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계속 볼수있는거지?

그럼 , 내 연락처있잖아.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줘. 

뭐라고 해줄까.

우린-


바닥으로 떨어진 라디오가 산산조각나며 엇나간 기계음을 냈다. 초점이 풀린 눈으로 점장은 한탄에 가까운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린 다 죽을거야, 굶어죽거나, 뜯어먹히거나..다 죽을거라고!” 

“아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당신만 불안해요?”

 점장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뭐라 하는 남자에 눈이 동그래져 입을 다물었다. 경서는 꼬리를 만 쥐새끼같이 구는 점장에 헛웃음지었다. 난 아주 찍어누르려들더니, 자기보다 세 보이는 사람한텐 한번에 나가떨어지네.

자존심은 있었는지 점장은 고장난 라디오에 몇 번이나 발길질하며 화풀이를 하다 혼자 지쳐 냉장고를 열고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전기가 끊긴지 오래라 물은 미지근하다 못해 따뜻했다. 그걸 보던 환영이 입을 열었다.

 “아침에 배급 끝났어요, 내일 몫 미리 뺀 걸로 알게요.” 

“여긴 내 가게야, 이 물은 내 물이고.” 

환영은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옮겼다. 점장은 스트레스에 이성이 마비돼 어제부터 폭식을 시작했다. 그 결과 얼마 남지도 않은 식량에 바닥이 보였다. 화영은 그를 저지하려 했다가 머리에 우유팩을 맞았다. 수도가 나가 씻지도 못하고 화영은 옷을 말려야 했다. 수건으로 닦았음에도 아직까지 머리에 단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여름은 착실하게 다가와 편의점 안은 찜통이었다.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그들로선 정말 익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찝찝하게 올라오는 뜨거운 공기, 몸을 타고 흐르는 더러운 땀. 서로의 숨소리마저 불쾌했다. 저 밖에 것들은 더위도 안타나. 구더기도 이 날씨엔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데.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과도한 짜증에 어느새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되어졌다.

경서가 슬그머니 제안했다. 

“저 창문, 열면 안돼요?” 

“저거 바로 밖으로 통하잖아요. 그것들이 몸을 구겨서 들어오면 어쩌려고요.” 

“그냥 벌레가 무서운게 아니고요?” 

환영은 창문 쪽만 쳐다보는 경서를 노려보았다. 그 괴물의 상태를 보고 가장 오래 패닉에 빠져있던 사람은 경서였다. 아침까지도 주어진 빵을 먹다 헛구역질해 자기까지 입맛 떨어지게 했었다. 

“그럼 그쪽이 가서 열어요, 혹시라도 물리면 머리는 제가 깨줄게요.”

 “알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픽 돌려버리는 경서였다.

자연스럽게 서아의 옆자리를 차지한 남자는 아예 옷통을 까버리고 파닥거리고 있었다. 서아는 끈적하고 불결한 살덩이가 자신에게 붙을까 껄끄러워 자리를 피하려했지만 번번히 남자는 재미 없는 말로 그를 붙잡았다. 서아는 불편하게 미소지었다. 남자는 그저 서아의 미소에 신나 더 떠들어댔다.

“오늘은 안끼어들어요?” 

경서였다. 환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보자 경서는 입꼬리를 올렸다. 

“저 둘이 붙어있을 때마다 훼방놓더니, 서아씨랑 대체 무슨 관계에요? 저번처럼 친구라고 하지마요.” 

친구라 대답하려했던 환영은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피하니 남자 옆에 앉아있는 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뻔히 쳐다보던 서아는 눈이 마주치자 바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야. 환영은 가라앉는 기분을 무시하고 다시 경서를 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니에요, 그냥 답답해서-” 

한쪽 입꼬리만 과장되게 끌어올리는 괴상한 표정을 짓던 경서는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환영은 그가 더위에 맛이 갔나 걱정했다.

“난 내일 나갈거에요.” 

멍하니 시계를 보던 환영은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뒤돌았다. 경서였다. 또 다시.

“저걸 보고도 나갈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라요, 어제 저걸 자세히 봤었거든요. 그 징그러운 벌레들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시야를 가리고 있었어요. 도망치는 건 더 쉬울지도 몰라요.” 

“그걸 자세히 봤어요? 비위 한 번 대단하네요. 그런데 다른 그것들도 저렇게 생겼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야 여기 뜯어서봤죠. 이거 다 유리잖아요.” 

그는 군데군데 빛이 새어들고있는 박스로 가린 유리벽을 가리켰다. 

“그것 참..대단하네요.” 

환영은 징그럽다는 얼굴로 경서를 쳐다보았다. 아침에 얼굴은 허옇게 질려있더니, 비위가 약한건지 좋은건지. 경서는 그걸 관찰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슬 당신이 정말 무서워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리고 또, 밖에 저것들 얼마 없어요. 시야 끝까지 보이는게 겨우 다섯 마리정도였어요. 첫 날에 다 가려버리고 그 다음부턴 괜히 시선 끌지말라고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잖아요. 그 사이에 다른데 시선이 끌려서 단체로 가버린게 분명해요.” 

확실히 그들은 바깥을 일부러 무시하고있었다. 저 상식을 넘어선 괴물들이 그들을 인식하면 떼로 몰려들어 저 얇은 유리를 깨버리고 들어와 살을 물어뜯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같이 갈래요? 대신 우리끼리만.”

서아는 남자에게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환영과 경서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바로 옆에서 떠드는 남자 때문에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서아씨.”

 “네,네?” 

한참을 무시했던 남자가 어느새 그윽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분명 난 고백을 거절했는데, 두 번이나. 남자는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게 틀립없었다. 서아는 입술을 들이밀려는 남자를 손으로 턱 막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환영이 도와주지않아 약간 서러워졌다.

서아는 자신에게 점점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부담스러웠다. 몇 번이고 거부의 의사를 밝히고 싫다고 말했지만 남자는 내숭에 밀당이라며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환영이 경고했을 때 서아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바라지 않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남자는 그를 사람이 아니라 미연시 게임 캐릭터정도로 생각하는 것같았다. 자신이 무언갈 해주면 그만큼 자신이 그를 사랑할 것이라 여겼다. 서아는 점점 지쳐갔다.

저녁쯤에야 서아는 벗어날 수 있었다. 남자가 밥을 먹자마자 골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마치 가축처럼. 계속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우울한 생각을 떨쳐낸 서아는 혼자 심각하게 무언가 생각하는 환영 옆에 붙어앉았다.

“무슨 생각해?”

“아, 별거 아냐. 아니 별거기는 한데. 복잡해.”

“왜 복잡한데?”

“그야 넌-으, 모르겠다.” 

머리를 헝클어트린 환영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환영은 서아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서아야, 난 꼭 살아서 집에 갈거야. 너는 어때?”

“나도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구조대는 소식도 없고, 여기 계속 있다간 미칠 것 같아. 차라리 우리-”

“거 둘! 이거나 좀 해봐.”  카운터에 앉아있던 점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점장은 자기가 부숴놓은 라디오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원래와 전혀 다른 엉성한 모양을 만들고있었다. 환영은 한심하게 쳐다보지 않게 노력하며 대답했다. 

“그거 고치는건 글렀어요. 포기해요.” 

“아냐,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다니까! 이것 좀 잡아봐. 테이프로 붙이면 될 것 같은데-” 점장은 손을 휘적거리며 그를 불렀다.

“저 아저씬 이미 미쳤어.“ 환영은 서아에게만 들릴정도로 작게 속삭이고는 일어나 점장에게 향했다. 서아는 점장을 다독이며 라디오의 잔해를 정리하는 환영을 보며 그의 말을 곰씹었다. 그가 하려던 말을 뭐였지? 서아는 환영이 먼저 다가와주길 바랐지만 결국 잠들 때까지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환영은 죽 무언갈 고민하는 듯했다. 그냥 다 털어놓으면 될텐데. 서아는 보초를 자처한 환영 대신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환영은 고민했다. 솔직히 그는 남자와 점장을 데리고 저 거리에서 생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점장은 늘 그들보고 나가라고 했다. 어쩌면 윈-윈이 아닐까? 다섯 명보다는 둘이 식량을 나누는 건 편할 것이다. 이미 거의 바닥났다는게 문제지만. 우리끼리 가자고하면 서아의 반응은 뻔했다. 보나마나 그건 그들을 죽게내버려두는거라고 설교하겠지. 사랑스러운 수녀님같으니. 설득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당장 내일 아침에 나가자고 했는데. 머리가 복잡해피곤해진 환영은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그리고 환영은 같이 보초를 맡은 남자를 믿고 자버린걸 후회했다. 소란스러운 느낌에 일어난 그는 주위를 살피다 남자와 서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소리가 들린 건 창고 안 쪽이었다.

남자는 기어코 선을 넘었다. 서아는 저를 잡고 으슥한 창고 구석으로 끌고가려는 남자를 말로 멈출수 없단걸 깨닫고 그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남자는 가랑이를 잡으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벌벌 떠는 서아를 두고 혼자 어디까지 상상했는지 남자는 마치 평생의 사랑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받은 가련한 남주인공마냥 흉하게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신음했다. 순화하자면 자기가 해준게 얼만데 감히 너가 이러냐는, 흔한 대사였다. 서아는 입술을 악물며 한 번 더 그를 즈려밟았다. 급하게 달려온 환영은 거품을 문 채 기절한 남자와 그를 내려다보는 서아를 보았다.

“서아야!”

서아가 뒤돌아 환영을 보았다. 눈물 어린 눈동자에 환영은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며 서아를 꽉 껴안았다. 서아는 그 어깨에 기대었다. 따뜻하고 익숙한 품이 알맞게 그를 받아주었다. 

“여기서 떠나자.” 

그동안의 고민에 무색하게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 서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계속 함께일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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