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네라도라











"그래서, 그러고 창섭이가 나갔다고?"

"...응."


계속되는 추궁에 결국 다 말해버린 그들은 곧 있으면 폭탄 터지듯 화낼 메니저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어떻게 좀 해보라고 서로 눈치도 주고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외로 덤덤하게 한숨만 쉬어내곤 창섭을 찾긴 찾았냐며 걱정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민혁이가 찾으러 나갔는데 아직 모르겠어."

"민혁이 형이 전화를 안받아."

"내가 한번 더 해볼게."


은광이 말하고 덧붙여 현식이 말한다. 그들이 마른새수를 하고 또 한번 한숨을 쉬는 메니저의 눈치를 보는 사이 동근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최근기록 첫번째에 올라있는 민혁에게 익숙한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지만 이내 여성 기계음이 들려오자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조용히 숙소를 둘러보다 웬일로 조용하게 있는 성재를 보곤 입을 땐다.


"성재야, 그 창섭이 사고. 그거 알파 죽은 멤버 중 한명이 주도한거래. 그 내용 녹음해논 거 봐서 창섭이는 운전만 했다는 것도 사실같아 보이고. 형도 더 줄었다고 하네. 본인도 그때의 충격이 커서 아직 잘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나봐. 그러니까 자꾸 싸우려들지만 말고 너네도 서로 안싸우게 중재 잘 해주고. 응?"


은광, 현식, 동근은 모두 창섭이 안쓰러웠다. 그의 처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냥 그를 보면, 그의 얘기만 들으면 안쓰러워진다. 남이었을 때는 창섭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그가 어떤짓을 했던 아무런 주관적인 감정도 들어가있지 않은 오직 객관적인 눈으로만 냉정하게 봤다. 굳이 감정소모를 하며 우호적으로 생각해주기엔 저들을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 세상에 너무 지쳐있었다. 그런데 이젠 화가나려 그런다. 대체 리더까지 맏고 있었던 그가 왜 멤버의 말만 듣고 따랐을까. 리더라는 직책의 권위는 엇다 팔아먹었길래 목숨 안가려가며 그런 짓을 했냔 말이다, 왜.
그때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민혁 뒤로 창섭이 따라 들어왔다. 어쩐지 어깨가 축 쳐져서 힘 없어 보이는 창섭이다. 민혁과 창섭이 거실로 들어오자 성재는 창섭을 보더니 일어나 방으로 가려했지만 민혁의 앉으라는 한마디에 다시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은광은 앉아있는 멤버들을 둘러보다 일훈이 없다는 걸 알아채곤 방으로 가 일훈을 데리고 나왔다.


"얘들아, 우리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창섭이 받아주면 안될까?"

"...."


일훈까지 모이니 잠시 정적이 흐르다 민혁이 다시 입을 때니 또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음에 일훈, 성재 빼곤 다들 고개를 살짝씩 주억거리는 중이다. 그러다 동근이 손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한가지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응."


민혁이 창섭의 눈치를 보고있는 새 창섭이 대답한다. 차타고 역주행 위험하단 건 나도 아는데 왜 그런거에요? 동근의 엉뚱한 질문에 멤버들은 모두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메니저가 다 말해줬는데 똑같은 질문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머뭇거리다 내뱉은 창섭의 대답은 의외였다.










"미안했어. 그 애들한테. 내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자기들이 더 고마워하니까. 걔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하지 않은 애들이란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밤마다 잠들기전에 서로 하루 버티느라 고생했다 말해주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는거 보면 웃고, 슬픈거 보면 울고, 불쌍한 애들보면 주머니에 있는 천원이라도 모아서 주는 그런 평범한 애들이였어. 그런 애들한테 내가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마지막으로 애들이 해달란 거 해주고 싶었어. 나도 같이 죽으려 했고."


"...."


"근데 딱 그날 너희를 만났고, 그 후에 성재를 한번 더 만났어. 신기한 게 너희가 날 두번 살렸더라. 너네가 조금더 오른쪽으로 지나갔다면 운전석에 있던 나도 죽었을거라고 그러더라. 그리고 차에 치일뻔한 거 성재, 너가 구해줬고. 여러모로 고마워. 미안하고."


"...."


"그래도, 나 멤버로 받아줄 수 있을까?"



창섭의 긴 이야기에 멤버들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마 창섭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 되지않아서 아물지도 않았으며, 꽤 아픈 상처임에도 서슴없이 드러내준 창섭에게 고마운 그들이었다. 은광부터 창섭을 안아주자 민혁, 동근, 현식도 다가가서 같이 안는다. 메니저는 벌써 창섭이 비투비 멤버같아 보이는 광경에 웃음짓다가 일명 '창섭 안아주기에' 동참하지 않은 성재와 일훈을 창섭에게로 등떠민다. 반면, 창섭은 제 볼에 얼굴을 비벼대는 은광과 마구잡이로 머리를 쓰다듬는 민혁, 센 압력으로 뽀뽀세례를 퍼붓는 현식, 제 허리를 꼭 껴안고있는 동근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받아만줘도 고마운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니 속 없이 그냥 다행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창섭이었다. 그들의 따뜻함에 그는 눈을 한껏 접어 지어본 지 오래됬던 눈웃음을 짓는다.

결국, 메니저에게 등떠밀려  그들을 안게 된 성재와 일훈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았던건지 싫은티는 내지 않는다. 한참 그러고 있다 대표의 메니저 호출 소식이 나는 바람에 산통이 깨졌고 좁아터진 현관문 앞에 서서 그를 배웅하는 7명의 인사에 멋쩍었는지 코밑을 쓱 닦으며 간다, 한마디와 함께 문을 열고 나갔다.



"아, 배고프다-"


"나도."



그가 나가자마자 은광이 배고프다 칭얼거리니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며 그의 말에 제 말을 얹는다.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건장한 성인 7명은 꼭 백수를 연상시켰다. 그 7명의 몸뚱아리로 꽉 찬 공간에 잠깐의 고요가 머물다 난대없는 눈치게임에 왁자지껄한 저마다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서로 왜 저와 똑같은 번호를 외치냐는 둥, 걸린사람 둘은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와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가 고막이 터질 듯 시끄럽게 오가는 장관에 넋놓고 보고있는 창섭이다. 결국 오랜 말싸움 끝에 바보같이 맹했던 창섭, 물 마시다 한발늦은 성재가 마트에 갔다오는 걸로 결정되었다.



"또 싸우지 말고 빨리 갔다와-"


"종이에 써있는 거 다 사와야돼!"


"성재야, 내거 곰돌이 젤리 하나 더 추가!"


"헐, 나도 곰돌이 젤리!"



은광, 동근, 현식, 민혁 순으로 소리쳤다. 창섭은 종이에 적힌 걸 다 사는 것도 문제지만 성재와 단 둘이 간다는 게 더 문제였다. 어색해서 어떡해. 먼저 친거 사과라도 해야되려나. 아님 그때 구해준거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자 머리가 복잡해진 창섭은 퓨-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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