하려는 속셈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렇게 얼마 간을 같은 자세로 대치했다.

 

“어디 아파?”

 

그 애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몸을 숙인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그 애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을 텐데 나를 진정시키는 것에 정신이 팔려 듣지 못했던 것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아이의 모습에 조금 식혔던 열은 다시금 올라갔다.

그 애가 몸을 일으키고 나는 그 것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후 나는 손을 덥석 잡혔고, 그 애의 힘에 이끌려 소파에 눕게 됐다. 조심스러운 손길과 뜨거운 체온이 만나 내 안에서는 폭발이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타버려 재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알까.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너 열이 되게 심한데, 조퇴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선생님 불러올게.”

 

그 애는 그 말을 하고 내 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뒤를 돌아 도서관 문을 향해 걸어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본능에 이끌려 그 애의 손을 잡았다. 뒤를 돌아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 순간 그 눈빛에서 파란색과 초록색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 전에 물 좀...”

 

이 상황에 겨우 꺼낸 말이 그런 말이었다. 그 애는 웃었고, 나도 덩달아 웃어버렸다. 레몬 향이 짙게 나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은 그 아이는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한 후 진짜로 물을 가지러 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세를 고쳐 잡고 그 애가 만진 내 머리를 만져봤다. 그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상상이 간다. 멍한 얼굴로 살짝 미소를 보였겠지. 누군가 봤다면 머리를 다친 사람이거나 바보로 봤을 것이다.

조금 후 그 애가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 마냥 그 아이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애는 내 손에 아주 차가운 컵을 쥐어 주었다. 작은 얼음들이 들어있는 차가운 생수. 나는 단 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 차가운 감각이 온 몸에 퍼져갔지만 내 몸을 식힐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제대로 쉬게 해 줄 정도였을까.

 

“아픈 건... 아니지?”

 

“...응 그런 건 아니야, 고마워.”

 

“아니야, 뭘 이 정도로.”

 

나는 그 애의 말에 웃었다. 기뻤기 때문이다.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도 그 애는 나를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봤다. 김이한. 특이한 이름이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이름. 그렇게 특이하지 않았어도 그 아이의 이름 세 글자는 내게 각인 됐을 테지만, 김이한 이라는 특이한 세 글자였기에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잊을 수 없게 됐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자 대화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을 맞춘 날이기도 했었다.

 

 

*

 

 

더웠다. 눈을 뜨자마자 땀을 흘리는 스스로와 찝찝한 옷, 불쾌한 습도, 뜨거운 온도, 시끄러운 선풍기와 마주하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었다. 여름 방학이었기에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와 아빠는 일치감치 출근했었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항상 나보다 늦게 일어났었다. 크게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벗어나 여동생의 살짝 열려있는 방문 틈으로 잔뜩 찡그린 얼굴을 들이밀어 확인했다. 커튼이 쳐져 아직도 한 밤 중 같다. 내 방보다 햇빛이 잘 드는 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여동생이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몇 번 저은 후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가 해놓은 반찬들을 식탁 위에 내놓고 국수를 끓이고 있으니 여동생이 어느샌가 배를 긁으며 식탁에 다가와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끓는 물 앞에서 그런 여동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금세 눈이 퀭해졌다. 그런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니, 어쩌라는 듯 똑같이 나를 보는 여동생. 얼굴만 봐도 짜증이나 불길로 얼굴을 돌렸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더위에 시달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휴대폰을 확인하니 ‘이한’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그 아이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나는 하던 설거지를 그만두고 그 아이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곧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하자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한이가 만나자고 했으니까.

이런 더운 날 밖에서 만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했던 평소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아이가 나를 좋게 봐줬으면 하는 생각에 긴 바지나 긴 팔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 때 설거지를 마무리한 여동생이 내 방 문 앞에 서서 한 마디를 던졌다.

 

“뭐야? 여자친구 생겼어?”

 

“... 뭔 소리래.”

 

“그럼 뭐야...? 썸?”

 

“...”

 

“누가 오빠 같은 사람을...?”

 

“아 꺼져.”

 

“아 미친놈아! 코 박을 뻔 했잖아!”


“어차피 오토바이 타다 깨질 코잖아!”


문을 닫고 살짝 힘이 풀린 나는 문에 기댄 채 주저 앉아버렸다. 내 몸을 내려다 봤다. 헛웃음이 나왔다. 왜 들떴던 건지, 왜 잘 보이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다른 감정이 있었던 걸까. 그 찰나의 순간에 생각과 감정을 잊어버린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던졌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 애는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뒷모습. 무슨 의미냐고 물어도 대답을 할 순 없다. 나만 그렇게 느낄테니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시고 다시 한 번 내 모습을 점검했다. 평범한 모습,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렇지만 이런 날에 검은 티에 검은 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평벙해 보이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반바지를 입을까 했지만 도저히 반바지 쪽으로는 손이 가질 않았다. 이한이에게 아직 내 맨다리를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스스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발을 한 발 디뎠을 때 그 애가 뒤를 돌아봤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했다. 이한이는 왜 뒤를 돌아있었던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버스가 오는 쪽을 보고 있을텐데. 언젠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묻지 못했지만.

나는 그 애를 따라 땡볕 속에서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햇빛은 더 뜨거워졌지만 어쩐지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이한이가 옆에 있었던 탓일까. 우리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나도 이한이도 그렇게까지 친한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 날은 우리가 학교 밖에서는 처음 만나는 거였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리는 이한이의 이모가 하는 카페에 다다랐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람.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모에 비해 그 애는 그늘이 진 듯해 보였다. 그게 아니라 이모 쪽이 너무 밝아보였던 걸까. 우리는 아주 잠시 카페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말은 이모님이 하셨고 우리는 듣거나 대답을 하는 대화였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마실 것을 하나씩 들고 걷고 있었다. 나는 사실 실내에서 좀 더 쉬고 싶었지만 걷고 웃으며 기뻐하는 그 애를 보고 있으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걷고 계속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제법 대화를 많이 나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책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좋아하는 가수, 요즘 듣는 노래 같은 서로의 소소한 것들을 주제로. 나는 내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말하는 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저 이한이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경사로가 나왔다. 나는 그 경사로를 보고 눈을 크게 떴지만 아무렇지 않게 앞서서 경사로를 오르는 그 애를 보고 묵묵히 뒤를 따라갔다. 거친 숨소리와 흐르는 땀, 뜨거운 햇빛, 점점 무거워 지는 다리. 이런 것들의 조합을 감내한다는 것은 수련을 한다던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닌 이상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이한이도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말에 웃음을 보였다. 평소의 나와 너무 다른 모습에 낯설었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 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애와 같이 있는 순간이 즐거웠으니까.

대화를 나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고개를 돌렸을 때 “여기야.”라는 이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선 자리에서 넋을 놓고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초록의 절벽과 저 너머까지 이어진 푸른 바다. 이한이는 내게만 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가족 중에도, 친구 중에도,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는 곳. 왜 나에게만 알려줬을까. 나는 궁금증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토록 나를 생각하고 아이 앞에서 꺼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에 생겨난 의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특히 너에게는 더욱 말 할 수 없는 나도 아직 알 수 없는 이 감정. 나는 그냥 거친 숨만을 내뱉으며 이한의이 말을 듣기만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게 감겨오는 그 애의 목소리가 편안하고 좋았다.

이한이는 점점 절벽의 가장자리에 가까이로 걸어가더니 주저앉았다. 위험해보였다. 나는 역시 조금은 무서워서 이한이의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눈치해고는 그 애는 온 몸을 펴며 그 자리에 누웠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그림자에 의해 가려져 그늘진 그 눈에서는 또 다시 파란빛과 초록빛이 아른 거렸다. 너무 더워서 살짝 헛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나도 결국 이한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 날 피부가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다음 날 따끔 거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원래도 피부가 조금 까만 편이었고 그 애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댓가가 겨우 이 정도 고통이라면 참을 수 있었다. 그냥 여동생의 알로에 베라 젤이 좀 많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

 


여름 속에서 나와 그 아이는 더 친해졌다. 서로 말하기 부끄러운 비밀 같은 것을 나눌 정도로 엄청나게 친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우유가 섞인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그 아이는 언제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고, 나는 그 아이가 남들이 충분히 많이 읽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 애를 만날 때면 언제나 내 방이나 여동생 방을 그것도 아니라면 부모님 방을 뒤져서 책을 빌려주곤 했다.

눈부셨고, 습하고, 더웠다. 행복하다는 말이나 즐겁다는 말보다는 조금 다른 느낌의 하루하루. 조금 더 뜨거운 느낌. 그 애는 나랑 같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한이를 만날 때면 나는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잘 모르는 감정. 혹시나 싶은 추측으로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의 형태를 얼추 잡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도 머릿속으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을 확신하게 되면 이 뜨겁고도 평온한 일상이 깨질 것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이한이와 만날 때는 평소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있으려고 노력했다. 웃음 소리조차 작위 적으로 하하하 하고 웃으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한 순간에 그런 다짐은 무너져 내리곤 했다.

한 날은 웬일로 이한이가 내게 영화를 보자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관에 도착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던 그 애는 여느 때보다 신나고 흥분돼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조금 후 그 애는 나를 발견했고 아까 내가 지켜봤던 뒷모습과는 달리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그리곤 조금 미안한 듯, 부끄러운 듯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곧 이한이는 말을 꺼냈다. 평소와는 달리 자신 없는 투로.

자신의 취향이 이상하고 독특해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고. 영화가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면서 내게 사과를 건넸다. 난데없는 사과를 받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런 모습의 이한이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 아이, 언제나 미소를 품은 채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던 그 아이는 지금 내 앞에 없었다. 나는 이한이가 내게 굳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이한이의 말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내가... 내가... 하는 이 아이의 취향이니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영화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고, 이한이는 나를 기다리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평소에 보던 그런 영화들과는 한 참 달랐다. 잔잔했고, 슬펐고, 아팠다. 조금은 난해하게도 느껴졌고 어떤 부분은 역겹기도 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그 영화는 좋았다. 어쩌면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중 잠깐 그 애의 표정을 봤을 때 이한이의 정말 행복해보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 영화를 좋게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젖은 눈을 닦고 이한이를 향해 말했다.


“너무 좋았어.”

 

 

*

 

 

신비롭다는 말을 사람에게 쓰는 건 실례가 되는 일일까. 만나면 만날수록 그 애는 보통의 사람과는 달랐다. 보통의 남자 고등학생이라면 하지 않을 말들, 하지 않을 행동들을 자주 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이한이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애를 손에 닿을 수 없게 느꼈다. 이런 생각을 언젠가 이한이에게 툭 뱉은 적이 있다. 실수했던 것이다. 황당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좋아하거나, 혹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는 그저 깊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곤 내게 물었다.

 

“보통 애들은 어떻게 말할까?”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면 기분이 나빠 비꼬아서 이야기 한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게 물으면서 말한 그 애의 눈은 아무런 악의 없이 빛나고만 있었다. 그런 질문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그 애가 하던 것 처럼 깊게 생각해 봤다.

 

“나 어렸을 때는 왕따 같은 거 당하기도 했어.”

 

“뭐?”

 

“아직 다들 어렸으니까, 이해는 해.”

 

“그걸 왜 이해 하는데...?”

 

“안 그럼 뭔가 내가 잘못이 있는 것 같잖아.”

 

“왜 너한테서 잘못을 찾아...”

 

“싫어할 빌미를 줬다고 해야 되나?”

 

“바보 같은 소리야.”

 

“너도 방금 말했잖아. 보통 애들이랑은 다른 것 같다고.”

 

“...”

 

“난 어렸을 때부터 이랬거든. 엄마랑 아빠랑 떨어져 살아서 그런 건 아니고... 여기로 전학 오기 전부터 그랬어. 말도 잘 안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나 혼자 생각하다 말하니까 애들이 이해 못할 말도 많이 하고. 나도 알아 내가 좀... 다른 거.”

 

“...”

 

“근데 뭐 애들한테 맞거나 제대로 된 왕따를 당한 건 아니고 그냥 애들이 나를 피했던 정도였어. 그것도 초등학교 때 까지였고.”

 

“...”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대화하거나 날 아는 척 하는 애들도 생겨났어. 불만을 가지거나 나쁘게 군 적 없는게 그렇게 보상을 받은 거였을 싶어.”

 

“...”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보지 마. 진짜 별거 아니었어.”

 

“이해가 안가네.”

 

“뭐가?”

 

“왜 다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했을까 싶어서.”

 

“너랑도... 뭐 우연히 친해진 거니까...”

 

“우연 아니야.”

 

“그럼?”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감정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이한이를 처음 볼 때부터 느꼈었던 것들을 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도 아직 잘 모르는 이것을 내 입 밖으로 내놓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이 감정이 완전한 형태를 이루면 안 되니까. 거짓말로 대충 이유를 지어냈다. 우연이 아니라고 한 내 말을 위한 변명. 이한이가 그것을 믿었을지 안 믿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변명을 듣고 그 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고, 나는 살짝 불어진 그 애의 얼굴을 머리에 가득 채웠다.


“그래서?”


“어?”


“보통 애들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냐고.”


“그...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여름의 끝자락. 방학이란 것이 끝나가는 건 싫었지만, 학교에서 그 애와 더 자주 마주칠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여름은 더욱 자신을 불태웠다. 더욱 습해지고, 더욱 더워졌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불쾌함의 덩어리들이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한이와 그의 이모. 이모님의 카페를 찾아오는 몇몇 사람들은 불쾌하기보다는 가까이 다가오면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생긴 것도 다르고 접점도 없었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의문이란 것이 생기면 그것을 바로 해소 할 수 있는 편이 좋은 거라고 항상 생각하지만 이 것 또한 다른 의문들과 함께 삼켰다. 이런 답을 쉽게 낼 수 없는 질문들로 그 애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또 그 애 덕분에 얻은 여름 속의 작은 행복을 흔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

 

 

학기가 시작됐다. 적응하는데 어려울 일은 없었다. 여동생과는 마주칠 일이 줄었고, 날씨는 점점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1학기 때와는 다르게 나는 그 애와 붙어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같이 다닌 느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한이는 귀찮은 티를 낸 적도, 내가 찾아간다고 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다른 아이와 대화를 끊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 애의 모습에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 행동을 한 거였을 것이다. 친구. 나쁘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평범한 날들이 이어졌다. 학교를 가고, 수업을 받고, 이한이를 찾아가는 그런 날들. 지겹지는 않았다. 매일 같이 같은 행동을 해도, 날마다 다른 그 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 때 쯤부터 마음속에 생긴 감정이 형태를 잡으려고 큰 의문을 만들었다. 감정이 풀어 놓은 의문은 머리를 아프게 만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마주한 그 감정에 대한 것.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 감정에 대한 것. 모든 것은 그 애 때문이었지만, 나는 이한이를 피하지 않았다. 잘못이 있다면 이런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나에게 있는 것이었으니까. 알 수 없는 감정도, 자꾸만 드는 어떤 열망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들도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 애의 옆에서 친구로서 있기만 하면... 그러면 참을 수... 그러면... 그러면...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순 없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올 때 쯤 그 애와 함께 주말에 만나 공부를 했다. 이한이의 집에서. 이모님은 출근을 했고 집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이한이는 거침없이 종이를 넘기고 글씨나 문제의 답을 써내려 갔다. 나는 공부를 하기보단 수련에 가까운 집중력 기르기를 한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각거리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같은 것들은 조용한 이한이의 방에 계속 울려 퍼졌지만 내 귀에 닿을 수 있는 건 가끔 들려오는 그 애의 숨소리였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문제들이나 공책에 쓴 필기를 눈에 담고 있었지만 오롯이 그 애 쪽으로 모든 신경을 집중 했다. 그러다 한 순간 그 애의 시선이 어떤 느껴졌다. 나는 곧장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이한이는 내게 미소를 보였다.

 

“공부 잘 되가?”

 

“...”

 

“형운아?”

 

“어?”

 

“공부 잘 되가고 있어?”

 

“아, 응. 뭐 적당히 되가고 있어.”

 

“그래? 그럼 좀 있다가 쉴까?”

 

“어? 아냐. 너 지금 쉬고 싶으면 쉬자, 사실은 좀 지겨워 지고 있거든. 머리도 안 돌아가고.”

 

“뭐야...”

 

“왜?”

 

“한 순간에 말이 바뀌네?”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마실 거라도 가져 오겠다며 이한이가 일어났다. 현기증이라도 난 것인지 그 애는 휘청거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그 애를 받았다. 코가 닿을 듯 한 정도의 거리. “고마워.”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고 우리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애를 잡겠다고, 받아내겠다고 그렇게 급하게 일어나면 안 됐던 것이다. 조금 이상했다. 그도 그럴게 현기증은 생전 처음이니까. 내가 느낀 현기증이 정말 기립성 저혈압에 의한 것이 맞을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괜찮아?”

 

“...”

 

“형운아? 괜찮은 거 맞지?”

 

“응... 조금 어지러워서.”

 

“괜히 나 때문에... 미안. 다치지는 않았어?”

 

얼굴에 닿는 손길. 놀라 눈을 뜬다. 그 애의 숨이 내 얼굴에 닿고 있었다. 나는 내 볼에 닿은 그 애의 손을 떼어 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잡은 그 애의 손을 놓지 않았다. 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까이서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을 벗어나야한다. 그렇지만 이한이의 손을 잡은 내 손은 더욱 뜨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눈만 깜빡이기를 얼마나 했을까. 머리에 열이 올라 나는 눈을 감고 온 몸의 힘을 풀었다. 숨이 평소보다 거칠어 진 것이 느껴졌다. 내가 스스로의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인데 이한이는 이런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창피했다. 그래서 더욱 눈을 뜰 수 없었다. 갑자기 볼에서 느껴지는 손길, 평소와는 다른 무겁고 거친 발소리. 조금 후 차가운 것이 내 이마에 닿았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언젠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었다. 인어에 대한 이야기, 인어에게 반해서 열병을 앓게 된 남자의 이야기 같은 것들. “인어는 사람을 홀리는 요물이 아니다.”, “바다를 정화하는 사람이다.”, “나쁜 것들이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눈을 떠보니 그 애의 침대 위였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키지만 내가 일어난 것을 눈치 챈 이한이가 서둘러 내게 다가와 나를 다시 눕혔다.

 

“괜찮아?”

 

“아... 응.”

 

“다행이다,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

 

“아프면 말을 하지...”

 

“아, 아픈 건 아니야. 그냥...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네.”


“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이랬잖아.”


“그랬었지...”

 

“뭐... 정밀 검사 같은 거라도 받아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아니야! 그렇게 심각한 건 절대 아닐걸...? 아니겠지...?”

 

눈이 마주친다. 잠깐의 정적 후 우리는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이한이가 내게 물을 건넨다. 몸을 조금 일으킨 나는 잔을 받는다. 닿아버린 손끝에서부터 불이 번지기 시작한 것 같다. 마치 심장이라도 달린 듯 손끝은 뜨겁게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을 마시고 있다. 또 다시 이한이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된다. 나는 물을 들이키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 애가 말을 걸어온다. 사례가 들렸다. 기침을 계속 내뱉는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지금 이 고통스러운 감각이 아까의 뜨거운 감각보다는 차라리 나은 느낌이다. 그랬으면 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

 

 

순식간에 스쳐간 과거의 기억. 이한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기억들. 형운이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곤 이한의 품에서 벗어나려 그를 살짝 밀어낸다. 하지만 이한은 밀리지 않는다. 더 힘을 줘서 그를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한이 형운을 더 강하게 안을수록 형운의 죄책감은 더해진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어.”

 

“...”

 

“아니... 이러고 있어 주면 좋겠어.”

 

“...”

 

바람이 불어온다. 곧 다가올 여름을 어느 정도 실었는지 조금 뜨겁다. 둘의 귓가에는 파도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소리. 그리고 서로의 조금 짙어진 숨소리만 맴돌고 있다. 밤을 잔뜩 품은 하늘이 저 멀리서부터 오고 있다. 주황빛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한은 아무 말을 꺼내지 않고 계속 형운을 안고만 있다. 왜 일까. 이렇게 안고 있으면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아니면 자신의 과거를 품은 눈앞의 아이를 설득 하려고?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좀 더 순수한... 기억나지는 않지만 과거의 자신이 형운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지금의 자신도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이상하다. 이한의 머릿속에선 기억나지 않는 사람인데. 기억 속의 어떤 자리에도 형운은 보이지 않는데... 형운이 이한에게 심었던 감정은 마음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일까.

이한은 형운에게 감고 있는 손을 올린다. 형운의 머리카락에 닿은 이한의 손. 머리카락을 타고 느껴지는 손길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다. 두 사람은 그것을 눈치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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