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AU / 사회인 이와이즈미와 국가대표 오이카와

* HQ!! 2차 연성 : 이와이즈미 하지메 X 오이카와 토오루


 온 몸을 두들기는 뻐근함에 팔을 뻗었다. 다가오는 한 해의 마지막에 업무량이 많아진 탓이었다. 이놈의 야근은 언제 끝날는지. 어깨를 두들기던 이와이즈미는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담배라도 태워야 이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를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한 손길로 불을 붙이자 하얀 끄트머리가 새빨갛게 타들어갔다. 후우. 제 입 밖으로 뱉어지는 것이 담배 연기인지 입김인지 구분이 가질 않을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멍하니 담배 끝을 짓씹고 있자니 문득 주머니 속에서 요란히도 울어대는 핸드폰이 느껴졌다. 하나마키? 라인을 하면 했지 전화하는 일은 드문데. 액정 위로 미끄러지는 손가락은 의아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


 “어.”

 - 잘 지내고 있나요, 이와이즈미 씨? 다른 건 아니고 쿠니미네 애들도 다 졸업했겠다 간만에 아오바죠사이 배구부들 모아서 망년회나 할까 하고.

 “벌써 졸업했냐? 시간 빠르네.”

 - 아저씨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올 거지? 오는 걸로 안다? 대답할 새도 없이 뚝 전화가 끊겼다. 책상 가득 올라있는 결제 서류와 모니터를 꽉 채운 문서들을 떠올리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느새 다 타버린 꽁초를 대충 비벼 끄고 한 개비를 더 꺼내 물었다.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시자 새삼스러운 그리움이 밀려왔다. 간만에 후배들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녀석이다. 다시금 밀려오는 두통에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두 사람의 길은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사회로, 오이카와 토오루는 대학으로. 사회를 선택한 이와이즈미에게 배구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작은 언쟁은 몸싸움으로 번졌고, 가벼운 안부를 묻는 연락조차 나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재주가 좋은 사람이라 대학 리그에서도 늘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언젠가의 TV 방송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속으로 작은 응원을 보냈다. 이래나 저래나 자신도 배구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제아무리 어린 시절을 함께한 소꿉친구라고는 해도 역시나 국가대표 선발 소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대상이 그 오이카와이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단절되었던 몇 년의 시간은 두 사람 사이에 커다란 벽을 쌓아서, 이와이즈미는 ‘축하한다’ 그 한 마디를 전하지 못했다.

 기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꽤 오래 전부터,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작은 시절에서부터 오이카와 토오루를 좋아했다. 코흘리개 시절에야 남들이 넘볼 수 없는 두터운 신뢰 관계에 자부심을 느꼈다지만 머리가 커갈수록 이것이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이 관계가 틀어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종래에는 그저 좋은 친구로 남기를 결심했다. 그러나 자신이 배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이유를 묻기는커녕 무작정 화를 퍼붓는 오이카와가 서운해서 어린 자존심에 맞불을 놓아버렸더랬다.

 입 안이 텁텁했다. 짧아진 담배 끝을 짓뭉갠 뒤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옛 생각에 너무 오래 잠겨있었던 탓일까, 서둘러 책상 앞에 앉아 급한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하니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다.”


 망년회 당일. 기어이 제게 주어진 모든 업무를 처리한 이와이즈미는 쌓아두었던 연차를 몰아 사용함으로써 부러움과 질투 섞인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자유인가! 가벼운 걸음으로 회식 장소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손을 흔들었다.

 야! 이 새끼 정장 입고 왔다! 오, 사회인- 그러고 보니 꼭 저만 정장이었다. 얘들 다 대학생이지, 참. 스물스물 몰려오는 쑥스러움에 큰 소리를 내자 뒤로 넘어갈 듯 꺽꺽 웃어재끼는 하나마키의 얼굴이 보였다. 젠장. 앞에 놓인 잔을 벌컥 들이키니 어김없이 조롱이 따라붙었다. 꺄악, 이와이즈미 군! 멋져! 아 좀 닥치라고!


 “근데 그, 저... -오이카와는?”

 “연습 때문에 늦는대.”


 마츠카와는 짤막하게 대답한 뒤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액정 속에서 반짝이는 오이카와의 이름이 퍽 낯설었다. 아직도 화해 안 했냐며 한심한 듯 바라보는 그 눈초리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쉽지 않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뭐가 쉽지 않은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라 들이키던 술을 뿜어내니 더럽다며 질색하는 하나마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입가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것이 줄줄 새건 말건 오이카와는 그저 남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뿐이었다.

 주장님도 오셨겠다 신나게 마셔보자며 하나마키가 건배를 외쳤다. 서로를 견제하며 으르렁거리기 바쁘던 야하바와 쿄타니도, 첫 술자리에 들떠 얼굴을 붉히던 1학년들도 모두 잔을 들어올렸다. 오이카와! 그거 해야지! 떠밀리듯 일어난 자신들의 주장은 조용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하던 눈이 이와이즈미에게 닿는 순간, 오이카와의 입이 열렸다.


 “믿고 있어, 너희들.”


 건배! 우렁찬 외침이 한목소리처럼 터져나왔다. 본격적인 술자리의 시작이었다.


*


 이와이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허리에 매달린 채 떨어질 생각이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오랜 친구 덕분이었다. 술도 깰 겸 담배 두어 대를 피우고 돌아오니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킨다이치는 울고 있지, 쿠니미는 깔깔대며 킨다이치의 등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있지, 야하바와 쿄타니는 언제부터 사이가 좋았다며 어깨동무를 하고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바닥에 쓰러져 징징대는 오이카와의 모습이었다. 살아있나요, 오이카와 씨? 하나마키가 저의 생존 여부를 확인한답시고 젓가락을 든 채 쿡쿡 쑤셔대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병을 끌어안고 웅얼거리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뭐야 이거.”

 “왔냐. 너 나가자마자 신나게 병나발 불더라.”


 목구멍에 깔대기 꽂은 줄 알았잖아. 낄낄대며 잔을 홀짝이는 마츠카와에 얼굴을 쓸어내린 이와이즈미는 껌딱지 마냥 바닥에 딱 붙어버린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억지로 일으켜 앉힌 뒤 물까지 먹여주니 그제야 주변이 좀 보이는 모양이다. 이와쨩...? 오냐, 이와쨩이다. 너 그새 살쪘냐. 무거워서 들 수가,


 “이와쨩, 진짜 이와쨩이다-”


 주변이 화사하게 만개했다. 제 얼굴을 감싸쥔 채 미소 짓는 오이카와는 충분히 아름다워서 이와이즈미는 순간 넋을 놓았다. 자신만 그리워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이 원했던 온기가 아니었다. 오이카와도, 나를.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완벽한 둘만의 세계에서 오이카와는 눈물을 터트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의 허리를 붙잡고 온 몸의 수분이란 수분은 다 짜낼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황망하게 주위를 살피던 이와이즈미는 곧장 오이카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들끼리 놀기 바쁜 주정뱅이들의 무신경함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품에 안겨 한참을 눈물짓던 오이카와는 돌연 바닥에 풀썩 주저앉더니 다리가 풀렸다며 업어줄 것을 요구했다. 기가 찬 상대가 헛웃음을 내뱉건 말건 의연한 태도였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결국 등을 내어주는 것은 이와이즈미였고, 본디 제 자리었던 것 마냥 폴짝 뛰어올라 가볍게 안착하는 것은 오이카와였다. 갑작스레 내려앉은 육중한 무게에 악 소리가 절로 나왔음은 물론이다.

 새벽의 도시는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만이 제 자리를 지키며 나아갈 길을 안내했고, 그간 나누지 못했던 감정들을 쏟아내듯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이야기했다. 오이카와가 화두를 제시하면 이와이즈미가 맞장구를 치는 방식이었다. 우시와카쨩은 배구밖에 몰라. 하나도 재미없어. 걘 원래 그랬잖냐. 전 네코마랑 후쿠로다니 주장도 같은 팀인데 알아? 쿠로오랑 보쿠토라고. 응, 알아. 걔네들 노는 거 진짜 웃겨. 그러냐. 문득 웃음소리가 멎었다. 제 목을 감싼 팔이 살짝 굳어졌다고 느낄 무렵,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와쨩.


 “나, 이와쨩한테 토스 올리고 싶었어. 계속, 계속.”


 응.


 “이와쨩이 아니면 안 돼. 이와쨩은 내 에이스잖아.”


 그랬지.


 “-이와쨩이 좋아. 좋아해. 사랑해.”


 우리의 관계에 끝을 고했던 너는, 새로운 형태의 시작을 건넸다. 언제나 숨어드는 것은 저였고 용기를 내는 사람은 오이카와였다. 등으로 전해오는 작은 떨림에 이와이즈미는 이 기이한 숨바꼭질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사랑해, 토오루.”


 가만히 젖어드는 어깨는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환히 내리는 달빛 한 조각이 걸려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 연인의 밤은, 아직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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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대지각 해버렸습니다 하하 지금 몇 시야 벌써 3시잖아...!

라이님 손은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에내지 못하는 나쁜 손이에요 (파스슷

에반게리온 / 겁쟁이 페달 / 하이큐 - 카오신 - 토도마키 신아라 - 이와오이 히나우시 츠키야치 * 구독 위주 * 가끔 연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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