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전력

아무말 대잔치 

히로가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무언가 어색한 감이 몰려왔다. 낯선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 와중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우리 너무 티나나?”

코우지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히로는 한숨을 뱉었다. 티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정도로 대놓고 저희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숨긴 것도 아니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만.”

코우지와 히로는 같은 학교 같은 학부에 입학하였다. 카즈키는 이공학부에 들어가 강의가 겹치기 힘들었지만 히로와 코우지는 용케 교양 하나를 겹치게 시간표를 짜냈다. 그리고 오늘은 개강 첫날 첫 수업. 마침 두 사람이 겹치는 교양 수업이었다. 아침부터 최대한 단정하면서도 눈에 띄이지 않게 옷을 챙겨 입고 왔건만 그들의 얼굴을 옷으로 가려 낼 수는 없었다.

코우지는 깨끗한 노트 구석에 쓸데없는 낙서를 한 조각 그려냈다. 뾰루퉁해 있는 히로의 얼굴을 그려놓고서는 무엇이 웃기다고 시시덕거리는지. 히로는 볼펜을 들어 그의 낙서를 직직 그어댔다. 하지만 코우지는 그에 지지 않는 다는 듯 다시 밑에 낙서를 했다. 이번에는 방긋 웃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따끔한 시선들이 코우지와 히로를 향하였다. 호기심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눈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무대에서나 길에서 팬들에게 받는 그 시선과는 또 달랐다. 그저 자신들과 같은 대학생으로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 신기하다는 마음을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그대로 뱉어내는 시선이 히로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수많은 눈길은 늘 익숙하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곳에서의 눈길은 이상하리만치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 아이돌로서 어떻게 살겠냐고 누가 물어도 할 말이 없었다. 히로에게 아이돌로서의 자신과 평범한 하야미 히로로서의 자신은 철저히도 구분되는 것이었으니까.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신과 그렇지 못한 자신이 뒤섞이는 감각이 어딘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선이 거둬진 것은 정각을 조금 지나, 교수님이 들어와서였다.

“반갑습니다. 이번 학기 교양심리학 강의를 맡게 된...”

평범한 소개로 시작된 강의. 간단한 강의 소개와 성적 평가방법을 이야기하자 10분이 흘러있었다. 여전히 흘끔거리는 시선이 있지만 강의에 대한 안내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히로 역시 시선으로부터 신경을 거두고 교수의 말에만 집중을 하였다.

“이상으로 OT는 마치겠습니다.”

첫 날 강의는 드물게도 일찍 끝나버렸다. 모두가 다가와 히로와 코우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히로랑 코우지 맞죠?”

“어떡해 진짜 오버레야.”

“팬이에요. 싸인 해주세요.”

“우리 학교 다닌다고 듣긴 했는데 강의가 겹칠 줄이야!”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듯 와르르 달려들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히로는 그들에게 자연스레 웃어주며 반가이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오버더 레인보우의 절대 아이돌! 하야미 히로입니다. 후후후 모두들 나의 매력에 푹 빠져있구나? 하지만 나는 단 한명은 고를 수 없다구?”

히로의 늘 상 있는 멘트에 꺄아-하는 비명이 간간히 질러왔다.

그 순간 코우지가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죄송해요. 저희 지금 갈 곳이 생겨서. 다음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우후훗.”

코우지는 그 말을 끝으로 히로를 잡아 이끌었다. 히로는 영문도 모른 채 코우지의 손에 끌린 채 따라 가고만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 딱히 다음 일정도 없잖아.”

“그런 건 따라 와보면 알아.”

 

이 학교 안에 이런 곳도 있었을까? 어느 한적한 오솔길이었다. 코우지는 이런 장소를 어떻게 알고서 찾아 온 것인지. 정말 아는 사람이 없는 지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한 두명 정도 지나가는 사람도 전부 교수님들 뿐이었다. 저들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히로의 마음이 한 층 가벼워졌다. 무언가를 다 내려 놓은 것 같은 기분으로 안에 꽉 차있던 숨을 뱉어냈다.

“히로는 왜 그렇게 긴장을 잔뜩 하고 있는 거야? 무서워?”

코우지는 지나가는 듯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뱉었다. 히로는 코우지를 슬쩍 흘겨보다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 아니야. 대학 생활은 처음이니까.”

코우지는 히로의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를 마주한 채 얼굴을 훅 들이밀었다. 히로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것을 코우지는 꼭 잡고서 물었다.

“정말?”

그의 되물음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다정하지만 강렬하게 히로의 속을 뜯어보고 있었다. 히로는 차마 내뱉은 거짓말을 이어 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코우지는 그런 히로를 응시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한참을 응시하다, 어느 순간 히로의 입가에 코우지의 입술이 포개졌다. 말캉이 닿은 입술은 늘 그렇듯 자연스레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문득 히로가 가벼이 물러섰다.

“잠깐만, 누가 볼 수도 있잖아.”

방금까지도 달떠있던 히로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미간이 살짝 구겨진 히로의 표정에 코우지는 씁쓸히 웃으며 히로의 이마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다. 그러자 히로의 미간은 더욱이 구겨지고 말았다.

“뭐하는 거야?”

“히로는 평범한 대학생이 되보고 싶다고 해놓고 왜 그렇게 아이돌로서의 히로를 놓지 못하는 거야?”

코우지는 히로를 품에 꼭 안고서 다시금 물었다.

“히로는 왜 늘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는 거야?”

이번에는 히로는 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사이는 침묵이 감돌았다. 봄바람이 훅 불었다. 벚꽃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 앉았다. 히로는 눈을 감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어쨌든 하야미 히로잖아.”

“한 사람의 것은 될 수 없는 모두의 아이돌?”

“아니 물론, 나는 코우지의 단 하나뿐인 애인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히로 나는 지금 네가 내 애인이냐고 물은 게 아니야.”

코우지의 손은 다정히 히로의 뺨을 감쌌다. 봄바람보다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히로는 내심 기분이 좋았던 지 얌전히 있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나 흘끗 쳐다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 일일까.

“봐 지금, 또 히로는 누군가를 볼까 걱정하고 있잖아. 물론 우리는 걱정을 해야 하지. 하지만, 히로는 늘 걱정하고 신경 쓰잖아? 그래서 히로는 언제 행복한데?”

코우지의 의문이 거듭될수록 히로의 안에도 의문이 생겼다. 그러게. 정말 저는 언제 행복해지는 것일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이 말을 했던 것이 고작해야 몇 달 전이었다. 그 때 히로는 스스로가 참으로 달라졌다고 느꼈다. 저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느끼며 뿌듯해 하였다.

그러고서 지난 달려온 나날 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만으로 크게 크게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그 펼친 날개를 제가 더는 수습을 할 수 없어진 지금, 정말 하야미 히로는 없었다. 프리즘 킹 히로. 오버 더 레인보우 히로. 수식언만이 히로를 장식하고 있었다.

“히로는 늘 열심히야. 그런데 정작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 밖에서 그렇게 기력을 다 쓰고 다니니까 정작 집에서는 밥도 안 먹고, 자꾸 스스로를 챙기지를 못하는 거야.”

코우지의 타박에 히로는 할 말이 없던 지 입술을 앙다물었다. 마치 혼나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히로가 스스로를 챙기지 않는 다는 것은 에델로즈 안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아침부터 옷 갈아입는 것 까지 하나하나 코우지가 잔소리를 해야만 겨우 해내고 마는 그런 얼빠진 사람. 그것이 하야미 히로였다.

“히로. 모두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너 스스로를 사랑해줘.”

 

강의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교양심리학의 두 번째 수업이 끝난 후였다. 교수님은 오늘까지도 빨리 끝내주었다. 20분정도의 짬이 생기자 다들 저번과 같이 히로와 코우지에게로 다가왔다.

“저...”

“죄송해요. 오늘은 오버더 레인보우로서의 히로가 아니라 평범한 대학생 히로니까. 여러분에게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히로는 오늘 안경을 썼다. 그의 안경을 쓴 모습이 익숙지 않던 이들은 히로의 그 답지 않은 말투에 더 커다랗게 눈을 떴다. 다들 당황한 채로 우두커니 서있자니 이를 수습한 것은 코우지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모습은 앞으로도 무대나 방송을 통해 많이 봐주시고 학교에서는 오로지 온전한 미하마 코우지와 하야미 히로로 다가와주세요. 저희도 여기서는 학생이니까요.”

코우지가 싱긋 웃으니 사람들이 꽤나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쑥덕대기는 하였지만, 코우지는 그런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일어섰다.

“그럼 저희는 다음 수업 전에 빠르게 점심을 해결 하기 위해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란스러운 강의실을 나온 코우지와 히로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히로는 여전히 어딘가가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코우지와 맞잡은 손에 힘은 빠져있었다.

코우지는 그러면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히로의 손을 꽉 잡았다. 제 연인은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개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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