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엉클쌤입니다.

야불담귀 외전이 1월 출간 예정입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도움이 될까 해서 야불담귀 삭제분 일부를 업로드합니다.

초고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이며 청파백두 쌍둥이와 이령이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길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찰방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물고기라도 뛰어올랐나 싶어 강을 바라보니 맞은편에서 어린 남자아이 둘이 막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어?”

파문이 일던 수면이 잔잔해지고도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이령은 아차 싶었다. 역시 물에 빠진 게 분명했다. 재빨리 신발과 장삼을 벗어 던지고 강가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가 강물에 뛰어들기도 전에 작은 물보라와 함께 머리 두 개가 쏙 튀어나왔다. 저물어가는 주황빛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사금 빛 머리카락. 손에는 뾰족한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어른 팔뚝만 한 송어가 각각 꿰어 있었다.

“하... 대단하네.”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예쁘게 생겼다. 다시 뭍으로 헤엄쳐간 그들은 온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철퍽 주저앉아 팔딱거리는 송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이령이 손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불렀다.

“얘들아! 날로 먹으면 배탈 난다! 이리 오렴! 불 피워 줄게!”

그러나 이쪽 편의 이령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뜯어먹던 송어를 냅다 집어 던지고 숲을 향해 줄행랑을 쳐 버렸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강가에 나갔지만 노란 머리 아이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이령은 매일 저녁 강변으로 나왔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어느새 낚싯대까지 챙겨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늘도 공을 치고 송어만 잔뜩 낚았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하고 낚싯대를 거두는데 어둠이 내려앉은 숲 저편으로 하얀 얼굴이 언뜻 비쳤다.

‘그렇단 말이지.’

자리를 뜨려던 이령은 도로 주저앉아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는 송어의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강물에 헹궜다. 잡은 다섯 마리를 전부 그렇게 손질했다.

이어서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주워와서 유유히 불을 지폈다. 생선 주둥이에 나뭇가지를 꽂아 불 위에 얹어놓으니 금세 지글지글 기름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 소금도 있었지.”

가죽낭을 뒤져 소금 주머니를 꺼냈다.

“액막이용 소금이지만, 뭐... 먹는다고 탈이야 날까.”

소금까지 뿌리자 완벽했다. 강바람을 타고 생선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풍겼다.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굽는데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바람결을 타고 이령의 뺨을 간지럽혔다. 언제 다가왔는지 두 소년이 이령 옆에 바짝 다가와 생선구이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강변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까이 오기 전까지 조약돌 밟는 소리는 물론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조심성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구워 먹으면 훨씬 맛있단다.”

경계심보다 허가가 앞섰는지 아이들은 그 자리에 도사리고 앉았다.

“지난번에 보니까 헤엄을 잘 치더구나.”

대답이 없었다.

“근처에 사니?”

묵묵부답이 이어졌다.

“아니면 서방(서유럽)에서 왔어?”

대꾸도 없고 반응도 없었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 어쩌면 이방인이라서 여기 말을 모르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이 있지 않은가.

“이제 먹어도 되겠다. 이렇게 들어서...”

겉이 약간 탈 정도로 바싹 구워진 물고기를 들고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앙앙 뜯어먹으면 돼. 알았지?”

그러자 멀찍이 앉아있던 아이가 풋 하고 웃었다. 사납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하지만 이령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령은 소탈하게 웃으며 물고기 꿴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우스웠어? 그래도 어떻게 먹는지 알았으면 됐다.”

물고기를 하나씩 손에 쥐여주자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인지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 큰 송어가 눈 깜짝할 새 동이 났다.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이번에는 이령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령이란다. 이, 령. 이령.”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이령’을 몇 번이나 말해주고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이름 말할 수 있어? 나는 이령. 너희는?”

그러자 이령 옆에 앉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아이가 고양이 같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말할 줄 알아.”

“어?”

“말할 줄 안다고. 그런데 이거 어떻게 피운 거야?”

모닥불을 가리키며 아이가 물었다. 이령은 표범 가죽으로 만든 부시쌈지에서 부싯돌과 부시를 꺼내 불붙이는 걸 보여주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다른 한 아이는 부싯돌보다도 이령이 등에 메고 있는 검에 더 관심을 보였다.

“넌 이 칼이 궁금해?”

생선의 배를 가르는 데 썼던 날이 짧은 은장도도 귀중한 물건이었지만, 등에 멘 검은 은장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명검이었다. 함부로 남의 손을 타면 안 됐지만 낯선 아이들과 친교를 맺으려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마음이 있었다.

“너도 말 알아듣지? 이건 쌍금검이란다. 두 개의 검이 짝을 이루어 하나의 이름을 가졌지.”

야인처럼 방랑한다 해도 이령은 지체 높은 가문 태생이었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문무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관직에 몸담지 않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이령은 얽매이는 것보다 세상을 둘러보는 쪽을 택했다.

“쇠와 쇠는 맞부딪칠수록 날이 선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야. 귀중한 명검이니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칼자루에 새겨진 호랑이 문양을 가만가만 만지던 아이가 돌연 작은 손으로 자루를 꽉 쥐더니 칼집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제법 묵직할 텐데도 몸짓이 유연하면서 힘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칼날을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두 손에 쥐었다가 한 손에 쥐었다가 하는 것이 목검을 들고 노는 어린애 마냥 천진했다.

“그러다 다칠라. 이제 돌려주거...”

검날에 손이라도 벨까 봐 돌려달라 말하려는 찰나, 쌍금검의 검신에 하얀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검을 통해 검기가 맺히는 걸 난생 처음 목격했다.

“어떻게?”

아이는 제 손으로 맺은 검기가 신기한 듯 칼을 휘둘렀고 빛이 꼬리를 끌며 허공에 아름다운 잔상을 남겼다. 부시를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그걸 보고도 썩 놀라지 않았다.

“왜? 저거 대단한 거야?”

“대단하냐고? 대단하다는 말로도 모자라지. 검기란 단순히 뛰어난 기술을 지녔다고 맺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타고난 자질과 높은 수련의 경지, 영력이 삼박자를 갖추어야 가능하단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검기를 맺다니...”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뻔한 수식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재능이 아니었다. 날 때부터 가진 힘. 몸 자체에 깃들어 있는 신비한 힘.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부모는? 남천에 살아?”

부싯돌로 불장난을 하는 아이는 고개도 안 들고 대꾸했다.

“나는 청파고 쟤는 백두야. 부모는 없어.”

그때 저 멀리 강어귀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청파와 백두는 부싯돌과 쌍금검을 던져버리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잠깐만.”

하지만 깊은 강물 속으로 소리 없이 잠긴 두 아이는 이윽고 맞은편 강가에서 불쑥 솟아나더니 숲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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